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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펀드슈퍼마켓서 “골라, 골라”

온라인서 펀드 쇼핑 내년부터 가능, 투자자 선택권 확대

펀드슈퍼마켓서 “골라, 골라”

펀드슈퍼마켓서 “골라, 골라”

펀드슈퍼마켓은 온라인 공간에서 다양한 펀드를 비교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사진은 펀드 소비자가 서울 영등포구 신한금융투자 본사 영업점에서 펀드 상품을 비교하는 모습.

한 주부가 얼마 전 젖을 뗀 아이에게 먹일 이유식을 사려고 편의점에 들렀다. 아이가 첫 번째로 먹는 이유식이니만큼 영양 정보가 중요하다. 맞벌이지만 저성장·저금리 시대에 살림살이가 팍팍하니 가격도 철저하게 따져볼 참이다. 오랜 시간 이유식을 둘러봤지만 진열된 상품들이 썩 마음에 들지 않는다. 동네 할인마트로 발길을 돌렸다. 결과는 마찬가지. 주부는 자가용을 끌고 대형마트로 가기로 결심했다. 대형마트에는 시중에 출시된 모든 이유식이 진열돼 있다. 주부는 여러 제품을 비교한 끝에 가장 마음에 드는 이유식을 고를 수 있었다.

주부가 이유식을 고를 때 쏟는 정성만큼이나 펀드를 고르는 투자자도 심혈을 기울인다. 어렵게 모은 재산을 제대로 지켜줄 수 있는 펀드에 가입하고자 하는 마음은 거액자산가나 소액투자자나 똑같다.

펀드 산업 전반에 큰 영향

그러나 현실적으로 우리나라 펀드 투자자는 은행이나 증권사 등 판매사가 추천해준 펀드 가운데 ‘가장 나아 보이는’ 상품에 가입한다. 대형마트처럼 시중에 출시된 모든 펀드를 취급하는 판매사가 아직 없기 때문이다. 주부와 비교하면 이유식을 살 수 있는 곳이 동네슈퍼와 편의점밖에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내년부터 우리나라 투자자도 모든 펀드를 비교하고 고를 수 있는 길이 열린다. 펀드슈퍼마켓이 내년 초 본격적인 영업 개시를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펀드슈퍼마켓은 국내에서 출시된 모든 펀드를 한곳에 모아 판매할 수 있게 하는 온라인 판매채널이다. 국내에서는 최초로 시도하는 형태다. 은행과 증권사가 편의점이라면, 펀드슈퍼마켓은 대형마트다. 아직 국내 투자자에게는 생소한 펀드슈퍼마켓이지만 앞으로 이 제도가 펀드산업에 미칠 영향에 투자자와 증권업계의 관심이 집중된다.



최근 펀드슈퍼마켓 설립위원회는 차문현 전 우리자산운용 대표를 신임 대표이사로 선임했다. 펀드슈퍼마켓은 국내 자산운용사와 증권 유관기관 펀드평가사 등이 200억 원 규모의 자금을 출자해 설립했다. 9월 말 일반법인을 설립하고 늦어도 내년 1분기 내에는 온라인 펀드 판매를 시작한다. 판매 상품은 국내 자산운용사가 출시한 모든 펀드다.

펀드슈퍼마켓은 미국, 영국, 호주 등 금융선진국에서는 이미 제도화된 시스템이다. 투자자로 하여금 모든 펀드를 같은 조건에서 보고 판단할 수 있도록 해 투자자의 선택권을 넓혀주겠다는 취지다.

일반 상장주식은 증권사 홈트레이딩시스템(HTS)을 통해서도 모든 종목을 거래할 수 있다. 한국거래소가 모든 상품을 증시에 올려놓고, 투자자는 증권사라는 창구를 통해 자유롭게 거래할 수 있다. 보험상품도 마찬가지다. 각기 다른 계열회사 보험이라도 사실상 모든 시중은행에서 판매한다. 보험상품은 은행뿐 아니라 보험설계사가 집이나 고객을 직접 방문하는 방문판매 형태, 온라인, 심지어 홈쇼핑 채널을 통해서도 판매가 이뤄진다.

그러나 유독 펀드는 투자자 선택권이 제한적이었던 게 사실이다. 투자자들은 은행과 증권사라는 한정된 창구를 통해서만 펀드에 가입할 수 있다. 그로 인해 발생하는 피해는 펀드 소비자인 투자자 몫이다. 선택권이 제한적이다 보니 은행과 증권사 등 펀드 판매사들은 으레 ‘누이 좋고 매부 좋고’ 식으로 계열사 상품을 밀어준다. 예를 들어 A은행(증권사)이 같은 계열사인 A자산운용 펀드를 집중적으로 팔아주는 식이다. 다른 회사 펀드보다 상대적으로 품질이 떨어지더라도 계열 자산운용사가 만든 펀드를 추천하는 관행이 고착화했다. 금융투자협회 등이 발표하는 통계자료를 통해서도 계열사 펀드 판매 비중이 높은 것으로 확인됐다. 일부 판매사는 계열사 펀드를 판매하는 직원에게 인센티브를 주기도 한다. 현재 펀드 산업은 금융투자회사의 신의성실원칙이 제대로 지켜질 수 없는 구조인 셈이다.

펀드슈퍼마켓서 “골라, 골라”
자산운용사 환영, 증권사 팔짱

결국 감독당국이 칼을 빼들었다. 혼탁한 펀드시장을 정화하고 소비자 상품 선택권을 넓히려고 다양한 방안을 내놨다. 제도적으로는 판매사가 계열사의 자산운용사 판매 비중을 50% 미만으로 유지하도록 하는 ‘50%룰’을 권고하고 내년 4월부터 적용한다. 계열사 펀드 판매 시 직원에게 줬던 인센티브 제도도 폐지하라고 지시했다. 펀드 판매 채널도 다양화하기로 했다. 펀드슈퍼마켓 도입도 그중 하나다. 은행과 증권사는 물론 우정사업본부(우체국), 상호금융, 저축은행 등 제2금융권의 펀드 판매도 연내에 허용할 예정이다.

증권업계와 자산운용업계는 펀드슈퍼마켓 도입이 국내 펀드시장에 한 획을 그을 변화를 가져올 계기가 되리라는 점에는 동의한다. 그러나 펀드슈퍼마켓을 바라보는 시각에는 온도차가 있다. 자산운용업계는 펀드슈퍼마켓 도입에 적극적이다. 특히 판매 네트워크가 상대적으로 취약한 독립형 운용사(은행이나 증권사 등 금융계열사가 없는 단독 운용사)는 펀드슈퍼마켓 설립을 환영하는 분위기다. 자산운용사가 가진 ‘배경’(은행, 증권사 등 금융계열사)이 아니라 ‘수익률’이라는 성적표를 갖고 투자자에게 공정하게 평가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증권업계는 펀드슈퍼마켓 도입이 달갑지만은 않다. 펀드슈퍼마켓을 통해 투자자는 국내 자산운용사가 제공하는 펀드를 모두 접하고 더 저렴한 값에 가입할 수 있게 된다. 판매사로선 기존에 없던 강력한 경쟁자가 생긴 셈이다. 기존 펀드 판매 매출에도 악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은행, 증권사 등 판매사들이 책정한 높은 펀드 판매보수를 유지하려면 영업지점을 방문한 투자자에게 제공하는 리서치나 자산관리 등 서비스 품질 강화가 불가피하다. 펀드슈퍼마켓을 도입한 이유도 사실 판매사 간 경쟁을 통한 펀드시장의 질적 개선을 유도하기 위해서다.

차문현 펀드슈퍼마켓 신임대표는 “펀드슈퍼마켓 도입은 근본적으로 금융투자업계가 펀드에 투자하는 고객이 지금보다 나은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유도하고 이를 통해 펀드에 대한 불신을 해소하려는 것”이라며 “신뢰 회복을 통해 펀드 시장이 더욱 확대, 활성화한다면 펀드슈퍼마켓과 기존 판매사가 모두 윈윈(win-win)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펀드슈퍼마켓 도입 이후 투자자가 느끼게 되는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제3의 클래스 펀드’가 생긴다는 점이다. 차 신임대표는 선출 이후 “기존 온라인 클래스 판매보수 수준이 (판매사가 제공하는 서비스에 비해) 다소 높다고 생각한다”며 “온라인 클래스보다 더 저렴한 펀드슈퍼마켓용 클래스를 만들어야 한다”고 밝혔다.

옥상옥 군림 우려 목소리도

펀드슈퍼마켓서 “골라, 골라”

한 증권사에서 고객에게 펀드를 판매하는 모습.

펀드에서 클래스란 판매수수료와 판매보수를 부과하는 형태를 일컫는다. 예를 들어 ‘○○증권자투자신탁Class C(환매 시 판매수수료를 부과하는 형태)’ 판매보수가 1.5%라면, 온라인으로 판매하는 A펀드 ‘○○증권자투자신탁Class C-e’는 판매보수가 1.2%로 낮다. 펀드슈퍼마켓은 펀드슈퍼마켓 전용 클래스 펀드를 새로 만들어 기존 온라인 클래스 펀드 판매보수보다 더 낮은 보수로 펀드를 판매할 계획이다.

판매수수료를 낮춤과 동시에 펀드슈퍼마켓 전용 독립재무설계사(IFA)도 도입할 것으로 전망된다. 온라인으로만 펀드를 판매하다 보면 상품 투자위험이 투자자에게 제대로 알려지지 않는 등 불완전판매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독립재무설계사는 온라인 펀드투자자에게 상품에 대한 설명을 진행하는 전문인력이다.

투자자는 펀드슈퍼마켓 온라인 홈페이지를 통해 펀드를 ‘쇼핑’하게 된다. 상품 제공자인 자산운용사들의 관심은 어떤 방식으로 펀드가 펀드슈퍼마켓 홈페이지에 진열될 것인지 하는 점이다. 펀드슈퍼마켓은 검색 기능을 통해 운용사별, 유형별, 수익률별, 설정액별로 펀드를 진열하고 가나다순, 펀드슈퍼마켓 추천 등 다양한 방식으로 정렬이 가능하게 할 예정이다. 차 신임대표는 “객관적인 기준을 갖추려고 펀드평가사와 협력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일부 전문가는 펀드슈퍼마켓이 ‘옥상옥’으로 군림하게 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다. 펀드슈퍼마켓이 또 다른 권력기관이 될 수 있다는 것.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온라인 슈퍼마켓이 모든 펀드를 진열한다고 해도 홈페이지 한 화면에 모든 상품을 보여주기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며 “상품이 어디에 어떻게 배치되느냐에 따라 펀드 판매실적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어떤 방식으로든 펀드를 분류해야 하고 노출 순서나 빈도도 정할 텐데, 홈페이지 접속 시 우선적으로 더 많이 노출되기 위한 자산운용사들의 물밑 로비가 거셀 것”이라면서 “펀드슈퍼마켓이 기존 판매사보다 입김이 센 ‘갑 중 갑’이 될 개연성도 있다”고 우려했다.



주간동아 2013.08.26 902호 (p18~20)

  • 서태욱 매일경제 증권부 기자 seotw@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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