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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으로 들어온 한권

우리 시대 아버지 시간여행

‘베이비부머의 추억일기’

  • 윤융근 기자 yunyk@donga.com

우리 시대 아버지 시간여행

우리 시대 아버지 시간여행

김동섭 지음/ 책미래/ 256쪽/ 1만3000원

6·25전쟁이 끝난 후 1955년부터 63년 사이 우리나라 인구는 급격히 증가했다. 이때 태어난 세대를 베이비부머라 한다. 이들은 이 땅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룬 주도 세력이다. 길고 긴 보릿고개를 온몸으로 넘기면서 볼펜 한 자루 못 만들던 나라를 첨단 정보기술(IT) 국가로 만들어놓은 주인공이다. 이제 그들이 하나 둘 현장에서 물러나 역사의 무대를 내려오고 있다. 베이비부머는 1960~80년 대한민국 격동기를 어떻게 헤쳐 왔을까. 저자는 추억창고에 오랫동안 쌓아뒀던 사연을 꺼내 놓는다.

“북촌 원서동은 전형적인 한옥촌이었다. 어렸을 적 휘문이라는 발음이 어려워 신문고등학교로 알던 휘문고등학교가 원서동에 있었다. 원래 원서동은 상궁들이 많이 기거하던 동네였다고 한다. 아마도 창덕궁 옆에 있으니 그랬을 것이다. 어쨌든 좁든 골목길이 미로처럼 얽혀 있던 원서동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저자가 어린 시절 뛰놀았던 서울 원서동은 비원과 인접한 동네였기에 길이 궁궐 담을 따라 이어졌다. 조무래기들에게 비원은 근사한 놀이터였다. 겁도 없이 월담하고 울창한 비원 숲을 제집인 양 마음껏 휘젓고 다녔다. 당시 비원에는 스케이트장, 프로레슬링 연습장까지 있어 최고로 재미있는 장소였다. 비원에서 노는 것이 싫증나면 개구멍을 통해 인근 창경원으로 들어갔다. 동물원과 놀이기구, 벚나무가 가득한 종합놀이동산은 동심을 흔들어놓기에 충분했다.

아이들이 급격히 늘어나면서 학교는 말 그대로 콩나물시루였다. 한 반에 60명은 기본이고 많게는 80명이 북적였다. 당시 대한뉴스는 지금으로선 상상도 하기 힘든, ‘덮어놓고 낳다 보면 거지꼴 못 면하다’는 표어를 내보냈다. 그 시절 아이들은 아무리 먹어도 허기가 졌기에 간식에 눈을 부릅떴다. 떡볶이는 최고의 거리 간식거리였고, 흑설탕을 국자에 녹여 소다를 첨가한 뽑기는 누구나 군침을 흘리는 군것질거리였다. 여기에 작은 수레를 개조해 골목을 누비는 번데기 장수의 외침은 호기심으로 가득한 아이들의 발길을 사로잡았다.

자동차가 흔치 않던 그때 ‘뚜벅이’ 생활은 무척 당연했다. 시내버스 한두 정거장은 군말 없이 걸어 다녔다. 대표적인 대중교통수단이던 버스는 늘 ‘만원’이었다. 특히 통학시간대 버스는 정말 숨 쉴 틈도 없이 빼곡히 승객을 태웠다. 버스기사는 급제동과 급출발을 통해 사람들을 밀착시켰고, 안내양은 짐짝 싣듯 승객을 꾸역꾸역 밀어 넣었다. 버스에서 자리에 앉은 사람은 학생들의 책가방을 한두 개씩 받아주는 것이 상식이었다.



“박○○! 넌 회충! 이렇게 호명하며 담임선생님은 구충제를 나눠 주셨다. 그러면 해당 학생은 다소 겸연쩍게 약을 받아오고, 주변 아이들은 낄낄거리며 웃었다. 그러나 그렇게 웃던 녀석 중에는 기생충 요양소처럼 회충, 편충, 요충 등 모두 보유한 다관왕도 있었다. 역시 남의 불행을 비웃으면 안 되는 법이다.”

위생관념이 지금 같지 않던 시절, 해마다 봄이 돌아오면 학생들은 ‘채변 봉투’를 내야 했다. 기생충 보유자를 찾아내려는 정부의 고육책이었다. 그런데 대변 대신 장독대 된장이나 길가에 있는 개똥을 제출하는 학생도 있었다. 하지만 선생님은 장난친 학생들을 귀신같이 찾아냈다.

베이비부머에게 중학교 입학은 소년기에서 청소년기로 넘어가는 통과의례였다. 삭발은 물론, 검은색 교복과 함께 본격적인 군대문화를 체험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체육시간에는 줄서기와 선착순 달리기 등에 이어 반장은 마치 군인처럼 체육선생님에게 큰소리로 인원 보고를 해야 했다.

지나간 모든 것은 아름답다고 했던가. 사람은 많고 모든 것이 부족하던 시절, 힘은 들었지만 베이비부머는 웃음과 호기심을 잃지 않았다. 빛바랜 흑백사진과 함께 추억은 살아 있다.



주간동아 2013.07.22 897호 (p74~74)

윤융근 기자 yuny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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