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92

2013.06.17

FX(차기전투기사업)의 잡음 비행 언제까지?

밥 먹듯 일정 연기에 담당자 수시 교체…검증 없는 질주 이젠 끝장내야

  • 김종대 디펜스21+ 편집장 jdkim2010@naver.com

    입력2013-06-17 09:5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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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월 가격 입찰, 7월 중 기종 결정이 예상되는 차기전투기사업(FX 3차)의 종착역이 보인다. 방위사업청(방사청)은 F-35, F-15SE, 유로파이터 3개 기종에 대한 가격과 절충교역에 대한 협상을 6월 중에 마무리하고 가격 입찰을 실시한 다음, 7월 기종선정위원회 구성에 이어 김관진 국방부 장관 주재로 기종을 결정할 예정이다.

    한국은 이미 ‘슈퍼 갑’이다

    이로써 10조 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는 단군 이래 최대 무기도입사업이 매듭을 짓게 된다. 이번 전투기 도입은 북한 및 주변국의 위협에 징벌을 가할 수 있는 최고 성능의 전투기 도입이라는 점에서 한반도와 동북아 정세에도 상당한 영향을 끼치리라 예상된다. 또한 향후 16조 원에 이르는 한국형전투기 개발사업과 박근혜 정부의 국정지표인 창조경제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항공우주산업에도 심대한 영향을 미치는 초대형 이벤트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7월 기종 결정이라는 일정표에도 방사청 주변에서는 몇 가지 석연치 않은 문제점이 제기된다. 먼저 과연 3개 기종에 대한 충실한 평가와 협상이 내실 있게 진행됐느냐는 점이다. 그동안 방사청의 사업관리 과정을 보면 기종 결정 시점이 4번이나 번복됐다. 처음에는 2012년 10월까지 기종을 결정하겠다고 하다가 12월로 연기했고, 다시 올해 2월로 연기한 데 이어 7월로 또 연기한 상황이다.

    애초 지난해 10월 결정이 무리한 일정이었다면 부실하게 진행될 수밖에 없던 전투기 시험평가를 보완하기 위해서라도 올해 충분한 시간을 확보했어야 옳다. 그러나 기종 결정 시점을 2~4개월씩 쪼개 여러 차례 연기한 것 자체가 그때그때 행정적 편의를 도모하기 위한 임시방편으로 사업 관리를 한 것이지, 부실했던 시험평가를 제대로 보완하려는 목적이 아니었다는 문제점을 가진다.



    여기에서 첫 번째 의문이 제기된다. 어차피 사업이 늦어질 바에야 처음부터 6개월이나 1년 정도 연기했더라면 사업 관리가 훨씬 안정적으로 이뤄졌으리라는 결론이 나온다. 방사청이 뭔가에 쫓기듯 수시로 일정을 변경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특히 대상 기종 가운데 F-35는 개발 중이라는 이유로 우리 조종사가 직접 탑승하지 못하고 시뮬레이션이나 관측으로 대체하는 변칙적인 평가가 이뤄졌고, F-15SE 역시 실물이 존재하지 않는 까닭에 ‘유사 기종 평가’라는 생소한 방식을 채택했다. 몇 개월씩 쪼개서 일정을 연기하는 방식의 사업 관리가 이어지는 동안 미래전투기의 성능을 보장할 수 있는 추가 보완책을 도모할 여건은 허락되지 않았다고밖에 할 수 없다.

    이런 식의 이해할 수 없는 사업 관리는 10조 원대 국책사업이라는 명분에 영 어울리지 않는다. 지금 전 세계를 통틀어 국가 간 단일 무기구매로는 이 정도 규모의 거래를 찾아보기 쉽지 않다. 한국은 무기시장에서 ‘슈퍼 갑’이라 해도 손색없다. 그렇다면 절충교역 협상에서 3개 공급회사가 제안한 각종 기술이전 및 투자 대안에 대한 엄밀한 가치평가와 이행가능성에 대한 충분한 검토가 있을 법하다.

    그러나 앞서 본 4차례의 촉박한 기종 결정일 변경은 업체가 “자료 제출 시간 부족”을 이유로 이를 회피할 수 있게 악용된 측면이 있다. 항상 촉박하게 잡은 일정이 우리 협상력을 오히려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3개 공급회사는 절충교역을 위한 성실한 이행계획서 제출이나 각종 보증서류 제출을 등한시한 채 ‘한 방 터뜨리고 보자’는 식의 장밋빛 대안을 마구 쏟아낸다.

    예컨대 록히드마틴은 한국이 F-35를 구매하면 국산 고등훈련기인 T-50이 미국에 진출할 수 있게 돕겠다고 한다. 그런데 이 약속은 T-50 개발이 진행되던 1993년 이미 했던 것이다. 20년도 더 된 약속인 것이다. 여태까지 지켜지지 않은 게 문제이지, 이제 와서 마치 새로운 약속인 양 얘기하는 것은 석연치 않다. 더욱이 계약에 명기되지 않은 약속을 믿고 전투기 구매를 결정한다는 것 자체가 난센스다.

    보잉의 경우 한국이 F-15SE를 구매할 경우 국내 항공사업에 최대 1억 달러 이상을 투자하고 국내에 항공전자장비 센터를 설립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보잉의 F-15K를 60대나 구매하면서 보잉과는 상당한 협력관계를 구축해왔고, 센터 건립 역시 이번 전투기 사업과 무관하게 이미 결정된 사안이다.

    유럽항공방위우주산업(EADS)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이들은 유로파이터를 구매하면 60대 가운데 53대를 국내에서 조립하고 한국 항공산업에도 20억 달러를 투자하겠다는 파격적인 제안을 내놓았다. 그동안 한국 시장에서 미국제에 밀려 고전을 면치 못하던 유럽 회사가 가장 획기적인 제안으로 국면을 전환하려 한다는 점에서 일단 눈길을 끈다. 그러나 이 역시 실효성을 꼼꼼히 따져봐야 할 대목이 남아 있다.

    “그때 결정되지 않은 게 천만다행”

    우리가 해외 공급업체의 제안 내용을 까칠하게 따져봐야 하는 데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세계적인 방산업계의 불황 탓에 이제 무기시장이 공급자가 아닌 구매자 위주로 재편되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처럼 미국에 매달려 “제발 전투기 좀 팔아달라”고 사정하던 시대는 지났다. 이제 우리가 ‘슈퍼 갑’ 위치에서 각종 불이익을 과감하게 제거하고 더 나은 조건을 내놓으라고 호통 쳐도 되는 시대가 된 것이다.

    그간 한국의 주요 전투기 도입 사업 경험을 회고해보면, 기종 결정 전에는 우리가 갑이지만 일단 결정하고 나면 거꾸로 공급회사가 갑이 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고스란히 감수해왔다. 공급회사가 우리 측 추가 요구사항을 매정하게 무시하는가 하면, 후속 군수지원이나 성능개량 등 운용 과정에서 우리가 느끼는 아쉬움은 뒷전으로 밀려나고 거꾸로 해당 업체에 사정해야 하는 황당한 일이 벌어졌던 것이다.

    두 번째 이유는 향후 전투기 생산 국가로서 우리가 지향해야 할 국가이익이 무척이나 명확하다는 점이다. 2020년경 한국이 자주국방을 달성하고 중견 항공국가로 도약하려면 전투기 개발에 필요한 항공전자, 비행제어, 무장, 스텔스 등 핵심기술을 차질 없이 확보해야 한다. 과거 FX 1차 사업 때도 구상 당시에는 이 점이 명확했지만, 이후 추진 과정에서 외국 압력에 밀려 우리의 요구사항을 스스로 포기하고 을 위치를 자초한 뼈아픈 경험을 한 바 있다. 단지 안보 상황이 절박하다고 해서 이런 실수를 되풀이하는 일은 어리석기 짝이 없다. 매번 기종 결정 시한을 촉박하게 정해놓는 ‘시간 위주의 접근’보다 우리 요구사항이 어느 정도 충족되느냐 하는 ‘조건 위주 접근’이 훨씬 합리적이다.

    일관성과 비전

    FX(차기전투기사업)의 잡음 비행 언제까지?

    록히드마틴의 F-35, 보잉의 F-15SE(위부터).

    그러나 이렇듯 꼼꼼하고 철저하게 진행해야 할 사업 관리가 그간 어떻게 이뤄졌는지를 들여다보면 불안한 대목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단적으로, 이 사업을 누가 책임지는지, 관련 최고전문가가 누구인지조차 혼돈스럽기 때문이다. 지난해 10월 기종을 결정하겠다던 방사청은 그 한 달 전인 9월 항공기사업부장을 공군 J 소장에서 K 준장으로 전격 교체했다. 방사청의 실무책임을 맡은 FX 팀장은 사업 착수 이후 N 대령, Y 대령으로 교체했다가 역시 지난해 9월 돌연 K 대령으로 바뀌었다. 1년 사이 3번이나 실무책임자가 바뀐 것이다. 최고 전문성이 요구되는 사업 책임자가 기종 결정 직전에 교체되는 것은 일하는 사람 따로 있고 책임지는 사람 따로 있음을 의미한다.

    더욱 황당한 사건도 있다. 방사청 FX 사업팀의 계약담당 장교가 돌연 K 중령에서 L 소령으로 교체된 일이 있는데, L 소령은 올해 초 그 가족이 이번 사업에 입찰하는 한 업체의 한국지사에 근무한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져 직위해제 조치를 받았다. 사건 이후 군복을 벗은 L 소령은 현재 국내 굴지의 항공업체에 취업했다.

    이러한 문제점은 최근까지 이어진다. 곧 기종 결정을 하겠다고 공식 발표해놓은 상태지만 공군은 FX 평가단장을 J 소장에서 L 소장으로 교체했다. 방사청 FX 사업팀장이 추가로 교체되리라는 소문도 흘러나온다. 쉽게 말해 기종 결정 직전 실무자를 교체하는 ‘꿋꿋한 전통(?)’이 계속되는 셈이다. 쉬지 않고 바뀌는 관련 실무자들의 기강과 전문성에 의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자, 지난 정권 말기에 청와대 직원들이 이 사업에 관심을 갖고 전투기 공급회사나 그 협력업체에 줄을 대려 시도했다는 증언도 속속 나온다.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실이나 정무수석실 등에서 일하던 일부 행정관이 “내가 전투기를 팔도록 해주겠다”며 업체와 접촉하거나 퇴직 후 일자리 보장 등을 적극 타진했다는 증언이다. 이 사실을 필자에게 증언한 한 정부 관계자는 “당시 청와대 일부 인사가 ‘외국 업체를 직접 만나게 해달라’고 요구해왔는데, 이에 응하지 않자 온갖 인신모욕에 가까운 협박과 모멸을 가했다”고 말한다. 이 관계자는 “지난 정권 말기 FX 사업은 정치권력의 마지막 전리품으로 인식되는 경향이 뚜렷했다”며 “그때 기종이 결정되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라고 덧붙였다.

    이러저러한 의문과 잡음이 난무하는 가운데 방사청은 최근 “일주일이면 가격 입찰이 가능하다”고 설명하면서 일정을 강행하고 있다. 2002년 FX 1차 사업 당시 38번 유찰과 9개월이 걸렸던 가격 입찰을 전광석화처럼 진행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새 정부 출범 직후의 혼란스러운 시기와 맞물려 사업 위험성을 증폭할 우려가 있다. 벌써부터 공급회사들은 “협력업체와 가격 협상을 해야 하기 때문에 일정이 너무 촉박하다”는 논리를 펴며 또다시 ‘시간 부족’을 거론한다.

    7월에 기종 결정을 끝내겠다는 사업 주무부처의 방침에는 오는 9월로 예정된 한국형전투기사업(KFX) 결정 이전에 FX 사업 결정을 먼저 끝내겠다는 의도가 담긴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여기에는 흔들리지 않는 원칙이 필요하다. 미래 한국 공군의 전투기 수요를 충족하는 한국형전투기를 개발하려면, 이번 FX 사업을 통해 그 개발기술을 확보하는 핵심적 국가이익을 반드시 구현하겠다는 높은 수준의 결의가 선행돼야 한다. 지금처럼 수시로 흔들리는 사업관리에서 과연 그러한 일관성과 정책적 비전을 찾을 수 있을까. 불안하기 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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