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89

2013.05.27

천재가드 김승현 백의종군

2억5000만 연봉 삭감 삼성과 재계약…돈보다 명예 선택

  • 최용석 스포츠동아 스포츠1부 기자 gtyong@donga.com

    입력2013-05-27 10:4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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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재가드 김승현 백의종군

    2011년 11월 24일 임의탈퇴철회가 결정된 김승현 선수(왼쪽)가 기자회견에 앞서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있다.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남자농구 결승전. 한국은 숙적 중국과 금메달을 놓고 맞붙었다. 전력상 열세라는 평가를 받던 한국은 연장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맹렬한 추격전이 벌어진 4쿼터와 연장전에서 한국 대표팀 코트 사령관은 당시 최고의 가드 이상민이 아니었다. 24세로 프로에서 딱 한 시즌 뛴 김승현(35·삼성)이었다. 그는 재빠른 손동작과 엄청난 순발력으로 중국 가드로부터 공을 가로챘고, 칼날 같은 패스로 문경은 등 선배들의 득점을 지원하며 한국이 펼친 역전 드라마의 주연급 조연이 됐다.

    그 시절 ‘천재가드’라 불리며 한국 농구를 이끌어갈 차세대 스타로 각광받던 김승현. 하지만 2006년 이후 허리디스크 등으로 하락세를 걷던 그가 명예로운 퇴장을 위해 마지막 도전에 나섰다. 예전처럼 화려한 플레이는 아니지만 김승현이라는 이름에 어울리는 마무리를 위해 다시 농구화 끈을 바짝 조이는 것.

    김승현은 동국대 재학 시절 프로팀 관계자들로부터 많은 관심을 받았다. 농구선수로는 작은 키(178cm)지만 타고난 재능으로 대학농구 최고 가드로 꼽혔다. 그는 대학농구에서 보기 힘든 패스 능력과 넓은 시야, 작은 키에도 파워 넘치는 플레이 등을 두루 갖췄다는 호평을 받았다. 신인드래프트에서 전체 3순위로 오리온스 유니폼을 입은 그는 입단하자마자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묘기에 가까운 패스로 동료들의 득점을 이끌어내는 것은 물론, 빠른 스피드를 바탕으로 전개하는 속공은 신기에 가까웠다. 그는 2001~2002시즌 경기 평균 12.2득점 8.0어시스트 등 신인선수라고는 믿기 힘든 기록으로 신인상을 수상했다. 이미 프로에서 활약하던 정상급 가드와 견줘도 부족함이 없는 활약상이었다. 그해 소속팀 오리온스를 통합우승으로 이끌며 김승현은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김승현은 이후에도 줄곧 리그 정상을 유지했다. 비록 팀을 리그 정상에 다시 올려놓지 못했지만 그는 화려한 플레이로 관중을 매료시켰다. 오리온스가 뛰는 경기장마다 김승현을 보려고 팬들이 몰려들었다. 5시즌을 소화하고 2006년 자유계약선수(FA)가 된 그는 엄청난 대우를 받고 오리온스와 재계약했다. 당시 오리온스가 김승현과 재계약하려고 프로농구연맹(KBL) 규정에 없는 언더머니를 제공한 사실이 추후 소송을 통해 공개되기도 했다.

    하지만 너무 어린 나이에 부와 명예를 얻은 탓일까. 김승현에게는 좋은 수식어만 따라붙은 것이 아니었다. 타고난 재능만 믿고 훈련을 게을리한다는 이유로 ‘게으른 천재’라 불리기도 했다. 연예인과의 스캔들이 몇 차례 터지면서 좋지 않은 이미지도 쌓여갔다. 그러던 중 허리디스크가 파열돼 위기를 맞았다. 빠른 움직임과 점프가 필수인 농구선수에게 허리디스크 파열은 치명적이었다. 그는 치료받으면서 코트에 나섰지만 전성기 시절 같은 몸놀림을 보일 수 없었고, 자연스럽게 하락세에 접어들었다.



    소송전으로 기로에 놓였던 선수 생명

    FA로 오리온스와 재계약한 직후인 2006~2007시즌부터 허리디스크를 앓은 김승현은 ‘먹튀’가 됐다. 경기에는 나섰지만 몸값에 어울리는 활약을 펼칠 수 없었다. 몸 상태가 완벽하지 않은 상황에서 경기를 치르다 보니 좋은 경기력을 발휘하기 힘들었다. 부상 때문에 훈련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경기만 소화하는 날도 많았다. 아무래도 감각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비정상적인 상황에서 3시즌을 보낸 김승현은 소속팀과 갈등을 빚었다. 연봉을 놓고 줄다리기하다 합의해 실패했고, 결국 소송에 이르렀다.

    김승현은 임의탈퇴선수가 됐으며, 연봉을 놓고 오리온스와 법정다툼을 벌였다. 그는 약속한 연봉을 달라고 요구했지만 오리온스는 부상으로 제몫을 하지 못하는 선수에게 많은 연봉을 줄 생각이 없었다. 김승현은 2006년 FA 계약을 체결하며 5년간 매년 10억5000만 원을 받기로 오리온스와 계약했다. 당시 그의 연봉은 이보다 적은 금액으로 KBL에 공시됐다. 이면계약을 체결했던 것이다. 결국 김승현은 승소했지만 이 때문에 한 시즌을 통째로 날렸다.

    이후 오리온스와 관계가 원만해져 2011~2012시즌 코트로 복귀했지만 정상적인 활약은 불가능했다. 몇 년 전부터 허리가 아파 정상적으로 뛰지 못한 데다, 한 시즌을 아예 쉬어버린 그는 극히 평범한 선수에 지나지 않았다. 김승현은 시즌 도중 삼성으로 트레이드됐다. 자신이 원하는 팀으로 옮겼지만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의욕은 앞섰지만 몸이 따라주지 않았다. 패스 감각은 그래도 살아 있어 간혹 관중이 탄성을 자아낼 만한 장면을 연출했지만 몸 상태가 완벽하지 않으니 젊고 힘 있는 후배들을 상대하기 버거웠다. 2012~2013시즌을 앞두고는 명예회복을 하려고 프로에 입단한 이후 훈련에 가장 많은 공을 들였지만 개막을 앞두고 대만 전지훈련에서 목디스크가 파열돼 시즌 절반 이상을 재활로 보냈다. 그가 꿈꾸는 화려한 재기는 쉽지 않았고, 시련만 계속됐다.

    팀 훈련 합류 몸 만들기

    천재가드 김승현 백의종군

    삼성과 2억5000만 원이 삭감된 연봉으로 재계약한 김승현 선수.

    2012~2013시즌을 마친 뒤 그는 자칫 은퇴할 뻔했다. 시즌 정규리그 경기에 절반 이상을 출전하지 못해 FA 자격을 얻지 못했지만, 다행히 삼성이 그를 FA로 공시했다. 삼성은 김승현에게 지난 시즌보다 2억5000만 원 줄어든 연봉 1억5000만 원에 1년 재계약을 제시했다. 김승현에게 백의종군을 요청한 것이다. 김승현으로선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조건이었지만 삼성 측 제안을 뿌리치기도 힘들었다. 다른 구단이 김승현을 FA로 영입하려면 2억 원에 선수 1명 혹은 8억 원을 삼성에 보상해야 했다. 하향세에 접어든 나이 많은 선수를 영입하는 대가치곤 너무 비쌌다. 이러한 사실을 잘 아는 삼성은 김승현이 은퇴를 결정해도 좋다는 생각으로 연봉을 대폭 삭감했던 것이다. 결국 김승현은 삼성 측 제안을 받아들여 계약을 맺었다.

    김승현은 “요즘 나이든 선수들의 연봉을 많이 깎는 추세라는 것을 알고, 돈보다 코트에 서는 게 더 행복했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명예롭게 은퇴하고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사인했다”고 설명했다. 은퇴 혹은 다른 팀 이적을 고려했던 그는 절친한 선배 서장훈의 충고에 마음을 바꿨다. 그는 “(서)장훈이 형이 옆에서 좋은 얘기를 해줬다. 자신이 은퇴하기 직전 시즌에 연봉을 한 푼도 안 받고 뛰었던 사실을 얘기하면서 돈에 연연하지 말고 코트 위에서 좀 더 할 수 있는 부분을 찾아보라고 했는데, 그 말이 맞는 것 같다”고 털어놓았다.

    김승현은 계약을 마친 뒤 팀 훈련에 곧바로 합류했다. 디스크를 앓았던 목은 많이 좋아졌다. 자주 뭉치긴 하지만 디스크 재발 가능성은 낮다는 진단을 받았다. 팀 훈련을 통해 다시 몸을 만드는 것으로 2013~2014시즌 준비에 돌입할 예정이다.

    그는 “예전 내 모습을 다시 보여주기 힘들다는 사실을 잘 안다. 이제는 멋있는 플레이보다 팀이 좋은 성적을 내는 데 보탬이 되는 선수가 돼야 한다. 은퇴가 얼마 남지 않았다. 마지막을 잘 장식하려면 코트 위에서 보여주는 수밖에 없다. 지금부터 열심히 준비해 달라진 내 모습을 팬들에게 꼭 보여주고 싶다”고 힘줘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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