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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올드스쿨 귀환 알랑가 몰라

1990년대 아이돌 속속 컴백…‘추억팔이’ 아닌 추억의 기억

  • 임희윤 동아일보 문화부 기자 imi@donga.com

올드스쿨 귀환 알랑가 몰라

#1 ‘이 제품은 삐삐, 문민정부, X세대, 캡숑 좋아와 같은 시설에서 제조됐습니다’

2013년 6월 12일 오후 8시. 김 대리의 야근은 유달리 빡셌다. 오른손에 쥔 컴퓨터 마우스는 데오도란트가 필요할 정도로 눅눅해졌다. 불꽃 튀는 엑셀 작업 탓도, 해외 클라이언트에 대한 기초 자료 조사 때문도 아니었다. 그의 컴퓨터 모니터 화면을 잠시 들여다보자. ‘죄송합니다! 현재 사이트 접속이 원활하지 못합니다’ 아래로 영문 대문자가 잔뜩 펼쳐져 있다. ‘2013 SHINHWA GRAND FINALE… THE CLASSIC IN SEOUL’

고생하는 (코스프레하는) 김 대리에게 회사 앞에서 사온 아이스 카페라테 한 잔을 건네려던 나, 이것을 목격하고 만다. “과장님, 사실 저… 신화창조(그룹 신화 팬클럽)였어요.” “응? 괘… 괜찮아, 김 대리. 난 클럽 에쵸티(Club H.O.T.·그룹 H.O.T. 팬클럽)였거든…. 호호호.”

#2 ‘사물이 거울에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음’

나이 30이면 뭐? 이립(而立). 40이면 뭐? 불혹(不惑). 근데 LTE(롱텀에볼루션) 시대에 이게 다 무슨 소용이람. 나이란 건 말이야. 있잖아, 울 아부지도 페이스북을 한다고. 어젯밤 ‘친구 신청’이 들어와서 알았지. 깜놀했… 아니, 캡숑 놀랐어. 요즘 세상 돌아가는 게 뭐든 빠르니까. 삼십, 사십 먹었다고 뮤뱅(KBS 2TV ‘뮤직뱅크’), 음중(MBC TV‘쇼! 음악중심’), 인가(SBS TV‘인기가요’) 포기할 것 같아? 미사리 통기타 카페로 밀려날 것 같으냐고. 중학생 때부터 컴퓨터학원 다니면서 도스(DOS) 배우고 부모 졸라서 집에 386 PC(개인용 컴퓨터) 들여놨던 우리가 설마 아부지 세대랑 같을까. 스마트폰, 태블릿PC로 인터넷,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제 집 드나들 듯하니 우리 조카랑 세대차도 별로 안 난다고. 이립이랑 불혹이들도 애기처럼 살 수 있는 세상인 거지, 철모르고.



그래서 말인데, 김 대리. 신화 엠카(Mnet ‘엠카운트다운’) 3주 연속 1위 한 거 축하해. 신화 11집 제목이 ‘더 클래식’이라며. 오래된 훈남들, 명불허전이네. 신창(‘신화창조’)들 고생 많았구랴. 팬카페 들어가 보니 음원 스트리밍으로, 인기투표로 힘들 잘 모았더구먼. 강타랑 희준이랑 다 같이 재결합하면 우리 클럽 에쵸티도 발 벗고 나설 텐데….

(이)효리도 컴백해서 잘되던데. 신화랑 붙었잖아, 여러 군데서, 1위 후보로. 이게 다 뭔 일이래? 핑키(FINKY·그룹 핑클 팬클럽)도 오랜만에 뭉친 건가. 이건 뭐, ‘응답하라 1998’(신화, 핑클 데뷔연도)도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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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리(왼쪽), 그룹 ‘신화’

#3 ‘이효리를, 짝짝짝짝. 살려내라, 짝짝짝짝. 이효리를 살려내라. 투쟁… 응?’

송 과장님, ‘추억팔이’란 어느 시대에나 있었잖아요. ‘가요무대’도 그런 거잖아요.

근데 우리 세대는 그 추억이란 게 좀 더 특별한 것 같아요. 정말 팔아볼 만큼 특별한 것. 1994년쯤이었을 거예요. X세대라는 말이 번진 게. 지긋지긋한 군사독재 끝나고 문민정부(1993~98)가 들어섰죠. 데모 안 하는 애들도 바보처럼 안 보이게 됐어요. 어쩌면 서태지와 아이들이 진짜 데모를 대체한 거대한 데모였는지도 모르죠. 어른들은 “이게 무슨 음악이냐”고 했지만, 음악을 모르고 하는 소리. 들으면 심장이 뛰는데.

우린 자유를 얻었어요. 1994년엔 김일성 할아버지도 돌아가셨죠. 반공도, 반독재도 알코올로 쓴 글씨처럼 희미해져 갔어요. 지방 콘서트장, 방송 녹화장을 농성장처럼 쫓아다녀도 ‘미친년’ 소리는 들을지언정 ‘배신자’ 소리는 듣지 않게 됐으니까.

저 요즘, 솔직히 행복해요. 지난달 말인가, 라스(MBC TV ‘황금어장 라디오스타’) ‘전설의 리더’편 봤어요? 이효리, 문희준, 김종민(코요태) 나왔잖아요. 울 신화는 해투(KBS 2TV ‘해피투게더 3’), SNL(tvN ‘SNL 코리아’)에서 예능감 폭발했죠. 유진(S.E.S.)은 ‘무릎팍도사’(MBC TV ‘황금어장 무릎팍도사’)에 나왔죠. QTV(케이블채널)에는 종합선물세트가 생겼어요. ‘20세기 미소년’이라고. 문희준, 천명훈, 토니안, 은지원, 데니안이 한 자리에. 세상에, 지금이 1999년인가 하고 시계를 봤다니까요. 신부심(신화 팬으로서의 자부심) 쩌는 저도 넋 놓고 봐요.

올드스쿨 귀환 알랑가 몰라
#4 ‘오겡키데스카?’

나도 요즘 좀 행복해. 작년에 ‘응답하라 1997’이랑 ‘건축학개론’으로 워밍업 좀 했더니 올해는 1990년대 영화까지 줄줄이 재개봉하더라. 2월부터 ‘러브레터’(1995)가 극장에 다시 걸리더니 ‘레옹’(1994), ‘4월 이야기’(1998)에 이어 ‘니키타’(1990), ‘그랑 블루’(1993)까지 줄을 섰어.

#5 ‘시계추처럼 매일 같은 곳에 같은 시간/ 틀림없이 난 있겠지 그래 있겠지 거기 있겠지만’

요즘 아이돌도 1990년대를 베끼는 것 같아요, 과장님. 기분이 나쁜 게 아니라 좋죠. 작년에 7인조 남성 아이돌 비투비의 노래 ‘WOW’라고 들어봤어요? 듀스랑 유승준을 섞어놓은 거 같더라니까요.

엊그제 데뷔한 7인조 방탄소년단은 어떻고? 첨에 베이스기타를 둥둥대는데 나 ‘전사의 후예’(H.O.T. 데뷔곡)가 나오는 줄 알았다니까.

진짜, 진짜요?

응. 방시혁이 만든 아이돌인데, ‘90년대 갱스터 랩을 추구’한다네. 뭐, 갱스터 랩이란 게 ‘감성 힙합’처럼 국적 불명, 출처 불명의 한국식 합성어긴 하지만, 이거 딱 90년대야, 진짜. 꼭 들어봐.

“얌마 니 꿈은 뭐니…/ 새까까까맣게 까먹은 꿈 많던 어린 시절/ 대학은 걱정 마 멀리라도 갈 거니까/ 알았어 엄마 지금 독서실 간다니까/ 니가 꿈꿔온 니 모습이 뭐여/ 지금 니 거울 속엔 누가 보여, I gotta say… 시간낭비인 야자에 돌직구를 날려/ 지옥 같은 사회에 반항해, 꿈을 특별사면/ 자신에게 물어봐 니 꿈의 profile/ 억압만 받던 인생 니 삶의 주어가 되어봐!”

어머, 근데 이거 우리 때 얘기 아니에요? 딱 ‘전사의 후예’랑 ‘학원별곡’이랑 ‘교실 이데아’ 섞은 거 같잖아, 이거. 요즘 애들도 이게 공감이 되나?

#6 ‘너무너무 예쁘다고 해도/ 너를 떠올리며 거절했지만/ 이번 한 번뿐이라는 걸 맹세해’

김 대리, 말 나온 김에 우리 요번 주 불금(불타는 금요일) 특집으로 홍대 앞 밤음사(90년대 음악을 주로 틀어주는 주점 ‘밤과 음악 사이’)라도 갈까?

꺄아, 좋아요, 완전, 와안전.

우리 학교 다닐 땐 놀 건 많은데 늘 돈이 부족했잖아. 주말에 아는 오빠들이랑 압구정, 청담에서 칵테일 한두 잔 마시고는 그다음 주엔 계속 학생식당만 가기도 했고. 근데 지금은 이 웬수 같은 직장님이 주시는 월급도 있고 말이야. 울 아부지들이랑 다르게 적당히 놀 줄도 알고. 늘상 맛집도 이 폰으로 검색해주시고. 울 오빠들 콘서트 티켓이랑 굿즈랑 살 총알도 넉넉하고 말이야. 우리가 사주면 세상은 또 90년대 걸 계속 팔아먹으려고 하겠지. 뭐, 어때? 효리랑 동완이랑 희준이랑 오래오래 보면 좋지, 뭐. 안 그래?

#7 ‘우리의 밤은 당신의 낮보다 아름답다’

그럼요. 우리 과장님, 어쩜 나랑 이렇게 잘 통하지. 90년대 뽀에버, X세대 뽀에버!

#8 ‘잠 못 이룬 새벽 난 꿈을 꾸고 있어/ 흐느낀 만큼 지친 눈으로’

근데, 김 대리. 이제 그만 놀고 보고서 좀 만들래? 이게 네 밥줄이거든. 너의 열근(열심히 근무하는 것)을 오빠들도 기뻐할 게 분명해. 안 그래?

네, 과장님. ㅠ.ㅠ



주간동아 2013.06.17 892호 (p58~59)

임희윤 동아일보 문화부 기자 i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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