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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SK그룹 형이냐, 동생이냐

최태원·재원 둘 중 한 명은 구속 가능성…검찰 수사 칼끝에 안팎의 시선 집중

  • 한상진 기자 greenfish@donga.com

SK그룹 형이냐, 동생이냐

SK그룹 형이냐, 동생이냐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선물투자 의혹을 수사하고 있는 검찰이 11월 8일 서울 종로구 서린동 SK그룹 본사를 압수수색했다. 직원들이 본사 로비에서 불안한 듯 서성이고 있다.

SK그룹 총수 일가의 회사 돈 횡령사건 수사가 이제 종점으로 치닫고 있다. 검찰의 총구는 이미 최재원(48) 부회장을 넘어 최태원(51) 회장으로 향했다. 이제 남은 것은 누구를 처벌할 것이냐는 판단뿐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검찰 주변에선 최재원 부회장 선에서 이번 사건을 마무리할 것이라고 보는 시각이 많았다. 그러나 12월 초 최태원 회장에 대한 검찰 소환이 예고되면서부터 상황은 달라졌다. 수사의 정점에 있는 최 회장을 소환한다는 것은 수사가 사실상 끝났음을 의미하기 때문이었다. 구속이든, 불구속이든 최 회장이 사건 핵심으로 지목돼 기소된다면 SK그룹은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처한다. 최악의 경우 최 회장 형제의 경영권이 흔들릴 수도 있다.

사건의 핵심 의혹은 최 회장 형제가 베넥스인베스트먼트(이하 베넥스)라는 투자회사를 통해 회사 돈 1000억 원가량을 횡령한 뒤 선물투자를 했다는 것, 그리고 그 과정에서 수천억 원대의 손실을 봤으며 최재원 부회장이 차명으로 보유하던 I사 주식을 역시 베넥스를 통해 고가로 매각했다는 것 정도로 정리할 수 있다. 사실이라면 모두 횡령과 배임에 해당하는 범죄다. 이 두 가지 의혹은 이미 지난해부터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3부와 특수2부가 각각 나눠 수사를 진행했고, 현재는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부장검사 이중희)가 통합해 진행 중이다.

오비이락의 우연한 시작

사실 이번 수사는 오비이락(烏飛梨落)이라 해도 좋을 만큼 우연히 시작됐다. 검찰이 SK그룹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2009년 SK그룹이 MBC 일산방송센터 건설공사를 수주하는 과정에서 MBC 간부가 비자금을 조성하고 각종 로비를 했다는 주장이 나오면서부터였다. MBC 공정방송노조 측이 주장한 이 의혹은 당시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에 배당돼 강도 높은 내사를 거쳤다. SK건설이 부산 오륙도에 SK뷰를 시공하면서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의혹도 비슷한 시기에 제기됐다. 이 역시 특수2부가 맡아 내사를 진행했다.



같은 시기 울산지검에서는 공유수면 매립사건과 관련해 경찰 관계자들이 한 사건브로커로부터 뇌물을 받은 사건을 수사했는데, 이 브로커의 계좌에서 최재원 부회장의 자금이 발견된 것도 이번 수사에 기름을 부었다. 올해 초엔 이희완 전 국세청 국장이 퇴임 이후 SK그룹 계열사로부터 30억 원가량의 자문료를 받은 사건도 불거졌다. 이들 사건은 모두 특수2부로 통합됐다.

본격적으로 수사를 시작한 것은 지난해 여름 특수2부 수사팀(당시 부장검사 최윤수)이 바뀌면서부터. 올해 초 특수2부는 SK그룹과 협력업체 간 거래 내용을 확인하다가 협력업체 가운데 하나인 M여행사 구모 대표와 베넥스의 주식거래 과정에 이상한 점이 있음을 발견했다. 베넥스는 SK그룹 계열사들이 거액을 투자한 회사인데, 구 대표가 보유하던 액면가 5000원 남짓의 I사 주식을 700배나 높은 주당 350만 원(총 230억 원)을 주고 사들였던 것. 이렇게 조성한 자금은 고스란히 최재원 부회장이 선물투자를 하는 데 활용했다. 검찰은 구 대표가 소유했던 I사 주식이 사실은 최 부회장의 차명주식이라고 확신한다. 최 부회장은 이 의혹이 불거지면서 출국금지조치를 당했다.

같은 시기 금융조세조사3부는 글로웍스 주가조작 사건을 수사하던 중 최 회장 형제의 재산관리인으로 알려진 김준홍 베넥스 대표(구속)가 관련된 사실을 확인하고 수사에 나섰다. 올해 초 검찰이 베넥스 사무실을 압수수색하는 과정에서 김 대표의 금고에서 최재원 부회장 명의로 발행된 수표 170여억 원과 금괴, 최태원 회장의 인감증명서를 발견하기도 했다. 이때부터 김 대표는 SK그룹 사건의 핵심 인물로 떠올랐다. 최 회장 형제가 18개 SK그룹 계열사에 지시해 베넥스에 2800억 원을 투자하게 하고, 그중 992억 원을 빼내 개인적으로 선물투자에 나섰다는 의혹도 이때부터 나왔다.

이 와중에 올해 초 국세청이 SK그룹 계열사와 관련 회사에 대해 대대적인 세무조사를 벌였고 최태원 회장이 선물투자 과정에서 1000억 원대 손실을 봤다는 사실을 확인했다는 내용이 한 언론을 통해 공개됐다. 이 사실이 알려진 뒤 SK그룹에 대한 검찰 수사는 사실상 공개수사 모양새를 띠었다.

자신감 넘치는 검찰 분위기

SK그룹 형이냐, 동생이냐
현재까지 확인된 바에 따르면, 최 회장 형제는 SK그룹 계열사들이 베넥스에 투자한 돈 중 992억 원을 두 번에 걸쳐 빼낸 뒤 개인 돈과 합쳐 선물투자에 나섰다가 큰 손실을 봤다. 처음 빼낸 돈(SK텔레콤 등이 투자한 497억 원)은 나중에 빼낸 돈(SK가스 등이 투자한 495억 원)으로 갚았고, 나중에 빼낸 돈은 최재원 부회장이 개인적으로 자금을 마련해 변제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렇게 빼낸 돈은 모두 김 대표를 거쳐 무속인으로 알려진 김원홍 씨에게 전해졌다. 그리고 김 대표는 이 돈으로 선물투자를 하거나 개인적으로 유용했다. 금융인 출신 무속인 김씨는 최 회장 일가와 오래전부터 가까운 관계를 유지해온 것으로 전해진다.

현재 검찰이 문제 삼는 것은 회사 돈을 빼내 선물투자를 하도록 지시한 사람이 누구냐는 점이다. 최 회장 형제가 선물투자에서 돈을 잃었다는 사실 자체는 사법처리 대상이 아니다. 선물투자로 인한 손실 규모에 대해서는 지금도 여러 설이 나돈다. 1000억 원 설도 있고, 3700억 원이라는 얘기도 있다. 이와 관련해 검찰의 한 고위 관계자는 “손실규모는 1000억 원 이상이며 횡령금액도 1000억 원 이상”이라고 말했다. 992억 원 횡령이라는 기존 보도 내용과는 뉘앙스가 약간 다르다.

검찰은 이미 베넥스 관계자들로부터 “김준홍 씨에게서 ‘최태원 회장이 선물투자를 지시했다’는 얘기를 들었다”는 진술을 받아놓은 상태다. 최재원 부회장 선에서 사건이 마무리될 것이라는 세간의 예상이 빗나갈 확률이 높은 이유다. 검찰 수뇌부에서는 이번 사건을 최 부회장 선에서 끝내기를 바란다는 얘기도 나오지만, 그러기엔 너무 많은 증거와 증언을 확보했다는 말이 검찰 주변에서 흘러나온다.

여기서 눈여겨봐야 할 부분은 검찰이 이번 사건의 핵심 인물 중 하나인 무속인 김씨 조사에 조바심을 내지 않는다는 점이다. 김씨는 올해 초 수사가 본격화하자 중국(홍콩)으로 출국해 현재까지 돌아오지 않고 있다. 김씨는 최 회장 형제를 대신해 선물투자를 한 당사자이자 횡령 의혹의 핵심 관계자 가운데 한 명이므로 직접 조사가 반드시 필요한 인물. 그런데도 검찰이 그에 대한 조사와 무관하게 수사를 진행한다는 것은 그만큼 이미 진행한 수사 결과에 자신 있다는 뜻이다. 쉽게 말해 김씨의 직접 진술이 없어도 될 만큼 충분한 증거와 증언을 확보해놓았다는 것이다. 수사 과정을 잘 아는 한 검찰 고위관계자의 말이다.

“증거가 불충분하다면 꼬리를 자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수사가 너무 많이 진행된 상황이라 멈추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듣자 하니 수사팀이 최태원 회장을 향해 바로 간다고 한다. 올해 안에 다 끝내는 것으로 안다. 시간을 끌 이유가 없는 수사다.”

재계와 검찰 일각에는 최재원 부회장이 형의 죄까지 모두 뒤집어쓸 것이라고 보는 시각이 있다. 총수 일가가 그룹 경영권을 유지하려면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얘기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최 부회장이 뒤집어쓰기에는 너무 큰 사안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형제 모두 구속 수사 힘들 듯

검찰이 어떤 판단을 내릴지는 지켜볼 일이다. 일단 12월 8일 현재 최재원 부회장에 대해서는 사전구속영장이 청구될 가능성이 높다는 게 검찰 주변의 공통된 시각이다. 문제는 최태원 회장에 대해서도 검찰이 구속수사 방침을 세울지다. 현실적으로 형제를 모두 구속해 수사하기란 쉽지 않은 게 사실. 실제로 최근 이 사건의 수사 라인에 있는 한 검찰 고위관계자는 기자들과 만난 사석에서 “SK그룹의 횡령금액은 정확히 500억 원 정도로, 그것도 얼마 지나지 않아 모두 갚았다. 다른 그룹 총수의 횡령사건과 이번 사건은 분명히 다르다. 회사 돈을 잠시 빌려다 쓰고 갚은 사건이므로 내용으로 따지면 큰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최 회장 형제의 동반 구속 가능성에 대해 일정 정도 선을 그은 셈이다.

반면 수사팀의 의지나 이미 확보된 증거 등을 감안한다면 “최 회장을 주범으로 판단할 경우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해야 할 수 있다”는 말도 검찰 주변에서 여전히 흘러나온다. 과연 검찰은 어떤 답을 고를까. 모든 시선이 지금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청사를 향하고 있다.



주간동아 2011.12.12 816호 (p48~50)

한상진 기자 greenfis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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