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38

2012.05.21

“한국말도 못하는데…” vs “꼭 필요한 킬러”

에닝요 축구 국가대표팀 발탁 논란

  • 윤태석 스포츠동아 기자 sportic@donga.com

    입력2012-05-21 11:3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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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말도 못하는데…” vs “꼭 필요한 킬러”

    5월 14일 대한축구협회에서 기자회견을 하는 최강희 국가대표팀 감독.

    최근 한국 축구에서 가장 뜨거운 화제는 전북현대 공격수 에닝요(31·브라질)의 특별귀화와 국가대표팀 발탁 논란이다. 한국 축구 역사상 외국인 선수가 귀화해 태극마크를 단 전례는 없다. 이 때문에 에닝요의 국가대표 발탁을 놓고 축구인과 팬 사이에서 갑론을박이 일었다.

    한쪽에서는 한국 축구도 이제 순혈주의를 버리고 우수 외국인 선수를 귀화시켜 대표팀으로 발탁해 전력을 강화해야 할 때라고 주장한다. 다른 한편에서는 에닝요가 과연 특별귀화를 통해 태극마크를 달 정도의 기량을 지닌 선수인지, 한국어 한마디 못하는 선수가 대표팀에 뽑혀도 되는 것인지 의문을 제기한다. 이 과정에서 대한축구협회(이하 축구협회)는 원만하지 못한 행정 처리로 비난을 받았다.

    Q·A를 통해 에닝요 논란의 오해와 진실을 파헤쳐본다. 독자가 직접 판단하길 바란다.

    Q 도대체 에닝요가 누구인가.

    A K리그 팬이라면 에닝요를 모를 리 없지만, K리그에 별로 관심이 없다면 그런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에닝요는 브라질 출신의 외국인 선수로, 주로 측면과 미드필드에서 뛰는 공격수다. 현재 전북 소속이다. 에닝요는 20대 초반이던 2003년 수원에 입단하며 K리그와 처음 인연을 맺었다. 그러나 그해 21경기 2득점 2도움의 초라한 성적만 남긴 채 고국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2007년 다시 돌아와 대구에 입단해 이듬해인 2008년 27경기에서 17골 8도움을 기록하며 특급 공격수로 인정받았다. 2009년 전북으로 팀을 옮겨 4년째 뛰고 있다. 빠른 발과 화려한 드리블, 넓은 시야, 무엇보다 칼날 같은 프리킥 능력으로 전북의 두 차례 우승(2009, 2011)을 이끌었다. K리그에서 7년을 뛰며 174경기 67골 48도움을 기록하고 있다. K리그에서만 놓고 보면 톱클래스 안에 드는 선수다.

    Q K리그에서 7년이나 활동했는데 한국어를 못하나.

    A 에닝요는 “밥 먹었어” “안녕” 같은 기본적인 표현 말고는 한국어를 못한다. 대부분 팀 통역에 의지한다. 에닝요가 귀화하고자 하는 진정성이 의심받는 결정적 이유다. 에닝요의 귀화와 대표팀 발탁을 반대하는 쪽에서는 “한국에 대한 애정이 컸다면 지금까지 왜 한국어를 배우지 않았느냐”고 반문한다. 최강희 국가대표팀 감독과 축구협회 측은 “한국말을 못한다고 진정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라며 “한국말을 못하는 점에 대해 반성하고 앞으로 배우면 된다”고 맞선다.

    한국에서 7년 겨우 “안녕” 수준

    에닝요와 함께 특별귀화 대상으로 거론됐던 수원 공격수 라돈치치(25·몬테네그로)는 한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한다. 라돈치치는 추석이나 설 등 한국 명절에 지인에게 ‘복 많이 받고 건강하라’는 안부 문자메시지를 보낼 정도로 한국 문화를 적극적으로 흡수해 에닝요와 대조를 이룬다.

    Q 특별귀화가 뭔가.

    A 외국인이 한국 국적을 얻으려면 귀화를 해야 한다. 일반귀화는 5년 동안 지속적으로 국내에 거주하고 귀화 시험을 치러야 하는 등 절차가 까다롭다. 기존 국적도 버려야 한다. 그러나 학문, 경제, 문화, 체육 등 특정 분야에서 우수한 능력을 보유한 사람으로서 대한민국 국익에 기여할 것으로 인정받으면 국내 거주 기간이나 시험 같은 별도 조건을 충족하지 않아도 한국 국적을 취득할 수 있다. 이것이 특별귀화다. 이중국적도 허용돼 기존 국적을 버리지 않아도 된다. 엄청난 혜택이다.

    다만 특별귀화를 하려면 중앙행정기관의 장이나 국회사무총장, 법원행정처장, 헌법재판소장의 추천을 받아 법무부 국적심의위원회를 통과해야 한다. 체육선수의 경우 보통 대한체육회 추천을 받는다. 지금까지 특별귀화를 통해 한국 국적을 얻은 체육선수는 남자 프로농구 문태종(전자랜드)과 문태영(모비스), 여자 프로농구 김한별(삼성생명), 쇼트트랙 공상정(원촌중) 등 4명이다. 모두 대한체육회 추천을 거쳤다.

    Q 대한체육회가 에닝요 특별귀화 추천을 거부했다던데, 그 이유는 뭔가.

    A 대한체육회는 에닝요의 포지션을 국내 선수들이 충분히 소화할 수 있다는 점과 에닝요의 한국 문화 적응 정도, 한국어 실력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한 결과 특별귀화 대상으로 추천하기 어렵다고 결론 내렸다. 지금까지 특별귀화로 한국 국적을 얻은 문태종과 문태영, 김한별은 한국인 피가 섞인 하프코리언이고 공상정은 화교 3세다. 대한체육회 관계자는 “에닝요 같은 순수 외국인 선수가 특별귀화를 통과한 전례가 없다”며 “경기력 강화 이유만으로 에닝요를 특별귀화시킬 경우 스포츠계 전반에 나쁜 선례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축구협회는 특별귀화 재심 청구

    Q 이웃나라 일본에서는 이미 여러 외국인 귀화선수가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뛰는데.

    A 그렇다. 일본은 1990년대 초반부터 귀화선수를 국가대표팀으로 발탁했다. 라모스 루이, 로페스 와그너, 알렉스, 다나카 툴리오가 대표적이다. 이들은 이미 10년 넘게 일본에 체류하면서 일본어는 물론 일본 문화에도 익숙해져 외모를 제외하면 일본인과 다름없다.

    Q 에닝요의 특별귀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축구협회가 비판받는 이유는 뭔가.

    “한국말도 못하는데…” vs “꼭 필요한 킬러”

    전북현대 공격수 에닝요.

    A 축구협회가 독단적으로 일을 추진했기 때문이다. 당초 축구협회는 대한체육회에 라돈치치와 에닝요 둘 다 특별귀화 대상으로 추천해줄 것을 신청했다. 그러나 대한체육회는 심사를 통해 한국말에 능하고 한국 문화도 잘 아는 라돈치치만 단독으로 추천하려 했다. 그런데 축구협회가 뒤늦게 라돈치치에게 결격사유가 있음을 알았다. 국제축구연맹(FIFA)은 무분별한 귀화를 방지하려고 ‘귀화한 선수는 18세 이후에 해당 영토에서 5년 이상 거주해야 국가대표 경기에 뛸 수 있다’고 규정했다. 라돈치치는 2007년 일본에 약 5개월간 임대된 적이 있어 특별귀화를 해도 올해 말까지는 국가대표 경기에 뛸 수가 없다. 축구협회는 라돈치치에 대한 특별귀화 추천 신청을 자진 철회했다. 어설픈 행정력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또한 대표 선수 선발에 관한 논의는 축구협회 기술위원회를 거치도록 돼 있다. 그러나 3월 초 축구협회가 라돈치치와 에닝요의 특별귀화를 추진키로 결정한 뒤 한 번도 기술위원회를 열지 않았다. 여론수렴 과정도 없었다. 한국 축구 역사상 외국인 선수가 귀화해 대표팀이 된 사례가 없는 만큼 많은 축구인과 팬의 의견을 충분히 들어보고 결정했어야 했다.

    Q 축구협회가 대한체육회에 재심 청구를 한다고 하던데.

    A 축구협회가 에닝요 특별귀화에 대한 의지를 굽히지 않는다. 축구협회는 대한체육회를 통하지 않고도 특별귀화 추천 방법이 있다며 단독 행동에 나서려고까지 했다. 그러나 여론이 안 좋은 데다 주무부서인 법무부마저 “체육선수가 대한체육회 추천서 없이 국적심의위원회에 회부되는 것은 곤란하다”며 “일단 대한체육회의 추천을 받아라”라고 권고하자 슬그머니 재심 청구로 돌아섰다.

    Q 재심 청구가 통과할 가능성이 있나.

    A 쉽지 않아 보인다. 축구협회가 재심을 청구하면서 어떤 사유를 들고 나올지 아직 알 수 없지만 그 전과 크게 달라진 점이 있으리라 보기 어렵다. 대한체육회 관계자는 “축구협회가 재심 요청을 하면 절차를 밟고 법제 상벌위원회를 다시 구성하는 등 일련의 과정을 다시 거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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