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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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번째 대박꽃 ‘활짝’

‘7번방의 선물’ 여전히 순항…양적·질적 성장 빛만큼 그림자도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입력2013-03-04 11:3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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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번째 대박꽃 ‘활짝’

    개봉 32일 만에 1000만 관객 동원 기록을 세운 영화 ‘7번방의 선물’.

    ‘7번방의 선물’(‘7번방’) 돌풍이 언제까지 이어질까. 최근 영화계의 뜨거운 관심사다. 2월 23일 개봉해 32일 만에 1000만 관객 동원 기록을 세운 ‘7번방’은 여전히 순항 중이다. 영화진흥위원회(영진위)가 운영하는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2월 27일에도 12만7799명이 관람해 누적 관객수 1079만5580명이 됐다.

    예매율도 여전하다. 최근 개봉한 액션 느와르 ‘신세계’(27.0%)에 이은 2위(24.3%)로, 당분간 관람 열기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7번방’이 한국 영화사상 최초로 1000만 관객을 돌파한 ‘실미도’(2003년, 1108만1000명)를 넘어 ‘해운대’(2009년, 1145만3338명)와 ‘태극기 휘날리며’(2004년, 1174만6135명) 기록까지 깨리라는 전망이 나온다. ‘7번방’ 배급사인 NEW의 박준경 마케팅팀장은 “극장 좌석 점유율이나 관객 추천 및 호응 정도를 볼 때 3월까지 장기 흥행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2월 27일 누적 관객수 1079만 명

    ‘7번방’의 성공 배경에 대해서는 다양한 분석이 쏟아진다. 첫째로 꼽히는 것은 스토리 힘이다. 지적장애인 아버지가 살인혐의를 뒤집어쓴 채 억울하게 죽어가는 신파조 설정이 경기불황 등으로 울고 싶은 이 시대 대중 마음을 사로잡았다는 것이다. 첫 단독 주연을 맡은 배우 류승룡의 성공적인 연기 변신과 조연 및 아역 배우의 호연도 좋은 평가를 받는다. 당초 크리스마스 시즌 개봉을 목표 삼아 ‘12월 23일’이라는 제목으로 완성한 영화를 설 연휴에 맞춰 스크린(상영관)에 올림으로써 가족 관객을 끌어들인 배급사 NEW의 마케팅 전략도 ‘7번방’ 성공을 이끈 요인으로 평가받는다.

    이와 더불어 주목할 것이 최근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국내 영화 산업이다. 영진위 통계에 따르면, 올 들어 2월 27일까지 극장을 찾은 관객수는 4194만8583명. 이 가운데 71.5%(2971만9884명)가 한국 영화를 봤다. 한국 영화 관객 점유율은 2010년 46.6%, 2011년 51.9%, 2012년 58.8%로 꾸준히 상승 중이다. 관객수도 가파르게 늘고 있다. 2010년에는 6884만여 명, 2011년 8286만여 명을 거쳐 지난해 사상 최초로 1억 명(1억1461만2848명)을 돌파했다. 올해는 현 추세를 유지할 경우 1억8000만 명 수준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파이가 커진 만큼 영화별 관객수도 증가할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1000만 명 이상이 관람한 영화는 모두 9편. 2009년 12월 개봉한 ‘아바타’(1362만4328명)를 제외한 8편이 한국 영화다(표 참조).

    8번째 대박꽃 ‘활짝’
    영진위 자료에 따르면, ‘실미도’ 이후 연간 한 편꼴로 나오던 1000만 이상 관객 동원 ‘초대박 영화’는 한동안 사라졌다가 2009년 ‘해운대’로 부활했다. 눈에 띄는 것은 2012년 7월 개봉한 ‘도둑들’ 이후 9월 ‘광해, 왕이 된 남자’(‘광해’)를 거쳐 올 1월 ‘7번방’까지 개봉일 기준으로 6개월 사이 ‘1000만 영화’ 3편이 탄생했다는 점.

    400만 이상 관객이 관람한 ‘대박’ 영화도 크게 늘었다. 지난해에만 ‘1000만 영화’ 2편을 제외하고도 ‘늑대소년’(665만4390명),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490만9937명), ‘범죄와의 전쟁 : 나쁜놈들 전성시대’(‘범죄와의 전쟁’·471만9872명), ‘내 아내의 모든 것’(459만8583명), ‘연가시’(451만5833명), ‘건축학개론’(411만645명), ‘댄싱퀸’(405만7546명) 등 7편에 이른다.

    이에 대해 김보연 영진위 영화정책센터장은 “우리나라 인구 규모로 보면 사실상 불가능한 수치”라며 “지난해 한국인의 평균 영화 관람 횟수는 연간 3.8회꼴로, 4회 안팎인 미국과 호주에 이어 세계 3위 수준”이라고 소개했다. 최근 들어 한국 영화에 대한 선호가 높아지는 점에 대해서는 “대중이 우리 언어로 된 우리 이야기를 극장에서 만나고 싶어 한다는 건 영화가 우리 국민에게 TV처럼 일상화된 매체로 인식된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영화평론가 심영섭 씨도 “최근 한국 영화 흥행 호조는 우리 영화계가 관객에게 신뢰를 얻어가고 있다는 방증”이라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주5일제가 정착하면서 직장인의 주말 영화 관람이 일상화되고, 주부의 문화 향유가 늘어나는 등 영화 관람층이 넓어진 점도 한국 영화 관객 증가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1980~90년대 한국 영화 산업의 성장과 더불어 청년기를 보낸 이들이 다시 극장을 찾으면서 자연스럽게 한국 영화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는 뜻이다. ‘7번방’의 경우 평일 조조를 비롯한 낮 시간 좌석 점유율이 80% 수준이다. 이 영화 흥행 성공을 이끈 주역 가운데 하나가 ‘주부 관객’임을 짐작할 수 있다. 인터넷 영화예매 사이트 맥스무비가 2012년 한 해 동안 이 사이트를 이용해 영화표를 예매한 관객 비율을 연령대로 분석한 결과 40대가 25.8%로 20대(20.1%)를 앞선 점도 이런 분석을 뒷받침한다. 맥스무비가 관련 조사를 시작한 뒤 40대 예매율이 20대를 앞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최대 예매 연령층은 44.4%를 차지한 30대였다. 김형호 맥스무비 실장은 “40대 관객은 지난 10년 동안 꾸준히 늘었다. 2002년에는 전체 3.4%에 불과했으나 2010년 20%를 넘어서면서 비중이 더 커지고 있다”고 소개했다. 최근 ‘범죄와의 전쟁’ ‘댄싱퀸’ 등 중년 세대 향수를 자극하는 영화가 잇따라 개봉한 것이 ‘40대 관객 부상’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도 있다.

    한국 영화 르네상스 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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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지운 감독(오른쪽)과 할리우드 진출작 ‘라스트 스탠드’의 주연 배우 아널드 슈워제네거.

    영화계 관계자들은 앞으로도 한국 영화 흥행 기록을 이어갈 기대작이 많다고 귀띔한다. 누적 관객수 675만7741명을 기록하며 순항 중인 영화 ‘베를린’과 개봉 일주일 만에 150만 명을 넘기며 흥행 돌풍을 일으킨 ‘신세계’가 선두주자다. 뒤이어 ‘실미도’ 강우석 감독이 만든 황정민, 유준상, 이요원 주연의 영화 ‘전설의 주먹’이 4월 개봉을 앞두고 있다. ‘미녀는 괴로워’(2006년, 661만9498명)와 ‘국가대표’(2009년, 848만7894명)로 연타석 홈런을 친 김용화 감독이 4년을 공들인 3차원(3D) 영화 ‘미스터 고’도 7월 중순 개봉한다. 허영만 화백의 인기만화 ‘제7구단’이 원작이다. 데뷔작 ‘과속스캔들’(2008년, 824만5523명)과 후속작 ‘써니’(2011년, 736만2467명) 모두 대박을 터뜨린 강형철 감독도 허영만 화백의 만화를 원작으로 한 ‘타짜 2부 : 신의 손’으로 돌아온다.

    최근 한국 영화계가 관객수 증가와 더불어 또 한 가지 고무적으로 평가하는 것은 국제 사회에서의 위상 변화다. 지난해 김기덕 감독의 ‘피에타’가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했다. 감독, 배우의 해외 진출도 줄을 잇는다. ‘올드보이’ 박찬욱 감독과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김지운 감독이 할리우드 자본 및 제작 시스템으로 촬영한 영화 ‘스토커’와 ‘라스트 스탠드’가 최근 미국과 한국에서 개봉했다. 하반기에는 국내 제작진이 할리우드 배우와 스태프를 고용, 글로벌 관객을 겨냥해 제작 중인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가 관객을 맞는다. 박찬욱 감독이 제작자로 이름을 올리고, CJ E·M이 책임 투자를 맡은 이 작품의 제작비는 4000만 달러에 달한다. 이병헌, 배두나 등 배우들도 한국에서의 커리어를 바탕으로 할리우드에서 활동 중이다.

    그러나 이러한 양적, 질적 성장에도 아직 한국 영화 산업은 갈 길이 멀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해 청룡영화상 시상식에서 ‘범죄와의 전쟁’으로 남우주연상을 받은 배우 최민식 씨는 수상 소감에서 “동료 감독이 자기 자식 같은 작품을 스스로 죽이는 모습을 봤다. 우리는 주류에서 이렇게 화려한 잔치를 벌이지만 누구는 쓴 소주를 마시며 비통에 젖어 있을 것”이라면서 “상업영화든 비상업영화든 그런 동료들이 더는 없도록 제도적으로 상생할 수 있는 방안을 머리를 맞대고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라고 했다. 그가 언급한 ‘동료 감독’은 지난해 영화 ‘터치’를 연출했으나 작품이 정상적으로 개봉되지 못하고 전국 12개 스크린에서 교차 상영되는 현실에 분개해 스스로 종영을 결정한 민병훈 감독으로 알려졌다. 일부 메이저 투자배급사의 스크린 독과점과 ‘퐁당퐁당 상영’이라고 불리는 교차 상영에 대한 지적이었던 셈이다.

    최현용 한국영화제작가협회 사무국장은 “작은 영화가 상영관을 잡지 못하는 문제를 오래전부터 끊임없이 제기해왔다. 멀티플렉스 한 곳에서 영화 한 편이 1/3 이상 상영되지 못하도록 제도화하는 ‘멀티플렉스 쿼터제’ 등 다양한 대안도 제안 중이다. 작지만 우수한 영화들이 다 사라지기 전에 이 문제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영화평론가 심영섭 씨도 “영화 산업이 호황을 누리면서 동시에 박찬욱, 홍상수, 김기덕 같은 감독도 등장했던 1990년대가 어찌 보면 진정한 한국 영화 황금기였다. 한국 영화 산업이 계속 성장하려면 대중영화와 더불어 사회파 영화, 작가주의 영화도 공존할 수 있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상당수 영화 스태프가 여전히 생활고에 시달리며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점도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로 지적된다. 지난해 영화 ‘도둑들’에 출연한 중국 배우 런더화(任達華) 씨는 개봉에 맞춰 열린 내한 기자회견에서 한국 영화 출연 소감을 이야기하며 “스태프들이 시간외 근무를 하면서도 추가 수당을 받지 못한 채 혹사당하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그는 “홍콩은 촬영시간 규정이 엄격해 일을 더하면 추가 수당을 받는다”며 “배우들이 자기 개런티를 삭감해 스태프들에게 나눠줄 필요가 있다. 투자사들도 함께 도와야 한다”고 조언하기도 했다.

    1월 영화산업협력위원회(영화진흥위원회,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 한국영화제작가협회로 구성된 노사정 협력체)가 발표한 2012년 ‘영화 스태프 근로환경 실태조사’에도 이런 문제점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조사에 따르면, 스태프 팀장(퍼스트)급 이하 연평균 소득은 916만 원이다. 2009년 조사 당시 743만 원에 비해 173만 원 증가한했지만, 여전히 1000만 원을 밑돈다. ‘세컨드급’ 이하 스태프 경우에는 연소득 631만 원으로, 2009년(528만 원)보다 103만 원 증가하는 데 그쳤다. 4대 보험 가입률도 낮았다. 스태프 산재보험 가입률은 32.6%에 불과했고, 재해 발생 시 본인이 알아서 해결한 경우가 16.8%에 달했다. 임금체불을 당한 경험도 39.4%나 됐다.

    8번째 대박꽃 ‘활짝’

    2009년 11월 서울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영화 집행자 교차상영 철회 촉구를 위한 기자회견’에서 배우 조재현 씨와 제작사 ‘활동사진’ 조선묵 대표, 최진호 감독(왼쪽부터)이 교차상영에 대한 의견을 밝히고 있다.

    ‘기적’ 이어갈 정책 마련 시급

    영화계에서는 표준계약서 도입이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출발점이라고 말한다. 특히 제작자와 연출 및 스태프 등이 촬영 전 임금액과 지불방법, 근로시간, 4대 보험, 시간외 수당 등에 대해 합의하는 문화를 확립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영화평론가 곽영진 씨는 우리 영화 산업 발전 방안으로 “작은 영화와 스태프에 대한 배려 및 보호를 중심으로 하는 한국 영화 ‘경제민주화’”를 제안하기도 했다.

    돌이켜보면 7년 전인 2006년, 우리 영화 산업은 정부의 스크린쿼터 축소로 큰 위기를 맞았다. 한국 영화 의무상영일수가 연간 106일에서 73일로 줄어들면서 그해 63.6%에 이르던 한국 영화 관객 점유율은 2007년 49.9%, 2008년 42.1%로 추락했다. 김보연 영진위 영화정책센터장은 “한국 영화계는 이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이야기를 잘 만들어내는 창작자’와 ‘좋은 이야기를 영상으로 잘 표현하는 스태프’에게 큰 빚을 졌다. 자본력 면에서 다른 나라보다 결코 나을 것 없는 우리 영화가 세계 곳곳에서 좋은 성과를 내는 것도 모두 영화인의 창작력과 기획력 덕분이다. 이들의 희생을 담보로 지금의 성장을 이룬 만큼, 더 늦기 전에 영화인이 제대로 된 대우를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도둑들’과 ‘광해’에서 시작해 ‘7번방’에서 꽃을 피운 ‘한국 영화 기적’을 이을 수 있는 노력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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