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93

2013.06.24

눈물 펑펑 지상에서 마지막 라운드

치유 골프

  • 김종업 ‘도 나누는 마을’ 대표 up4983@daum.net

    입력2013-06-24 10:5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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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 년 전 절친한 친구가 도움을 청해왔다. 아내가 위암으로 네 차례 수술을 받았는데, 이번에는 상황이 아주 안 좋으니 상담 좀 해달라는 것이었다.

    “당연히 그리 해야지” 하며 몇 가지 질문을 던졌다. 발병 시기는? 수술 후 요양은? 현대의학적 방법 외에 해본 다른 요법은? 운동요법 경험은? 이런저런 질문을 던져보니 늦었다는 결론이 나왔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설명한 다음 어디서 아내를 만날지 물었는데,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골프장에서 라운딩을 하며 상담해달라는 것이었다. 얼마나 골프를 좋아했던지 죽기 전 몸을 조금이라도 움직일 수 있을 때 필드에 나가고 싶다는 것이었다. 현역 장성인지라 할당된 티를 그 주 일요일에 나에게 줄 테니 라운드를 통해 질병과 치유, 삶과 죽음에 대한 도담(道談)을 나눠달라는 부탁이었다. 어찌 이 애절한 사연을 듣고 거절하랴.

    팀을 구성하면서 유방암으로 절제 수술을 받은 친구의 아내 한 명과 자궁암 수술을 받은 사촌 여동생을 추가했다. 암환자 경력을 가진 여성 3명과 하는 ‘꽃돌이’ 라운드였다. 일반인과 하는 꽃돌이는 재미가 없어 사역이나 노동으로 느껴지지만 이날의 라운드는 엄숙했다.

    하지만 아무리 엄숙하고 진지하더라도 골프는 골프다. 집중의 묘미와 재미 요소를 추가하지 않으면 이상하게 변질되게 마련이다. 첫 홀부터 골프장의 야농(야한 농담)으로 시작해 무조건 깔깔거리게 만드는 것이 1차 목표였다. 2차 목표는 죽음이 공포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영혼의 휴식기며 성장을 위한 재료라는 점을 인식시키는 것, 3차 목표는 질병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태도를 확립하는 것이었다. 출발 전 앞뒤 팀에게 설명하고 지연플레이를 하겠다고 양해를 구했더니, 흔쾌히 동의해줬다. “무조건 잘해드리라”는 부탁과 함께.

    암환자 경력 세 명의 여성



    목사와 승려, 신부 등 3명이 라운딩을 했다. 승려의 매너가 개판이라, 목사가 하나님에게 “저 중 녀석 번개로 한 판 때려달라”고 기도했다. 그러자 번개가 쳤는데, 엉뚱하게 신부가 맞았다. 목사가 하나님에게 이유를 묻자 이런 답이 돌아왔다. 에이 시발, 벼락이 오비(Out Of Bounds·OB)났다.

    한국인이 일본인과 라운딩을 하던 중 슬라이스가 났다. 성질난 이 친구가 “니기미” 하고 중얼거리자, 일본인이 “무슨 뜻이오”라고 물었다. 머쓱해진 친구가 말하길 “휘어지는 공을 우리네 속어로 ‘니기미’라고 합니다.” 일본인은 그러냐고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 후 이 일본인이 악성 슬라이스를 낸 후 하는 말. “에이. 잇빠이 니기미데스요.”

    하여간 18홀 내내 한 홀에 하나씩 요런 이야기를 하며 분위기를 잡았다. 십팔 구멍의 철학, 작대기 돌리는 기술 등을 강의하면서 웃음꽃이 피게 만들고 질병과 죽음에 대한 설명을 곁들였다. 홀컵에 들어간 공도 다시 탄생해 다음 홀을 기다리는데, 인간에게 어찌 이번 생의 삶만 있겠느냐. 들판에 피는 꽃도 겨울이면 잎을 다 떨어뜨리고 봄에 다시 태어날 것을 알기에 뿌리로 준비한다. 미물도 재탄생을 아는데, 인간만 모른다는 게 말이 되느냐.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편안한 죽음을 맞게 도와주는 호스피스 노릇을 충실히 했다. 이어 질병과 암에 대한 기초상식을 골프에 빗대어 설명해줬더니 동반한 여성들도 몹시 기뻐하며 무척 감사해했다.

    골프공이 아무리 새것이라도 여섯 홀쯤 지나면 상처가 난다. 채에 맞고 나무나 돌, 카트 도로 등에 의해 충격을 받아 딤플이 망가지고 탄력이 줄어드는 것이다. 이것은 외부환경 조건과 공의 쓰임새가 교환한 결과다. 공 한 줄이 3개인 것은 18홀을 도는 동안 6홀씩 나눠 쓰라는 뜻이다.

    인간 몸도 공과 같다. 30세까지와 60세, 90세까지로 나눠보면 몸의 쓰임새가 각각 다르다. 초반 30년은 배움의 시기로, 방황하는 청춘이다. 보살핌이 필요한 시기고 펼쳐진 세상에 적응하는 나이다. 중반 60세까지는 펼침의 시기다. 배운 지식으로 삶을 연기하는 나이인 것이다. 후반 90세까지는 결실의 시기다. 배우고 펼친 경험, 이것이 기억으로 저장돼 지혜로 발전하는 나이다. 보통 사람은 지혜를 깨치지 못한 채 60세 이전의 경험만 들먹이고 과거를 되새김질하다 생을 마감한다. 더구나 자신이 설계한 삶의 경험이 지루하다고 느끼면 결실의 나이를 거부한 채 스스로 몸을 버린다. 이것 또한 자기 스스로 설계한 것이다.

    당신이 몸을 버리는 방법으로 암을 선택한 이유는 다른 경험을 통해 지혜를 얻으려 하는 내면의 간절한 바람이 다른 몸을 원했기 때문이다. 진정 암을 극복하길 원하는가. 그럼 남은 기간에 인생과 죽음, 환생과 탄생에 대한 해답을 간절히 갈구해보라. 스스로 답을 얻기 어려워 선각자와 대화하길 원하지 않았나. 본성의 나에겐 결코 죽음이란 것이 없다. 내 하인인 고도로 설계된 육체의 용도를 버리는 것일 뿐이다.

    좀 형이상학적인 설명이었지만 그녀는 알아듣는 듯했다. 퍼팅의 묘미와 죽음의 철학은 동일하다면서 홀에서 공을 꺼낼 때 공 자체가 돼 다음 탄생을 기다린다는 설명이 그럴듯하다고 여긴 모양이었다.

    인생의 생로병사는 자신이 만들어

    질병에 대한 질문에 답을 줬을 때는 그예 눈물을 펑펑 쏟고 말았다. ‘질(疾)’이란 환경적 요소가 나와 맞지 않을 때 일어나는 몸의 부적응이다. ‘병(病)’이란 내 무의식의 에너지가 몸을 망가지게 하는 것이다. 즉 부정적인 에너지를 오랜 기간 사용해 그 에너지에 세포가 적응한 것이 바로 병이다. 간단한 원칙을 모르니까 질병이 나한테 왔다고 생각하지, 나 자신이 끌어들였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결국 암이란 것도 내 무의식의 부정적 에너지에 세포가 적응한 결과다. 여기서 부정적 에너지란 공포, 분노, 걱정, 불안 등의 감정을 말한다. 최소 10여 년간 이러한 감정의 노예가 됐기 때문에 암세포로 적응한 것이다.

    골프를 칠 때 장시간 사용한 근육은 반드시 깨지게 돼 있다. 테니스 엘보나 고관절 비틀림이 골프를 하지 않으면 발생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부정적인 감정이 내부 장기를 망가뜨린 결과가 바로 질병인 것이다. 내가 무엇 때문에 이런 몸 상태를 선택했는지 본성은 알고 있다. 죽음이라는 휴식기를 가지길 원해서다. 죽기 싫다고 억지로 한을 만들지 마라. 그 한이 귀신이 돼 환생을 방해한다. 이는 다른 몸을 갖는 걸 어렵게 만들기 때문이니, 편안하게 받아들여라. 마치 양파를 하고 나서 다음 홀에서는 파를 해야지 하는 마음처럼….

    약 5시간에 걸쳤던 삶과 죽음, 질병에 대한 논의를 이 지면에 다 쓸 수는 없다. 하지만 질병에 대한 일반적인 관점은 자신이 만들었다는 간단한 진리를 설명해줬다. 골프 실력을 자신이 만들 듯, 인생의 생로병사 또한 자신이 만드는 것이다. 질병을 자신이 만들었다는 사실을 확신하면 치유도 자신이 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알게 된다. 골프가 잘 안 될 때 원인을 알고 연습하면 개선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암이라는 불치병도 알고 나면 간단한 문제다. 감기보다 더 쉽다는 것이 내 결론이다.

    친구 아내는 나와 라운딩을 하고 한 달 후 임종했다. 무척 편하게 가는 그 모습이 자식들로서는 오히려 안쓰러웠다고 한다. 그녀는 18홀의 마지막 홀컵 안으로 조용히 떨어진 것이다. 다음 라운드에는 언더파를 해야지 하면서….

    추신. 친구는 3년 후 재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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