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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개인 감시’ 미국이 이럴 수가!

美, 전화 기록 인터넷 감시 충격 일파만파…스노든 사면 촉구 공개서한 봇물

  • 신석호 동아일보 워싱턴 특파원 kyle@donga.com

‘개인 감시’ 미국이 이럴 수가!

‘개인 감시’ 미국이 이럴 수가!

미국 국가안보국 본부 건물. 작은 사진은 국가안보국 문장.

“그(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는 매일매일 미국에 대한 외부 위협과 함께 살아간다. 그가 적절한 범위에서 위협을 저지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태도다.”

미국 국방부 산하 국가안보국(NSA)이 해외 테러리스트와 조직의 미국 내 테러행위를 사전에 적발하려고 미국인들의 휴대전화 통화 기록과 인터넷 사용 명세를 광범위하게 수집했다는 폭로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곤경에 빠지자 그의 오랜 정치적 조언자인 데이비드 액설로드 전 백악관 선임고문은 6월 8일자 ‘워싱턴포스트(WP)’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강조했다.

문득 5월 초 텍사스 주 댈러스 시의 조지 W 부시 기념관에서 본 똑같은 장면이 연상됐다. 미국인에게 9·11테러 및 이후 테러와의 전쟁을 상기시키려고 기획한 홍보 비디오물에 등장한 콘돌리자 라이스 전 미국 국무부 장관은 “당신이 9·11테러 당시 당국자였다면 이후 모든 날은 9월 12일이었을 것”이라며 부시 전 대통령을 변호했다.

‘조지 W 오바마’ 풍자

부시 전 대통령과 정치적 견해와 철학을 달리하고 누구보다 전임자를 비판하던 오바마 대통령이 ‘테러와의 전쟁’ 앞에서는 전임자를 부정할 수 없었다는 사실은 이번 사건을 통해 확인된,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하나의 진실이다. 이를 두고 인터넷 신문 ‘허핑턴포스트’는 오바마와 부시 얼굴을 묘하게 합성한 사진을 걸고 ‘조지 W 오바마’라고 풍자했다.



캘리포니아 주 휴양지 랜초미라지에서 역사적인 미·중 정상회담이 열리기 이틀 전인 5일부터 영국 일간지 ‘가디언’과 WP가 잇달아 폭로성 특종보도를 해대자 오바마 대통령은 7일 새너제이에서 기자들과 만나 “테러 방지를 위한 약간의 사생활 침해지만 할 만한 가치가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나도 (조지 W 부시 대통령 시절 시작된) 이들 프로그램에 대해 건강한 회의를 갖고 있었다. 나의 팀은 그것을 평가했다. 철저하게 비벼 빨 듯했다. 하지만 나나 팀의 평가는 그것이 테러방지를 위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100% 안보도 없고 100% 사생활 보장도 없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다음 날 사건 진상이 아직 명확하게 규명되지는 않았지만, 미국인 다수는 부시나 오바마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테러방지를 위해 개인의 자유를 어느 정도 제한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미국은 아직 12년 전 9·11테러의 악몽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한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6월 11일 미국 여론조사 기관 퓨 리서치센터가 성인 1004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국가 안보를 위해 NSA의 전화기록 추적을 허용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찬성한 사람이 56%로 반대 41%를 앞질렀다. 심지어 “테러방지를 위해선 e메일 같은 개인 온라인 활동도 감시 대상에 포함해야 하느냐”는 질문에도 45%가 찬성했다.

가디언과 WP의 초기 보도가 NSA가 미국인을 무차별적으로, 법적 근거도 없이 사찰했다는 뉘앙스를 띄면서 이번 사건을 둘러싼 논쟁의 성격은 ‘테러방지’와 ‘개인 사생활 보호’라는 헌법적 가치 충돌인 듯했다.

하지만 오바마 대통령과 행정부 당국자들의 적극적인 방어로 적어도 NSA의 비밀 정보수집은 합법적이었고 사법부와 입법부, 그리고 행정부 자체의 견제와 균형 하에 정해진 절차에 따라 이뤄졌다는 점이 입증된 것으로 보인다. 대상도 해외 테러 용의자 또는 이와 연관성 있는 것으로 의심되는 일부 미국인이라는 점도 해명됐다.

‘개인 감시’ 미국이 이럴 수가!
그럼에도 정부가 테러방지를 이유로 법절차를 악용할 소지가 충분해 ‘테러방지’와 ‘정부의 투명성’을 대립각으로 삼은 국가적 논쟁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이와 관련해 WP가 잇달아 내놓은 일련의 기획 기사에는 귀담아 들을 만한 통찰이 들어 있다.

WP는 6월 8일자 기획기사를 통해 9·11테러 이후 12년이 흐른 지금 ‘테러와의 전쟁’은 끝나갈 조짐을 보이는데 정부와 관련 민간기업들이 보유한 테러방지 기술은 날로 발전하고 이에 상응하는 법적 규제는 대응이 느린, 일종의 ‘지체현상’이 이번 사건의 핵심이라고 갈파했다.

6월 9일자에서는 행정부가 주장하는 의회와 사법부의 견제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행정 집행의 투명성에 문제가 생긴 현실을 지적했다. 기획기사는 “의회는 정부의 정보수집 활동을 제대로 감시할 여력이 없고, 법원은 정부 요구를 대부분 들어줘 ‘고무도장’을 찍는 구실에 머물고 있다”면서 “비밀 해외정보감시법원은 지난해 1789건의 감청 요청 가운데 단 한 건만 거부했다”고 지적했다.

테러라는 외부의 위협을 이유로 정부가 언제든 ‘빅 브라더’로서의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구조적 문제점을 제기했다는 점에서 폭로자인 에드워드 스노든(29)은 일단 ‘역사에 남을 내부 고발자’ 명단에 이름을 올릴 개연성이 높다.

전 미국 중앙정보국(CIA) 요원으로도 일했던 그는 6월 9일 WP, ‘가디언’과의 지면 및 동영상 인터뷰를 통해 신원을 공개하고 “오바마 대통령이 정부의 투명성을 강조했던 약속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폭로 이유를 밝혔다. 스노든은 “오바마 대통령이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시작한) 감시 프로그램을 통제하지 않아 실망했다”면서 “오바마 대통령이 조직을 지킨다는 이유로 공공연히 거짓말을 했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1급 국가기밀 폭로자

‘개인 감시’ 미국이 이럴 수가!

미국 국가안보국의 비밀 개인정보수집 프로그램의 존재를 폭로한 전 CIA 요원 에드워드 스노든.

그는 WP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서서히 커지는 정부의 감시권력은 민주적 거버넌스에 직접적인 위협”이라고 지적했다. “당신이 폭로로 세상을 바꿨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그는 “세상은 이미 변하기 시작했다. 모든 사람이 이제 어떻게 나쁜 일이 진행됐는지 알았고 그에 대해 이야기한다”고 말했다.

고교 중퇴자인 스노든은 2003년 이라크전쟁에 참전하려고 미군 특수부대원으로 입대했지만 훈련 도중 다리를 다쳐 전역했으며, 이후 NSA에서 전산보안 관련 일을 시작했다. 2007년 스위스 제네바의 CIA 지부에 전산보안 담당 비밀요원으로 고용된 그는 2009년까지 CIA에서 일하면서 미 정부의 광범위한 감시 프로그램에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2009년부터 최근까지 NSA 하와이 지부의 하청을 받은 컨설팅업체 부즈앨런해밀턴 등에서 일한 스노든은 “정보 유출로 인한 신변 위험에 대해 잘 알지만 그게 올바른 일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제임스 클래퍼 미국 국가정보국(DNI) 국장은 스노든이 신원을 공개하기 전날 ‘1급 국가기밀을 유출한 폭로자’에 대해 법무부에 정식 수사를 요청했다. 미국으로 잡혀와 재판에 넘겨질 경우 국가기밀 유출에 따른 중형이 불가피하다는 게 법조계 시각이다.

어쨌든 스노든의 신원 공개 이후 언론과 정부의 진실 공방 양상으로 치닫던 이번 사건은 다소 진정국면으로 돌아섰고 ‘실제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이냐’에 대한 성찰적 논의가 국가와 민간 차원에서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스노든 지지자들은 정부의 개인정보 감시 프로그램이 투명하지 못했다며 반발한다.

백악관 인터넷 청원사이트인 ‘위 더 피플(We The People)’에는 6월 10일 스노든의 사면을 촉구하는 청원이 올라왔고, 하루 만에 약 2만 명이 서명했다. 오바마 대통령에게 스노든과 공개 토론을 촉구하는 청원도 잇따르고 있다. 폭로전문 사이트 ‘위키리크스’ 설립자인 줄리언 어산지도 영국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그가 최근 10년을 통틀어 가장 심각한 사건을 폭로한 것”이라며 스노든을 “영웅”이라고 평가했다.



주간동아 2013.06.17 892호 (p50~51)

신석호 동아일보 워싱턴 특파원 ky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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