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43

2012.06.25

엇갈린 사법 판단 국민만 헷갈려

헌법재판소와 대법원

  • 남성원 법무법인 청맥 변호사

    입력2012-06-25 10: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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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엇갈린 사법 판단 국민만 헷갈려
    최근 헌법재판소가 대법원 판결에 대해 사실상 위헌이라는 결정을 내려 파문이 일었다. 앞서 GS칼텍스와 AK리테일(이하 2개사)이 1990년 시행되던 구 조세감면규제법 부칙 23조에 근거해 2004년 부과된 700여억 원의 법인세 등이 부당하다며 제기한 행정소송에서 대법원은 그 부과 처분이 합당하다고 최종 판결한 바 있다. 이에 대해 2개사가 헌법재판소에 구 조세감면규제법 부칙 23조가 위헌임을 확인해달라는 헌법소송을 제기했고, 헌법재판소가 2개사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1990년 시행되던 구 조세감면규제법 56조 2에 따르면, 비상장사가 상장을 전제로 기업을 공개하기 위해 재산을 재평가한 결과 실가치로 상승한 자산평가액에 대해서는 자산재평가로 보지 않아 법인세를 부과하지 않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한 같은 해 개정한 부칙 23조에서는 자산재평가로 보지 않는 상장기간을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규정했다.

    그러나 1993년 조세감면규제법을 전면 개정하면서 부칙 23조가 아예 없어졌다. 반면 부칙 23조에서 언급한, 상장기간을 구체화한 대통령령은 1993년 이후에도 마치 부칙 23조가 존재하는 것처럼 2003년까지 수차례 변경됐다. 그렇게 상장기간이 계속 연장되면서 최종 2003년 12월 31일까지 상장하는 경우 자산재평가로 보지 않게 됐다.

    이러한 상황에서 2개사는 1990년 상장을 전제로 자산재평가를 실시해 법인세를 감면받아오다 2003년 상장을 포기했다. 그러자 세무당국이 구 조세감면규제법 부칙 23조에 근거해 법인세를 부과한 것이다. 대법원은 조세부과 처분 근거가 된 1990년 시행 법률의 부칙 23조가 유효하다고 판단했으나 헌법재판소는 1993년 조세감면규제법을 전면 개정하면서 부칙 23조는 효력을 잃었다고 판단했다.

    법률 부칙 조항이 실효됐다고 본 헌법재판소의 논거는 ‘법 없이 과세 없다’는 조세법률주의 원칙의 엄격한 적용과 국민의 재산권 보장이다. 조세부과 처분의 근거가 된 법률 조항이 폐지됐는데도 대법원이 그 효력을 인정한 것은 ‘한계를 벗어난 입법 작용’이라 헌법재판소의 지적은 일면 타당해 보인다.



    그러나 이번 사안의 구체적 사실관계를 들여다보면 조세 정의 차원에서 헌법재판소의 결론은 무리가 있어 보인다. 2개사는 부칙 조항이 존재하던 1990년 상장을 전제로 자산재평가를 실시하고 법인세를 감면받았다. 그러나 상장이라는 감면 조건은 이행하지 않았다. 2개사는 상장하지 않으면 법인세를 내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고, 관련 대통령령도 계속 존치하고 있었다.

    그런 점에서 관련 부칙 조항이 삭제된 것은 2개사가 불로소득으로 여길 만한 상황이다. 자산재평가를 하지 않고 원가주의에 근거해 정당하게 법인세를 납부한 다른 비상장법인이나 상장기간 안에 약속대로 상장을 한 법인과 비교해 2개사만 우대하는 결과를 낳아 조세공평주의에도 어긋난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부칙 조항이 유효하다고 해석할 만한 특별한 사정이 있다고 본 대법원의 판단이 바람직해 보인다.

    이 사건은 전면 개정으로 삭제된 부칙 조항의 유효성 유무가 쟁점이었다. 법률 조항의 위헌성 판단 문제라면 헌법재판소의 권한이고, 법률 해석 문제라면 대법원의 권한에 속한다. 그러나 이 사건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결정문을 보면 형식적으로는 법률 조항의 위헌성 문제라고 하면서도, 해당 조항이 실효되지 않았다고 해석한 대법원의 논리를 조목조목 반박하면서 재해석하는 데 지면 대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헌법재판소가 대법원 판결의 부당성을 지적한 것이다.

    헌법재판소는 법적 안정성 차원에서도 되도록 대법원 판결의 정당성에 대한 평가를 자제하는 편이 바람직했을 것으로 보인다.

    헌법재판에서 이긴 2개사가 헌법재판소 결정을 근거로 법원에 재심을 청구할 경우 법원이 이를 받아들일지는 미지수다. 최고 사법기관 간 엇갈린 판단이 평행선을 유지하면, 사법적 분쟁의 최종 해결 기능이 마비될 수도 있다. 법률이 개정된 경우 재판에서 구 조항의 실효성 유무가 쟁점이 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그때마다 최종 판단 기관이 대법원인지 헌법재판소인지가 문제된다면 그 혼란은 고스란히 국민에게 부담으로 돌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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