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간동아 로고

  • Magazine dongA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김원곤의 ‘망달당달’(망가지느냐 달라지느냐, 당신에게 달려 있다)

단명 유전자 뛰어넘는 후천적 건강관리의 힘

단명 유전자 뛰어넘는 후천적 건강관리의 힘

단명 유전자 뛰어넘는 후천적 건강관리의 힘
‘주간동아’ 868호에서 필자는 1980년경 달리기에 관한 외국 번역 책을 읽고 마치 개안한 것처럼 큰 감명을 받았다고 이야기한 바 있다. 워낙 오래전 일이라 글을 쓸 당시에는 정확한 책명이나 원저자가 기억나지 않았는데, 최근 자료를 조사하다 그 책에 대한 구체적 정보를 알게 됐다.

그 책 원제는 ‘달리기 전서(The Complete Book of Running)’로, 저자는 짐 픽스(Jim Fixx·1932~84)라는 사람이다. 그는 1960년대 말 케네스 쿠퍼(Kenneth Cooper)가 유산소운동(Aerobics)이란 말을 처음 만들었을 무렵, 그 자신이 직접 건강 달리기를 생활화함으로써 미국 전역에 피트니스 열풍을 일으키는 데 크게 기여했다. 그야말로 ‘건강 달리기의 대명사이자 전도사’라 해도 전혀 손색없는 사람이었다.

픽스는 1932년 미국 뉴욕에서 태어났다. 부친이 ‘타임’지 편집장을 지내 집안 형편은 괜찮았다. 픽스 자신도 세계적인 고지능자 모임인 멘사 회원일 정도로 우수한 두뇌를 지녔다. 이런 그의 이력은 달리기에 관한 책을 내기 전 이미 천재들을 위한 퍼즐 책을 3권이나 출간한 데서도 잘 드러난다.

픽스가 처음 달리기를 시작한 때는 35세가 되던 1967년이다. 110kg의 육중한 체중에 담배를 하루 두 갑씩 피워대던 그는 달리기를 시작하면서 글자 그대로 인생이 바뀌는 체험을 했다. 체중이 몰라보게 줄었으며 담배도 자연스럽게 끊게 됐다. 이런 육체적 변화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가 느낀 마음의 변화였다. 이전보다 훨씬 안정된 기분으로 매사 정신을 집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야말로 그는 자기 인생을 스스로 조절하는 느낌을 만끽했다.

그의 인생 정점은 오랜 달리기 경력을 바탕으로 타고난 머리를 활용해 ‘달리기 전서’라는 명저를 출간한 이후인 1980년대였다. 이 책은 당시 미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11주 동안이나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했고 100만 부 넘게 팔려나갔다. 이후 그가 엄청난 부와 명성을 얻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운동의 건강 효과 일대 소동

그런데 평소 자신이야말로 달리기 효과를 입증하는 살아 있는 증거라고 역설해오던 그에게 예상치 못한 비극이 찾아왔다. 1984년 7월 20일 늘 그랬던 것처럼 버몬트 주 하드윅 산길에서 달리기를 하던 도중 갑작스러운 심장발작으로 사망하고 만 것이다. 부검결과 사인은 심장 관상동맥들을 거의 막고 있는 심한 동맥경화증이었다.

픽스의 돌연사는 개인의 불행을 떠나 학자 사이에서 운동의 건강 효과에 대한 열띤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됐다. 당시는 운동이 심장에 부담을 줄 수 있다는 두려움이 마라톤 같은 힘든 유산소운동일수록 건강에 좋고 심장 기능과 장수에도 더 큰 도움이 된다는 믿음으로 바뀐 지 얼마 안 된 시기였다. 그런 만큼 여전히 격렬한 유산소운동의 위험성에 대해 회의적인 학자가 많았다. 운동반대론자들은 운동이 만병통치약이라는 주장 자체를 싫어했다.

그런 그들에게 달리기 전도사격인 픽스의 죽음은 훌륭한 공격 목표였다. 그들은 52세, 그것도 달리기 중에 사망한 픽스의 죽음이야말로 운동옹호론자들의 이론이 틀렸다는 방증 아니냐며 일제히 들고일어났다. 이런 주장들은 당시 달리기로 건강을 유지하려던 일반인에게 큰 걱정거리로 다가왔다.

이때 유산소운동 주창자인 쿠퍼가 나섰다. 그는 픽스의 의무기록과 부검 소견, 그리고 주위사람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픽스가 운동과 상관없이 사망에 이를 수밖에 없던 이유를 1986년 발표했다. 먼저 픽스는 유전적으로 돌연사에 매우 취약한 상태였다. 그의 부친은 35세에 심각한 심장발작을 경험했고 결국 43세 나이로 사망했다. 픽스 또한 선천적 심비대증을 지니고 있었다.

사실 장수를 결정하는 요인으로 유전자의 중요성을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이와 관련해 ‘골초에 술꾼이라도 100세 장수 가능하다’는 제목의 한 인터넷신문 기사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2011년 8월 5일 코메디닷컴). 미국 앨버트 아인슈타인 의대 닐 발질라이 박사팀의 연구 결과를 인용한 이 기사는 100세까지 사는 것은 주로 유전자 덕분이며, 장수하는 사람 가운데 많은 이가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시고 규칙적인 운동을 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장수는 생활습관이 아닌, 유전자가 결정하는 것이 틀림없다고 주장했다. 다만 발질라이 박사는 “이번 연구결과가 술 마시고 담배 피우고 뚱뚱해져도 수명과 관련 없다는 뜻은 아니다”라고 경고하면서 “가족 가운데 장수한 사람이 있더라도 당신이 그 유전자를 물려받았다는 보장은 없다”고 지적했다.

어쨌든 유전자 측면에서 매우 불리한 상황에 놓여 있던 픽스로선 그의 과거 생활방식이 결국 부정적으로 작용했음에 틀림없다. 그는 운동을 시작하기 전 대단한 골초였고 오랫동안 비만 상태였다. 물론 운동으로 이런 증상들이 호전됐다곤 하지만, 그동안 일어난 변화 자체를 완전히 원상태로 되돌릴 수는 없었다. 또 직업에서 받는 스트레스와 두 번의 이혼 등 정신적 요인도 무시할 수 없었다.

이런 관점에서 당시 아이젠하워 대통령 주치의였던 폴 더들리 화이트의 주장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픽스의 가족력이나 과거 생활방식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가 40세를 넘게 살았다는 것만으로도 놀라운 일이다. 따라서 픽스 수명이 달리기 때문에 단축됐다는 주장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오히려 운동이 그의 수명을 15년 이상 연장시켰다고 보는 것이 옳다.”

어쨌든 픽스의 죽음으로 일대 소동과 우여곡절을 겪은 뒤 결국 시대적 흐름은 운동옹호론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그렇다면 가상의 예를 하나 들어보자. 한 마을 이웃인 갑과 을이 있다. 두 사람은 동갑내기로 절친한 사이였는데, 우연히 65세 같은 날 사망했다. 동네 사람들은 비록 둘이 장수는 못했지만 사이좋게 같은 날 같은 나이로 사망했으니 절친했던 친구로서 매우 큰 의미가 있다고 입을 모았다.

그런데 최첨단 의학의 힘을 빌려 두 사람이 사망하기까지의 과정을 살펴보니, 둘 사이에는 완전히 대조적인 이력이 관찰됐다. 먼저 갑은 80세까지 살 수 있는 유전적 소인을 타고난 행운아였던 반면, 을은 50세를 넘기기가 힘든 불운한 유전적 소인을 타고난 경우였다. 그런데 타고난 유전적 소인과 관계없이 갑은 후천적으로 자기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해 65세에 사망했고, 을은 부단한 노력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수명을 최대한 연장해 65세에 사망한 것이다. 결국 두 사람은 표면적으론 같은 수를 누렸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갑은 단명했고, 을은 장수한 것이다.

물론 이 예는 가상으로, 현재 의학지식으론 수명에 관한 개인의 유전적 소인을 정확히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생명과학이 현재 같은 속도로 끝없이 발전하면 먼 훗날 혹시 가능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으로선 공상과학영화 또는 소설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건강 장수는 노력의 과정

그러나 지금도 정확하진 않지만 어렴풋이나마 자신의 유전적 체질을 짐작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바로 가족력을 통한 추측이다. 만일 부계, 모계 양쪽으로 모두 건강하게 장수하는 집안에서 태어났다면, 특별한 유전적 변이가 없는 한 장수할 확률이 매우 높다. 또 부계, 모계 양쪽으로 많은 사람이 음주를 즐겼지만 대부분 무병장수했다면 술로 인한 병에 걸릴 확률은 매우 희박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추정 또한 어떻게 보면 일반론일 뿐, 한 사람의 생명과 운명을 두고 그 확률을 장담할 수 있을 정도는 결코 안 된다.

건강 장수에 유전적 소인이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그러나 현재 과학기술로는 유전적 소인을 바꾸는 일은 불가능하고, 더욱이 자기가 어떠한 유전적 소인을 타고났는지 정확히 알 수 있는 방법도 없다. 이러한 불확실성 속에서 우리는 각자 건강 장수를 위해 필요한 방법이 무엇인지를 알아두고 이를 실행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이런 노력 과정을 거칠 때 우리 모두는 사회적 통념상의 건강 장수를 넘어, 각자 타고난 유전적 소인과 한계를 극복한 진정한 의미의 건강 장수를 누릴 수 있을 것이다. 비록 개인이 얼마나 건강 장수할지는 현재로선 오직 신만 정확히 알겠지만 말이다.



주간동아 2013.03.11 878호 (p76~77)

  • 김원곤 서울대병원 흉부외과 교수 wongon@plaza.snu.ac.kr
다른호 더보기 목록 닫기
1210

제 1210호

2019.10.18

超저금리 시대의 기현상, “이자 없이 돈 맡겨도 괜찮아”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