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93

2013.06.24

‘양명대군’도 못 살린 절정의 감동

뮤지컬 ‘해를 품은 달’

  • 김유림 월간 ‘신동아’ 기자 rim@donga.com

    입력2013-06-24 11: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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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명대군’도 못 살린 절정의 감동
    “잊어달라 하였느냐. 미안하구나. 잊으려 하였으나 너를 잊지 못하였다.”

    2012년 여름 시청률 42%를 기록하며 신예 김수현을 일약 스타덤에 올려놓은 MBC 드라마 ‘해를 품은 달’이 뮤지컬로 돌아왔다. 드라마에서는 해와 달을 상징하는 두 남녀 주인공의 사랑에 집중했다면 뮤지컬에서는 ‘또 다른 해’인 양명대군을 주요 축으로 세워 무게감을 더했다. 하지만 뮤지컬을 통해 드라마 명장면을 재현하고자 하는 욕심이 강해 작품 줄거리가 산만해졌고 절정의 감동이 사라졌다.

    작품은 조선시대 가상의 왕 성종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양명대군과 왕자 이훤은 모두 태양의 운명을 타고났지만 후궁의 자식인 양명대군 대신 동생 훤이 세자로 책봉된다. 형제의 사랑을 동시에 받는 홍문관 대제학의 딸 연우는 세자빈에 간택되지만 외척세력의 음모로 죽을 위기에 처한다. 연우가 사라진 지 8년, 갑자기 연우와 꼭 닮은 액받이 무녀 월이 궐에 나타나면서 두 형제는 혼란에 빠진다.

    작품은 절반 이상의 시간 동안 주인공들의 유년 시기를 보여준다. 훤과 양명대군의 안타까운 운명, 훤과 연우의 생을 뛰어넘는 애절한 사랑을 보여주는 데는 적절했을지 모르나 상대적으로 ‘8년 후 이야기’의 분량이 적어 주인공들의 위기, 갈등, 문제 해결 과정이 급작스럽다는 느낌이 든다.

    반면 연우가 외척세력의 음모로 기억을 잃고, 훗날 강한 사랑의 힘으로 기억을 찾는 과정은 작품을 꿰뚫는 중요한 사건임에도 다소 소홀히 다뤄졌다. 드라마에서는 훤의 호위무사 운, 연우의 몸종 설, 철없는 민화공주 등 주변 캐릭터가 중요하게 다뤄졌으나 뮤지컬에서는 존재감이 없어 작품이 단조롭다는 인상을 준다.



    그나마 눈에 띄는 것은 양명대군의 캐릭터가 살아났다는 점이다. 드라마에서는 훤 역을 맡은 김수현이 신드롬을 일으켜 상대적으로 양명대군의 캐릭터가 묻혔다. 하지만 뮤지컬에서는 동생에게 사랑하는 여자와 왕좌, 아버지의 애정을 빼앗기면서도 동생을 위해 희생하는 의인으로 돋보인다. “세상의 단 하나도 내 것이 될 수 없느냐”며 울부짖지만 결국 스스로 태양의 운명을 저버리는 양명대군의 희생은 강한 울림을 남긴다.

    창작 넘버 33곡은 재즈, 발라드, 전통음악 등 다양한 시도가 돋보이는 곡들로 채워졌다. 가상의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판타지인 만큼 다양한 형식의 음악을 도입한 것은 괜찮았으나 결과적으로 다소 산만하다. 특히 이 작품을 대표할 만한 곡이 눈에 띄지 않는다는 점이 아쉽다. ‘선택과 집중’이라는 익숙한 조언이 필요할 듯하다.

    드라마에 김수현과 여진구가 있었다면, 뮤지컬에는 김다현이 있다. “난 좀 잘생긴 것 같다”며 외모 자랑을 하거나 외척세력에 하염없이 흔들리는 등 연약하지만, 끝내 자신의 여인을 지키고 왕으로서 기강을 세우려고 안간힘을 쓰는 훤을 잘 표현해냈다.

    12월 일본 공연을 시작으로 아시아 진출을 앞둔 뮤지컬 ‘해를 품은 달’. 2012년 신드롬을 재현하려면 드라마의 영광에서 벗어나 객관적인 시선으로 작품을 다듬는 과정이 꼭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6월 23일까지 경기 용인시 포은아트홀. 7월 6일부터 31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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