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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이집트 총선 ‘이슬람주의 열풍’

무슬림 형제단 57년 만에 불법단체에서 제1당으로… 아랍 정세 방향타 구실에 미국 노심초사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l.com

이집트 총선 ‘이슬람주의 열풍’

이집트 총선 ‘이슬람주의 열풍’

무슬림 형제단 로고(오른쪽)와 이 단체의 최고지도자 무함마드 바디에.

이집트 수도 카이로 한복판에는 타흐리르 광장이 있다. ‘해방’이라는 뜻을 가진 이 광장의 원래 이름은 ‘이스마일리아’였다. 무함마드 알리 왕조의 제3대 국왕인 이스마일(재위 1863~1879년)의 이름을 본뜬 것. 1952년 7월 육군 중령이던 가말 압델 나세르가 자유장교단을 이끌고 쿠데타를 일으켜 왕정체제를 타도한 뒤 현재의 이름을 갖게 됐다. 이후 타흐리르 광장은 새로운 이집트의 출발을 상징하는 곳으로 자리매김했다.

대통령이 된 나세르는 수에즈 운하를 국유화하는 등 범(汎)아랍 민족주의를 표방하며 독재체제를 구축했다. 이러한 체제는 군부 출신인 안와르 사다트와 호스니 무바라크가 대통령이 된 후 더욱 강화됐고, 이집트는 사실상 ‘왕조 공화제 국가’라는 평가를 받았다. 정치체제는 공화제지만 대통령이 왕처럼 모든 권력을 행사하며 국가를 통치한다는 뜻이다. 30년 장기 집권해온 무바라크 전 대통령이 고대 이집트 왕인 ‘파라오’로 불린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이후 아랍 국가는 앞다퉈 이집트의 정치체제를 추종했다. 사담 후세인(이라크), 무아마르 카다피(리비아), 하페즈 알아사드(시리아), 제인 엘아비디네 벤 알리(튀니지), 알리 압둘라 살레(예멘), 오마르 알바시르(수단) 등이 나세르의 정치적 적자(嫡子)임을 내세우며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하고 독재자로 군림했다. 그들의 독재가 무너져 내린 지금, 타흐리르 광장은 이집트 민주화의 메카이자 아랍 시민혁명의 상징으로 떠올랐다.

자유정의당. 아랍 시민혁명의 바람을 타고 11월 28∼29일 실시된 이집트 총선 1단계에서 49%의 득표율로 166석 중 82석을 차지해 1위가 된 정당이다. 총선은 27개 주(州)에서 5000만 명 유권자가 입법권을 가진 하원의원 498명을 선출하며, 지역별로 9개 주씩 3단계로 이뤄진다. 12월 2단계와 내년 1월 초 3단계 선거를 거쳐 최종절차는 내년 1월 11일 끝난다. 현재 추세라면 자유정의당이 하원 제1당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슬람 근본주의 전파한 ‘무슬림 형제단’



흥미로운 것은 이 정당의 정체다. 6월 초 자유정의당을 만든 주체는 무바라크 전 대통령이 퇴진하기 전까지 불법단체였던 무슬림 형제단. 이집트의 사회운동가이자 학자인 하산 알반나가 1928년 창설한 이 정치·사회운동 단체는 그동안 두 차례 암살 음모에 연루돼 탄압을 받았다. 먼저 1948년 이집트의 마지막 국왕이던 파루크 1세 시절, 단원 가운데 한 명이 마흐무드 파샤 총리를 암살함으로써 불법단체가 됐다.

나세르의 쿠데타를 적극 지원한 무슬림 형제단은 왕정 붕괴 이후 햇빛을 보는 듯했다. 그러나 1954년 세속주의 공화국을 세우려는 나세르를 암살하려다 실패하면서 다시 한 번 불법단체로 규정됐다. 이후 이집트 역대 정부의 강력한 탄압에도 살아남은 무슬림 형제단은 2005년 총선에서 단원을 무소속으로 출마시켜 하원 전체 의석의 20%를 차지했으며, 이번 선거에서는 자유정의당의 명패를 내걸고 불법단체에서 하원 제1당으로 탈바꿈할 날만 기다리고 있다. 57년 만의 일이다.

서방세계에서 악명 높은 ‘이슬람 근본주의(Islamic Fundamentalism)’ 역시 무슬림 형제단이 아랍권에 전파했다. 이슬람 경전 코란을 헌법으로 삼고 이슬람 율법인 샤리아를 토대로 통치하는 국가의 건설을 최대 목표로 하는 이슬람 근본주의는 흔히 이슬람 원리주의라고도 부르지만, 이는 서구에서 붙인 이름으로 아랍권에서는 거의 쓰지 않는다. 아랍권에선 주로 이슬람주의 혹은 이슬람 부흥운동이라는 말을 사용하기 때문. 서양 제국주의 세력의 침략으로 이슬람권이 식민 지배를 당한 것에 대한 반성 및 자각에서 비롯한 이슬람주의는, 향락과 물질을 숭배하는 서양문명을 거부하고 원시 이슬람의 순결한 정신과 엄격한 도덕으로 돌아감으로써 이슬람 사회가 재생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이슬람주의는 1979년 이란의 이슬람 혁명이 성공한 이후 본격적으로 세를 확장했고, 호메이니가 이란을 신정체제 국가로 만든 뒤 아랍 각국의 이슬람주의자 중 과격세력이 반정부 투쟁에 나서서 폭력을 선동하는 등 극단적인 행동도 서슴지 않았다. 반미·반서방·반세속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무장투쟁을 통한 신정체제 수립을 주장한 것이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무슬림 형제단의 이집트 제1 정치세력 등극을 지켜보며 노심초사하는 이유는 이러한 역사적 맥락 때문이다. 자유정의당이 이름에서 ‘정의’보다 ‘자유’를 먼저 내세운 것 역시 이러한 과거의 극단주의 성향을 순화하려는 포석으로 보인다. 무슬림 형제단은 창당 서류를 제출하면서 당원 8821명 중 978명이 여성이며, 93명은 기독교인 콥트교도라고 밝혔다. 이후에도 무슬림 형제단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민주주의와 여권 옹호, 종교 자유를 외쳤다. 조금씩 온건 이슬람주의로 변신하고 있는 셈이다. 온건 이슬람주의는 흔히 이슬람주의와 세속주의의 중간 성향을 의미하는데, 종교와 정치 분리를 핵심으로 하는 세속주의는 서방의 민주제도와 문화를 일정 정도 수용하기도 한다.

기억해야 할 것은 앞서 살펴본 대로 이집트의 정치체제가 역사적으로 아랍 각국에 지대한 영향을 끼쳐왔다는 점이다. 이 나라가 고대에서부터 현재까지 중동과 북아프리카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이자 문명국으로 군림해왔기 때문. 아랍권은 통상 아랍어를 사용하는 북아프리카와 중동의 이슬람 국가를 가리키는데, 구체적으로는 아랍연맹의 회원국 22개국을 지칭한다. 바로 이 아랍연맹의 사무국이 이집트 카이로에 있고, 세계 최고(最古)이자 이슬람 수니파의 총본산으로 불리는 알아즈하르대학도 카이로에 자리한다.

‘아랍의 봄’ 시민혁명 이후 중동국가에서 득세하는 정치세력도 대부분 자유정의당과 흡사한 온건 이슬람주의 정당이다. 10월 13일 튀니지 제헌의회 총선에서 제1당이 된 엔나흐다당(아랍어로 ‘부흥’이라는 뜻)과 11월 25일 모로코 총선에서 승리한 정의개발당이 대표적이다. 리비아에서도 온건 이슬람주의 세력이 주류로 나서는 상황이다.

군부와 이슬람주의의 엇갈린 계산

이집트 군부는 자유정의당의 부상에 대해 우려를 감추지 않는다. 내년 6월 말 이전에 실시될 대선에서 자신을 대변할 인물이 당선되지 못할 경우 그동안 누려온 권력을 잃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친미·친서방 노선을 보여온 군부는 이슬람 극단주의를 절대로 허용할 수 없다는 견해를 공공연히 천명해왔다. 이들은 샤리아를 통치의 ‘유일한 토대’가 아닌 ‘주요 토대’로 삼는 이슬람주의가 세속민주주의와 공존하는 정치체제가 구축되길 희망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무슬림 형제단과 군부가 앞으로 이집트 정치체제를 두고 협력할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군부는 이집트가 터키나 인도네시아의 모델을 따라가기를 기대한다. 반면 무슬림 형제단은 터키 모델도 아니고 이란 모델도 아닌, 샤리아에 토대를 둔 이집트만의 국가 모델을 개발해낼 것이라며 기염을 토하고 있다. 한 가지 분명한 점은 정치체제와 국가 모델을 둘러싼 이집트의 행보가 향후 아랍권 전체에 심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사실이다.



주간동아 2011.12.19 817호 (p50~51)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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