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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 이형석의 영화 읽기

혼돈의 시대… ‘멘토’를 찾는 현대인의 삽화

폴 토머스 앤더슨 감독의 ‘마스터’

  • 이형석 헤럴드경제 영화전문기자 suk@heraldm.com

혼돈의 시대… ‘멘토’를 찾는 현대인의 삽화

혼돈의 시대… ‘멘토’를 찾는 현대인의 삽화
폴 토머스 앤더슨 감독의 ‘마스터’는 지난해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처음 공개된 직후 ‘사이언톨로지’라는 종교와의 관련성으로 큰 주목을 받았다. 사이언톨로지는 1954년 미국 SF소설 작가 론 허버드가 창시한 종교다.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대신 인류의 기원을 외계인으로부터 찾고, 과학 및 심령술을 통한 영생과 구원을 교리로 한다. 사이언톨로지의 공식 홈페이지나 위키피디아를 비롯한 자료를 참고하면 사이언톨로지는 창시자인 허버드의 특수기계를 통한 정신분석으로 과거의 자신과 육신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고 가르치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세계에 신봉자 수백만 명을 거느린다.

사이언톨로지는 설립 직후부터 할리우드 스타 등 유명 인사들을 대상으로 포교활동을 적극 펼쳐왔으며, 수많은 배우와 영화인, 뮤지션과 직간접적인 연관을 맺고 있다. 그중에서도 할리우드 배우 톰 크루즈는 신자임을 밝힌 대표적인 유명인으로, 첫 부인이던 니콜 키드먼이나 최근 이혼한 케이티 홈스와의 결별도 종교로 인한 갈등 때문이었다는 소문이 끊이지 않는다. 미국에선 공식 종교로서 면세혜택을 받지만 일부 국가에선 반사회적 종교단체로 불법화됐거나, 창시자를 포함해 교단이 횡령 또는 사기 사건 등에 연루돼 처벌받았다. 허버드는 자서전에서 자신을 탐험가이자 세계여행가, 핵물리학자라고 밝히고 시, 사진, 예술, 철학에 정통한 전문가라고 소개했다. 사이언톨로지는 그를 성인으로 추앙한다.

‘부기 나이트’ ‘매그놀리아’ ‘펀치 드렁크 러브’ ‘데어 윌 비 블러드’ 같은 작품으로 현대 사회와 미국에 관한 탁월하고 깊이 있는 성찰을 보여주며 거장 감독으로 꼽혀온 앤더슨의 새로운 영화 ‘마스터’는 바로 사이언톨로지의 창시자인 허버드로부터 직접적인 영감을 받은 작품이다. 하지만 전기나 실화 영화는 아니며, 사이언톨로지에 관한 작품은 더더욱 아니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전쟁이 남긴 상처와 혼돈 속에서 인류의 구원자를 자처한 한 남자와 그에게 영혼을 맡긴 추종자의 관계를 통해 현대 사회를 성찰하는 영화라 할 것이다. 즉 불안과 혼돈, 방황의 시대에 관한 이야기이며, 절대적 권위와 믿음에 의존하지 않으면 살아가기 어려운 현대인의 초상을 그린다. 방황하는 영혼을 믿음으로 붙들어야 했고, 갈 길 잃은 인생을 마스터의 가르침에 맡겨야 했던 영화 속 남자의 모습은 상처받은 정신을 위안할 힐링을 갈구하고 방향타 잃은 인생과 사회의 길잡이가 돼줄 멘토를 찾는 오늘날 우리 모습과 얼마나 많이 다를까.

신흥 종교 사이언톨로지 영감받은 작품



혼돈의 시대… ‘멘토’를 찾는 현대인의 삽화
해병으로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프레디(호아킨 피닉스 분). 맥아더 장군의 대일 승전 및 종전 선언과 함께 군복을 벗었지만, 오갈 데 없는 그에게 남은 건 성적 망상과 과거의 악몽으로 가득 찬 상처받은 영혼뿐이다. 의지할 것이라곤 위험한 화학약품을 이용해 스스로 제조하는 독주뿐이다. 한 일자리에 정착하지 못하고, 폭행과 알코올중독으로 말썽을 일으키며 떠돌던 프레디는 우연히 랭케스터(필립 시모어 호프먼 분)를 만난다. 그는 심리요법을 주로 연구하는 코즈(The Cause)라는 단체의 설립자다. 랭케스터는 프레디에게 자신을 “작가이자 의사이고 핵물리학자이자 이론철학가”이며 “그 이전에 자네와 같은 한 인간”이라고 소개한다.

극적이고 우연적이던 첫 만남은 두 사람을 변화시킨다. 프레디에게 마스터 랭케스터는 상처와 절망, 혼돈, 어둠뿐인 삶을 다른 세계로 인도해주는 안내자다. 랭케스터에게는 프레디가 자신의 주장과 이론에 대한 살아 있는 실험 대상이자 진리의 위대한 증거다. 랭케스터는 프레디를 마주 앉게 하고, 자신이 개발한 면접과 문답을 시행하면서 전생의 기억과 내면의 상처를 꺼낸다(극중 코즈는 윤회를 믿는다. 실제 사이언톨로지도 윤회를 교리의 일부로 한다).

랭케스터의 카리스마와 탁월한 언변에 힘입어 코즈는 세를 불려가고, 1950년 거대 단체로서 연합회를 구성해 신흥 종교집단 같은 외양을 갖추게 된다. 프레디는 거듭되는 상담과 설교의 도움을 받아 마스터가 총애하는 추종자가 되지만, 여전히 알코올중독과 폭력적인 성향으로 종종 문제를 일으킨다. 한편 랭케스터의 아들마저도 “코즈의 이론이란 아버지의 머릿속에서 만들어낸 거짓에 불과하다”며 회의를 드러내고, 랭케스터 반대자들의 “전생 퇴행이 아닌 최면요법에 불과하며 이론적인 근거가 없다”는 논쟁에 프레디의 마음이 흔들린다. 프레디가 만든 독주에 의지하며, 반대자들에 분노하는 랭케스터의 모습도 프레디의 믿음을 혼돈에 빠뜨린다.

감독, 남자배우 ‘마스터’ 경지

한편 코즈를 지탱하는 또 다른 버팀목인 랭케스터의 아내(에이미 애덤스 분)는 말썽을 일으키는 프레디를 버릴 것을 요구하지만, 랭케스터는 프레디의 변화와 구원에 대한 확신 및 기대를 놓지 않는다. 그 와중에 프레디는 랭케스터 곁을 떠나 지금까지 회피해왔던 과거의 상처, 옛 연인을 만나러 간다.

앤더슨 감독의 성찰과 연출력, 랭케스터 역의 필립 시모어 호프먼, 프레디 역의 호아킨 피닉스의 연기는 이 영화 제목처럼 ‘마스터’의 경지다. 혼돈스러운 세상에서 구원자를 자처하며 자신이 꿈꾸는 세계에 대한 증거로서 프레디에게 집착하는 랭케스터. 마스터가 창조한 세계 속에서만 전쟁의 상흔과 과거의 트라우마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고 믿는 추종자 프레디. 두 남자를 둘러싼 내밀하고 미묘한 관계 변화를 그린 영화를 통해 관객이 만나는 것은 마스터가 되거나 마스터를 믿을 수밖에 없는 현대인의 초상이다. 어쩌면 당신이 열광하는 스타, 당신이 집착하는 브랜드, 당신이 지지하는 정치인, 당신이 신봉하는 종교 그 모든 것이 당신의 결핍과 상처가 만들어낸 마스터가 아닐까.



주간동아 2013.07.15 896호 (p66~67)

이형석 헤럴드경제 영화전문기자 suk@herald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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