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90

2017.05.31

김승용의 俗 담은 우리말

잘 꾸며도 격 못 갖추면 비웃음거리

‘개 발에 편자’

  • ‘우리말 절대지식’ 저자 aristopica@gmail.com

    입력2017-05-30 16:3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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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옷차림이나 지니고 있는 물건 등이 격에 어울리지 않을 때를 일컫는 속담이 있습니다. ‘개 발에 편자’입니다. 말처럼 귀하고 비싼 동물의 발굽을 보호하려고 다는 편자를 ‘하찮은’ 개 발바닥에 달아준다는 것이지요. 여기서 말은 그것을 타고 다니는 이의 신분, 즉 양반을 뜻하고 개는 평민을 가리킵니다. 돈 많은 평민이 고매한 양반 행세를 하느라 비싼 옷으로 휘감고 헛기침하며 다니는 것을 조롱하려고 만든 표현이라 생각됩니다.

    격에 맞지 않는 차림이나 행동을 하는 것을 뜻하는 속담으로는 이 밖에도 ‘가게 기둥에 주련(柱聯)’ ‘돼지우리에 주석 자물쇠’ ‘개 대가리에 옥관자(玉貫子)’ 등 여러 개가 있습니다.

    주련은 인생이나 풍취를 읊은 시구 등을 나무패에 나눠 적은 뒤 궁궐 또는 양반가의 기둥에 연이어 다는 것을 뜻합니다. 판잣집 같던 조선시대의 허름한 가게 기둥에는 어울리지 않는 물건이지요. 그럼에도 돈 좀 벌었다고, 행세 좀 해보겠다고 자기가 운영하는 가게 기둥마다 주련을 단다면 어찌 실소가 나오지 않겠습니까.

    주석은 값비싼 장신구를 만들 때 사용하던 재료입니다. 그것으로 된 고급 자물쇠를 한낱 돼지우리를 채우는 데 사용하는 것도 ‘돈이 남아돌아 유별난 짓을 하는구나’라는 비아냥거림을 살 만하지요. 요즘 졸부가 돈으로 칠갑을 하고 품위는커녕 값싸고 비웃음 살 만한 행동을 하고 다녀 타인의 눈살을 찌푸리게 할 때처럼 말입니다.

    마지막으로 관자는 망건을 고정할 당줄을 꿰려고 다는 것입니다. 가난하거나 지체가 낮으면 골(뼈)관자, 사대부는 옥관자, 왕가는 금관자를 달았습니다. 그러니 옥관자를 하고 다니는 사대부가 시정잡배 같은 행동을 한다면 그저 옥관자를 단 ‘개’로 보였을 것입니다. 이처럼 옷차림이나 지닌 물건이 어울리지 않는다는 건 그 사람이 차림이나 물건만 한 격을 갖추지 못했음을 의미합니다.



    또 이런 속담도 있습니다. ‘되지 못한 풍잠(風簪)이 갓 밖에 어른거린다.’ 풍잠은 망건 앞 위쪽에 다는 대략 4cm 크기의 장신구입니다. 호박(琥珀)이나 마노(瑪瑙) 같은 귀한 보석으로 만들었습니다. 갓은 뒤로 약간 기울여 쓰기 때문에 맞바람이 불면 훌렁 넘어가버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망건에 풍잠을 달아 갓모 안에 넣으면 갓이 뒤로 넘어가지 않게 되지요.

    풍잠은 신분에 상관없이 돈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할 수 있었고, 이것만 봐도 그 사람이 얼마나 부유하고 잘나가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풍잠에 왜 ‘되지 못하다’라는 표현으로 인격을 부여했을까요. 여기서 되지 못함은 그 풍잠을 단 사람을 가리키는 것임을 눈치챘을 것입니다.

    ‘되지 못하다’는 두 가지 뜻을 가집니다(속담은 중의적 표현을 좋아합니다). 하나는 온전하거나 제대로 된 상태가 아니라는 ‘못 되다’의 의미이고, 또 다른 하나는 성격이나 품행이 고약하고 좋지 않다는 뜻이지요. 풍잠이 너무 작으면 수시로 갓모 밑으로 흘러 떨어질 것이라고 하면서, 어떤 사람은 이 비싼 풍잠을 어떻게든 다른 사람에게 자랑하고 싶어 일부러 갓모 밖으로 내놓고 다녔나 봅니다. 고급 외제차, 명품 시계, 명품 백을 과시하고 싶어 ‘셀카’를 찍는 척하면서 슬쩍 그것이 사진에 나오게 하는 수법처럼 말입니다.

    향 싼 종이에서 향내 나고 생선 싼 종이에서 비린내 난다고 합니다. 나를 다시 돌아다봅니다. 나 또한 남에게 인정받고 싶어 향수 뿌린 생선을 포장하고 다닌, 속담 속 주인공은 아니었을까 하고 말입니다.

    김승용은 국어학과 고전문학을 즐기며, 특히 전통문화 탐구와 그 가치의 현대적 재발견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 속담이 우리 언어문화 속에서 더욱 살찌고 자랄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하고자 10년간 자료 수집과 집필 끝에 2016년 ‘우리말 절대지식’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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