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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진짜 같은 가짜 미술품 귀신도 깜박 속아

박수근·겸재 정선 작품 또 위작 시비로 경매시장 홍역 조짐

  • 안영배 기자 ojong@donga.com

진짜 같은 가짜 미술품 귀신도 깜박 속아

진짜 같은 가짜 미술품 귀신도 깜박 속아

사진으로만 전하는 1940년 조선미술전람회 입선작인 박수근의 ‘맷돌질 하는 여인’(왼쪽)과 1940년대 후반 화가가 다시 그렸다는 동명 작품(오른쪽).

한국미술계가 또다시 위작(僞作) 논란에 휩쓸릴 조짐을 보인다. 최근 국내 대표적인 동서양화 작가들의 작품이 동시에 진위 논쟁의 중심에 섰기 때문이다. 서양화 쪽에서는 현재 가장 비싼 대접을 받는 박수근(1914~65)의 작품이, 동양화 쪽에서는 조선 후기의 천재 화가 겸재 정선(1676~1759)이 남긴 작품이 그 주인공. 이들 작품은 이전에도 위작 논란으로 홍역을 치른 ‘전력’이 있어, 재차 가짜 논쟁이 불거질 경우 그 파급 효과는 미술사학계 전반으로 확대될 전망이다.

먼저 2007년 국내 그림 경매사상 최고가인 45억2000만 원에 낙찰된 ‘빨래터’가 위작 논란으로 법정공방까지 간 박수근의 경우, 그의 다른 작품 2점이 또다시 가짜라는 주장이 최근 제기됐다.

‘맷돌질 하는 여인’과 ‘나물 캐는 여인들’

박수근의 작품은 한 점당 평균 매매가가 3억 원에 달할 정도로 수집가들로부터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따라서 이 작품들이 위작으로 판명될 경우 그렇잖아도 위작 문제로 가슴앓이를 해온 미술품 시장이 더 큰 혼란에 빠져들 것으로 예상된다.

문제가 된 작품은 박수근이 가장 이른 시기에 그린 것으로 알려진 ‘맷돌질 하는 여인’과 ‘나물 캐는 여인들’. 두 작품은 1985년 열화당에서 만든 도록에서 박수근이 1940년대 후반에 그린 작품으로 소개돼 공인받은 것으로, 현재 개인이 소장하고 있다.



진짜 같은 가짜 미술품 귀신도 깜박 속아

위작 논란으로 법정 공방까지 간 박수근의 ‘빨래터’.

그런데 최근 명지대 미술사학과 대학원에서 ‘박수근 회화의 표현기법 연구’라는 박사학위 논문을 발표한 하수봉(한국미술사 전공) 씨가 “박수근의 1940년대 후반 작으로 알려진 두 작품의 사용 재료와 표현기법, 도상 비교 등을 감정한 결과 위작”이라고 주장했다.

먼저 하씨는 두 그림 모두 화폭에 쓴 하드보드라는 재료가 1940년대는 국내에 존재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하드보드는 6·25 전쟁 당시 유엔군이 비상식량을 담았던 박스용 재료로 국내에 처음 들여왔고, 1960년대부터 국내 생산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또 사진으로만 전해지는 1940년 조선미술전람회 입선작 ‘맷돌질 하는 여인’과 1940년대 후반 작가가 이를 다시 그렸다고 알려진 동명 작품의 경우 표현기법이 서로 다르다는 점도 문제 삼았다. 필선, 운동감, 구도 등을 비교하면 이질적인 편차를 보인다는 주장이다.

하씨는 “두 작품이 1985년 유족 증언만 참고해 1940년대 작품이라고 여겨졌고, 박수근의 후원자인 마거릿 밀러의 소장품이기 때문에 당연히 박수근 작품으로 인정돼 도록에 실렸다”면서 “두 작품에 나타난 화면 구성과 운동성을 비교해보면 구도적 안정감과 자연스러움에서 많은 차이를 느낄 수 있다”고 주장했다. 게다가 박수근은 초기부터 인체 및 풍경 묘사에 매우 충실한 화풍을 보인 반면, 이 두 작품에서는 그런 특징이 별로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

이에 대해 ‘박수근 화백 유작전 도록’(2009년)을 펴낸 바 있는 한국미술품감정협회 측은 “두 작품의 연도 표기에 오류가 있을 수 있어도 작품 자체를 위작으로 보는 것은 문제”라는 견해를 밝혔다.

진적첩 감정가만 27억~45억 원

사실 미술품 진위 감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작품을 그린 작가와 가족의 직접적인 증언이다. 박수근 유족 측에 따르면, 1952년 박수근의 아내와 자식들이 전쟁을 피해 피난하면서 강원 철원군 부근에 주요 작품을 담은 항아리를 묻었고, 이번에 하씨가 의혹을 제기한 두 작품을 들고 나왔다고 한다. 유족 증언에 의하면, 두 작품은 박수근이 직접 그렸다고 인정할 수 있다.

그러나 유족이 소장하던 작품을 진짜인 줄 알고 구매했다가 낭패를 본 사례가 적지 않다는 점도 현실이다. 2005년 이중섭 유족이 경매에 내놓은 작품이 위작으로 밝혀져 그림중개업체와 수집가들이 큰 피해를 입는 등 홍역을 치른 바 있다.

박수근 작품에 대한 위작 주장이 나온 사이 미술품 경매업체인 K옥션에서는 겸재 정선의 그림 ‘계상정거도’가 실린 ‘퇴우이선생진적첩’(退尤二先生眞蹟帖, 표지 포함 총 16면, 보물 제585호·이하 진적첩)을 감정가 27억~45억 원으로 책정해 가을 경매시장에 내놓았다.

‘계상정거도’가 뭔가. 정선이 퇴계 생존 시 서당을 중심으로 주변 산수를 그린 풍경화다. 정선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계상정거도’는 2007년 새로 발행한 1000원권 지폐 뒷면 그림으로 채택할 정도로 유명한 작품이다.

그런데 이것 역시 위작 문제로 2008년 한국미술사학계를 충격에 빠뜨렸던 문제작이다. ‘계상정거도’가 140년 전인 1872년경 아마추어 위조자에 의해 제작된 가짜라고 주장한 국내 최초의 전문 감정서적이 출간되면서 한동안 문화계 전체가 출렁거렸다.

‘진상(眞相)-미술품 진위 감정의 비밀’(이하 ‘진상’)이라는 제목으로 출간한 이 책의 저자는 서울대 대학원에서 ‘작품감정론’ 강의를 하는 이동천(47) 교수. 중국 ‘국가의 눈(國眼)’으로 대접받는 서화감정계의 최고봉 양런카이(1915~2008) 선생을 사사했고, 중국에서 감정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이 교수는 귀국 후 국내 최초로 명지대 대학원에 예술품감정학과를 개설, 감정 전문가를 양성해왔다.

“나는 미술품 감정가를 양성하려는 목적으로 2002년부터 미술품 시장에 나도는 위작을 꾸준히 연구해 학습교재로 써왔는데, ‘진상’은 그간의 연구 결과물이다. 이 책은 일시적 이벤트로 위작을 폭로하려고 한 게 아니라, 이를 통해 미술사학계와 건전한 학술적 토론이 이뤄지길 기대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일부 미술사가들과 미술상들이 나의 연구 결과에 대해 학술적 근거를 대지 못하면서 무조건 엉터리라고 몰아붙여 여간 실망스럽지 않았다.”

이후 진적첩은 두고두고 논란을 일으켰다. 보물로 지정된 진적첩이 문제가 되자 주무부처인 문화재청은 문화재위원회의 감정 결과 진품이라고 발표했는데, 이동천 교수는 2008년 7월 서울대 학술행사에서 ‘1000원권 뒷면의 정선 그림-계상정거도 왜 가짜인가’를 주제로 아예 공개 강의를 했다. 공개 강의에는 한국미술사를 전공한 미국 부르크린트 융만 UCLA대 교수를 비롯해 국내외 한국미술사학자들이 참석했다. 이 강의에서 이 교수는 정선의 독특한 필획법 등 객관적인 분석틀을 사용해 감정의 최신 기법을 공개함으로써 참석자들로부터 호응을 얻었다.

“정선 그림은 워낙 유명해 그가 생존했을 당시에도 가짜가 많이 나돌았다. 위작 ‘계상정거도’를 비롯해 고서화의 경우, 감정가라는 사람이 휴대용 형광X선 분석기로 작품을 감정한다는 것 자체가 난센스다. 그 시대 종이와 물감을 사용했다고 다 진짜는 아니고, 작가의 낙관이 찍혔다고 다 믿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종이와 물감은 얼마든 구할 수 있으며, 낙관 또한 작가가 사망했다고 해서 사라지지 않는 데다 위조도 가능하다. 우리나라에 가짜 낙관을 1000개나 가진 고미술상이 있다는 말도 들었다.”

이 교수는 또 전문적인 미술품 감정은 진작(眞作)과 진작 간, 진작과 위작 간, 그리고 위작과 위작 간 비교라는 기본적 검증 과정을 통해 진위를 가려내는 체계적 훈련을 거쳐야 한다고 말했다. 이 같은 방법론은 국내 작품이든, 요즘 국내에 많이 반입되는 중국 작품이든, 서양화든 모두에 통용되는 법이라는 것.

진짜 같은 가짜 미술품 귀신도 깜박 속아

위작 논쟁을 일으킨 겸재 정선의 ‘계상정거도’(왼쪽)는 1000원권 지폐의 배경 그림(오른쪽 아래)으로 사용됐다. 이 그림은 ‘퇴우이선생 진적첩’(오른쪽 위)에 실려 있다.

미술 수집가들만 혼란

이 교수는 2009년 11월 서울대 미대 조형연구소가 주최한 학술대회에서 ‘계상정거도’뿐 아니라, 진적첩 가운데 어느 부분이 진짜이고 어느 부분이 가짜인지를 조목조목 밝히는 논문을 발표함으로써 아직도 진적첩에 대한 논란은 분분하다.

8월 2일 이 교수와 함께 진적첩을 전시해놓은 K옥션을 찾았다. 추정 감정가가 30억 원을 넘는 그림 가치에 비해 ‘대접’은 다소 소홀한 듯 보였다. 고서화를 전시해놓은 3층 전시실도 아니고 일반 서양화 그림을 전시한 2층 전시실 안 한쪽에 자리 잡고 있었다. ‘계상정거도’가 실린 진적첩은 9월 11일 새 주인이 결정된다. 이 교수는 진적첩을 살펴본 후 이렇게 말했다.

“총 16면으로 꾸민 이 진적첩은 ‘계상정거도’를 포함해 모두 4점의 정선 그림이 실렸는데, 다 가짜다. 그리고 겸재 생전 당시 친분을 나누었던 이병연의 칠언절구(七言絶句) 발문 역시 그림 의미와도 맞지 않는 가짜다.”

이에 대해 K옥션 관계자는 “문화재청에서 ‘계상정거도’가 진품이라 했고, 문제를 제기한 이동천 박사가 진적첩 원본을 보지 못한 상태에서 진위를 논한다는 것은 무리”라고 반박했다.

그러나 이동천 교수는 2009년 국립중앙박물관 전시회에서 진적첩 전부를 살펴봤고, 이번 K옥션에서도 표구의 이상 유무를 재차 확인하는 등 원본 검증작업을 거쳤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정선의 차남인 정만수가 표구작업을 했다는 표지를 보더라도 위작임을 쉽게 알아볼 수 있다고 말했다. 퇴계 이황, 우암 송시열을 의미하는 퇴우(退尤)라는 글씨 중 ‘우(尤)’자가 표지에서는 점이 빠진 반면 정작 정만수 자신은 점을 중간에 찍는 등 특이한 필체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 이 교수는 조금만 살펴보면 진적첩이 아마추어가 그린 위작이라는 사실을 여러 곳에서 찾아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진적첩이 전시된 전시실에는 박수근의 ‘아기 업은 여인’과 ‘판자촌’이 고가의 감정가를 이름표처럼 달고 역시 경매를 기다리고 있어 묘한 대비를 이뤘다. 워낙 유명한 작가들의 작품이다 보니 위작이라는 유명세를 피할 수는 없다고 해도 미술품 수집가들이 안심하고 수집할 수 있는 세상은 언제쯤 찾아올지 못내 아쉬움을 감출 수 없었다.



주간동아 854호 (p34~36)

안영배 기자 oj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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