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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왼팔로 붓 잡았으니 파격과 자유 그려야죠”

한중수교 20주년 기념 전시회 여는 화가 杞山 고만식

  • 한상진 기자 greenfish@donga.com

“왼팔로 붓 잡았으니 파격과 자유 그려야죠”

“왼팔로 붓 잡았으니 파격과 자유 그려야죠”

1. 골프 2. 피에로 3. 판다와 군동자

동양화가인 기산(杞山) 고만식(67) 화백은 오른팔이 없다. 16세 때 교통사고를 당해 팔을 잃었다. 교통사고가 나고 18일 만에 정신을 차렸을 때 그는 오른팔이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왼손으로 숟가락을 들었는데 음식이 입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그는 절망했다. 50년도 더 된 일이지만 그는 어제 일처럼 그때 일을 떠올린다.

“밥이 입으로 안 들어가는 거예요, 밥이. 입으로 들어가야 내가 살 텐데….”

교통사고 이후 그는 세 번이나 자살을 시도했다. 동맥도 끊었고 약도 먹었다. 그러나 매번 살아났고 그게 또 다른 절망감을 키웠다. 그렇게 죽지 못해 사는데도 이상하게 그림만은 포기할 수 없었다. 죽어야 하나, 그림을 그려야 하나를 고민하던 그는 결국 왼손으로 붓을 잡았다. 시인 김석이 쓴 ‘풍류화 홀로 치는 기산 고만식’이라는 시에 다음과 같은 대목이 나온다.

바른쪽 팔뚝은 하늘로 돌려 보내고

왼손으로 붓대 잡은 기산 고만식



조선종이 위에 힘겨움으로

그는 붓끝 내리고 있지만…

16세 때 교통사고로 오른팔 잃어

20대 후반까지 고 화백은 극장 간판을 그리고 동네 사람들 영정이나 그려주며 근근이 살았다. 그러다 동양화가인 현당 김한영(1913~88) 선생을 만났고 본격적으로 그림공부를 시작했다. 현당은 운보 김기창 화백 등과 함께 한국화의 원조라고 부르는 이당 김은호 선생 밑에서 그림공부를 한 동양화가로, 기명절지화를 잘 그리기로 유명했다.

고 화백은 이후 개인전만 14차례 열었고 현대미술대전, 신미술대전, 국립현대미술관 초대전 등에서 작품을 전시하며 명성을 쌓았다. 대한민국사회교육문화상도 받았다.

제대로 그림을 배운 적이 없어서인지 고 화백의 그림은 어떤 틀에 얽매이지 않는다. 동양미술의 전통을 따르는 것 같으면서도 자기만의 여유와 해학을 구사한다. 4차원적이고 원초적인 그림을 그리는 동시에 파격에 가까운 외설적인 그림도 선보인다. 무엇보다 소재가 다양하고 표현의 폭이 넓어 한 사람이 그린 것인지 의심케 한다는 평을 듣는다. 그가 주로 그리는 풍경화는 물론 피에로, 동자승, 판다를 주제로 한 그림도 하나같이 파격적이다.

“처음에는 단원 김홍도나 혜원 신윤복 그림을 따라 그렸어요. 그러다 현당 선생에게 심하게 꾸중을 들었지. 다른 사람 그림을 따라 하지 말라고, 너만의 그림을 그리라고. 피에로를 그린 것도 그런 이유였어요.”

왕성하게 작품 활동을 하던 그는 2008년부터 활동 무대를 중국으로 옮겼다. 언젠가 돌아가신 운보 김기창 화백이 “앞으로는 동양미술의 중심이 중국이 될 것이다. 기회가 되면 중국에 뜻을 가져보라”고 조언했던 것이 생각나 감행한 도전이었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그는 중국에서도 상당한 성공을 거뒀다.

“운이 좋았어요. 좋은 사람을 많이 만나서. 오동괴라는 사람이 있어요. 중국 대표 화가 10명에 들어가는 사람이죠. 그분 도움으로 2008년 베이징에 있는 오동괴예술관에서 첫 전시회를 열었는데 아주 성공적이었어요.”

고 화백은 그해 중국 정부로부터 ‘한중문화교류 특별공로상’을 받았다.

8월 23~28일 선양서 개인전

“왼팔로 붓 잡았으니 파격과 자유 그려야죠”
고 화백은 8월 23일부터 28일까지 중국 선양(瀋陽)의 선양고궁박물관 특별전시관에서 개인전을 연다. 선양 한국 주간(週間)에 맞춰 여는 한중수교 20주년 기념 한국 대표 화가 초대전으로 선양시 인민정부와 주선양대한민국총영사관이 주최한다. 한중수교 20주년 행사로 한국 화가가 중국에서 전시회를 여는 것은 고 화백이 유일하다. 그래서인지 요즘 그는 약간 들떠 있다.

“선양은 중국으로 이주한 우리 민족이 처음으로 자리잡았던 땅이에요. 역사적인 곳이죠. 한중수교 20주년을 맞아 그곳에서 개인전을 열 수 있어 무척 기뻐요.”

▼ 몇 작품 정도 전시하나.

“50점 정도예요. 요즘 열심히 그리는 피에로 그림이 20여 점, 풍경화가 10여 점, 중국 판다와 동자승 그림이 5~6점, 소나무 그림이 5점 정도 되죠. 기독교 성화도 5~6점 전시해요.”

▼ 피에로 그림이 독특한데, 그리기 시작한 동기가 있나.

고 화백이 그리는 피에로는 별나기로 유명하다. 애들 장난 같다는 평도 있고, 격조 있는 예술세계라며 극찬하는 목소리도 있다. 하여간 한국과 중국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피에로는 사실 내 자화상입니다. 내가 살아온 과정이 돌아보면 피에로나 매한가지예요. 사람들에게 언제나 웃음을 선사하지만 내적으로는 고통을 느끼며 살고, 또 그럴수록 웃음을 팔고…. 지금은 내가 그린 그림을 보면서 오히려 위안을 받죠.”

▼ 앞으로 계획은.

“지난해부터 한국과 중국에 있는 대표적인 미술대학 간 교류 활동을 추진하고 있어요. 한국과 중국을 대표하는 8개 미술대학 학생들이 작품을 교류할 수 있도록 도와 동양미술의 수준을 높이는 데 일조하고 싶다는 생각에서 시작한 사업이죠. 이를 위해 지난해 말에는 중국 미술대학들과 양해각서(MOU)를 체결했고, 요즘은 우리 정부를 설득하고 있어요. 이런 것이 바로 애국하는 길이라고 생각해요.”



주간동아 850호 (p46~47)

한상진 기자 greenfis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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