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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이 든 성배’ 누가 마실까?

축구협회 조광래 감독 전격 경질…시행착오 기회조차 주지 않아 말썽

  • 최용석 스포츠동아 기자 gtyong@donga.com

‘독이 든 성배’ 누가 마실까?

‘독이 든 성배’ 누가 마실까?

12월 8일 황보관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장(왼쪽)과 김진국 전무이사가 조광래 감독 경질을 공식 발표했다.

대한축구협회(이하 협회)가 조광래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전격 경질했다. 협회는 12월 8일 서울 종로구 신문로 축구회관 5층 대회의실에서 황보관 기술위원장과 김진국 전무이사가 참석한 가운데 기자회견을 열고 조 감독의 경질을 공식 발표했다. 황보 위원장은 “8월 한일전 0대 3 완패 이후 대표팀의 경기력을 정밀 분석했고, 레바논전에서 0대 1로 진 이후 (조 감독 경질을) 본격 논의했다”며 “경기력과 팀 내부적인 문제로 감독 교체를 결정했다”고 말했다.

방송사와 축구협회의 짜고 치는 고스톱?

하지만 조 감독의 갑작스러운 퇴장을 두고 이런저런 말이 무성하다. 당장 기자회견 당시 김 전무이사가 “일부 스폰서에서도 그런(감독 경질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 것은 사실”이라며 외부 압력도 있었음을 인정하는 듯한 발언을 해 논란이 일었다.

한 방송사는 협회의 공식 발표 하루 전인 12월 7일 저녁 9시 스포츠뉴스에서 조 감독 경질 사실을 단독 보도했다. 그런데 이 방송은 기사를 미리 준비한 흔적이 역력했다. 당시 조 감독 경질 뉴스에서 황보 위원장의 인터뷰를 내보냈다. 이 인터뷰는 황보 위원장이 조 감독을 만나러 가기 직전 파주 트레이닝센터(NFC)에서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조 감독과 황보 위원장은 서울 강남의 한 호텔에서 이날 오후 8시쯤 만났다고 했다. 만약 황보 위원장이 방송사와 전화인터뷰를 한 직후 이러한 사실을 협회에 알렸다면, 아마 이 방송사의 단독 보도가 힘들었을 것이다. 방송까지 한 시간이 넘게 남은 상황에서 얘기가 밖으로 샐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다. 하지만 황보 위원장은 협회에 내부 보고를 하지 않고 먼저 조 감독에게 달려가 경질될 수 있음을 알렸고, 단독보도가 이뤄졌다.



이런 정황을 놓고 일각에선 ‘협회 고위 관계자가 한 방송에 조 감독 경질을 귀띔해주고 기사를 통해 조 감독을 먼저 정리하려 했다’는 의혹이 일었다. 그동안 불편한 관계에 있던 조 감독에게 경질을 직접 통보하기 껄끄러웠던 협회 고위층이 언론을 이용했다고 해석할 만하다. 기사를 통해 당사자가 알게 하는 방법이 가장 쉽고, 빠르다. 협회로선 얼굴을 붉히지 않고 깨끗하게 조 감독과의 연을 끊는 게 좋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다.

사실 조 감독과 조중연 협회 회장을 포함한 회장단은 불편한 동거를 해왔다. 양측은 쉽게 말해 노선이 다르다. 조 감독은 지난 협회장 선거에서 조 회장의 대항마였던 허승표 한국축구연구소 이사장의 최측근이다. 조 감독은 허 이사장을 친형 이상으로 생각할 정도로 두 사람은 가까운 관계다. 그렇다면 조 회장이 왜 조 감독에게 대표팀 지휘봉을 맡겼을까.

2010년 남아공월드컵 직후 허정무 감독은 연임을 포기했다. 정해성 수석코치가 0순위 후보였지만 그 또한 대표팀 감독직을 고사했다. 최강희 전북 현대 감독도 거절 의사를 밝혔다. 그러자 회장단은 고민에 빠졌다. 수락 의사를 보인 후보는 김호곤 울산 현대 감독과 조광래 경남FC 감독뿐이었다. 협회는 고민 끝에 조 감독에게 지휘봉을 맡겼다.

조 감독을 선택한 결정적 이유 중 하나는 조 회장이 협회장 선거 당시 내걸었던 ‘축구인의 화합’ 공약과 제대로 부합하는 카드였다는 점이다. 정몽준 회장 시절 축구인은 둘로 나뉘었다. 협회와 가까운 여당파, 그 반대에 선 야당파로 갈라져 서로를 헐뜯었다. 정 회장이 떠난 뒤 첫 회장선거에서 당시 조 부회장은 “회장이 되면 ‘축구인의 화합’을 이끌어내겠다”고 목소리를 높였으며, 결국 허 이사장을 누르고 당선됐다.

“차기 감독 누구냐”에 시선 집중

조 감독이 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뒤 “성적이 좋지 않으면 곧바로 잘릴 수 있다”는 말이 자주 나돌았다. 조 회장이 야당 인사 중 한 명인 조 감독을 오래 곁에 둘 리 없다고 예상하는 이가 적지 않았다. 불편한 동거는 1년 4개월 만에 막을 내렸다. 조 감독이 경질되자 “2013년 1월 회장 선거를 앞두고 연임을 노리는 조 회장이 반대파 인사였던 조 감독을 일찌감치 정리했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도 이러한 배경 때문이다.

협회가 조 감독을 경질하면서 비판받는 점 중 하나가 바로 시행착오와 위기를 극복할 기회를 제대로 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조 감독은 대표팀 사령탑에 오른 후 젊은 선수를 대거 A대표에 발탁했다. 2014년 브라질월드컵에 초점을 맞춰 세대교체를 포함해 대표팀 체질 개선에 나섰다. 또한 짧은 패스 위주의 세밀한, 이른바 ‘만화 축구’를 구현하겠다고 공표했다.

시작은 나쁘지 않았다. 지난해 열린 평가전에서는 달라지려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경기 결과도 팬들이 납득할 만한 수준이었다. 또한 올해 2월 열렸던 아시안컵에서 목표로 정했던 우승은 차지하지 못했지만 3위에 올랐고, 경기력도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문제가 하나 둘씩 터졌다. 대표팀의 두 버팀목이던 이영표(밴쿠버)와 박지성(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 나란히 아시안컵을 마지막으로 태극마크를 반납했다. 대표팀은 두 거목의 공백을 실감해야 했다. 다행스럽게도 A매치 결과는 우려했던 것보다 좋았다.

하지만 7월부터 핵심선수가 줄부상과 컨디션 난조에 빠졌다. 이청용(볼턴 원더러스)이 소속팀에서 프리시즌 경기 도중 정강이 뼈 2개가 복합 골절되는 중상을 입었다. 박주영(아스널)은 이적할 팀을 찾지 못해 정상적인 훈련을 하지 못했다. 기성용과 차두리(이상 셀틱)를 제외한 나머지 태극전사는 소속팀 주전경쟁에서 밀려 출전시간이 급격히 줄었다.

그로 인해 대표팀은 8월부터 롤러코스터를 탔다. 일본 원정으로 열린 한일전에서 0대 3 대패를 당했다. 완패였다. 9월 월드컵 3차 예선 첫 경기에서 조광래호는 6대 0으로 대승을 거두며 반전을 이끌어내는 듯했지만, 쿠웨이트 원정에서 실망스러운 경기 끝에 1대 1로 비겼다. 10월 아랍에미리트(UAE)전에서 2대 1로 승리해 다시 살아난 대표팀은 11월 중동 원정 2연전에서 1승1패로 부진했다. 특히 세계랭킹 146위 레바논에 0대 1로 패한 게 충격적이었다.

이 과정에서 여러 문제점을 노출했다. 주전들을 전력에서 제외할 경우에 대비한 전술이 부족했다. 해외파와 어린 선수 위주로 선수를 선발하다 보니 위기 대처 능력이 떨어졌다. 경기장에서 선수를 이끌어줄 리더도 부족했다. 해외파와 국내파 선수의 괴리감 등 선수단 분위기가 안 좋다는 소문까지 돌았다. 심각한 위기가 찾아온 것이다.

그러나 이전에 성공했던 감독도 위기가 있었다. 2002년 한일월드컵 4강 진출을 이루어낸 거스 히딩크 감독은 준비 과정에서 2경기나 0대 5로 대패해 ‘오대영’이란 별명까지 얻었다. 2010년 남아공월드컵에서 원정 월드컵 첫 16강 진출을 이뤄낸 허정무 감독도 한때 경질설에 시달렸다. 하지만 그들은 협회로부터 전폭적인 지지를 약속받아 위기를 극복한 뒤 성공의 길에 접어들었다.

조 감독에게 좀 더 기회를 준다고 반드시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시행착오를 딛고 일어설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는 점은 짚고 넘어가야 할 대목이다. 조 감독의 전술이나 스타일에 적응했던 태극전사들은 출발점으로 돌아가야 한다. 어떤 감독이 새로 부임할지 모르지만 자신이 원하는 스타일을 표출하기까지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협회가 시행착오를 불허한다는 사실을 안다면 어떤 감독이 태극호를 맡으려 할까.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직은 또다시 ‘독이 든 성배’가 되고 말았다.



주간동아 2011.12.19 817호 (p60~61)

최용석 스포츠동아 기자 gty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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