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7일(현지시간) 박근혜 대통령이 워싱턴 백악관에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한국이 주도하는 대북정책
어쨌든 오바마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재선에 성공하고 박 대통령이 한 달 뒤인 12월 당선한 뒤 정상회담에서 만나기까지 약 7개월 동안은 북한 처지에서 보면 장거리미사일 발사실험 성공(2012년 12월)과 제3차 핵실험 성공(2013년 2월) 등 ‘성공적 공격’의 기간으로 볼 수 있다. 한미 양국을 주체로 놓고 보면 ‘동아일보’가 ‘코리아 이니셔티브(K-Initiative)’라고 명명한 ‘한국이 주도하는 대북정책’이 두 나라 사이의 구체적인 정책 의제로 떠올라 공론의 장에서 검증되고 지지를 얻은 뒤 결국 양국 정상이 동의하는 과정이라고 이해하면 쉬울 것 같다.
‘한국이 주도하는 대북정책’은 한국이 능동적으로 만들어냈다기보다 수동적으로 받아들인 것이 태생적 배경이다. 즉, 한국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탄생한 것이라기보다 미국이 한국의 등을 떼밀어 어쩔 수 없이 나서게 된 측면이 강하다는 얘기이다. 이미 잘 알려진 대로 그 배경은 20년 동안 대화로나 압박으로나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을 막지 못한 미국 당국자와 전문가들의 좌절감, 피로감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미국 국무부가 2014회계연도(2013년 10월~2014년 9월) 예산 신청을 위해 의회에 제출한 ‘성과 자료’ 보고서는 북한을 뜻대로 다루는 데 실패한 미국 정부가 스스로 만든 ‘대북정책 성적표’라는 점에서 흥미를 끈다. 국무부는 2007회계연도부터 부 차원의 전략 목표 가운데 하나의 정책 목표로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라는 별도 항목을 포함시킨 뒤 해마다 구체적인 실천 목표를 제시하고 자체 평가를 내려왔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구체적인 평가를 내린 2008년부터 2012년까지 평균 성적은 ‘목표 미달(Below Target)’이다.
2010년 ‘목표 달성’은 의외
이명박 정부 첫해이자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2기 마지막 해인 2008년, 한미는 전년(2007년)에 6자회담을 통해 만든 2·13 및 10·3합의를 북한이 이행하기를 기다렸다. 보고서는 “북한은 6월 26일 핵 신고를 했다. 영변의 3개 핵심 핵시설에 대해 불능화 조치를 시작했다. 8월 불능화 조치를 잠시 중단했지만 10월 다시 시작했다”고 적었다. 하지만 북한은 검증 단계의 시료채취 문제를 두고 미국과 갈등을 빚었다. 국무부가 매긴 성적은 ‘개선됐으나 목표 미달(Improved But Not Met)’이다.
오바마 대통령 취임 첫해인 2009년을 맞아 북한은 4월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단을 추방한 뒤 장거리로켓을 발사하고 5월 2차 핵실험을 단행한다. 6월에는 사용 후 연료봉 재처리를 다시 시작하는 등 불능화 조치를 되돌린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는 만장일치로 대북제재 결의안 1874호를 채택한 뒤 투명하고 완전한 이행을 추구했다. 보고서는 “미국은 한반도에서 평화적인 방법으로 검증 가능한 비핵화를 추구하고 북한이 2005년 9·19공동성명에 따라 비확산조약(NPT)과 국제원자력기구로 돌아올 것을 촉구했다”고 기록했다. 당연히 국무부 자체 성적은 ‘목표 미달’이다.
북한이 천안함 폭침 사건과 연평도 포격 도발을 감행한 2010년에 대한 국무부 성적표가 ‘목표 달성(On Target)’인 것은 다소 의외다. 보고서는 “전례 없는 북한의 무력 도발과 우라늄 농축장치 공개 등에 맞서 ‘지역 안정을 유지하고 지역 파트너와 동맹 및 조화를 이루는 것’으로 대북정책 목표를 수정했다”고 기술했다. 6자회담 참여국과의 긴밀한 논의를 통해 수정된 목표를 달성했다는 주장이다. 보고서는 “한미일 3국의 장관급 회담을 처음 개최하고 국제사회와의 공조를 통해 대북제재를 강화했다”고 자평했다.
‘남북관계 개선’ 필요성을 공개적으로 천명한 미·중 정상회담 이후 양 강대국이 한반도의 안정적 관리에 나서 잠시나마 대화 무드가 유지되던 2011년 성적이 ‘목표 달성’인 것은 그런대로 이해되는 대목이다. 남북 간 비핵화회담이 열렸고 북미 양자회담도 19개월 만에 재개됐다. 북한에 대한 유엔 안보리 제재와 미국의 단독 제재, 각종 비확산 노력도 평점 상승에 기여했다고 보고서는 기록했다.
문제의 2012년이 됐다. 2012년이 문제인 이유는 높은 목표에 비해 턱없이 모자란 성과가 결국 미국으로 하여금 대북정책에 대한 극도의 피로감을 느끼게 했기 때문이다. 성적표는 당연히 ‘목표 미달’이다.
2012년을 맞이해 미 국무부는 밝은 청사진을 의회에 제시했다. 보고서는 “북한의 협조와 진정한 태도 변화를 전제로, 우라늄농축프로그램(UEP)과 초기 검증 의정서 등 비가역적인 비핵화 초기 단계를 협상한다”고 기술했다. 김일성 출생 100주년을 맞아 3대 세습을 진행하는 북한의 핵 개발 의사를 평가하면서 한미일 3국의 대응을 강화하고 국제사회의 제재 노력도 유지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2월 12일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인근에서 리히터 규모 5.0 지진이 관측되며 북한이 3차 핵실험을 강행한 것으로 추정 되는 가운데 서울 용산 전자상가의 한 TV 매장에서 북한 핵실험 관련 긴급속보가 방송되고 있다.
실제로 미국은 할아버지, 아버지와는 뭔가 다르리라고 기대했던 김정은과 2·29합의를 체결해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우라늄 농축 중단 조건으로 영양 지원을 약속했다. 하지만 김정은은 4월 13일 장거리미사일을 발사해 합의를 보기 좋게 깼다. 워싱턴 외교 소식통들은 “2·29합의 파기 이후 미국 내에는 북한 문제를 다뤄보겠다는 당국자들이 자취를 감춰버린 상태”라고 내부 분위기를 전했다.
한편 미 국무부의 이번 ‘성과 자료’ 보고서는 유일 초강대국 미국이 세계 경영을 위한 목표 설정과 성과 평가를 어떤 방식으로 하는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또 다른 흥미를 끈다. 세계 초일류 기업들의 경영학적 기법을 행정부서도 그대로 활용한다는 점은 한국이 본받을 만한 대목이다.
보고서는 서두에 부서의 연간 목표를 경영학이 제시한 ‘SMART 원칙’에 따라 구체적이고(specific), 측정 가능하고(measurable), 달성 가능하고(attainable), 관련성이 있고(relevant), 시간범위를 정한(time-bound) 것으로 작성했다고 밝혔다. 이런 기준으로 6개 전략목표를 세우고 하부 정책목표 38개를 작성한 뒤 각 정책목표마다 나중에 평가할 수 있는 구체적인 실행 목표를 미리 밝히는 방식이다.
보고서가 밝힌 전략목표(괄호 안은 정책 목표 수)는 개략적으로 ①미국 및 국제질서에 대한 위협 차단(11) ②민주주의적 가치 확대(11) ③인권 증진(1) ④경제 외교를 통한 미국 이익의 증진(3) ⑤공공외교(1) ⑥외교 인적 조직역량 강화(11)로 요약된다. 북한 비핵화는 전략목표①의 네 번째 정책과제로, 다른 과제와 달리 상세한 ‘평가 이유’가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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