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43

2012.06.25

“유로존 위기 몇 년 지속 허리띠 졸라매는 게 옳다”

세계적인 국제금융 전문가 미국 프린스턴대 신현송 교수

  • 유재동 동아일보 경제부 기자 jarrett@donga.com

    입력2012-06-25 09:3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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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로존 위기 몇 년 지속 허리띠 졸라매는 게 옳다”
    신현송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는 현재 유로존 위기가 “일본식 장기 불황 형태로 갈 것”이라고 진단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처럼 시장에 심각하고 갑작스러운 충격을 주지는 않겠지만 단기간 안에 해결되지도 않을 것이라는 뜻이다.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은 신 교수는 손꼽히는 국제금융시장 전문가로, 국제결제은행(BIS) 및 미국 뉴욕연방준비은행 자문교수 등을 지냈다. 통화정책에 대한 그의 논문은 벤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이 인용할 정도로 높은 평가를 받는다. 한국에서도 대통령실 국제경제보좌관으로 활동한 바 있다.

    신 교수는 6월 14일 오후 서울 중구 남대문로 한국은행 본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현 글로벌 경제상황에 대한 견해를 밝혔다. 그는 이날 열린 ‘2012 한국은행 국제컨퍼런스’에 참석하려고 한국을 찾았다.

    ▼ 이번 유로존 위기의 본질은 무엇인가.

    “위기의 근본부터 이해해야 한다. 모두들 유로존 위기를 재정위기라 말하는데 사실 재정위기는 그리스에만 국한된 현상이다. 이번 위기는 근본적으로는 자본 유출입의 위기다. 유로화가 생긴 이후 은행 부문에서 국가 간 자금 이동과 자본 유입이 급속도로 많아졌다. (자금 유입이 많았던) 아일랜드나 스페인 등의 부동산 버블이 은행 부문의 위기를 부추겼다. 지금은 유입된 자본이 다시 유출되는 과정이다. 그 과정에서 은행 부실과 경기침체, 재정악화가 모두 발생하고 있다.”



    그리스 탈퇴는 시간문제

    ▼ 그렇다면 대책은 무엇인가.

    “최근 스페인 은행이 자본 확충(구제금융) 계획을 발표했지만 이것도 늦은 감이 있다. 자본 유출이 한창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스페인 은행의 구제금융은 정부가 보증을 서야 하기 때문에 결국 스페인의 국가부채가 더 늘어나는 결과를 초래한다. 일단은 은행동맹(뱅킹유니언·Banking Union)이 올바른 방향이다. 통합된 예금보험 및 금융감독제도, 통합된 은행 구조조정 방식으로 가는 게 맞다. 그러나 시간이 늦지 않았나 싶다.”

    ▼ 유로존 위기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까.

    “관심은 2008년 리먼브러더스(이하 리먼) 사태와 같은 일이 또 생길지다. 리먼 사태는 유동성 위기였다. 물론 가능성을 배제할 순 없지만 유럽중앙은행이 이를 두고 보지만은 않을 것이다. 충분히 유동성을 공급해 리먼 사태의 재발은 막을 것이다. 그보다는 장기적인 자산건전성 위기, 즉 일본식 장기 위기가 될 우려가 있다. 이게 개연성이 더 높다. 유럽 위기의 가장 큰 변수는 어느 정도 정치적인 컨센서스(합의)를 이루느냐다. 이것만 되면 위기 해결은 가능하다.”

    ▼ 유럽 각국별로 위기는 어떻게 진행될까.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는 시간문제다. (그리스가 유로존에 잔류하는 한) 근본적인 모순이 있는데 이 모순을 유지할 순 없다. 어떤 시기에 어떤 방식으로 탈퇴할지가 관건이다. 이탈리아도 우려할 만하다. 그동안 자본 유입은 별로 없었지만 은행이 확장 경영을 많이 해서 부실자산을 안고 있다. 국가부채도 국내총생산(GDP)의 120% 수준으로 높은 편이다. 스페인에 큰 위기가 온다면 이탈리아도 장담할 수 없다. 다만 스페인과 달리 자본 유출입이 심하지 않았다는 점이 다르다. 스페인과 아일랜드는 곧 은행 구조조정을 할 것이다. 앞으로도 (유로존 위기는) 몇 년은 더 갈 전망이다.”

    ▼ 유로존이 한국으로 전이될 개연성은 얼마나 되나.

    “한국은 리먼 사태 당시 유럽 은행들의 자금 회수를 이미 경험했다. 그 후 2010년에 또 한 번 유럽 위기가 불거졌고 작년 가을에 세 번째 위기를 맞았다. 산불로 비유하자면 2008년에는 건조한 대지에 불똥이 갑자기 떨어지고 연료가 활활 탔지만, 그다음 위기부터는 여파가 약해졌다. 이미 자금을 회수할 만큼 많이 회수했고 한국의 외채상황도 좋아졌다. 다만 실물 부문의 충격에 대해서는 더 고삐를 죄고 준비해야 한다. 산업경쟁력을 키워야 하고 세계 경제가 침체된 것을 기회 삼아 시장점유율을 높이면서 극복하는 수밖에 없다. 지금 한국만 유일하게 당한 게 아니다. 전 세계적인 동시 경기하락이다. 이런 측면을 생각하고 허리띠를 졸라매는 게 옳다.”

    가계부채 문제 개선엔 긍정적

    ▼ 선진국이 양적 완화 등 경기부양책에 시동을 걸고 있다. 한국도 이 흐름에 동참해야 하나.

    “유로존 위기 몇 년 지속 허리띠 졸라매는 게 옳다”

    2010년 1월 11일 이명박 대통령으로부터 국제경제보좌관 임명장을 받는 신현송 교수.

    “지금은 풀렸던 유동성을 회수하는 단계다. 이를 감안하면 금리를 올리는 게 아니라 내릴 단계다. 자본시장이 개방된 한국에선 통화정책을 자주적으로 쓸 수 있는 여건이 상당히 제약돼 있다. 선진국이 제로금리나 통화확장정책을 쓰는데, 이 상태에서 금리를 올리면 오히려 해외자금을 유입시켜 국내 유동성만 부풀릴 소지가 크다. 자산 가격이 높아지는 것이다. 실물과 금융을 동시에 봐서 금융 안정을 위한 포괄적 정책을 써야 한다.

    과거에는 신흥국은 선진국의 정책을 배우며 따라가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있었는데 이제는 바뀌었다. 요즘 선진국에서도 ‘우리 제도가 완벽하지 않다’는 반성이 나오고 한국처럼 위기를 겪어봤던 나라가 내세운 정책에도 관심이 높아졌다. 만일 스페인이나 아일랜드에서 한국의 현 거시건전성정책을 썼다면 현재의 자본 유출입 위기를 조금이나마 모면했을 것이다. 선진국이 신흥국을 보고 배울 만한 게 상당히 많다. 선진국과 신흥국의 경계가 이번 위기를 계기로 모호해졌다.”

    ▼ 한국의 가계부채 문제는 어떻게 보나.

    “이번 유럽 위기 전개 과정에서 ‘불행 중 다행’이라 할 만한 것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원자재 가격이 내려가 인플레이션 압력이 해소됐다는 점이다. 또 하나는 과잉유동성의 산물인 가계부채 문제가 유동성을 회수하면서 많이 개선될 것이라는 점이다. 실물경제 침체는 반가운 일이 아니지만 이런 식의 효과는 불행 중 다행이라고 봐야 한다. 한국의 가계부채는 물론 지금보다 더 낮은 단계에서 안정돼야 한다. 앞으로 대외여건은 한국 정부의 정책 의도와 부합하는 쪽으로 갈 것이다.”

    ▼ 유로존 위기는 중국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나.

    “중국은 제도만 폐쇄적이지 사실은 상당히 개방된 나라다. 중국의 수출입이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상당히 높기 때문에 해외 시장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그동안 위안화 가치 상승에 대한 기대효과 때문에 중국의 비(非)금융기업은 해외에서 달러 차입을 많이 했다. (위안화 가치가 오르는 상황에서) 부채를 달러화로 마련하면 금융이익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금융시장에서 자금 회수가 일어나면서 중국도 달러 희귀 현상을 겪고 있다. 지금까지는 예상치 못했던 일이다. 앞으로 중국이 경기부양을 한다면 대출을 늘려 부동산경기를 부양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 그런데 중국은 워낙 과잉투자 경제라서 부동산을 통해 경기부양을 하는 것은 단기적 효과는 있어도 구조적으로는 좋지 않은 선택이다. 이는 장기적 관점에서 봤을 때 균형 있는 발전이 아닌, 왜곡된 발전을 초래한다. 그럼 위기를 맞을 위험성이 더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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