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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M 인터뷰

“이젠 긍정만 보고 다양한 배역에 도전할래요”

‘그 사건’ 이후 꼭 10년 황수정

  • 김명희 여성동아 기자 jhkoo@donga.com

“이젠 긍정만 보고 다양한 배역에 도전할래요”

“이젠 긍정만 보고 다양한 배역에 도전할래요”
2001년 11월, 마약사건에 연루돼 주홍글씨를 새기고 살아온 황수정(40)이 KBS 2TV 드라마 스페셜 ‘아들을 위하여’로 다시 대중 앞에 섰다. 인터넷에서 ‘황수정’이라는 이름을 검색하면 아직도 마약, 최음제 같은 단어가 줄줄이 따라 나온다. 그보다 더 질긴 건 사람들의 기억이다.

그래서 황수정이 그때 그 사건을 뒤로하고 돌아오기까지는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한동안은 방송 출연금지 조치로 발이 묶였고, 2007년 SBS 드라마 ‘소금인형’으로 컴백했지만 시청률 면에서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다. 대중의 싸늘한 시선에 움츠러들었던 그는 2010년 영화 ‘여의도’ 제작발표회 참석을 돌연 취소하는 등 소극적인 행보를 이어왔다. ‘사이’(2009),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풍’(2010) 등 독립영화에도 출연했지만 이를 아는 사람은 드물다. 그도 “그동안 연기를 쉰 건 아닌데 잘 모르는 것 같다”며 멋쩍게 웃었다.

2011년 12월 한 달간 방송된 4부작 드라마 ‘아들을 위하여’는 남파 여간첩 이야기다. 황수정이 맡은 지숙은 북한의 평범하지만 단란한 가정에 사는 주부. 하지만 남편(장현성 분)이 북파 공작원 신분을 속인 채 북에서 활동하다 남쪽으로 내려간 후 인생이 송두리째 망가진다. 북한 당국은 아들을 인질로 삼고 지숙을 남으로 내려 보내 남편을 회유해올 것을 명령한다. 정점의 순간 나락으로 곤두박질친 지숙의 굴곡진 삶에 평탄치 못했던 황수정의 지난 세월이 오버랩된다.

1994년 데뷔한 황수정은 드라마 ‘허준’의 ‘예진 아씨’로 스타덤에 오르며 승승장구했다. 당시 그는 청순 단아한 이미지의 대명사였고, 각종 설문조사에서 선호하는 신붓감, 며느릿감 1위로 뽑히곤 했다. 하지만 연기자로서 정점을 찍을 무렵 불미스러운 사건에 연루돼 몰락하고 말았다. 그 사건 이후 황수정은 감옥 아닌 감옥에 자신을 가두고 세상과의 접촉을 피한 채 은둔의 삶을 살아야 했다.

모처럼 딸 노릇하며 속죄했던 시간



드라마 방송 직전 만난 황수정은 웃을 때마다 잡히는 눈가 주름에서 나이를 가늠할 수 있었지만 예전의 단아한 얼굴은 그대로였다. 목까지 꼭꼭 단추를 채워 입은 블라우스 때문에 더 그래 보였다. 미모가 여전하다고 하자 황수정은 “그냥 인사로 듣겠다”며 웃었다.

“세월 앞에 장사 없어요. 저도 주름살이 늘고, 피부 탄력도 예전만 못하거든요. 그나마 나이에 비해 어려 보인다면 욕심 부리지 않고 세월을 받아들이면서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았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폭풍 같은 소용돌이의 중심에 서 있던 사람의 대답치곤 담담했다. 공백기를 그는 어떻게 보냈을까. 자신이 망가지는 것이야 어쩔 수 없었다 해도 부모에게 큰 불효를 저질렀다는 생각에 고통스러운 나날이었다고 한다. 그의 부친은 사건 당시부터 황수정이 방송 출연정지를 당했을 때는 물론 그 이후에도 언론으로부터 집중 포화를 받는 딸을 지켜내기 위해 백방으로 뛰었다. 언젠가 황수정은 그런 아버지에 대해 “연세에 비해 꽤 젊고 잘생기셨는데, 한순간에 폭삭 늙어버리신 것 같다. 그 일 이후 지금까지 내게 아무것도 묻지 않고 화 한 번 안 내셨다. 그래서 더 마음이 아프다”고 토로한 바 있다. 그래서 지난 10년은 그동안 못했던 딸 노릇을 하며 속죄하기에도 벅찬 시간이었다.

“집안일도 도와드리고, 어머니와 시장도 함께 다니고…, 연예계 생활을 하면서 부모님과 보낸 시간이 많지 않았는데, 쉬면서 모처럼 딸 노릇을 할 수 있었어요. 아직도 많이 부족하지만요.”

그래도 가장 즐겁고 신이 나는 건 역시 촬영 현장에 있을 때다. 배우와 스태프가 정신없이 움직이고, 밤샘 촬영에 새우잠을 자면서 도시락으로 끼니를 때워도 현장에 있을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했다. 이런 일을 할 수 없게 됐을 때야 비로소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는 게 얼마나 행복한지 깨달았다는 그는 누구보다 대본을 철저히 외우고 촬영 준비도 꼼꼼히 했다고. 드라마에 함께 출연한 최수종은 황수정에 대해 “실수하지 않으려고 너무 완벽하게 준비하는 게 장점이자 단점”이라고 말했다.

“이젠 긍정만 보고 다양한 배역에 도전할래요”

황수정의 다양한 면모를 엿볼 수 있었던 영화 ‘여의도’. 황수정은 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연기에 대한 열정만은 잃지 않았다.

황수정은 이번 드라마 출연을 계기로 방송 활동을 본격적으로 하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기존의 참한 이미지의 배역 외에 다양한 모습도 선보이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동안의 이미지를 깨는 게 가장 큰 숙제예요. 드라마에서는 주로 단아한 역을 맡았지만 평상시에는 더 밝아요. 잘 웃고, 수다 떠는 것을 좋아하고, 성격도 털털해요. 그런데 배역을 연기하다 보면 그 성격을 닮아가더라고요. 앞으론 좀 더 다양한 모습에 도전해보고 싶어요.”

그는 5년 전 드라마 ‘소금인형’에 출연할 때 한 인터뷰에서 자신의 과거를 묻는 질문에 “나는 인간이고 직업이 연기자일 뿐이지, 매체의 소모품이 아니다”라고 대답한 적이 있다. 배우로서가 아닌 자신의 사생활이나 과거에 지나치게 초점이 맞춰지는 게 부담스럽다는 항변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에는 과거에 대한 반성이 부족한 게 아니냐는 지탄도 받았다. 지금 그의 생각은 어떨까.

“이젠 긍정만 보고 다양한 배역에 도전할래요”
“아시다시피 제가 큰일을 겪으면서 많은 이야기가 쏟아져 나왔는데, 그중에는 진실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것들도 있었어요. 제가 연예인이기 때문에 더 부각되고 부풀려진 것 같아요. 그런 점에서 상처를 많이 받아 제 직업인 연기 외 부분에 관해서는 말씀드리지 않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했고, 그 생각에는 지금도 변함없어요. 누구나 처지를 바꿔 생각하면 다 똑같을 거예요. 자신의 삶, 인생이 너무 왜곡되거나 확대 해석되면 힘들게 마련이잖아요. 다만 그때와 다른 건 그때는 일적으로 부담이나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는데 지금은 연기 자체에 즐거움을 느끼는 여유가 생겼다는 거예요.”

시종일관 웃으면서 인터뷰에 응했지만 그의 표정에선 아쉬움이 읽혔다. 여배우로서 가장 아름다울 시기에 활동하지 못한 안타까움일 터. 꽃다운 나이 30대를 뒤로하고 마흔을 맞는 소감이 궁금했다.

“배우에게 황금기인 30대를 그냥 보낸 게 아쉽지만, 어찌 됐든 나이는 그냥 먹는 건 아닌 듯해요. 일을 했든, 안 했든 인간으로서 성숙함이랄지, 분명히 얻은 부분이 있을 테고 그런 것이 앞으로 제가 살아가는 데, 또 연기하는 데 좋은 밑바탕이 될 거라고 믿어요.”

잘못한 부분 있지만 왜곡되는 건 견디기 힘들어

사물의 이치를 터득하고 세상일에 흔들림이 없다는 ‘불혹(不惑)’의 나이에 황수정은 다른 사람이 하지 못한 경험을 통해 더욱 단단해지고 자신뿐 아니라 주변도 둘러볼 여유가 생긴 것 같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그는 기자에게 한 가지 당부를 했다.

“세상이 점점 자극적으로 변하는 것 같아요. 사람은 누구나 장점이 있을 텐데, 단점이나 실수만 부각되는 것 같아 안타까워요. 긍정적인 면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주시고 칭찬해주시면 좋겠어요.”

황수정과 최수종은 이번 드라마에 출연하며 단막극 활성화와 제작 환경 개선 등을 위해 출연료의 30%를 자진 삭감했다고 한다. 다양한 형식의 드라마가 필요하고, 이를 위해 배우들이 앞장서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설명. 두 사람의 노력과 열연에 힘입어 ‘아들을 위하여’는 일요일 심야 시간대(밤 11시 30분)에 방송되는 핸디캡에도 평균 6% 이상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순조롭게 종영했다.

드라마 게시판에는 황수정의 연기력을 높이 평가하며 ‘주머니 속 송곳은 반드시 뚫고 나오고 겨울철 매화는 더욱 아름다운 법이다’ ‘실수에 대해 너무 관대하거나 쉽게 생각해서도 안 되지만 황수정은 이미 충분한 자숙의 시간을 가졌다고 본다. 그리고 과거의 일들이 오히려 현재와 미래의 삶을 올바르게 살아가는 처방전이 될 수 있지 않을까’등의 응원 메시지가 줄을 잇고 있다. 이런 긍정적인 평가가 계속 쌓인다면 “세월 앞에 장사 없다”는 그의 말처럼 황수정에 대한 부정적인 기억도 언젠가는 희미해질 것이다.



주간동아 819호 (p65~67)

김명희 여성동아 기자 jhk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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