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30

2012.03.26

‘박근혜 왕국’ 만들기 돌려막고 친박 챙기고

새누리당, 기득권 인사 배치 개혁과는 거리 멀어

  • 김창권 한길리서치 대표

    입력2012-03-26 09: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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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 왕국’ 만들기 돌려막고 친박 챙기고

    3월 6일 새누리당 당사 앞에서 대구 중남구 배영식 의원 지지자들이 공천 탈락에 항의하는 집회를 열었다.

    4·11 총선이 얼마 남지 않은 가운데 3월 20일 공직후보자추천(이하 공천)을 마무리한 새누리당이 심한 후유증을 앓고 있다. 이명박(MB) 정부 인사를 대거 공천해 정권 심판론을 자초하고,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이 대선을 의식해 ‘친박(친박근혜)’ 성향의 인사 챙기기에 급급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그런가 하면 당초 공천 신청을 한 지역구가 있음에도 전혀 다른 곳에 공천한 이른바 ‘돌려막기’ 공천에 대해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이번 새누리당 공천은 얼핏 민주통합당에 비해 시스템 공천 원칙을 잘 지킨 듯 보이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간 누차 강조해온 개혁공천과는 거리가 멀다. 물갈이 공천을 빌미로 현역을 밀어낸 자리에 사회지도층 인사를 대거 배치함으로써 기득권 대변 정당의 면모를 다시 한번 확인시켰다. 시민·민주화운동 출신이나 노동자, 농민은 요식적으로 배치하는 수준에 그쳤다. 여성 공천도 당초 목표치인 30%에 턱없이 못 미쳤다.

    당 안팎에서 ‘사천’ ‘부실공천’ 비판이 이는 가운데, 김종인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은 한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공천된 사람의 면모로 봤을 때 정권 심판론에 어쩔 수 없이 끌려가게 될 것”이라고 자조적으로 말했다. 종로구와 함께 서울 ‘정치 1번지’로 꼽는 중구에 정진석 전 대통령 정무수석을 공천한 것이나, 부산 연제에 김희정 전 청와대 대변인을 공천한 것은 결과적으로 야당에게 MB정부 심판론을 제기할 근거를 만들어준 셈이다.

    대구에선 아무라도 된다?

    새누리당에 상징적 의미가 큰 서울 강남권 공천에 대해서도 뒷말이 많다. 막판에 김종훈 전 통상교섭본부장을 강남을에 투입한 것은 야당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론을 제기하는 상황에서 긁어 부스럼 만드는 꼴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이상돈 비상대책위원도 “농촌이 한미 FTA로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한미 FTA 자체도 분명한 명암이 있는데, 굳이 맞대응할 필요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4대강 사업과 관련한 인사를 대거 공천한 점도 비판 대상이다. 4대강 살리기 추진본부 사업본부장을 지낸 김희국 전 국토해양부 제2차관과 4대강 사업 관련 예산 증액 편성을 주도한 류성걸 전 기획재정부 제2차관이 각각 대구 중·남구와 동구에 공천받았다. 새누리당의 텃밭인 대구에서는 아무나 공천만 받으면 당선된다고 보는 오만에 가까운 행태라는 비판이 인다. 더욱이 김 전 차관은 당초 자신의 고향인 경북 군위·의송·청송에 공천을 신청했다가 여론조사 경선에서 낙천한 바 있다.

    새누리당의 돌려막기 공천에 수혜를 입은 대표적 인사는 배은희 비례대표 의원이다. “용산에서 30년을 산 용산의 딸”을 자처했으나 정작 공천을 받은 곳은 경기 수원을이다. 30년 용산의 딸이 하루아침에 수원의 딸이 된 셈이다. 서울 강남을에 공천을 신청한 허준영 전 경찰청장을 노원병에 전략공천하고, 강동에 출사표를 던진 노철래 의원을 아무 연고도 없는 경기 광주에 밀어 넣은 것도 돌려막기 공천이라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노 의원의 선거운동 홈페이지에는 아직도 ‘강동을 위해 일하겠다’는 약속과 ‘광주를 위해 뛰겠다’는 다짐이 섞여 있다. 지역 유권자로선 결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진 셈이다.

    이 밖에도 돌려막기 공천이라는 비난을 받는 후보자는 더 있다. 송영선 의원은 고향인 대구 달서을에 출마 의지를 밝혔으나 결국 경기 남양주갑에 공천을 받았다. 손숙미 의원은 정의화 국회부의장의 지역구인 부산 중·동구에 공천 신청을 냈다가 이사철 의원을 밀어내고 경기 부천 원미을에 공천을 받았다. 정옥임 의원은 당초 서울 양천갑에 신청했지만 강동을에 공천받았고, 고희선 전 의원도 경기 수원 영통에 신청했으나 화성갑에 공천을 받았다.

    ‘친박’ 특혜 논란이 있는 지역도 부지기수다. 먼저 친박계 좌장으로 불리는 6선의 홍사덕 의원을 서울 종로에 전략공천한 것은 승패를 떠나 여러 설이 나돈다. 그리고 서울 동작갑의 서장은 전 서울시 정무부시장, 제주 제주갑의 5선 중진인 현경대 전 의원, 경북 경주시의 정수성 의원, 인천 남구을의 서용교 중앙당 수석 부대변인, 대구 달성군의 이종진 전 경북 달성군수, 여론조사에서 수위를 차지한 유정현 의원을 따돌리고 서울 중량갑 공천장을 따낸 김정 의원이 대표적 예다. 2006년 한나라당 수해지역 골프사건의 주역이며 학교공금 횡령 의혹을 받았던 홍문종 경민대 이사장이 경기 의정부을에 공천받은 것도 친박 특혜라는 비판이 있다. 아무 연고도 없는 서울 송파병에 공천받은 김을동 의원도 마찬가지다.

    새누리당이 성추문에 지나치게 관대한 것 아니냐는 비판도 있다. 유재중(부산 수영구) 후보와 서울의 K 후보, 충북의 J 후보는 성추문으로 곤욕을 치르고 있다. 한 여성이 국회에 나타나 유 후보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어왔다고 폭로했는가 하면, 새누리당 홈페이지에는 K 후보가 2005년 당 여성위원을 성희롱했다는 내용의 제보가 올라왔다. K 후보 지역구에서는 여성단체 회원들이 그의 공천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한 인터넷 블로그에는 J 후보가 2007년 제주에서 경제 관련 단체 회원으로부터 골프접대를 받은 뒤 성상납도 받았다는 내용의 글이 올라왔다. 이 같은 의혹 제기에 후보들은 모두 “근거 없는 허위사실”이라고 일축했지만 이를 보는 유권자들은 탐탁지 않다.

    “입으로만 경제 민주화”

    ‘박근혜 왕국’ 만들기 돌려막고 친박 챙기고

    3월 4일 새누리당 당사 앞에서 부산지역 여성단체 회원들이 유재중 의원의 성추문 의혹을 제기하며 그를 공천에서 배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낙하산 인사로 분류되는 서울 강남갑의 심윤조 전 외교통상부 차관보, 서초갑의 김회선 전 국정원 2차장, 송파갑의 박인순 아산병원 소아과 의사도 지역에서는 의외라는 반응이다. 27세의 부산 사상 손수조 후보와 경기 안산 상록갑의 박선희 후보에 대해서도 뒷말이 무성하다. 손 후보는 한때 자신의 선거사무실에 ‘무궁화 박근혜’ 사진을 걸어놓는 등 진중하지 못하다는 평가도 나온다. 경기 안산 상록갑은 근로자가 많은 지역구임에도 노동계 출신인 이화수 현역의원을 밀어내고 32세 신예인 박선희 전 안산시의원을 공천함으로써 4개 지역구가 있는 ‘안산벨트’의 선거구도가 망가져버렸다고 지역 정가는 분석한다.

    경제 민주화나 중도노선 정책을 입안할 후보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점도 문제다. 그나마 중소기업과 근로자 보호, 경제 민주화에 목소리를 높였던 정태근(서울 성북갑), 김성식(서울 관악갑) 의원은 이미 탈당해 무소속으로 출마한 상태다. 반면 합리적 보수층에서도 비토하는 극우 성향 인사는 공천자 명단에 버젓이 이름을 올렸다. 부산 해운대 기장을의 하태경 열린북한방송 대표와 서울 은평갑의 최홍재 전 시대정신 이사가 대표적이다. 친박계 유승민 의원마저 “입으로는 경제 민주화를 외치면서 이에 역행하는 인사를 공천했다”며 “과연 국민이 새누리당의 개혁 의지를 믿을 수 있겠느냐”고 하소연했다.

    비례대표 공천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도 만만찮다. 비례대표 15번을 받았다가 취소된 이봉화 전 보건복지부 차관은 2008년 쌀 소득 보전직접지불금 불법신청 논란 끝에 공직에서 사퇴한 전력이 있다. 비례대표 10번을 받은 이만우 고려대 교수는 ‘MB노믹스’를 입안하는 등 새누리당의 새 노선에 부합치 않는다는 지적을 받는다. 비례대표 6번을 받은 주영순 목포상공회의소 회장에 대해서도 노무현 정권 당시 열린우리당에 입당해 재정적으로 후원한 점을 지적하는 사람이 있다.

    최근 새누리당이 지지도에서 민주통합당을 앞서자 자만에 빠진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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