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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광우병 주범 ‘프리온’은 억울?

크로이츠펠트야코프병(CJD) 원인은 4가지…인간 전염에는 ‘프리온+α’가 있는 듯

  • 강석기 동아사이언스 기자 sukki@donga.com

광우병 주범 ‘프리온’은 억울?

광우병 주범 ‘프리온’은 억울?
11월 29일 국내에서 처음으로 의인성(醫因性) 크로이츠펠트야코프병(이하 iCJD) 사망자가 나왔다는 발표에 이어, 12월 9일 두 번째 환자가 확인되면서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특히 일부 매체가 ‘인간광우병’ 사망자가 나온 걸로 보도하면서 일시적인 혼란이 있었다. 인간광우병은 광우병에 걸린 소의 고기를 먹은 사람이 걸리는 변종 크로이츠펠트야코프병(이하 vCJD)의 별칭으로, iCJD와는 새와 박쥐처럼 기원이 완전히 다른 질병이다. 그럼에도 일부 매체에서 여전히 iCJD를 인간광우병으로 표현하는 건 난센스가 아닐 수 없다.

인간광우병과는 관계없어

크로이츠펠트야코프병(이하 CJD)은 프리온이라는 단백질이 변형돼 뇌에 축적되면서 병을 일으킨다고 알려졌다. 즉 일단 변형 단백질이 생기거나 몸에 들어오면 정상 단백질까지 변형시켜 뇌조직이 파괴된다는 것. 드라큘라에 물리면 드라큘라가 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중 의인성, 즉 의료행위 중에 감염되는 iCJD는 매우 드문 질환으로, 변형 프리온을 지닌 사람의 뇌 조직을 이식받거나 그 뇌에 닿은 의료기기를 완벽하게 소독하지 않은 상태로 사용했을 때 변형 프리온이 환자에게 옮겨오면서 발생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번 환자도 1987년 독일제 뇌경막 이식 수술을 받을 때 감염된 것으로 추정된다. 환자가 사망한 건 2010년 11월로 1년이 넘었지만 보건당국은 이를 공개하지 않았고, 환자를 맡은 한림대병원 김윤중 교수팀이 11월 국제학술지에 발표하면서 알려졌다. 이를 두고 수년 전 인간광우병 괴담에 시달린 당국이 지레 겁을 먹고 쉬쉬한 게 아니냐는 얘기도 나돈다.

CJD는 의인성과 변종 외에도 2가지 유형이 더 있다. 하나는 산발성(s) CJD고, 또 하나는 가족성(f) CJD다. CJD 중 90% 가까이를 차지하는 sCJD는 말 그대로 임의로 일어나는 프리온 단백질의 변형에 의해 발병하는 것으로 보이며, fCJD는 돌연변이 유전자를 부모로부터 물려받아 생기는 것으로 추정된다. 누구나 적어도 산발성 CJD에 걸릴 가능성은 있는 것이다. 다행히 그 확률이 매우 낮아서 매년 100만 명 가운데 한 명꼴로 발병한다. 한국의 경우 1년에 50명쯤 CJD 환자가 나오는 셈이다.



이런 질환은 사람에서만 나타나는 게 아니다. 양에서는 ‘스크레피’, 소에서는 ‘광우병’이 비슷한 증상을 보인다. 이들 병은 공통적으로 뇌에 구멍이 숭숭 뚫리는 병증을 보이기 때문에 ‘전염성 해면양뇌증(TSE)’이라고 통칭한다. 스크레피의 원인은 확실치 않지만, 광우병은 스크레피에 걸린 양의 뼛가루가 포함된 사료를 먹은 소가 처음 걸린 것으로 보인다. 그 뒤 광우병에 걸린(또는 변형 프리온을 몸에 지닌) 소의 뼛가루가 들어 있는 사료를 먹은 소에게 전염되면서 1990년대 집단적으로 발병했다. 결국 사람이 걸리는 변형 CJD(인간광우병)의 원인은 양의 스크레피로 거슬러 올라간다.

TSE 질환을 규명해온 과정을 보면 꽤 흥미롭다. TSE와 프리온의 관계를 밝힌 스탠리 프루시너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의대 교수는 1997년 단독으로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그런데 1976년 호주에서 일하던 미국인 의학자 칼턴 가이두섹 박사가 같은 주제로 노벨상을 받은 바 있다. 왜 두 번이나 같은 주제에 노벨상이 주어졌을까.

1990년대 들어 영국에서 인간광우병 환자가 보고되고, 1995년 첫 사망자가 나오면서 대중의 공포는 극에 달했다. 노벨상위원회가 1997년 프루시너 교수에게 상을 수상한 건 이와 무관치 않다는 얘기가 있다. 원인도 알 수 없다는 사실이 공포를 더 증폭시키자 유력한 가설일 뿐 아직 입증되지 않은 ‘프리온 가설’에 노벨상을 줌으로써 이런 불확실성을 없앴다는 것이다.

프리온 가설 노벨상 수상 논란

가이두섹 박사가 노벨상을 수상한 이후 많은 과학자가 TSE의 원인인 병원체를 찾는 데 뛰어들었지만 실패를 거듭했다. 그러다가 1980년대 프루시너 교수가 바이러스가 아니라 단백질이 병원체라는 ‘이단적’ 가설을 발표했다. 그가 만든 단어 ‘프리온(prion)’은 ‘단백질성 감염성 입자(proteinaceous infectious particle)’와 바이러스 입자를 뜻하는 ‘비리온(virion)’을 합친 단어다. 병원체는 당연히 유전정보인 핵산(DNA나 RNA)을 가진 생명체라는 상식을 깨는 주장이었다. 발표 당시에는 엄청난 반발에 부딪혔지만 이를 지지하는 실험결과가 하나 둘 나오면서 ‘프리온 가설’이 서서히 주류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올해 봄 프리온 가설이 여전히 논란 대상이라는 흥미로운 논문이 나왔다. 과학저널 ‘사이언스’ 5월 27일자에 실린 로라 마누엘리디스 예일대 의대 박사에 따르면, 변형된 프리온 단백질은 감염 원인이 아니라, 감염된 조직의 병리적 반응 중 하나라는 것이다. 사실 프리온 가설이 불완전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데이터도 꽤 있다. 감염성이 있는 동물의 조직에서 변형 프리온이 발견되지 않는가 하면, 감염성이 없는 동물의 조직에서 변형된 프리온이 존재하기도 한다.

마누엘리디스 박사는 프루시너의 노벨상 수상에 대해 “노벨상은 사람들에게 모든 것이 결정됐다고 느끼게 한다는 것이 문제”라며 “그 뒤 이에 반하는 연구를 하기는 어렵다”고 주장했다. 실제 프리온 가설을 입증하는 연구 프로젝트는 연구비도 받기 쉽고 좋은 저널에 논문이 실리지만, 그 반대의 경우는 연구비를 따기도 어려운 데다 결과를 유력한 저널에서 잘 실어주지도 않는다.

마누엘리디스 박사팀은 2007년 ‘미국립과학원회보(PNAS)’에 TSE에 감염된 조직에만 바이러스처럼 보이는 입자가 존재한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그 역시 이 입자의 실체를 밝히지는 못했고, 이 입자가 병의 원인임을 입증하지도 못했다. 현재 TSE를 연구하는 사람은 프리온 가설을 지지하는 다수의 주류 측과 바이러스 가설 또는 다른 감염원을 찾는 소수의 비주류 측으로 나뉘는데, 이들 사이에는 거의 소통이 이뤄지지 않는다고 한다.

최근 프리온 가설을 지지하는 측에서도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프리온이 병을 일으키는 원인의 전부가 아니라 일부임을 보여주는 연구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사이언스’ 2010년 2월 26일자에 실린 논문을 보자. 프리온 유전자를 박테리아에 넣어 이 박테리아가 프리온을 만들게 한 뒤(바이러스 오염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해) 화학적 처리로 변형 단백질을 만들어 쥐에 삽입할 경우 거의 발병하지 않는다. 하지만 단백질에 지질과 (간에서 추출한) RNA를 섞은 뒤 변형 단백질을 만들어 쥐에 삽입하면 감염성이 아주 높아진다. 이 실험은 바이러스가 아니라 단백질이 감염에 관여한다는 걸 증명하는 동시에 단백질 외에 다른 요소도 필요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물론 이 다른 요소가 무엇이고 어떻게 작용하는지는 아직 모른다.

노벨상까지 받은 유력한 학설을 반대하며 수십 년 동안 외로운 연구를 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마누엘리디스 박사 같은 과학자가 있기에 적당한 선에서 결론을 내고 끝낼 연구에 더 매달리고, 그 결과 새로운 사실이 발견되면서 좀 더 정교한 이론이 나올 수 있는 것 아닐까. 마누엘리디스 박사가 노벨상의 업적을 뒤집고 승리할 가능성이 ‘제로’인 것은 아니다.



주간동아 2011.12.19 817호 (p54~55)

강석기 동아사이언스 기자 sukk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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