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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못한다’는 없다 ‘독학’으로 감행 좋아하는 일 하는 게 바로 ‘행복’

평범한 직장 대신 예술 선택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배영민

  • 박은경 객원기자 siren52@hanmail.net

‘못한다’는 없다 ‘독학’으로 감행 좋아하는 일 하는 게 바로 ‘행복’

‘못한다’는 없다 ‘독학’으로 감행 좋아하는 일 하는 게 바로 ‘행복’
‘피카소’전이 열린 미술관. “그림을 보니 어떤 느낌이 드니?” “내가 그려도 저것보다 더 잘 그리겠다.” 기껏해야 너덧 살 정도밖에 안 돼 보이는 아들의 대답에 엄마가 뒤통수를 냅다 갈겼다. 옆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던 청년은 충격을 받았다. ‘쟤는 나중에 크면 그림을 엄청 싫어하겠다.’ 어릴 때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한 청년은 부모 손을 잡고 전시회에 가본 기억이 없다. 초등학생 때 선생님이 면담을 요청해 “영민이가 그림에 특별한 소질이 있다. 미술을 시키는 게 좋겠다”고 조언했을 때도 부모는 일언지하에 반대했다.

“그림 뒷바라지를 해줄 수 있을 만큼 우리 집이 부자는 아니었어요. 부모님이 장사나 개인 사업으로 생활의 부침을 심하게 겪은 터라 자식만은 대학을 나와 안정된 직장을 갖고 평범한 월급쟁이로 살길 바랐죠.”

독학으로 그림에 몰두해 영화미술가, 레스토랑 공동대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활동 중인 배영민(35) 씨. 그는 한때 대기업 계열사에 취직해 여느 평범한 직장인처럼 열심히 일했다. 유일한 자식이자 아들로서 부모의 바람을 외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미대 진학을 포기하고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그는 군 제대 후 대학을 중퇴하고 본격적으로 그림에 도전하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원하는 일을 하면서 부모에게 기대지 않으려면 먼저 돈부터 벌어야 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본격적으로 그림을 배우려고 화실에 나갔지만 한 달 만에 선생님으로부터 “소질이 없다, 포기하라”는 얘기를 들었다. 오기가 생겼다. 어정쩡하게 직장과 그림 두 가지를 잡고 있기보다 절박한 상황으로 스스로를 내몰아야겠다고 작정했다. 화실에 발길을 끊으면서 1년 반 동안 다니던 직장에도 미련 없이 사표를 던졌다. 부모가 그 사실을 알고 극구 말렸지만 “안 가보고 후회하는 것보다 가보고 후회하는 게 낫다. 모든 삶은 각자가 책임지는 것”이라며 뜻을 굽히지 않았다.

대학 중퇴…직장 사표…홀로 서기로



“사표 낼 때 고민은 안 했어요. 성격상 이럴까 저럴까 망설이거나 고민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대학 다닐 때부터 온갖 아르바이트로 필요한 용돈을 벌어 썼기 때문에 그림 그리면서 필요한 만큼의 돈은 벌 수 있으리라는 자신감도 있었죠.”

직장을 그만둔 뒤 독하게 그림을 그렸다. 스케치북을 손에서 놓지 않고 눈에 보이는 대로 무작정 사물과 풍경을 그렸다. 기초지식이 없어 그림을 그리다 막히면 스케치 요령, 인체해부학 등 미술 실기 관련 서적들을 사서 공부했다. 컴퓨터그래픽과 일러스트도 독학으로 익혔다.

그즈음 영화감독인 지인의 소개로 소품과 세트 디자인을 담당하는 영화미술팀에 합류했다. 일을 하려면 미술적 감각과 기술이 필요했지만 기초가 탄탄하지 않았던 그는 시나리오를 꼼꼼히 확인해 촬영 순서대로 미리 세트를 준비하는 등 눈치껏 자신의 부족함을 메웠다.

“미술팀장이 세트도면을 손으로 그리면 컴퓨터 포토샵을 이용해 색을 입히는 작업은 팀원들이 담당했어요. 그 일이 나한테 주어지면 절대 ‘못한다’ 소리를 안 했죠. 결과물이 잘못되면 다시 수정하면 되니까 어떤 일이든 무조건 ‘할 수 있다’고 했죠. ‘못한다’고 하면 다음 기회는 영영 없으니까.”

영화 ‘마파도’ 미술팀에서도 일했던 그는 “처음 영화 한 편에 참여한 뒤 받은 돈이 240만 원이었다. 1년 동안 일했으니 그게 연봉이었다. 하지만 돈을 떠나 작업이 재미있었다”고 했다. 올해로 영화미술가 경력 9년 차인 그는 그동안 여러 편의 영화 제작에 참여했다. 경력이 쌓이면서 미술감독들로부터 함께 일하자는 제의를 여러 차례 받았지만 보수를 올려달라고 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없던 일이 됐다. 한 감독은 면전에 대고 “돈을 너무 밝히는 것 같다”고도 했다.

“행복의 척도 바꿔라”

“화가 나서 ‘나중에 당신 자식이 아버지 뒤를 따라 영화미술을 하겠다면 선뜻 그러라고 하겠느냐. 죽어라 1년간 고생해서 고작 200만~300만 원밖에 못 버는 아들이 자랑스럽겠느냐’고 치받아버렸어요.”

영화미술 일을 하면서 실내인테리어, 공연포스터 제작, 음반 재킷과 명함 디자인 등 전 방위로 영역을 넓혀간 그는 영화 쪽에서 인연을 맺은 3명의 ‘형’들과 의기투합해 2011년 12월 서울 종로구 계동에 레스토랑 ‘더 하베스트(the HARVEST)’를 열었다. 가게 디자인과 인테리어를 주도한 그는 ‘맛있는 문화를 팝니다’라는 레스토랑 콘셉트에 맞춰 연중 다양한 프로젝트를 기획, 진행하고 있다. 올해부턴 일러스트레이션에 관심 있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그림을 가르치는 장기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매주 일요일마다 그를 비롯한 사장들이 강사로 나서 문화강좌 워크숍 ‘One Day 클래스’도 연다.

“대기업에 다니는 친구가 많은데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자유롭게 사는 저를 보고 무척 부러워해요. 그중에는 당장 직장을 때려치우고 싶지만 용기를 못 내는 친구도 있어요. 그들에게 ‘행복의 척도를 바꾸라’고 얘기해요. 좋은 직장, 좋은 아파트, 좋은 차 같은 물질에 삶의 가치를 두지 않는다면 얼마든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 수 있다고. 요즘 사람들은 너무 현실적이고 미래 계획과 구상도 완벽하길 바라요. 그러다 보면 벽에 부딪혀 새로운 삶, 원하는 삶은 시도도 못 해보죠.”

그림으로 어떻게 돈을 벌지 미리 고민했다면 직장을 그만두는 일도, 지금의 자신도 없었을 거라는 그는 “지금의 삶이 무척 즐겁고 행복하다”고 했다.

예술로 ‘인생 2막’ 연 사람들의 특별한 파티

‘못한다’는 없다 ‘독학’으로 감행 좋아하는 일 하는 게 바로 ‘행복’
나른한 봄 햇살이 좁은 골목 구석구석을 비추던 3월 마지막 날. ‘더 하베스트’에서 ‘갈라 살롱(GALA SALON)’ 파티가 열렸다. 파티를 기획, 주최한 콘텐츠 플랫폼 기업 ‘갈라(GALA)’의 한귀리(32) 대표는 “관객이 필요한 아티스트와 문화에 목말라하는 직장인을 한자리에 모아놓으면 쌍방향 소통이 자연스럽게 이뤄진다”고 했다.

한 대표가 초청한 파티 주인공 아티스트는 모두 5명. 배영민 씨를 비롯해 일러스트레이터가 된 건축가 한정훈(39) 씨, 보사노바 듀엣 ‘나비다(Na Vida)’로 활동 중인 컴퓨터프로그래머 김동석(42) 씨와 뮤지컬배우 유니나(31) 씨, 사찰음식요리사가 된 광고·전시기획 아트디렉터 하미현(34) 씨다. 참석자들과 함께 주인공 아티스트들이 펼치는 토크 무대로 파티가 시작됐다.

“예술가란 타고나는가” “순수예술을 전공해야 예술가가 될 수 있는가” “예술가의 삶은 그동안의 교육, 커리어와 무관한가”라는 질문이 이어졌고, “재능 없이 훈련만으로 안 되는 게 있더라. 기타 치면서 좌절을 많이 경험했다”(김동석), “머릿속 상상을 내뿜는 게 예술이다. 그런 훈련을 많이 한 사람일수록 좋은 예술가가 될 수 있다”(한정훈)는 대답이 이어졌다.

마지막 질문은 파티 기획의도와도 연관된 ‘새로운 시작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였다. 대답은 안정된 직장 혹은 직업을 버리고 아티스트의 길을 걷게 된 동기와 현재 삶으로 모아졌다.

먼저 김동석 씨가 말문을 열었다. “벤처기업에서 컴퓨터프로그래머로 12년간 일했다. 연일 이어지는 야근 등 바쁜 생활이 숨 막히고 답답했다. 좋아하는 음악을 맘껏 하려고 사표를 냈는데 그때만 해도 음악을 직업으로 할 생각은 없었다. 요즘은 불러주는 곳이 많아져서 새로운 직업이 됐다”고 했다. 유니나 씨는 “독일에서 오페라 공부를 하고 귀국해 뮤지컬영어강사, 뮤지컬배우로 활동하다 우연히 브라질 영화를 보고 보사노바의 매력에 푹 빠졌다. 브라질 음악 동호회에서 김동석 씨를 만나 듀엣을 결성하게 됐다”고 했다.

“가슴속에서 막연히 뭔가를 그리고 싶은 충동과 열정이 꿈틀대는 걸 주체할 수 없어 무작정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는 한정훈 씨는 현재 건축가, 일러스트레이터, 미디어아티스트, 마케터, 콘텐츠 개발회사 최고경영자(CEO) 등 다양한 직함을 갖고 있다. 그는 “설계사무소에 근무할 때보다 경제적인 부분뿐 아니라, 삶도 훨씬 다이내믹하고 풍요로워졌다. 예술에 정답이 없는 것처럼 삶에도 정답이 없는 것 같다. 지금도 삶을 개척 중”이라고 대답했다. 사찰음식 케이터링(Catering) 일로 새로운 삶을 개척한 하미현 씨는 “30대가 되면서 그동안 지켜온 생활방식이 스스로를 옭아맨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찰음식을 만들면서 사람들과의 교류가 넓어졌고 자연의 선순환 같은 새로운 삶의 방식에도 눈뜨게 됐다”고 했다. 토크 무대가 마지막을 향해 치닫자 김동석 씨가 참석자들을 향해 “인생은 짧다. 저지르라. ‘나중에’는 없다”고 소리쳤고 참석자들은 환호했다. 토크 무대에 이어 나비다의 미니콘서트, 참석자를 대상으로 한 그림 체험과 디자인 경영 등의 워크숍으로 진행된 파티는 뜨거운 열기와 함께 3시간 동안 이어졌다.




주간동아 2013.04.22 884호 (p46~47)

박은경 객원기자 siren5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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