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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으로 들어온 한권

그 사람 뜨고 나니 완전히 변했네

‘승자의 뇌’

  • 윤융근 기자 yunyk@donga.com

그 사람 뜨고 나니 완전히 변했네

그 사람 뜨고 나니 완전히 변했네

이안 로버트슨 지음/ 이경식 옮김/ 알에치코리아/ 392쪽/ 1만5000원

허약한 상대를 맞아 몇 차례 승리를 거둔 동물은 나중에 훨씬 강한 상대를 만나더라도 승리할 개연성이 높다. 생물학에서는 이런 현상을 ‘승자효과’라고 한다. 승자효과는 인간에게도 적용되는데, 축구에서 공을 넣어본 선수가 공을 더 잘 넣을 수 있는 능력을 지니게 되는 것도 이런 이치다. 승리와 성공의 효과는 무척 크고 여러 가지를 변화시킨다. 그중에서도 특히 뇌의 화학적 상태를 바꿔놓는다. 이겨본 사람은 더 집중하고, 더 똑똑해지며, 더 자신감이 넘칠 만큼 공격적으로 바뀐다.

“승자효과는 마약만큼이나 강력한 효과를 발휘해 승리를 경험할수록 앞으로도 더 많이 이기게 해준다. 그러나 여기에는 경계해야 할 부작용도 도사리고 있다. 승리는 중독성이 있어서 사람의 뇌를 엉망으로 만들어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신경심리학 분야에서 국제 권위자로 인정받는 저자는 ‘승자’의 뇌에서 일어나는 정신적, 물리적 변화가 무엇이고, 이 변화가 어떻게 일어나며, 왜 사람에 따라 다른 효과가 나타나는지를 다양하면서도 노련하게 풀어낸다.

‘씨가 다르다’는 말은 오래전부터 통용돼왔다. 정치, 예술, 사업 등 어떤 영역에서든 승자는 혈통에 따라 어느 정도 결정된다는 것이다. 수천 년간 이어온 정략결혼, 즉 경주용 종마나 유럽 왕실의 혈통을 보전하려는 노력도 따지고 보면 승자를 대물림하기 위한 노력의 한 모습이다.

그러나 피카소의 아들 파울로 피카소를 보면 상황은 달라진다. 파울로는 평생 여기저기 방랑하면서 술독에 빠진 채 무책임하게 살았고, 단 한 번도 직업을 가진 적이 없었다. 그는 두 아들을 사회복지사들에게 맡겨 겨우 키웠다. 천재 아버지를 둔 파울로는 왜 평범하지도 못했을까. 대단한 성공을 거둔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처럼 그도 적절한 수준의 야망을 설정하는 데 무척 어려워했다. 부모와 비교해 사소해 보이는 목표조차 한 번도 성취하지 못했다. 신만큼 유명한 아버지를 둔 것이 끔찍한 저주로 돌아온 것이다.



흔히 조직에선 줄을 잘 서야 한다고 말한다. 자신의 성공을 위해 운이나 우연의 확률을 높이려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막상막하의 스포츠 경기에서는 이런 운이나 우연이 승패를 결정하기도 한다. 그러니 중요한 경기에서는 판정 시비나 승부 조작설이 끊임없이 나온다. 이는 단시간의 승패 결과로 돈과 명예를 얻는 스포츠의 속성 때문이다. 우리 몸은 이기기 위해 오랫동안 본능적으로 신호를 보내고 진화해왔다. 어떤 스포츠 경기에서든 최후 승자는 주먹을 불끈 쥐고 승리의 기쁨을 만끽한다. 주먹은 승리와 권력의 보편적 기호이자 상징이다.

“권력은 사람의 뇌 속 화학적 상태를 바꾸고, 그 사람이 다른 사람을 대하는 태도, 나아가 인생관까지 바꾸어놓는다. 특히 권력을 쥐면 테스토스테론과 그 부산물인 도파민이 증가하는데 이는 마약을 복용했을 때의 환각이나 쾌락 증상과 비슷하다.”

테스토스테론은 권력욕은 물론, 성욕도 촉진한다. 승자, 즉 권력을 쥔 사람이 쉽게 성 스캔들에 휘말리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수많은 파티로 눈살을 찌푸리게 한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이탈리아 총리와 르윈스키와의 성추문으로 파문을 부른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모든 상황을 통제할 수 있다는 환상에 빠졌던 것이다. 역사 속 독재자들의 행로가 비슷한 모습을 보이는 이유도 다 그래서다.

노벨상과 아카데미상을 받은 사람이 후보자들보다 1~2년 더 오래 산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영광스러운 상을 받으면서 명성과 인정 집중 현상이 수상자의 신체 및 뇌에 놀라울 정도로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승자의 삶은 상황에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상황을 통제한다고 느낀다. 이 통제감은 스트레스를 막아주고 좀 더 행복하게 만들어준다. 역시 승리의 쾌감은 마약만큼 짜릿하다.



주간동아 2013.08.19 901호 (p74~74)

윤융근 기자 yuny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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