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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오은의 vitamin 詩

아주 오랫동안 이를 서랍에 보관

아주 오랫동안 이를 서랍에 보관

아주 오랫동안 이를 서랍에 보관
송곳니

얼떨결에 뽑은 송곳니를 들고

딸아이는 바르르 떤다

방금 전까지 제 몸의 일부이던 것

빠져나오는 순간 끔찍해져



앓던 소리까지 떨꺽, 굳어졌다

뽑힌 이에 묻은 핏물을

아이는 옴찔옴찔 휴지로 닦으며

벌린 손가락으로 얼굴을 가린다

아직도 제 몸의 일부인 듯

쉽게 던져 버리지 못하는 송곳니

저렇게 놓았다 쥐었다 하면서

평생을 보낼 것이다

잡지도 놓지도 못할 날들이

아이에게 있을 것이다

크게 입 벌려

검붉은 구멍 보여 주는 아이,

보여 주지 않아도 누군가에게

뚫린 속 들킬 날 있을 것이다

―천수호 ‘송곳니’

(‘아주 붉은 현기증’ 민음사, 2009 중에서)


아주 오랫동안 이를 서랍에 보관

치과가 무섭지 않은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치과의사와 간호사를 빼고. 이들도 환자 처지가 돼 치과에 들어설 때는 분명 무서울 것이다. 진료 과정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기에 어쩌면 더 무서울지도 모른다. 우는 아이, 겁에 질린 소녀, 인상 쓰는 아저씨, 입을 채 다물지 못하고 출입문을 나서는 아주머니… 이 틈을 뚫고 접수대 앞에 서는 순간, 다리가 후들거린다. 때맞춰 진료실에서 섬세하고 날카로운 드릴 소리가 들려온다. 자동적으로 나는 마스크를 쓴 무표정한 의사를 떠올린다. 아찔하다. 팔뚝에 난 솜털이 쭈뼛 서는 것 같다. 몸이 뒤로 기울어진다. 치과에는 사람을 밀어내는 남다른 힘이 있다.

이를 뽑으러 치과에 갔다. 잠깐이면 될 줄 알았더니 이야기가 길어지고 있었다. 예감이 좋지 않았다. 병원에서 이야기가 길어져 좋을 일이 대체 뭐가 있겠는가. 영구치 하나가 흔들려서 저작(咀嚼)을 방해하고 있다는 둥, 충치 치료가 필요한 시점이라는 둥, 교정을 하는 것도 한 가지 좋은 방법이라는 둥 문제가 되지 않는 이는 하나도 없는 듯했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를 내밀어도 이보다는 덜 어처구니없을 거였다. 저작의 뜻을 묻고 싶었지만 시간을 끌어봤자 나만 손해였다. 별수 없이 자리에 누워 눈을 감았다. 아주 천천히 입을 벌리기 시작했다. 입을 벌려야 한다는 사실은 통증보다 더 참기 힘든 일이었다. 열두 살 소년은 낯선 이에게 자신의 입천장과 어금니와 목젖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의사가 건조하게 말했다. 긴장하지 마세요. 나는 마음속으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어떻게 긴장하지 않을 수 있어요! “크게 입 벌려” 보이고 싶지 않은 곳을 보일 수밖에 없다는 점, 입을 벌린 채 오랫동안 있어야 한다는 점, 입을 벌렸음에도 말하기 불가능하다는 점은 나를 얼어붙게 만들기 충분했다. 그 께름칙함, 그 어쩔 수 없음. “검붉은 구멍”을 통해 “뚫린 속”을 꼭 들킬 것만 같았다. 나는 비밀이 많은 아이란 말이에요! 잔뜩 힘을 줬더니 목과 어깨가 뻣뻣해졌다. 현기증이 일었다. 눈물이 핑 돌았다.

눈을 감았다 떴더니 “방금 전까지” 내 “몸의 일부이던 것”이 스테인리스 통에 담겼다. 끝났습니다. 입안을 헹구세요. 의사가 무뚝뚝하게 말했다. 의사가 잠시 한눈을 파는 사이, 그것을 몰래 집어 들었다. “옴찔옴찔 휴지로 닦”은 뒤, 새 휴지에 싸서 그것을 주머니에 넣었다. 중죄를 저지른 사람처럼 “벌린 손가락으로 얼굴을 가린” 채 황급히 치과를 빠져나왔다. 그제야 이가 아프기 시작했다. 긴장이 풀려 다리가 후들거렸다. 뺀 이를 주먹에 쥐고 “놓았다 쥐었다 하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쉽게 던져 버리지 못하”고 아주 오랫동안 이를 가지고 있었다. 이따금 서랍을 열어보면 그 이가 있었다. 근사한 비밀을 하나 더 갖게 된 것 같았다.



주간동아 2012.09.03 853호 (p64~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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