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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 이형석의 영화 읽기

‘한탕’에 사랑이 끼어들었으니…

최동훈 감독의 ‘도둑들’

  • 이형석 헤럴드경제 영화전문기자 suk@heraldm.com

‘한탕’에 사랑이 끼어들었으니…

‘한탕’에 사랑이 끼어들었으니…
7월 말에서 8월 초는 국내 극장가에서 올해 최고의 흥행대전이 벌어지는 가장 흥미진진한 시기로 꼽힌다. 한국과 미국의 최고 기대작이자 화제작이 본격적인 관객몰이에 나서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올해 개봉작 가운데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 영화계에서 최대 이슈로 주목받은 ‘다크 나이트 라이즈’와 한국 영화계 ‘드림팀’이 출동한 대작 ‘도둑들’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베일을 벗은 결과 두 작품 모두 ‘명불허전’이다.

최동훈 감독의 ‘도둑들’은 하이스트 필름(heist film)이나 케이퍼 무비(caper movie)라고 일컫는 장르의 작품이다. 일종의 도둑 혹은 강도 영화다. 도둑이 떼로 모여 작전을 짜고 물건을 훔치는 이야기를 담는다. 속고 속이고,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면서 훔친 물건의 향방을 끝까지 짐작할 수 없게 하는 데 이 장르의 묘미와 재미가 있다.

“기적이 우리 전공이야”

이 장르의 대표적 작품으로 ‘스팅’이나 ‘오션스 일레븐’을 꼽는다. 하이스트 필름 속 주인공은 흔히 당대의 ‘대도(大盜)’들이다. 이들은 이제까지 없었고 앞으로도 있기 어려울 ‘한탕’을 위해 뭉친다. 현장을 답사하고 작전과 세부적인 행동을 완벽하게 계획한 다음 실행에 나선다.

그런데 일이 예상치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거나 돌발적인 상황이 벌어진다. 도둑끼리 뒤통수를 치기도 한다. 누군가는 실패하지만 누군가는 성공한다. 이것이 하이스트 필름 시나리오의 ‘공식’이다. 꼬일 대로 꼬인 복잡한 이야기 구조이지만, 엄청난 개런티를 쏟아부으며 ‘올스타 캐스팅’을 해내는 만큼 잘 만들면 실패 위험성이 낮은 장르이기도 하다.



최 감독은 이미 데뷔작 ‘범죄의 재구성’과 도박 소재 영화 ‘타짜’를 통해 ‘한국형 하이스트 필름’에 가장 뛰어난 재능을 가진 감독으로 인정받았다. 당대 톱스타 김윤석, 김혜수, 전지현, 이정재, 김수현, 오달수, 김해숙이 출연하고 1980∼90년대 홍콩 누아르 영화의 전성기를 풍미했던 런더화까지 가세했다. ‘도둑들’ 역시 얼개는 하이스트 필름의 전형을 따른다.

당대 최고 도둑들이 마카오의 한 카지노에 숨겨졌다고 알려진 3000만 달러짜리 다이아몬드를 훔치려고 모인다. 작전 설계자는 전설적인 도둑 마카오 박(김윤석 분). 현장에 도둑을 투입하고 장물을 끌어올리는 건 와이어 설계 전문가 뽀빠이(이정재 분)와 그의 파트너이자 후배인 잠파노(김수현 분)가 맡는다. 금고를 여는 데는 따를 자가 없는 펩시(김혜수 분)와 줄 타는 미녀 예니콜(전지현 분), 당대 최고 연기파 사기꾼인 씹던껌(김해숙 분) 등 7인조 한국인 도둑은 첸(런더화 분)이 이끌고 앤드루(오달수 분)가 따르는 마카오 현지의 중국 팀에 합류해 ‘미션 임파서블’에 도전한다. 대상은 마카오 암흑가의 최고 실력자가 가진 다이아몬드. 삼엄한 경비와 철통같은 보안을 뚫어야 한다. 불가능해 보이는 임무지만 마카오 박은 말한다. “기적이 우리 전공이야.”

여기까지라면 ‘도둑들’은 잘해야 ‘오션스 일레븐’의 아류작에 그쳤을 것이다. 하지만 최 감독은 완벽한 것처럼 보였던 도둑들을 일순간 감상에 빠뜨린다. 도둑들이 모였으니 사달이 나는 법. 서로 속고 속이고 뒤통수를 치면서도 뻔뻔하게 “도둑이 훔치는 게 죄야?”라는 한마디로 눈 하나 깜짝 안 하던 이들이 한순간 누군가에게 마음을 빼앗겨 일을 그르친다. 사랑을 가리켜 흔히 ‘마음을 훔친다’고 말한다. 연인도 도둑질을 하지만 도둑도 ‘연애질’을 한다. 날고 기는 도둑이라도 때로 마음이 흔들리는 건 어쩔 수 없고, 수십, 수백억 원짜리 다이아몬드를 손쉽게 훔치는 대도라도 쉽사리 얻지 못하는 게 다른 이의 마음이다.

하지만 돈으로 값을 매길 수 없는 건 절대 탐하지 않아야 진짜 도둑. 감상에 빠진 킬러가 그러하듯, 사랑에 빠진 도둑은 안전을 보장받기 어렵다. 사랑에 눈이 멀면 장물도, 퇴로도 보이지 않는 법이다.

‘한탕’에 사랑이 끼어들었으니…
액션 장면 탁월, 연기도 묘기 수준

마카오 박과 펩시 사이엔 과거가 있고 애증이 있다. 그것이 마지막까지 둘의 발목을 잡고, 기어이 ‘신파’ 형식으로 완성된다. 젊은 예니콜과 잠파노가 투닥거리며 만들어가는 관계는 그들 나이에 맞게 로맨틱 코미디다. 엉뚱하고 톡톡 튀며 화끈하고 낭만적이다. 중년을 위한 배려도 있다. 첸과 퇴물 여도둑 씹던껌이 국경을 넘어 보여주는 애틋하고 끈적이는 로맨스가 그것. 최 감독은 끝내 런더화의 손에 총을 쥐여주면서 1980∼90년대 홍콩 누아르 영화에 ‘오마주(헌정)’를 보내고, 결국은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멜로드라마 형태로 관록의 두 남녀 배우에게 경의를 표한다. 이 정도면 ‘도둑들’은 범죄영화가 아니라 도둑들의 사랑과 이별을 그린 도둑판 ‘러브 액츄얼리’다.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내달리는 자동차 추격전이나 부산의 낡은 아파트 외벽에서 펼치는 와이어 격투 신(줄에 매달려 벌이는 싸움), 지하 주차장에서의 총격전 등 액션 장면은 한국 영화에서 최고 수준이라 할 만큼 탁월하다. 이에 맞먹는 ‘묘기’ 수준의 배우들 연기도 볼만하다. 김윤석은 갈수록 능구렁이 같고, 김혜수는 정확하고 성실하게 배역을 표현했다. 이번 작품의 최대 수혜자라 할 만한 전지현은 오랜만에 나이에 맞는 배역과 연기로 ‘스타’가 아닌 ‘배우’로서 임무를 완성했다. 이정재는 특유의 건들거림으로 속내를 짐작할 수 없는 인물을 잘 소화했다. 마카오 박이 뽀빠이에게 “넌 왜 아직도 연기가 그 모양이냐”라고 하거나, 예니콜이 씹던껌에게 “우리나라 최고의 연기파지만 알코올이 없으면 안 돼”라고 하는 대사는 극중 캐릭터와 실제 배우들 사이에 묘한 공명을 일으키는 유머러스한 장면이다.

김혜수와 전지현이 미모와 나이로 신경전을 벌이는 장면도 최 감독다운 위트다. ‘도둑들’ 중 누구는 후회와 자책 때문에 다 잡은 고기를 놓치고, 누구는 잠깐 머리를 든 연심 때문에 다 된 밥에 재를 뿌리며, 누구는 애를 태우다 감옥에 간다. 최후 승자는 누구일까.

‘도둑들’에서 최 감독이 풀어내는 것은 ‘사랑이 도둑질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범죄 방정식’이다. 그것은 이렇게 요약된다. 도둑질은 상수, 사랑은 변수, 함숫값은 장물이나 수갑 혹은 살거나 죽거나.



주간동아 2012.07.30 848호 (p64~65)

이형석 헤럴드경제 영화전문기자 suk@herald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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