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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꽃 산책

누가 바닷가에 보랏빛 카펫 깔았나

순비기나무

누가 바닷가에 보랏빛 카펫 깔았나

누가 바닷가에 보랏빛 카펫 깔았나
매년 맞는 계절의 변화지만 겪을 때마다 참 신기하다. 뙤약볕이 내리쬐는 한낮이 지나고 나면 아침저녁으로 부는 바람에 찬 기운이 섞여 있다. 누가 여인의 마음은 갈대와 같다고 했던가. 푹푹 찌던 8월 초까지만 해도 피하고 싶던 바다가 여름의 끝자락에 와서 문득 그리워지니 말이다.

순비기나무는 그런 바닷가 모래땅에 지금도 피어 있을 키 작은 나무다. 사람으로 북적이는 현란한 해수욕장이 아닌 한적한 바닷가, 물이 들었다 나갔다 하는 바닷가 모래땅이나 모래땅 위에 나지막하게 자리 잡은 바위틈에서 자란다. 주로 서해안이나 남해안 혹은 그 주변 섬에서 볼 수 있다. 자라는 모습 역시 독특한데 나무치곤 작은 편으로, 두 뼘쯤 되는 높이까지 자란다. 하지만 옆으로 뿌리줄기를 뻗으며 퍼져나가 대개는 커다란 무리를 이루며 자란다. 소복한 덤불처럼 혹은 보랏빛 카펫처럼.

분백색이 도는 잎엔 은은함이 있다. 잎 전체에 회백색 털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바람을 다스리기 위함일까.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도 비교적 오래 피어 있는 작은 보랏빛 꽃 속에서 튀어나온 수술이며 이러저러한 색의 변화가 여간 재미난 게 아니다. 꽃이 지고 나면 이내 구슬처럼 둥글고 딱딱한 열매가 달리는데, 익을 때쯤이면 검은 자줏빛이 된다.

순비기나무란 이름은 어디에서 왔을까. 정확하게 확인되진 않았지만 언뜻 듣기에는 해녀가 물속으로 들어간다는 뜻의 제주 방언 ‘숨비기’에서 연유했다고 한다. 순비기나무가 주로 바닷가에서 살고 뿌리가 모래 속으로 들어간다는 점을 생각하면 그럴듯하다. 살아가는 모습과 그 의미를 연상하면 이내 즐거운 마음이 든다. 어쨌든 재미난 이름이다. 한자로는 만형(蔓荊)이라 하고 만형자나무, 풍나무, 숨베기나무라고도 한다.

바닷가에서 자라는 까닭에 해풍 피해를 막는 지피(地被) 소재로도 관심을 두는 이가 많다. 상록성이니 월동에만 문제없다면 이 또한 아주 좋은 장점이다. 식물체에 향기도 있어 허브식물로 권하기도 한다. 솔향기 같은 것이 나는데 냄새를 맡다 보면 머리가 시원해진다고 한다. 욕실에 놓아두고 향료로 쓰기도 한다. 한방에서도 많이 쓰는데 두통약으로 쓰는 것을 보면 헛말은 아닌 듯하다. 한방에서는 여러 통증, 눈의 침침함과 충혈, 신경성 두통, 타박상 등 비교적 많은 증상에 처방한다. 밀원식물로도 알려졌다.



아직 여름휴가를 떠나지 못했다면 지금이라도 순비기나무 군락이 있는 바닷가를 찾아가면 색다른 정취를 맛볼 수 있을 듯하다. 트인 바다도 바라보고, 그 바다를 바라보고 사는 순비기나무의 푸른 향기에 취하다 보면 진정한 휴식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누가 바닷가에 보랏빛 카펫 깔았나




주간동아 2013.08.26 902호 (p80~80)

  • 이유미 국립수목원 산림생물조사과장 ymlee99@forest.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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