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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호 정치풍자소설

레임덕은 없다

10회 10월유신 ①

레임덕은 없다

2008년 10월 4일, 종교세 국민투표가 통과된 후유증이 아직 가시지도 않은 시간이다. 오전 9시 35분, 청와대 본관 앞에 멈춘 승용차에서 나오는 박근혜의 표정은 어둡다. 오늘도 이명박에게서 만나자는 연락이 왔기 때문이다. 요즘은 시도 때도 없이 전화하고, 전갈하고, 만나자 하는 통에 ‘이 양반이 나를 안식구로 생각하는 거 아냐?’ 하고 짜증이 났다가도 점점 연대감이 짙어지는 게 사실이다. 자주 만나는 이웃이 떨어져 사는 형제보다 낫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박근혜는 오늘 김무성과 정몽준, 임태희와 이한구를 데려왔다. 이것도 이명박이 지명해준 것이 아니다.

“상의할 일이 있으니 중진 서너 명만 같이 오십시오.”

하고 이명박이 어제 직접 전화를 해온 것이다. 그래서 대충 골랐는데 요즘은 친박이고 친이고 구분이 흐리멍덩하게 돼버렸다. 서너 달 전만 해도 공천 후유증으로 원수처럼 으르렁거렸지만, 요즘은 가끔 이재오가 왔다 갔다 해도 친박계는 눈썹이 모아지지 않는다. 박근혜 일행을 당장 대통령 집무실로 안내했는데 이것도 달라졌다. 예전에는 당 대표라 해도 목에 무슨 신입사원처럼 개줄에 사진이 박힌 이름표를 차게 하더니 이젠 그러지 않는다.

“어서 오십쇼.”

집무실 밖에서 기다리던 이명박이 웃음 띤 얼굴로 일행을 맞는다. 격의 없는 태도여서 박근혜는 물론 의원들의 표정은 밝아졌다. 집무실 원탁에는 회의 준비가 다 돼 있었고 청와대 측 참석자는 대통령실장과 정무, 민정수석뿐이다. 자리잡고 앉았을 때 먼저 이명박이 부드러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또 시작할 것이 있습니다.”

“아휴.”

한숨부터 쉰 박근혜가 머리까지 내젓는다.

“좀 천천히 하시지요.”

김무성과 이한구가 짧게 웃었지만 청와대 멤버들은 여전히 굳은 표정이다. 그때 심호흡을 한 이명박이 입을 열었다.

“개헌을 해야 합니다.”

그 순간 집무실 안이 조용해진 느낌이 들었으므로 정몽준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모두의 시선을 받은 이명박이 말을 잇는다.

“대통령 임기를 4년 중임으로 하는 개헌을 해야 현 단임체제의 비효율성과 여러 가지 폐단을 막을 수 있습니다.”

“대통령님.”

그렇게 불렀지만 박근혜는 다음 말을 잇지 못한다. 준비도 안 했을 뿐 아니라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조금 시간이 지나자 무럭무럭 화가 치밀어 올랐다. 이명박의 시선과 마주친 순간 4년 연임을 해먹으려고 지금까지 또 이용당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이명박이 말했다.

“지금부터 서둘러야 합니다. 그리고.”

심호흡을 한 이명박이 말을 계속한다.

“연임은 차기 대통령부터 하는 것으로 하십시다.”

# 다음 날 이 소식은 대번에 대한민국 전역으로 퍼졌다. 청와대나 세우리당에서 공식 발표만 안 했을 뿐 비공식으로 다 퍼뜨렸기 때문이다. 기자들이 붙잡고 물어보면 ‘노 코멘트’ ‘글쎄요, 그런 소문이…’ ‘나는 못 들었습니다’ ‘모르겠습니다’라고 답변할 뿐, ‘아닙니다’ ‘그럴 리 없습니다’ 따위의 부정적인 말은 어느 입에서도 흘러나오지 않았기에 사실로 굳어진 것이다. 정식으로 발표하는 것보다 이렇게 ‘모호’한 긍정이 충격을 줄이고, 가랑비에 옷 젖는 것처럼 상황에 익숙해지도록 만드는 것이다.

“이건 전 당력을 기울여 결사투쟁해야 할 일입니다.”

민주당 의원 천정배가 눈을 부릅뜨고 말했다. 요즘 야당 측은 연타를 허용한 복서처럼 지쳐 있다. 그래서 천정배의 말하는 모습이 더욱 처절하게 보인다.

“독재정권을 연장하면 대한민국 민주주의는 다 죽습니다. 이건 범야권이 연대해서 목숨을 걸고 저지해야 합니다.”

소파에 둘러앉은 추미애와 박영선은 물론, 김진표와 박주선까지 머리를 끄덕였다. 이의가 없는 것이다.

레임덕은 없다
# 그 시간에 이명박은 청와대 집무실에서 측근들과 둘러앉아 있다. 오늘은 지난 총선에서 낙선한 이재오도 끼었다. 광우병 난동사태가 절정에 이르렀을 때 청와대와 여권은 벼랑 끝에 몰린 분위기였다. 언론과 반정부세력이 연대한 선전선동 기술은 마치 전 국민이 궐기한 것처럼 느끼기에 충분했다.

그런데 그 절정의 순간에 분위기가 반전됐다. 그러고는 계속해서 주도권을 잡아나가는 중이다. 반정부세력은 업어치기, 되치기, 메치기로 계속 당하는 바람에 만신창이가 됐다. 이것이 모두 이명박 개인의 공이었다. 자, 이번에는 개헌, 대통령 연임제 개헌인 것이다. 그리고 이 여세를 몰아가면 가능성이 충분하다. 둘러앉은 측근들의 얼굴엔 생기가 넘쳤고 눈은 번들거린다. 그때 이명박이 말했다.

“세우리당은 박 위원장 책임하에 일사불란하게 입법을 추진할 겁니다. 따라서 여러분은 대국민 홍보, 야권의 설득과 협조를 얻는 데 최선을 다해주기 바랍니다.”

“그것 참.”

이명박이 말을 잠깐 그쳤을 때 입맛을 다신 이재오가 끼어들었다.

“이번 임기부터 시작하면 대통령께서는 통일까지 이루실 수도 있을 텐데요.”

그 순간 10여 명의 배석자가 모두 긴장했다. 농담이지만 진담이기도 하다. 농담으로 받아들여 웃었다가는 큰 실수가 될 수도 있고, 진담으로 듣는다면 분위기가 너무 무겁다. 이재오가 경망한 인품이 아니어서 더욱 민망하다. 그때 이명박이 말을 받는다. 웃음 띤 얼굴이다.

“진인사대천명이라고 했습니다. 우리 목표는 연임 개헌이고 정권 재창출입니다. 난 욕심을 버렸습니다.”

그러고는 헛기침을 하더니 다시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느덧 정색하고 있다.

“연임 개헌 전에 나 대신 여러분이 서둘러줘야 할 것이 있어요.”

이명박의 시선이 수석들의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다.

“대통령의 권위는 스스로 세워야 옳습니다. 하지만 요즘 트위터나 인터넷에서 대통령에 대한 인신공격이 도가 지나칩니다. 유언비어, 음해, 욕설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 즉시 시행하도록 손을 써주시기 바랍니다.”

그러고는 잇새로 말을 맺는다.

“그래요. 너무 풀어줬어요. 이제 혼이 나야 해요.”

# “씨발놈들, 저희들이 언제부터 우리 생각했다고 그래?”

하고 이광재가 말했다. 인사동에 있는 한 한정식집 안이다. 안쪽 밀실에는 이광재와 이른바 친노그룹의 핵심인사들이 모여 있었지만 모두 백수다. 소주잔을 든 이광재가 불콰한 얼굴로 그들을 보았다.

“폐족 취급을 하더니만, 우리 대통령이 이명박하고 화해를 하니까 이젠 배신했다고? 저희 기준에 맞춰 충신이 되고 역적이 된단 말인가?”

“화해가 아니죠.”

봉하마을에서 상경한 김경수가 거들었다.

“이명박이 우리 대통령께 협조를 부탁한 것입니다. 국가를 위해 대통령께서 협조해주신 것이고요.”

“어쨌든 난 연임 개헌 찬성이야.”

이광재가 자르듯 말했으므로 방 안이 조용해졌다. 오늘 밤 안으로 이 소식은 아직도 결속력이 강한 노무현 세력의 방침으로 굳어질 것이었다. 이광재가 노무현과의 교감 없이 이런 결정을 했을 리 없기 때문이다.

# 그런데 그들이 앉아 있는 한정식집에서 직선거리로 50m밖에 떨어지지 않은 또 다른 한정식집 방 안에 이재오가 앉아 있다. 교자상 주위에 둘러앉은 면면(面面)을 보면 홍준표, 남경필, 임태희, 원희룡, 정두언 등 신진, 개혁파가 어우러진 세우리당 의원들이다. 이재오가 가지런한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연임 개헌과 함께 굵직한 것 하나 더 끼워 넣읍시다.”

상에는 빈 소주병이 다섯 개나 놓였다. 이만큼 마실 때까지 뜸을 들였다는 증거다. 모두의 시선을 받은 이재오가 말을 이었다.

“현행 교육감 제도를 직선제가 아닌 대통령 임명제로 하는 겁니다. 대통령이 교육부 장관과 함께 각 도 교육감을 임명하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게 대통령님의 의지십니다. 한반도의 특성상 이념이 다른 교육감이 학생들의 국가관을 왜곡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통령 직선제 국가에서 국민이 대통령을 선출했다면 그 대통령이 학생들의 교육 방향을 결정해야 하는 겁니다.”

이재오의 열변이 끝났으나 모두 눈만 끔벅일 뿐 입을 열지 않는다. 이것도 대통령 연임제만큼이나 엄청난 사건이다. 야권은 물론 시민단체, 지금은 거대 정부비판 세력으로 성장한 전교조의 결사적인 반대투쟁에 직면할 것이다. 이제는 이재오가 정색하고 말한다.

“대통령이 그러십디다. 편하게 누리려고 대통령 되지 않았다고. 국민이 540만 표라는 엄청난 표차로 당선시켜준 건 바로 이런 잘못된 법을 고치라는 뜻으로 받아들인다고.”

# 헬기 로터의 회전으로 먼지가 회오리를 일으키고 있다. 이명박이 다가가자 밀짚모자를 손에 쥐고 있던 노무현이 빙그레 웃었다. 10월 초순이지만 햇살이 제법 뜨거운 오후였다.

“또 무슨 일입니까?”

대뜸 노무현이 묻는 바람에 이명박 뒤를 따르던 정무수석 박재완의 얼굴이 쓴웃음으로 일그러졌다. 노무현은 전(前) 비서실장 문재인과 홍보수석 윤승용을 대동하고 마중 나왔지만 짜증난 것 같지는 않다. 언론사에 알리지 않았는데 재빠르게 탐지한 몇몇 언론사가 사진을 찍어댔다. 하지만 두 전·현직 대통령은 포즈를 취해주지 않았다. 그들은 곧장 봉하마을 안쪽의 노무현 사저로 들어간다.

“어서 오세요.”

현관에서 기다리던 권양숙이 웃음 띤 얼굴로 이들을 맞는다. 이명박이 활짝 웃으며 인사를 건넨다.

“어이구, 번거롭게 해드립니다.”

“아녜요. 적적했는데 잘 오셨어요.”

권양숙이 대답하자 노무현이 서둘러 말을 막는다.

“어허, 그러면 자주 오시잖아. 오실 때마다 내가 당하는 거 당신도 알면서 왜 그러는 거야?”

“참, 그러네요.”

하고 권양숙이 말을 받자 이명박이 소리 내어 웃는다.

“아따, 왜들 이러십니까? 좀 도와주십쇼.”

“글쎄, 이런 수에 내가 말려든다니까.”

하면서 노무현이 안내한 방은 1층 응접실 옆에 있는 회의실이다. 장방형 테이블에는 이미 음료수가 놓였고 회의 준비까지 갖춰져 있다. 테이블에는 전·현직 대통령 둘을 중심으로 양쪽에 측근이 셋씩 앉았다. 이명박 측은 박재완과 이종찬, 이동관이, 노무현 측은 문재인, 윤승용, 김경수가 참석했다. 오전 10시 반, 창밖으로 보이는 하늘은 맑고 푸르다. 먼저 입을 연 사람은 노무현이다.

“아니, 연임 개헌에다 교육감을 임명제로 개헌한다는 소문이 있던데, 맞습니까?”

“예, 맞습니다.”

바로 대답한 이명박이 지그시 미소를 지었다.

“민주당은 이것이 1972년 10월유신하고 똑같다면서 반정부 투쟁에 들어설 작정이더만요.”

“아, 당연하죠.”

정색한 노무현이 이명박을 쏘아보았다.

“연임은 그렇다 치고 교육감 임명제는 애써 이룩한 민주화 토대를 허무는 행태나 같습니다.”

“학생들이 반(反)정부, 반(反)대한민국주의자인 일부 교사들에게서 교육을 받고 종북, 친북 투쟁가로 양성됩니다. 이것을 제도적으로 보호해주는 것이 좌파 교육감 체제하의 현실입니다.”

호흡을 가눈 이명박도 노무현을 정면으로 보았다.

“국민이 저를 선택한 이상 교육도 제자리를 찾아야겠습니다. 대통령은 국군과 학생, 이 두 집단에게만은 국가관과 애국심을 철저히 주입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고 믿습니다.”

“그건 민주주의가 아니지요. 독재입니다.”

단호한 표정으로 말한 노무현이 의자에 등을 붙였다.

“국민이 선거로 선택한 교육감입니다. 지금 이 대통령께서 하시는 일은 1972년 박정희의 10월유신하고 똑같습니다.”

“10월유신도 국민투표로 채택되었지요.”

이명박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리자 노무현의 표정은 더욱 굳어졌다. 그는 이명박에게 시선을 준 채 묻는다.

“또 국민투표를 하시려고요?”

“국회에서 개헌해주는 것이 제 바람입니다.”

“저는 도와드릴 수 없을 것 같네요.”

그러자 이명박이 길게 숨을 뱉고 나서 묻는다.

“제가 또 들러도 되겠습니까?”

“어이구.”

이맛살을 찌푸린 노무현이 신음부터 뱉었다가, 곧 입맛을 다시고 나서 대답했다.

“아, 오시는 거야 막을 순 없지만 그런 말씀은 더 듣고 싶지 않습니다.”

# 대통령 전용 헬기가 산마루 너머로 사라졌을 때 노무현이 머리를 돌려 문재인을 보았다.

“국민투표 하면 통과될까?”

“될 겁니다.”

문재인이 한숨을 뱉고 나서 말을 잇는다.

“지지도가 엄청 높거든요.”

“얼마야?”

노무현이 묻자 문재인은 옆에 서 있는 윤승용에게 시선을 옮겼다. 그러자 윤승용이 대답했다.

“어제 3개 여론조사기관 평균으로 89% 나왔습니다.”

“그걸 알고 저렇게 날뛰는군.”

노무현이 혼잣소리처럼 한 말을 윤승용이 받는다.

“이곳에 다녀갔다는 것을 곧 대대적으로 홍보할 것입니다. 대통령님께 협조를 구했다는 제스처로 전의를 깎으려는 의도입니다.”

“도대체 이명박 씨를 누가 저렇게 만든 거야? 이재오인가? 아니면….”

문재인과 윤승용은 서로의 얼굴만 바라보았고, 사택으로 발을 떼면서 노무현이 말을 이었다.

“몇 달 전만 해도 저 사람, 손에 물 묻히기 싫어하는 것으로 소문났던 인간이야. 생색이나 내려 했지. 정치는 더럽고 귀찮고 체면이나 구기니까 가까이 가지 않으려 하는 게 뻔히 보였는데, 이젠….”

말을 그친 노무현이 묵묵히 발을 떼었다. 그 뒷말을 문재인과 윤승용은 똑같이 이을 수 있었다. 이젠 아예 국회에 가서 살고 있는 것이다. 민주당 측이 비꼬아서 이명박을 삼청동 의원이라고 부를 정도가 되었다. 그러니 세우리당 의원이 분발하지 않을 수 없다. 세우리당 의원 누구는 이명박을 삼청동 시어머니라고 불렀다가 박근혜한테 혼났다는 소문도 있다.

레임덕은 없다
# 2008년 10월 13일, 오후 5시. 청와대의 대통령 집무실로 민정수석 이종찬이 들어선다. 이종찬은 손에 서류 파일을 들었는데 굳은 표정이다. 이명박이 앉아 있는 책상으로 잠자코 다가선 이종찬이 파일을 내밀었다. 그러고는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모두 조사했습니다.”

이명박은 잠자코 파일을 펼쳤다. 파일에는 이른바 이명박의 최측근에 대한 신상자료가 들어 있다. 이명박이 자료를 읽는 동안 이종찬은 침묵을 지켰으므로 방 안에는 서류 넘기는 소리만 났다. 이윽고 이명박이 머리를 들었을 때는 10분이나 지난 뒤였다. 이종찬은 이명박의 눈이 조금 충혈된 것을 보았다. 안경알 때문에 더 번들거린다. 이종찬의 시선을 받은 이명박이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본인의 해명을 들을 상황이 아닌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시오?”

“예, 그것이.”

당황한 이종찬의 얼굴이 굳어졌다. 이명박은 이미 공직에 임명된 측근들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자료에 시선을 내린 이명박이 잇새로 말했지만 이종찬은 다 들었다.

“그렇지. ‘삼국지’에 제갈공명이 울며 마속을 벤다는 말이 있었지.”

“….”

“내가 인간 이명박이가 아니라 대한민국 대통령 이명박으로 생각하고 결정해야 할 일이지.”

이명박의 시선이 이종찬에게로 옮겨졌지만 초점이 멀다. 시선이 이종찬의 얼굴을 뚫고 나가 뒤쪽 벽으로 간다. 다시 이명박의 억양 없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설령 내가 외롭고 무섭더라도 견뎌야겠어. 그렇지. 죽을 각오를 하면 되겠다.”

이명박의 시선에 초점이 잡혔다. 그것을 본 이종찬의 몸이 굳어졌다. 그때 이명박이 말했다.

“민정수석실에서 조사한 자료라고 발표하고 바로 검찰에 고발하도록. 그리고 전 수사력을 동원해 이른 시일 안에 조사를 끝내도록.”

그러고는 이명박이 길게 숨을 뱉는다.

“나도 의혹이 있다면 처벌을 받아야지.”

“알겠습니다.”

이종찬이 겨우 대답했다. 이명박이 곧바로 서류에 서명한 뒤 이종찬에게 넘겨주었다. 서류에는 당장 업무가 정지되고 검찰 조사를 받을 최측근 명단이 적혀 있다. 3월에 어렵게 임명된 방송통신위원장 최시중의 이름도 있고, 지금은 보궐선거를 준비하는 박영준에다 선거대책위원회 후보메시지팀장으로 활약해 신임을 받은 신재민, 그리고 이명박의 친구인 천신일도 끼어 있다. 파일을 두 손으로 받은 이종찬이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정치권에 엄청난 충격이 올 것입니다, 대통령님.”

“측근 비리로 임기 5년차에 식물대통령이 되는 것보다는 낫지.”

잇새로 말한 이명박이 똑바로 이종찬을 보았다.

“이런 측근들과 함께 10월유신을 치를 수도 없고 말이야.”

이원호

레임덕은 없다
1947년 전북 전주에서 태어나 전주고, 전북대를 졸업했다. (주)백양에서 중동과 아프리카 지역 무역 일을 했고, (주)경세무역을 설립해 직접 경영했다. 1992년 ‘황제의 꿈’과 ‘밤의 대통령’이 100만 부 이상 팔리며 최고의 대중문학 작가로 떠올랐다. 간결하고 힘 있는 문체, 스케일이 큰 구성, 속도감 넘치는 전개는 그의 소설에서만 볼 수 있는 매력이다. 기업, 협객, 정치, 역사, 연애 등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며 지금까지 50여 편의 소설을 냈으며 1000만 부 이상의 판매고를 기록했다. 주요 작품으로 ‘할증인간’ ‘바람의 칼’ ‘강한 여자’ ‘보스’ ‘무법자’ ‘프로페셔널’ ‘황제의 꿈’ ‘밤의 대통령’ ‘강안남자’ ‘2014’ 등이 있다.




주간동아 837호 (p5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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