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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 이형석의 영화 읽기

끈적끈적한 궁궐의 性과 권력

김대승 감독의 ‘후궁 : 제왕의 첩’

  • 이형석 헤럴드경제 영화전문기자 suk@heraldm.com

끈적끈적한 궁궐의 性과 권력

끈적끈적한 궁궐의 性과 권력
“전하, 중전의 왼쪽에 누우신 연후에 마마의 아랫입술을 핥고 빨며 유방이 부풀어 오를 때까지 아랫배를 살살 문지르십시오. 중전마마는 전하의 허리를 양손으로 잡고 옥경을 받아들이십시오.”

중전과 왕의 첫 합궁, 첫날밤 장면이다. 침실 밖에는 내시와 상궁 여남은 명이 지켜 서서 교합 절차를 하나하나 일러준다. 벗은 몸으로 누운 왕과 중전은 절차를 그대로 따른다. 왕가에서 후사를 보는 일이야말로 나라의 중대사 중 중대사였으니 그럴 법도 하다.

아무리 그래도 진기하기 짝이 없는 장면이다. 절묘하게 에로틱하다. 관객은 타인의 정사를 지켜보는 자가 됐다가, 문밖에 다른 이들이 지켜 서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정사를 벌여야 하는 주인공에 동화되기도 한다. 스크린은 관음증과 노출증 사이에서 관능적 기운으로 충만해진다.

궁중사극 ‘후궁 : 제왕의 첩’(이하 ‘후궁’)은 야하고 뜨겁다. 남녀 배우가 실오라기 하나 남기지 않은 몸으로 수줍음 없이 엉켜들고 구중궁궐 속 권력, 음모의 드라마가 반전과 비틀림을 거듭하며 거침없이 진전한다.

‘후궁’은 조선왕조 가상의 어느 한때가 배경이다. 궁 안은 눈에 보이지 않는 권력투쟁으로 어지럽다. 대비(박지영 분)는 재임 중인 왕(정찬 분)의 계모이고, 왕은 후사가 없을뿐더러 중전과는 사별했다. 대비의 친아들이자 왕의 이복동생인 성원대군(김동욱 분)은 어지러운 궁궐을 벗어나 장안을 떠돌다 신 참판의 딸 화연(조여정 분)을 만나 첫눈에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화연은 아버지가 어린 시절 거둬 아들처럼, 머슴처럼 기른 권유(김민준 분)와 사랑하는 사이다.



비극은 어머니로부터

끈적끈적한 궁궐의 性과 권력
비극은 성원대군의 어머니인 대비로부터 시작된다. 대비는 재임 중인 왕을 내쫓고 성원대군을 보좌에 올려 가문을 일으키려고 혈안이 된 상태다. 그런데 성원대군이 한낱 참판 딸에게 마음을 빼앗겼으니 가당치도 않은 일. 대비는 화연을 후사가 없는 왕의 중전으로 간택해 입궐시킨다. 성원대군은 사랑하는 여인을 형수로 맞고, 권유는 연인을 떠나보내야 하는 처지다.

그로부터 5년 후 왕이 독살로 의심되는 죽음을 맞고, 마침내 성원대군이 곤룡포를 입는다. 권력의 주인이 바뀌어 궁중에 거센 피바람이 부는 가운데, 성원대군은 죽은 왕의 아내이자 형수인 화연을 향한 불같은 욕정에 괴로워한다. 대비는 훗날 문제되지 않도록 화연과 화연이 낳은 아들을 없애려고 한다. 한편 화연과 결별하며 남자 구실을 못하게 된 권유는 내시 신분으로 궁에 들어와 권력의 소용돌이에 휩쓸린다.

‘후궁’은 정통 궁중사극이라 할 만하다. 정사(政事)나 정사(正史)를 다뤄서가 아니라, 철저하게 궁중을 무대로 군신과 외척, 당파 사이의 권력암투를 그렸기 때문이다. 10여 년 전만 해도 사극에는 이처럼 배다른 형제간 왕위 쟁탈전이나 대비와 중전의 고부갈등, 중전과 후궁 즉 처첩 간 시앗싸움이 많았다. 그러나 최근에 나온 퓨전 혹은 변종 사극은 궁 안팎으로 무대를 넘나들고, 과거와 현재의 경계를 무너뜨리며, 권력암투보다 말랑말랑한 연애나 액션, 코미디에 더 빠졌다. 그에 반해 조선 어느 한 시기나 실존 인물을 특정하지는 않지만 장희빈이나 단종, 광해군, 연산군, 사도세자 등 숱하게 반복돼온 사극 소재를 아우른 ‘후궁’은 궁중사극의 새로운 ‘클래식’이라 할 만하다.

한국 영화나 드라마에서 짧지 않은 전통을 가진 궁중사극은 사실상 역사의 외피를 입었을 뿐 부자, 고부, 형제, 처첩 간 갈등을 다룬 가정 멜로드라마다. 가족 안에서 형성된 개인의 콤플렉스와 무의식적 욕망을 드러내는 장르였다.

‘후궁’에 등장하는 인물은 조선왕조의 누군가를 연상시키기도 하고, 셰익스피어 비극의 캐릭터와 겹치기도 한다. 성원대군은 이복형을 죽음으로 내몰고 조카의 자리를 빼앗은 죄책감과 형수를 향한 금지된 욕망에 괴로워한다. ‘햄릿’의 클로디어스이자 오이디푸스다. 대비는 오로지 아들과 가문을 지키려고 권력을 노리는 본능의 화신이다. ‘오셀로’ 속 이아고이자, 맥베스의 아내라고나 할까. 화연은 옛 애인 권유를 향한 지고한 사랑과 지아비인 상왕에 대한 책임감, 아들을 보호하려는 어미의 본능이 중첩된 여인이다. 여기에 자신을 ‘거세’한 세상을 향한 불타는 복수심과 화연에 대한 순정 사이에서 갈등하는 권유가 가세해 어지럽게 얽힌 권력과 욕망의 그물을 완성한다.

끈적끈적한 궁궐의 性과 권력
관능적인 살색 향연

욕망의 절정에선 달콤하거나 폭력적이거나 때로는 황폐한 정사를 펼친다. 관능적인 살색 향연, 에로티시즘이다. 프랑스 철학자 조르주 바타유는 에로티시즘(에로티즘)을 “죽음까지 파고드는 삶”이며 “단순한 성행위와 다른 정신적 요구이자 죽음 속에서조차 긍정하는 삶”이라고 했다. 그는 “에로티시즘에서의 욕망은 금기에 대한 승리”라고도 했다. 미국의 급진적 페미니스트인 안드레아 드워킨은 “에로티시즘은 단지 고급 소비자를 위해 더 세련되고, 더 감각적이며, 더 잘 구성된 상류층(high-class)의 포르노그래피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미국 작가이자 레즈비언 이론가인 수지 브라이트는 “‘에로틱’이라는 단어는 마음뿐 아니라 육체의 충동을 일으키는 우월한 가치의 시각예술이나 미학을 뜻한다”고 말했다. ‘메리엄 웹스터’ 사전은 에로티시즘을 “일반적으로 성적 자극의 상태 혹은 지속적인 성적 충동, 욕구, 사고에 대한 기대나 사유 패턴이며 욕망, 관능, 낭만적인 사랑의 미학과 관련된 철학적 개념”이라고 정의했다. ‘후궁’이 구현하는 에로티시즘 또한 그 어디쯤에선가 관능의 기운을 발한다.

수십 년간 궁에서 ‘보이지 않는 눈, 들리지 않는 입’ 구실을 했던 내시와 상궁이 주고받는 밀담은 권력의 허망함을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내시 가운데 수석이라 할 수 있는 내시감(이경영 분)은 “궐 생활 30년인데도 뭐가 옳고 그른지 모르겠다”며 “판단하는 것은 우리가 할 몫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약방 내시(박철민 분)는 “죽기 전에야 어디 궐 밖으로 몸 성히 나가겠나”라며 지나가듯 내뱉는다.

그래서 최후에 웃는 자는 누구인가. 어미다. 아들의 권력은 허망할 뿐이며, 영원한 것은 어머니의 본능이다. ‘후궁’은 아들이 사는 어머니의 궁, 그러니까 ‘자(子)의 궁(宮)’에서 일어난 비극이다.



주간동아 2012.06.11 841호 (p66~67)

이형석 헤럴드경제 영화전문기자 suk@herald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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