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61

2012.11.05

카페의 배신…추억도 변하나

서울 광화문 라이브 카페 골목 ‘끈적끈적’한 곳으로 바뀌어

  • 이윤진 객원기자 nestra@naver.com

    입력2012-11-05 09:3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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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페의 배신…추억도 변하나

    라이브 카페가 즐비한 서울 광화문 거리 야경.

    서울 광화문 사거리에 자리한 세종문화회관 뒤편 당주동의 유흥은 참으로 열악했다. 이웃한 종로처럼 다채로운 술집이 있는 것도 아니고, 삼청동처럼 트렌디하거나 인사동처럼 전통과 품격이 있는 것도 아니다. 하다못해 광화문광장이 생기고 광화문 사거리의 다른 쪽 골목이 재개발 붐을 타 번듯번듯한 고층 건물이 들어서면서 그에 어울리는 세련된 술집들이 공간을 채우는 와중에도 이곳만은 그대로였다.

    눈에 띄는 곳이라고는 7080세대가 대학시절 찾았던 오래된 호프집과 라이브 카페, 밥과 술을 함께 파는 선술집이 대부분이다. 정부종합청사와 유관기관, 대기업, 언론사가 즐비한 것에 비하면 초라할 정도였다.

    1980년대 감성으로 충만하던 당주동에 변화바람이 일기 시작한 건 3~4년 전부터다. 수도권 인근에서 모여든 중·장년 남녀가 무리지어 다니는 모습이 눈에 띄기 시작한 것이다. 그전까지는 화려하게 차려입은 사람들이 카페에 들어가려고 한밤중에도 줄 서 있는 모습은 당주동은 물론, 광화문 일대에서도 보기 드문 풍경이었다.

    7080문화 집결지를 덮친 카바레 문화

    당주동 7080문화에 이변이 생긴 것은 이곳의 대표 라이브 카페인 ‘○○’의 변화에서 시작됐다. 당주동에는 ‘여름’ ‘가을’ ‘소우’ 등 20~30년 역사를 자랑하는 전통 라이브 카페가 자리를 지키고 있다. 카페 이름은 달라도 통기타 반주에 맞춰 노래하는 라이브 가수, 좁고 가파른 계단과 어두침침한 실내, 두툼한 원목을 잇대어 만든 낡은 나무테이블, 가죽소파 등 비슷한 분위기에 이곳을 찾는 고객층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이 변신 아닌 변신을 하면서 당주동을 찾는 중·장년 손님층에 지각 변동이 생긴 것이다.



    일단 연령층이 높아졌다. 30~40대 중·후반 정도가 대부분이던 손님은 50~60대 초반으로 높아졌다. 심지어 60대 후반, 70대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노는 느낌도 예전과는 다르다. 음악에 맞춰 춤추는 문화는 전에도 있었지만, 이전에는 흥에 겨워 몸을 흔들고 박자를 맞추는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운동가요가 나올 때는 어깨동무를 하고 홀 손님이 다 함께 어울리기도 했다. 그게 전부였다.

    정보기술(IT) 기업에서 일하는 이인홍(43) 씨는 “1990년대부터 이곳을 찾았는데 라이브를 듣다 흥이 나면 따라 부르기도 하고, 라이브가 없으면 기타를 들고 손님끼리 노래하던 추억이 있다”면서 “찾아오는 손님의 정서가 모두 비슷해 처음 보는 사람끼리도 어색함이 없이 어우러질 수 있어 편했다”며 예전 모습이 전했다.

    이씨가 추억하는 옛날 모습은 아직도 남아 있긴 하다. 라이브에 맞춰 다 함께 춤추고 노래하는 분위기다. 차이라면 이전에는 자기 자리를 벗어나지 않던 소극적 ‘움직임’이었다면 지금은 좀 더 본격화해 ‘부둥켜 얼싸안는’ 끈적끈적한 이성 간 몸짓으로 변했다는 점이다.

    두 번째 변화는 ‘춤’에 있다. 물론 라이브 카페다 보니 성인나이트나 카바레처럼 따로 춤출 수 있는 공간이 있는 것은 아니다. 라이브가 시작되면 테이블 사이 좁은 통로로 튀어나와 마음에 드는 이성의 손을 끌고 춤추기 시작하는 것이다. 판이 과열되면 무대 위 가수가 간곡하게 당부한다.

    “춤은 꼭 자기 자리에서 추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가수가 당부한다고 조용해질 분위기가 아니다. 한번 흐름을 탄 춤판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점점 더 과열돼 파트너 몸을 더듬고 어깨를 끌어안으면서 눈빛을 교환하는 등 농밀함이 더해갔다. 분명 오늘 처음 보는 사이일 텐데 신체 접촉에 거리낌이 없다. 라이브를 들으러 온 건지, 이성을 보듬으러 온 건지 구분되지 않을 정도다. 귓속말을 하는 척하다 키스하는 패턴을 여기저기서 볼 수 있었다. 남자 가슴팍에 손바닥을 댄 여자, 여자 허리와 엉덩이를 넘나들며 손을 놀리는 남자 등 젊은 층이 즐겨 찾는 클럽 ‘부비부비’와 다를 바 없는 모습이다.

    이씨는 이처럼 달라진 분위기에 대해 “나이트, 카바레에나 어울릴 법한 광경을 이곳에서 만나니 추억이 훼손된 것 같아 기분이 착잡하다”면서 “이곳에서 이러지 말고 차라리 국일관 같은 성인나이트로 가라고 얘기하고 싶다”며 불쾌감을 표시했다.

    라이브가 끝나자 통로를 가득 메우던 인파가 순식간에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이제 좀 차분해지려나 싶었는데, 앞 테이블에 자리한 남녀가 입을 맞추기 시작했다. 거듭 입을 맞추더니 조금 지나자 아예 부둥켜안고 눈빛을 교환한다. 그들과 동행한 사람들은 그들에게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다. 다른 테이블에 앉은 이성을 ‘티 나게’ 둘러보더니 하나둘 자리를 뜨기 시작했고, 잠시 후 다른 여성들을 데리고 돌아왔다. 옆자리 여성들에게 물으니 이곳에선 종업원을 통하지 않고 손님들이 남녀를 불문하고 자유롭게 ‘부킹’할 수 있다고 한다. 특히 “라이브 타임이 되면 여성이 마음에 드는 남성을 파트너로 지목할 수 있는 것이 이곳의 장점”이라며 웃었다. 예전에는 느낄 수 없던 변화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이곳을 찾는 목적에 ‘이성탐색’이 추가된 것이다.

    이성탐색 목적에 자유로운 애정표현

    카페의 배신…추억도 변하나

    손님들끼리 자유롭게 부킹할 수 있는 한 라이브 카페.

    2~3주에 한 번은 친구들과 함께 이곳을 찾는다는 50대 남성은 “마음에 드는 여자가 있으면 가서 얘기를 좀 나누다가 마음이 맞으면 2차를 가기도 한다”면서 “친구 중엔 그 이상으로 발전해 애인 사이가 된 경우도 있는데 나는 아직까지 그런 사람은 만나지 못했다”고 고백했다.

    이곳에 대한 소문을 듣고 인천에서 찾아왔다는 50대 여성은 “이곳에선 가능하면 남자들과 합석하는 게 좋다”면서 “재미도 있고 술값도 대신 내줘서 다음에 또 올 수 있다”고 말했다. 남과 여, 이성탐색의 목적이 다른 것이다. 열심히 춤추고 자리로 돌아온 50대 남성에게 ‘왜 이곳을 찾는지’ 물었다.

    “술 좋아하는 사람은 좋은 술을 마실 수 있는 술집을 찾아가면 되고, 맛있는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은 맛집을 찾아가면 된다. 그런데 놀고 싶은 사람을 위한 술집이 없었다. 그러다 이곳을 찾아냈다. 성인나이트처럼 돈이나 부킹에 대한 부담 없이 신나게 놀 수 있는 곳은 서울 시내에서 여기가 유일할 것이다.”

    그의 대답은 이곳의 존재 의미를 명확히 설명해주는 듯했다.

    카페 최고의 명당자리인 무대 앞 카운터석을 오래 차지한 것이 미안해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바로 앞에서 50대 남자끼리 시비가 붙었다. 자신의 여자 파트너에게 대책 없이 ‘들이댄’ 남자에게 항의하면서 붙은 시비다. 정작 시비의 원인이 된 여자는 간 데 없고, 종업원이 재빨리 달려와 상황을 수습했다. 주변 손님들의 얼굴을 보니 이 또한 재미라는 눈치다. 수요일 밤, 자정이 한참 넘은 시간에 카페를 나섰다.

    문을 나서려는 순간 흥겨운 음악이 흘렀고, 테이블에 앉은 남녀들은 또다시 춤추기 시작했다. 앉아 있을 때는 지친 기색이 역력했는데 춤이 시작되자 얼굴에 화색이 돈다. 몸짓은 더없이 끈적거려도 행복하게 웃는 표정이 천진하다. 나이가 들어도 이성과의 접촉에서 위안과 온기를 찾고자 하는 마음이나 열정을 분출할 만한 해방구에 대한 욕망은 변하지 않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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