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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 박희숙의 미술관

하녀는 지금 아침식사를 차리는 중

일하는 여성

하녀는 지금 아침식사를 차리는 중

하녀는 지금 아침식사를 차리는 중

‘우유를 따르는 하녀’, 페르메이르, 1658~1660년경, 캔버스에 유채, 45×47,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 소장.

맞벌이 부부가 늘었다는 통계 결과가 나왔다. 맞벌이 가정이 전체 가정의 반 정도를 차지한다. 다양한 욕구를 충족하려면 남성 혼자 돈을 벌어선 곤란하기 때문이다. 통계에서도 알 수 있듯 여성 경제활동인구가 끊임없이 증가하고 있다. 과거에 여성이 경제활동을 할 수 있던 분야는 아주 적었다. 산업이 발달하지 않아 여성은 하녀로 일하는 등 주로 집안일을 도왔다.

성실하게 일하는 여성을 그린 작품이 얀 페르메이르(1632~1675)의 ‘우유를 따르는 하녀’다. 이 작품은 남아 있는 페르메이르 작품 중 최고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건장한 체격의 젊은 여인이 노란색 윗옷에 붉은색 치마를 입고 청색 앞치마를 두른 채 텅 빈 실내에 서서 식탁 위 냄비에 우유를 따른다. 페르메이르는 노란색, 파란색, 빨간색 등 삼원색 모두를 옷차림 묘사에 사용했으나 어느 것 하나 튀는 색 없이 조화롭다.

녹색 식탁보 위에는 빵이 담긴 바구니, 도기, 냄비, 빵조각, 푸른색 행주가 놓여 있다. 식탁의 소박한 물건은 그가 지금 아침식사를 준비 중이라는 사실을 암시한다. 이 작품에서 빵은 ‘생명의 양식’, 우유는 ‘순수하고 신령한 젖’이라는 종교적 의미를 담고 있다. 창으로 들어온 빛이 빵을 담은 바구니와 놋쇠 주전자를 걸어놓은 벽을 비춘다. 바닥에는 작은 난로가 있는데 이 작품에서 난로는 정절을 바라는 연인의 소망을 담은 상징물이다.

페르메이르는 이 작품에서 창에서 들어오는 빛을 받은 사물의 표면을 사실적 기법으로 묘사했는데, 당시 유행하던 방식대로 정확한 필치로 사물을 묘사하기보다 자신만의 특유한 색을 사용해 표현했다. 노란색과 베이지색을 섞어 자연스럽게 보이게 한 것.

그가 그린 여성 그림은 대부분 악덕을 비판하기 위한 것이지만 이 작품은 예외적으로 미덕의 모범을 보인다. 전통적으로는 하녀를 게으르고 부도덕한 인물로 묘사했으나 이 작품에선 자신의 일에 열중하는 모습을 표현함으로써 규범을 따르는 인물로 묘사했다.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부잣집에 하녀로 들어가지 못한 여성은 소작인의 아내로 살아야 했다. 고된 노동을 하는 여성을 그린 작품이 장 프랑수아 밀레(1814~1875)의 ‘이삭 줍는 여인들’이다. 샤이 마을의 풍경을 그린 것으로, 추수가 끝나고 이삭을 줍는 여인들을 화폭에 담았다. 세 명의 여인은 허리를 굽혀 추수가 끝난 농장에서 낟알을 일일이 손으로 줍고 있다. 들판에는 곡식을 가득 실은 짐수레와 수확이 끝난 건초 더미가 쌓여 있다. 화면 오른쪽 끝의 말을 탄 사람은 농부를 감독하는 자다.

이 작품에서 건초더미가 많이 쌓인 것은 풍년을 암시하지만 이삭을 줍는 여인들에게 풍년은 그저 남의 일일 뿐이다. 여인들은 이 농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이들은 농부 중에서도 가장 가난한 사람으로, 이삭이라도 주우려면 시의원의 허가를 받아야 했다. 여인들이 입은 낡고 뻣뻣한 옷은 그들이 서민임을 나타내는데, 밀레는 푸른색과 붉은색, 노란색을 사용해 익명의 여인들을 구별했다.

화면 중앙의 여인들은 고전주의 형식의 ‘삼미신’ 그림(세 여신을 그린 그림을 가리키는 말로, 고대 헬레니즘 이후 미술 역사에서 여성 누드의 가장 오랜 주제 가운데 하나)과 같은 구도다. 하지만 밀레는 고전주의 작품에서 느낄 수 있는 귀족적 분위기를 내는 대신 익명의 노동자를 선택해 노동의 의미를 강조했다.

밀레의 이 작품은 보수층으로부터 ‘누더기를 걸친 허수아비’ ‘빈곤을 관장하는 세 여신’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밀레가 이 그림을 그렸을 당시 노동자는 중상층에 두려움을 주는 대상이었다. 비평가들은 밀레가 정치적 의도를 담아 ‘이삭 줍는 여인들’을 제작했다고 생각했으나 밀레는 농민들의 삶을 솔직하게 표현하고자 한 것이라 반박했다.

농경사회가 산업사회로 바뀌면서 여성의 경제활동 모습도 달라졌다. 공장이 세워지면서 여성은 농부의 아내에서 산업 역군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산업 역군으로 열심히 일하는 여성을 그린 작품이 데이네카(1899~1969)의 ‘여직공’이다.

세 명의 여성이 직조기계 앞에서 일하고 있다. 여성들은 머리를 단정하게 빗어 넘기고 얇은 작업복을 걸쳤다. 가운데 여성은 얼굴을 아래로 향하고 있다. 일에 열중했다는 뜻이다. 이 작품은 사회주의 리얼리즘이라는 용어가 생기기 전에 그린 것이다. 데이네카는 이 작품에서 노동자를 영웅적으로 묘사하지 않았다. 양식화해 간결하게 표현했을 뿐이다.

하녀는 지금 아침식사를 차리는 중

(왼쪽)‘이삭 줍는 여인들’, 밀레, 1857년, 캔버스에 유채, 83×111, 파리 오르세 미술관 소장. (오른쪽)‘여직공’, 데이네카, 1927년, 캔버스에 유채, 171×195,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미술관 소장.

*박희숙은 서양화가다. 동덕여대 미술학부, 성신여대 조형대학원을 졸업했다. 개인전을 9회 열었다. 저서로 ‘나는 그 사람이 아프다’ ‘클림트’ ‘그림은 욕망을 숨기지 않는다’ 등이 있다.



주간동아 817호 (p70~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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