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42

2012.06.18

재산관계 정리 안 하면 싸움 부른다

황혼재혼 그 후

  • 김동엽 미래에셋투자교육연구소 은퇴교육센터장 dy.kim@miraeasset.com

    입력2012-06-18 14:5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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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산관계 정리 안 하면 싸움 부른다
    “얘들아, 나도 결혼하고 싶다.”

    요즘 들어 50세 이상 늦깎이 결혼이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통계를 살펴보면, 지난해 50세 이상 남성의 결혼 건수는 1만8933건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20년 전인 1991년(5340건)의 3.5배 규모이며, 10년 전인 2001년(9644건)과 비교해도 2배 수준이다. 전체 결혼에서 50세 이상 남성이 차지하는 비중도 1990년에는 1.3%였지만 지난해에는 5.8%로 크게 늘었다.

    사회적으로 황혼재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50세 이상 여성을 회원으로 받는 결혼 알선업체도 생겼다. 일부 지방자치단체는 홀로 된 노인의 맞선을 직접 주선하기도 한다. 인천시는 지난해부터 노년을 외롭게 보내는 노인이 새로운 인연을 찾을 수 있도록 분기마다 ‘합독(合獨)’이라는 이름의 ‘노인 만남의 장(場)’을 열고 있다. 참가자의 만족도가 매우 높다고 한다. ‘합독’이라는 말은 다산 정약용 선생이 ‘목민심서’ ‘애민(愛民)’편에 “목민관은 혼자 사는 노인이 함께 지내면서 서로 의지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설파한 데서 유래했다.

    황혼재혼이 늘어난 가장 큰 이유는 고령화로 혼자 사는 노인인구가 증가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부모 따로 자녀 따로’, 각자의 인생은 스스로 책임진다는 가치관의 변화도 한몫했다. 과거에는 부모를 모시고 살겠다는 자녀가 많았지만, 요즘에는 그런 부담을 갖는 젊은이가 그리 많지 않다. 그저 가끔 찾아뵙고 용돈 많이 드리면 자식 된 도리를 다했다고 생각한다.

    부모도 마찬가지다. 경제적으로 여유 있으면 자녀와 떨어져 살기를 바라는 부모가 더 많다. 그런 만큼 자녀가 독립한 뒤 남은 생을 함께할 배우자의 중요성이 어느 때보다 커졌다. 그런 점에서 황혼재혼은 과거보다 훨씬 길어진 노후를 외로움과 소외감 속에서 보내지 않고 새로운 동반자와 함께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봐야 한다.



    사르데냐 섬 남성들의 장수 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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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성에게 재혼은 수명과도 관련 깊다. 세계적으로 100세 이상 생존자의 남녀비율을 살펴보면 1대 7 정도로 여자가 남자보다 7배 높다. 우리나라도 2010년 인구조사에서 100세 이상 생존자가 1836명으로 나타났는데, 그중 86%가 여성이다.

    하지만 세계적인 장수촌으로 알려진 이탈리아 서쪽 지중해의 사르데냐 섬만큼은 예외다. 인구 160만 명에 지나지 않는 이 섬에 100세 이상 고령자가 250명이나 되는 것도 놀랍지만, 남녀비율이 1대 1이라는 점은 더더욱 놀랍다. 평생을 목동으로 살아가는 사르데냐 섬 남성은 장수 비결 중 하나로 혼자 사는 노인이 거의 없다는 점을 든다. 100세가 넘은 이 섬 주민은 모두 활동적이고 사교적인 데다 아내와 사별하더라도 금세 재혼하기 때문에 혼자 사는 법이 없다고 한다.

    황혼의 사랑은 어떤 모습일까. 직장생활과 자녀양육에 매달리느라 주위를 둘러볼 여유가 없던 젊은 시절과 달리, 자녀가 독립하고 직장에서마저 퇴직하고 나면 어느 때보다 시간관리가 중요해진다. 황혼재혼은 그 시간을 함께할 동반자를 찾는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일이다. 지난해 재혼한 김성경(62) 씨는 “두 번째 결혼은 아내와 여가를 즐기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서 “아내와 함께 어디로 여행을 갈지, 어떤 소일거리로 시간을 보낼지 궁리하는 게 무척 즐겁다”고 말했다.

    자필 유언장과 보험금 수익자 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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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결혼정보업체가 마련한 ‘황혼 미팅’ 행사에서 참가자들이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황혼재혼에 긍정적인 측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평소 부모 모시는 일에 별 관심이 없다가도 부모가 재혼한다고 하면 내심 껄끄러운 속내를 드러내는 자녀들이 많다. 부모가 정식으로 재혼하면 상속문제가 복잡해지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상속 관련 법률에서는 직계비속인 자녀와 배우자를 동등한 상속순위로 인정하는 데다, 상속지분은 배우자가 자녀보다 1.5배 많다. 부모가 황혼재혼을 하면 자녀들에게 돌아가는 상속지분이 그만큼 줄어드는 것이다. 나중에 친부모가 먼저 사망할 경우 계모 혹은 계부에 대한 부양도 자녀들로선 부담일 수 있다. 이러한 사정 탓에 황혼연애는 정식 결혼보다 동거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첫 번째 아내와 사별하고 지금의 아내와 함께 생활한 지 7년이 넘었지만 자식들의 반대로 혼인신고를 못 했다는 황철희(71) 씨는 “아내와 사별하자 직접 재혼을 권하기도 했던 아이들이 갑자기 태도를 바꾼 것은 상속문제가 불거지면서부터”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처음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살면 됐지 굳이 자식들과 분란을 일으킬 필요가 뭐 있나 생각했는데, 내가 먼저 죽고 나면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아내가 어떻게 살아갈지 걱정”이라고 털어놨다.

    황씨처럼 사실혼 관계에 있는 부부의 경우, 재산관계를 명확히 해두지 않으면 사후 자녀와 배우자 사이에 상속분쟁이 일어나기 쉽다. 가장 손쉬운 방법은 자신이 죽은 뒤의 재산처리 방법을 자필로 작성해두는 것이다. 유언 내용과 작성일, 주소, 성명을 전부 자필로 작성하고 도장을 날인한 자필증서유언은 공증을 받지 않아도 법적 효력을 지닌다. 글만 쓸 줄 알면 누구나 간편하게 작성할 수 있는 것이다. 황씨도 유언장에 자기 재산 중 일부를 아내에게 물려주겠다는 내용을 적어두면, 자신이 죽은 뒤 배우자와 자녀가 갈등하는 빌미를 줄일 수 있다. 살아 있는 동안 배우자에게 재산 일부를 증여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재산관계 정리 안 하면 싸움 부른다
    보험도 손질해둬야 한다. 특히 보험금 수익자가 전 배우자로 돼 있는 경우에는 이를 반드시 변경해야 한다. 보험금 수익자를 별도로 지정하지 않은 경우도 문제다. 이 경우 사망보험금은 상속인에게 지급되는데, 사실혼 관계인 배우자는 보험금을 받을 권리가 없다. 자신이 죽은 뒤 혼자 남을 배우자의 여생이 걱정된다면 미리 들어둔 종신보험의 수익자를 재혼한 배우자로 바꾸는 것도 방법이다. 이렇게 해두면 자신이 먼저 죽더라도 배우자가 보험금으로 여생을 꾸려갈 수 있다.

    * 미래에셋 투자교육연구소 은퇴교육센터장으로 일반인과 근로자를 대상으로 한 은퇴교육과 퇴직연금 투자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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