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76

2013.02.25

봄 들녘 ‘메롱’하며 눈인사

광대나물

  • 이유미 국립수목원 산림생물조사과장 ymlee99@forest.go.kr

    입력2013-02-25 09: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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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 들녘 ‘메롱’하며 눈인사
    날씨가 좀 풀리니 발걸음이 한결 편안합니다. 추운 겨울 어찌나 움츠리고 다녔던지, 눈길에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발에 얼마나 힘을 주고 다녔던지 저녁에 집에 돌아오면 어깨며 팔다리가 뻐근하곤 했지요. 아직 추위가 몇 번 남았긴 해도 바람에서 느껴지는 훈훈한 기운이 마음까지 녹일 듯합니다. 입춘도 지났으니 봄은 봄이겠지요. 꽃소식이 몹시 기다려지는 때입니다.

    이즈음 남쪽에 가면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는 꽃이 있습니다. 굳이 깊은 산을 찾지 않아도 숲 가장자리 풀밭이나 건조하지 않은 길 가장자리, 마을 한편 빈터에서 만날 수 있지요. 바로 광대나물입니다. 생각해보면 광대나물은 이제 피기 시작한 것이 아니라, 지난겨울부터 볕이 드는 곳에서 그렇게 올망졸망 피어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봄꽃 이야기를 하면서 이제야 광대나물을 떠올렸다니, 그간 추위를 핑계로 꽃구경에 너무 소홀했던 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마음만 먹으면 남도 들녘에서 키 작은 꽃 광대나물을 만날 수 있었는데도 말이지요. 마음 한구석 혹시 하찮게 여기는 속내가 있었던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지천으로 나는 풀인 데다 독특하게 생긴 꽃이라 많은 이가 궁금해했을 터인데 말입니다.

    사실 광대나물은 눈여겨보면 여간 개성 있고 고운 게 아닙니다. 보통은 한 뼘 높이로 자라지만, 늦은 봄까지 훌쩍 크기도 하지요. 주름이 자글자글한 잎은 본래 마주보고 나는데, 위쪽에선 자루 없이 크게 달려 줄기를 완전히 감싼 듯 보입니다. 아기 턱받이처럼. 그 모양새가 광대 옷 같아서 광대나물이 되었을까요. 물론 저 혼자만의 생각입니다.

    이름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북한에서는 작은잎광대수염, 코딱지나물이라고도 한다니, 자기 나름에는 곱다고 생각하고 있을 광대나물로서는 ‘광대’도 못마땅할 판에 ‘코딱지’라니 자존심이 상할 것 같습니다. 접골초, 진주연, 작은잎꽃수염풀이라고도 합니다. 이른 봄부터 꽃분홍색 길쭉한 꽃들이 달리지요. 작은 뱀이 고개를 들어 입을 벌린 듯한 모습이지만, 느낌은 사뭇 달라 아주 귀엽고 예쁘답니다.



    어려서 연한 순은 나물로 먹습니다. 그래서 이름 뒤에 ‘나물’이 붙었나 봅니다. 약으로도 사용하는데, 보개초(寶蓋草)란 이름으로 타박상을 치유하거나 코피를 멎게 할 때 처방한다고 합니다. 봄 햇살을 맞으며 꽃이 다복하게 핀 모습이 보기 좋아 옮겨 심으려 한다면 허사일 수 있습니다. 꿀풀과에 속하는 두해살이풀이라 이미 꽃이 피었다면 여름을 기다려 씨앗을 얻어야 하니까요.

    광대나물은 봄 들녘이 가장 잘 어울립니다. 누군가 작은 꽃을 들여다보면 아래쪽 꽃잎들이 마치 혀를 쑥 내밀고 ‘메롱’하는 듯 보인다고 하기에 저도 한 번 들여다봤습니다. 그러고 있노라니 기분이 유쾌해지고 절로 웃음이 나더군요. 그렇다면 광대나물인 이유가 잎 모양이 아니라 이렇게 사람을 즐겁게 하기 때문은 아닐까요. 행복하고 즐거운 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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