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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작가의 음담악담(音談樂談)

9년 만에 만난 숭고한 아름다움

언니네 이발관 마지막 앨범 ‘홀로 있는 사람들’

9년 만에 만난 숭고한 아름다움

9년 만에 만난 숭고한 아름다움

언니네 이발관에서 기타, 보컬, 드럼을 담당하는 이능룡, 이석원, 전대정(왼쪽부터).[사진 제공·블루보이]

5월 31일 저녁 ‘언니네 이발관’의 이석원을 만났다. 앨범 발매를 하루 앞둔 날, 밥이나 먹으며 새 앨범에 대한 얘기를 나눌 요량이었다. 그는 만나기로 한 장소를 찾지 못했다. 전화로 대뜸 화부터 냈다. 보통의 경우라면 황당했겠지만, 날이 날인지라 이해가 됐다. 얼굴을 보자마자 그는 사과를 했다. 분노조절장애가 생겼다고 했다. 많은 음악인이 앨범 발매를 앞두면 민감해진다. 몇 달 동안 똑같은 곡을 듣고 또 들으며 소리를 만진다. 제대로 된 외출 한 번 못하고 스튜디오에 있다 보면 스트레스가 쌓이기 마련이다. ‘앨범이 나오자마자 사라지면 어떡하나’라는 두려움이 엄습한다. 그러니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그날의 그는 유독 심했다. 마치 장기 탈영병처럼 불안해 보였다. 저녁을 먹는 내내 음악 얘기는 꺼내지 못했다. 하긴 음악을 듣지 못했으니 딱히 물어볼 거리도 마땅치 않았다. 식사 후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한담을 나눴다. 밤이 깊었다. 헤어질 시간이 됐다. 그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차에서 딱 한 곡만 듣고 갈래?”



곡 작업 7년, 녹음 1년

1번 곡 ‘너의 몸을 흔들어 너의 마음을 움직여’의 마지막 30초부터 듣기 시작해 다음 곡 ‘창밖엔 태양이 빛나고’를 들었다. 곡 후반부, 언니네 이발관의 지난 다섯 장 앨범을 통틀어 들어본 적 없는 고음역대의 목소리가 나왔다. 그는 아무 말 하지 않고 다음 곡으로 넘겼다. 네 번째 곡인 ‘마음이란’, 그리고 그 전 트랙인 ‘누구나 아는 비밀’을 틀었다. 이 노래에서 낯설면서 익숙한 여성 목소리가 함께 나왔다.

“아이유?”



이석원은 아무 말이 없었다. 그저 이 음악을 만들려고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알아달라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볼 뿐이었다. 절박을 넘어서는 초조한 눈빛으로.

2008년 여름 발매된 그들의 다섯 번째 앨범 ‘가장 보통의 존재’가 남긴 족적은 조용하지만 거대했다. 이명박 정부 첫해였으며, 아직 스마트폰이 우리에게 주어지지 않은 마지막 해였다. 스트리밍보다 다운로드로 음악을 듣는 게 더 익숙하던 때다. 당시 이 음반이 차트에서 빛나진 않았지만 지금까지도 꾸준히 팔리며 누적 판매 10만 장을 넘어섰다. 대형공연장 대신 라이브클럽 위주로 열어온 공연의 누적 관객 또한 5만 명 이상으로 알려졌다. 2009년 한국대중음악상에서는 압도적인 차이로 ‘올해의 앨범’을 비롯한 주요 부문을 휩쓸었다. 1996년의 1집과 98년의 2집을 뛰어넘는 앨범을 내지 못할 거란 일각의 예측을 ‘압살’했다.

밴드라는 생명체의 생애가 일반적으로 하향 곡선을 그리는 데 반해, 언니네 이발관은 이 앨범으로 단숨에 유(U)자형 곡선을 그렸다. 이 또한 9년 전 이야기다. 그사이 한국은 박근혜 대통령을 거쳐 문재인 대통령 시대를 맞이했다. 모두가 스마트폰을 통해 스트리밍으로 음악을 듣게 됐다. 과거 유물이라고 생각했던 LP반과 카세트테이프가 ‘소장’으로서 음악을 대체하고 있다. 그리고 힙합과 일렉트로닉댄스뮤직(EDM)이 젊은 세대가 듣는 음악의 대세가 됐다. 서울 홍대 앞과 상수동 일대에 모여 살던 음악인들은 연남동과 망원동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모든 게 바뀌어도 너무 바뀌었다. 그 시간 대부분을 언니네 이발관은 다음 앨범을 위해 바쳤다. 곡 작업에 7년이 걸렸다. 녹음에는 1년이 걸렸다. 마스터링에만 꼬박 한 달을 썼다. 몇 명의 엔지니어가 이 앨범을 거쳐 갔다. 2015년 가을 ‘그랜드 민트 페스티벌’을 끝으로 공연조차 하지 않았다.

결국 그들은 이 앨범이 자신들의 마지막 앨범이라고 선언했다. 최종적으로 열 곡을 발표하겠다 했지만 앨범에는 아홉 곡만 실렸다(사실 당초엔 앨범 두 장을 연달아 내겠다고 하기도 했다). 자신들의 U자형 곡선 마지막을 위해 들인 공과 자체적 허들이었다.
 
30대였던 세 남자(보컬·기타 이석원, 기타 이능룡, 드럼 전대정)가 모두 40대가 돼 나온 언니네 이발관의 마지막 앨범 ‘홀로 있는 사람들’은 지난 앨범의 대척점이자 연장선상에 있다. ‘가장 보통의 존재’는 한 편의 영화이자 소설이었다. 모든 노래가 유기적으로 이어지면서 전체적으로 하나의 틀이 되는 앨범이었다. ‘홀로 있는 사람들’은 그 반대편에 있다. 각각 에피소드가 빛나는 옴니버스다. 모든 노래가 개별적, 완결적 서사를 가진다. 노래 몇 개를 합쳐 하나의 노래로 만든 것 같다. 한 곡이 끝나면 나오는 다음 곡은 모두 다른 앨범의 첫 곡처럼 들린다.

아이유와 함께 부른 ‘누구나 아는 비밀’은 조성만 아홉 번이 바뀐다. 3개 이상의 멜로디 덩어리가 뭉쳐 하나의 노래가 된다. 이 옴니버스적 다양함이 앨범의 특징이라면, 가사는 언니네 이발관의 일관성을 보여준다. 여느 앨범과 마찬가지로 상실과 고독에 대한 시적이고 섬뜩한 묘사를 담는다.

사랑은 늘 과거형으로 존재하고 회상조차 이미 지나간 일이다. 세월호 사고 이후 광화문과 한국 사회에 대한 염증이 묻어나는 ‘혼자 추는 춤’을 제외한 모든 노래가 그렇다. 사랑과 이별의 흔적마저 탈색된 후 남겨진, 앙상한 유물 같은 마음의 풍경이다. 나만 보는 일기장에 적고 싶었지만 적을 수 없던 문장들이다. G단조의 어쿠스틱 기타 피킹으로 문을 열고 들어가는 이 앨범이 D코드 기타 피드백으로 마침내 쓸쓸히 문을 닫고 나올 때는 격한 아쉬움이 밀려온다. 정녕, 이게 마지막인가 하는. 26년 시간의 끝인가 하는. 그리고 다섯 개 만점의 별점 노트에 네 개 반을 채워 넣는다. 마지막 반 개는 머지않은 역사에 의해 채워질 것이다.

이 앨범이 나오던 날 온라인은 조용히 달아올랐다. 9년을 기다려온 이들이 보내는 아쉬운 헌사로 달아올랐다. 멜론을 비롯한 온라인 음원차트는 조용했다. 달아오른 건 음반차트였다. 예스24를 비롯한 음반 판매 사이트에서 이 앨범은 최상위권을 다투고 있다. 이 대목에서 나는 언니네 이발관이 한국 대중문화시장에서 차지하는 범주를 생각한다.



“하얗게 불태웠다”

9년 만에 만난 숭고한 아름다움

언니네 이발관이 그동안 발매해온 앨범 재킷들. 1집 ‘비둘기는 하늘의 쥐’(1996), 2집 ‘후일담’(1998), 3집 ‘꿈의 팝송’(2002), 4집 ‘순간을 믿어요’(2004), 5집 ‘가장 보통의 존재’(2008), 6집 ‘홀로 있는 사람들’(2017).

지난 앨범과 마찬가지로 이 앨범은 트렌드나 인기, 그리고 소비 같은 단어와는 거리가 있다. 그 대신 스타일과 취향, 무엇보다 소장이라는 개념에 가깝다. 책이나 블루레이 같은 존재일지도 모른다. 한 음악 사이트에서 누군가 이 앨범에 대해 이런 문장을 남겼다. ‘숭고한 마음으로 음악을 듣는 건 처음이다.’ 노트북컴퓨터에서조차 콤팩트디스크(CD)를 들을 수 있는 장치가 사라진 지금, 그럼에도 음반으로 이 음악을 갖는 이가 있다는 건 그 ‘숭고함’이 청자들에게 전이됐기 때문이리라.

‘홀로 있는 사람들’을 낸 후 언니네 이발관은 어떤 홍보활동도 하지 않고 있다. 그 흔한 공연조차 안 해 마치 발매와 동시에 산화한 것처럼 보인다. 통상 마지막을 선언한 밴드에게 최종 장소는 무대다. 마지막 앨범을 내놓은 후 마지막 투어를 끝으로 각자의 삶으로 돌아간다. 비즈니스에 빗대자면 멤버들은 개인, 밴드는 법인이다. 보통 ‘음악적 법인’은 그 최후를 무대에서 끝마친다. 그런데 언니네 이발관은 마지막 무대에 올라갈 힘조차 모두 스튜디오에 쏟아부었다. 하얗게 불태웠다.






주간동아 2017.06.21 1093호 (p78~79)

  • 대중음악평론가 noisepop@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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