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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등산에 다시 뜨는 ‘SUN’

선동열, 친정팀 KIA 감독으로 남다른 각오…타이거즈 신화 재현 담금질 한창

  • 김도헌 스포츠동아 기자 dohoney@donga.com

무등산에 다시 뜨는 ‘SUN’

무등산에 다시 뜨는 ‘SUN’

선동열 감독은 10개월간의 야인생활 끝에 친정팀 KIA에 복귀했다.

이승엽(삼성)과 김태균(한화)이 일본에서 돌아왔다. 한때 메이저리그를 호령했던 박찬호도 일본을 거쳐 고향팀 한화 유니폼을 입고 처음으로 국내 무대에 선다. 2011년 사상 첫 700만 관중 시대를 열었던 한국 프로야구는 새해에 새로운 흥행 요소를 등에 업고 또 다른 비상을 꿈꾼다. 이대호(오릭스)는 빠져나갔지만, 이를 커버하고도 남음이 있는 세 스타의 귀환은 많은 야구팬을 설레게 한다.

이뿐 아니다. 1996년 주니치 유니폼을 입고 정든 광주를 떠났던 선동열 KIA 감독은 15년 세월을 돌고 돌아 다시 고향팀 타이거즈 사령탑으로 복귀했다. 복귀하는 해외파들의 활약 못지 않게 선동열의 타이거즈호가 어떤 모습을 보일지도 2012시즌 관전 포인트 중 하나다.

유난히 이동이 많고 대형계약이 속출한 이번 프리에이전트(FA) 시장에서 KIA는, 아니 선동열 감독은 처음부터 끝까지 방관자였다. 프런트는 일찌감치 움직일 준비를 하고 실탄도 마련했지만 선 감독은 평소 지론을 그대로 밀고 나갔다. 그는 많은 비용이 드는 데다 젊은 유망주를 내줘야 하는 외부 FA 영입은 장기적으로 볼 때 팀에 마이너스 요소가 된다고 생각한다. 이 같은 철학은 이미 삼성 감독 시절부터 확고했다.

선동열 야구의 핵심은 ‘지키는 야구’

선 감독은 삼성에서도 외부 FA 영입보다 젊은 유망주에게 기회를 주면서 자체 경쟁력을 강화하는 데 매달렸고, 효과도 탁월했다. 투수뿐 아니라 젊은 야수의 성장도 이끌어냈다. 2011시즌 홈런왕을 차지한 최형우를 비롯해 박석민, 채태인, 이영욱은 소위 ‘태양의 아들’로 불리며 삼성 타선의 세대교체를 이끌었다. 류중일 삼성 감독이 사령탑에 오른 첫 해에 우승을 차지할 수 있었던 것도 선 감독 시절부터 투타의 핵심으로 성장한 젊은 선수들 덕분이다.



‘FA 영입보다 내부 육성’은 선 감독만이 할 수 있는 자신감의 표현이라 할 수 있다. 2011년 10월 KIA 지휘봉을 잡은 뒤 그가 제일 먼저 한 일은 코칭스태프 포함 65명, 역대 최대 규모의 선수단을 이끌고 일본 미야자키 휴가시(市)에서 마무리캠프를 진행한 것이었다. 현재 자원 중에서 고르고 키우겠다는 계획하에 자신의 눈으로 선수들을 직접 보기 위한 차원이었다.

수년간 KIA는 ‘선발 야구’를 했다. 윤석민을 중심으로 서재응, 양현종 등 국내파에 로페즈를 중심으로 한 용병 투수가 선발 자리를 채웠다. 한때 국내 구단 중 유일하게 6선발 체제를 가동할 정도로 선발 자원이 풍부했다. 그러나 불펜은 상대적으로 빈약했다. 선 감독이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난 불펜을 키우러 온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무등산에 다시 뜨는 ‘SUN’

선동열 감독이 지향하는 ‘지키는 야구’의 키 플레이어가 된 한기주(왼쪽)와 김진우.

선 감독이 삼성 시절 보여준 야구는 ‘지키는 야구’로 요약된다. 선 감독은 2005년부터 6년간 삼성 감독으로 재임하면서 최강의 마운드를 구축해 ‘지키는 야구’를 완성했다. 삼성 재임 6년 동안 5차례나 포스트시즌에 진출해 2차례 정상에 올랐다.

새 시즌에도 그는 지키는 야구를 추구한다. 삼성에서와 달리, 수비의 안정과 타선의 기동력도 동시에 강화할 요량이지만 주된 지향점은 역시 지키는 야구다. KIA의 투수진 재편에 골몰하는 선 감독이 꼽는 키 플레이어는 한때 ‘제2의 선동열’이라 불리던 김진우. 김진우가 예전 기량을 찾아 팀 마무리를 맡는다면 한기주가 스윙맨으로 돌아서는 등 투수 운용이 한결 수월해진다. 선 감독은 “새 시즌에 팀을 꾸려가는 기본 얼개는 마운드 강화를 통한 지키는 야구다. 선발, 중간, 마무리가 완벽한 시스템을 갖춰 톱니바퀴처럼 돌아갈 수 있도록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선 감독은 과거 해태 시절 ‘타이거즈 왕조’를 이끈 주역이었다. 입단 첫해인 1985년부터 일본에 진출하기 직전인 1995년까지 11년간 해태 유니폼을 입었다. 해태는 이 기간에 1986~89년 4연속 한국시리즈 패권을 차지했으며 6차례 챔피언 자리에 올랐다. 2009년 우승까지 포함해 ‘타이거즈 V10’ 중 선 감독의 손끝에서 맺어진 결실은 6차례나 된다. 11년간 통산 성적은 367경기서 146승40패132세이브. 정규시즌 MVP 3차례, 골든글러브 6차례에 다승왕 4차례, 방어율왕 8차례, 세이브왕 2차례 등 유례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큰 족적을 남겼다.

‘타이거즈 적자 중 적자’인 선 감독은 KIA 사령탑으로서 “절대 포기하지 않는 타이거즈의 근성을 계승할 것”이라고 말했다. 2011시즌 전반기를 1위로 마친 KIA는 후반기 들어 추락을 거듭했다. 같은 팀이 맞나 싶을 정도로 쉽게 무너졌다. 선수들의 표정에서 자신감이 사라졌다. 2010년 16연패 때도 그랬다. 선 감독은 편차가 큰 선수단 분위기를 타이거즈의 근성으로 완전히 바꾸려 한다. 이순철 수석코치 등 타이거즈 왕조시대를 함께했던 코치를 대거 영입한 것도 이와 같은 측면에서 이해할 수 있다.

FA 영입보다 내부 선수 육성

무등산에 다시 뜨는 ‘SUN’

2010프로야구 한국시리즈에서 SK에 4전 전패한 선동열 감독은 끝내 삼성에서 경질되고 말았다.

‘선동열 삼성 감독’은 2010년 10월 한국시리즈에서 SK에 4전 전패로 물러난 뒤 패인을 곱씹으며 새 시즌을 준비하다, 그해 12월 30일 전격 경질됐다. 계약기간이 4년 남은 상태라 구단은 자진사퇴 형식으로 발표하면서 그에게 ‘구단 운영위원’이란 직함을 줬지만 사실상 경질이었다. 2011년 10월 21일 KIA 사령탑에 부임하기 전까지 선 감독은 자기 인생에서 처음으로 야인으로 지냈다. 항상 스포트라이트를 받던 그에게 비주류 생활은 어떤 시간이었을까. 그는 야구장에도 거의 나가지 않았고, 한동안 멀리하던 술도 제법 가까이 했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게 선 감독이 삼성 유니폼을 벗게 된 과정이다. 경질 하루 전까지 전지훈련 계획을 짜던 그가 갑작스레 옷을 벗은 것에 대해 두 가지 설이 있다. ‘그룹 최고위층이 삼성이 한국시리즈에서 무기력하게 무너지는 것을 보고 크게 진노해 선 감독이 경질됐다’는 설과, 김응용 사장과 김재하 단장이 차례로 낙마한 걸 상기하며 ‘이학수 라인 제거’ 차원에서 선 감독이 마지막으로 희생됐다고 보는 설이 그것이다.

‘국보투수’로 불리며 현역 시절부터 언제나 엘리트코스만 걸었던 선 감독으로선 삼성 사령탑에서 물러난 과정이 그의 인생에 처음이자 유일하게 찍힌 오점이다. 그래도 그는 외부에서 그 이유를 찾지 않았다. 야인시절 그와 자주 시간을 보낸 한 지인은 “선 감독은 ‘내가 잘했다면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모든 게 내가 부족한 탓’이라며 ‘다시 감독으로 돌아간다면 더 독하게 할 것’이라고 말하곤 했다”고 전했다.

KIA 지휘봉을 잡고 고향팀에 복귀한 뒤 그는 자신의 야구 철학을 유지하면서 새 시즌을 착실히 준비하고 있다. 10개월의 시간이 그를 어떻게 변화시켰을지, 2012년 그라운드에서 그의 모습을 지켜보는 일도 큰 즐거움이 될 것이다.



주간동아 2012.01.02 819호 (p58~59)

김도헌 스포츠동아 기자 dohon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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