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84

2013.04.22

몰랐지? 내가 ‘프리뮬러’라고!

앵초

  • 이유미 국립수목원 산림생물조사과장 ymlee99@forest.go.kr

    입력2013-04-22 09:2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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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몰랐지? 내가 ‘프리뮬러’라고!
    조심조심, 살짝살짝 다가오던 봄이 이젠 밀려들어 옵니다. 특히 양지바른 숲가는 봄 햇살이 쏟아지듯 그 속도 또한 빠르지만 더없이 부드럽고 화사해 좋기만 합니다. 지천에서 봄꽃들이 저마다 꽃망울을 터뜨리니 밀려오는 춘흥을 더는 감당할 길이 없네요.

    이즈음 되면 봄 숲의 꽃들도 잔잔하고 여리기만 해서는 눈에 들어올 리 만무하지요. 하지만 앵초는 그 독특한 자태와 아무도 흉내 낼 수 없는 고운 빛깔로 한순간에 바라보는 이의 마음을 빼앗아버립니다.

    앵초는 앵초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입니다. 봄이면 이 땅의 산과 들에서 너무 귀해 보기 어렵지도, 그렇다고 너무 흔해서 식상하지도 않을 만큼 만나면 그저 반가운 마음이 든답니다. 계곡이나 냇가 옆에 무리지어 피는데, 막상 앵초가 자라는 곳은 그리 습하지 않으면서 밝은 곳이지요. 한 포기만 봐도 균형 잡힌 완전한 모습인데, 무리지어 피면 장관입니다. 어린 배춧잎처럼 잔주름이 잡힌 듯한 길쭉한 잎사귀가 땅에서부터 몇 장 자라나고, 그사이로 한 뼘쯤 되는 꽃대가 올라옵니다. 그리고 적게는 7개에서 많게는 20개의 꽃봉오리가 한자리에 모여 사방으로 달려 아주 예쁘지요.

    앵초꽃의 분홍빛 역시 너무 진하지도 연하지도 않아 참 적절하게 곱다 싶습니다. 끝이 다섯 갈래로 갈라지고 한 장 한 장 꽃잎마다 가운데가 오목한 통꽃이어서 봄의 요정이 불다가 버린 나팔 같습니다.

    앵초라는 좀 특별한 이름은 어떻게 생긴 것일까요? 이 식물을 한자로 앵초(櫻草)라고 쓰는 것을 보면 분홍색 꽃 모양이 앵두꽃을 닮았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 밖에 풍륜초, 취란화 등으로도 부르지요. 서양 사람들은 앵초 집안 식물로 수많은 원예품종을 만들어 심습니다. 이들을 모으면 책 한 권이 될 만큼 다양하지요. 꽃시장에 가보면 프리뮬러라고, 더러는 화단에 심어 키우기도 하는 색색의 꽃들이 다 이런 서양의 앵초 원예품종이랍니다. 앵초는 식물 전체를 약으로 쓰는데 진해, 거담, 소종 같은 효과가 있어 기침, 천식, 기관지염, 종기 등에 처방하며, 어린 싹은 살짝 데쳐 나물로 무쳐먹기도 합니다.



    프리뮬러, 즉 앵초에는 전설이 하나 있습니다. 옛날 독일의 어느 산골 마을에 ‘리스베스’라는 소녀가 병든 어머니와 함께 살았습니다. 아픈 어머니를 위로하려고 리스베스가 벌판으로 나가 앵초를 꺾으려 하자 꽃의 요정이 나타나 “앵초가 피어 있는 길을 가다 보면 성이 나타날 것입니다. 성문 열쇠 구멍에 앵초 한 송이를 꽂으면 문이 열립니다. 자, 어서 가보세요!”라고 했지요.

    그 말에 따라 리스베스가 성에 도착하자 성 주인은 마음에 드는 보물을 하나 고르라고 했습니다. 리스베스는 어머니의 병을 고칠 수 있는 작은 구슬 하나를 골라 어머니의 병을 말끔히 고쳤는데, 부귀영화보다 어머니를 위하는 착한 마음씨에 감동한 성 주인과 결혼까지 하게 됐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이 전설이 전해오는 독일에선 앵초를 ‘열쇠꽃’이라고도 부릅니다.

    이 봄꽃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우리 꽃 산책을 떠나보세요. 앵초가 그러하듯 봄 숲의 꽃들은 틀림없이 여러분에게 행복을 전해주는 열쇠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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