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16

2011.12.12

“저, 될까요?”…역술원 ‘총선특수’

19대 총선 예비 후보들 은밀한 출마 상담…일부 유명인은 2~3주 기다려야 면담 가능

  • 구자홍 기자 jhkoo@donga.com

    입력2011-12-12 09:4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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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 될까요?”…역술원 ‘총선특수’

    2008년 2월, 한나라당 공천심사위원들이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당사 회의실에서 총선 공천 신청자들을 지역구별로 단체 면접하고 있다.

    19대 총선이 넉 달 앞으로 다가왔다. 그럼에도 정국은 여야 가릴 것 없이 한 치 앞도 내다보기 힘든 안갯속에 빠져든 모습이다. 내년 총선에서 ‘금배지’의 꿈을 꾸는 예비 후보들은 불투명한 정치 상황만큼이나 갑갑한 번민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 ‘출마하면 당선할 수 있을까’라는 기본적인 고민에서부터 ‘지금 살고 있는 곳에서 출마하는 것이 좋을지, 아니면 나고 자란 고향이 좋을지’라는 지역 선택의 문제까지. 아직 입문하지 않은 정치 지망생의 경우에는 ‘어느 정당, 어느 인물에게 의탁해야 할까’라는 원초적 고민도 안고 있다.

    ‘안철수 현상’이 정치권을 강타한 이후 예비 정치인의 고민은 더욱 깊어졌다. 야권 성향으로 수도권 출마를 준비하던 C씨는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유력 대선주자로 부상한 이후 제3 정당 출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한동안 입당을 미뤘다.

    “처음엔 민주당에 입당해 그 누구와도 경선에서 맞붙으려 했다(C씨가 출마를 고려하는 지역구 현역 의원은 한나라당 소속). 그런데 안 원장이 뜬 이후 민주당 간판을 달기보다 안 원장과 함께하는 편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안 원장이 신당 창당을 안 한다고 하니 이제라도 입당해 경선을 준비해야 할 것 같다.”

    대학 입시에만 눈치작전이 있는 것이 아니다. 총선에서도 눈치작전은 예외 없이 벌어진다. ‘순간의 선택’이 최소 4년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관계나 학계에서 화려한 이력을 쌓은 이들은 지역색이 비교적 옅은 수도권과 고향 출마를 놓고 고민하는 경우가 많다. 정치 신인 처지에서는 수도권은 ‘바람’이, 고향은 ‘조직’이 당락을 좌우하기 때문에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유불리가 확연히 갈린다.

    정치 불확실성 커 더 깊은 고민



    지금처럼 정치권이 안정되지 못하고 불확실성이 커지면 예비 총선 출마자들도 덩달아 불안감이 커지고 고민은 깊어간다. 이 때문일까.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역술원에 문턱을 넘나드는 예비 정치인들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

    호남지역 군의원 A씨는 얼마 전 인근 대도시에서 용하다고 소문난 점집을 찾았다.

    “내년 총선에 K씨, C씨, G씨 세 사람이 출마한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과 가까이 지내는 게 좋겠습니까.”

    세 사람으로부터 직접 생년월일을 확인해 간 A씨는 점쟁이에게 세 사람의 사주풀이를 부탁했다. 사주를 짚어본 점쟁이는 “G씨와 가까이 지내라”라고 말해줬다. A씨는 G씨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자발적으로 선거운동원이 됐다.

    내년 총선에 수도권 출마를 고민하던 B씨는 올해 초 지인 소개로 ‘사주풀이를 잘한다’고 소문난 서울 강북 모 역술원을 찾았다. 역술인은 B씨를 보자마자 “고향으로 내려가”라고 말했다. 깜짝 놀란 B씨가 “왜 그러느냐”고 물었다. “서울에서 그만큼 출세했으면 앞으로는 고향을 위해 봉사해야지”라는 답이 돌아왔다. B씨는 그날 이후 자신이 태어나 유년 시절을 보낸 고향으로 주소를 옮기고 내년 총선 출마를 준비하고 있다. 중견기업 최고경영자(CEO) 출신으로 내년 총선 출마를 선언한 D씨는 역술원 예찬론자다.

    “저, 될까요?”…역술원 ‘총선특수’

    김정섭 청송철학원 원장.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가봤다. 좋은 얘기를 해주면 그 자체로 만족하고, 행여 나쁜 소리를 들어도 그 점만 조심하면 되는 것 아닌가.”

    나날이 과학과 통계 기술이 지배하는 세상으로 바뀌어가고 있지만 이처럼 역술원을 기웃거리는 정치인은 갈수록 늘고 있다. 예비 정치인은 물론, 현역 정치인, 그리고 그 주변 인사에 이르기까지 불확실한 미래를 알아보려 역술원을 찾는다. 그러다 보니 유명 역술인을 만나려면 사나흘은 기본이고, 심한 경우 2~3주간 기다려야 하는 상황도 빚어진다.

    역술가들과 친분이 두터운 정치컨설턴트 E씨는 “현역 정치인이 자주 찾는 것으로 유명한 서울 강남 소재 모 역술원의 경우 ‘상담’이 밀려 주말 상담은 3주 정도 기다려야 한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서울 강남 청담동에서 역술원을 운영하는 미모의 여성 역술인 J씨는 출장 상담으로 유명하다. J씨를 잘 아는 측근은 “정치인이나 연예인처럼 얼굴이 알려진 유명인은 역술원에 직접 방문하기를 꺼린다”며 “전화로 시간과 장소를 정하고 역술인이 출장을 나가 상담하기도 한다”고 전했다. 그러나 은밀하게 진행되는 역술 상담의 특성상 정확한 현황을 파악하는 것은 쉽지 않다.

    공천 심사 시작할 때 가장 북적

    백운산 한국역술인협회 중앙회장은 “친분 있는 정치인과는 전화상담을 수시로 진행한다”며 “요즘에는 하루에 한두 명 정도 상담한다”고 말했다. 서울 강남구 역삼역 인근에 자리 잡은 ‘백운산 역술원’ 대기실에서는 백 회장과 함께 찍은 유력 정치인의 사진을 여럿 볼 수 있다. 그 가운데 지난해 11월 4일 오세훈 전 서울시장과 함께 찍은 사진, 정두언 한나라당 의원과 함께 찍은 사진이 눈에 띄었다. 백 회장은 “역대 총선 때를 보면 각 당에서 공천 심사를 시작할 때쯤 가장 많은 정치인이 찾아온다”고 말했다.

    서울 관악구에서 청송철학원을 운영하는 김정섭 원장은 “(예비 정치인) 본인이 직접 와서 상담하는 경우도 있지만, 주변 인물들이 생년월일을 들고 찾아와 사주를 보는 경우가 더 많다. 주변 사람이 들고 온 사주라도 풀이하다 보면 정치하는 사람 사주란 걸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영하의 추위만큼이나 정국은 꽁꽁 얼어붙었다. 그렇지만 내년 봄 금배지의 꿈을 품은 예비 정치인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는 역술 시장에는 벌써 ‘훈풍’이 부는 모습이다.

    역술로 본 2012년 국운 및 정국

    “큰물이 드는 해…서민은 어려운 한 해”


    “저, 될까요?”…역술원 ‘총선특수’

    백운산 한국역술인협회 중앙회장.

    백운산 한국역술인협회 중앙회장은 “내년 우리나라는 목(木)을 중심으로 국운이 이어진다”고 전망했다.

    “우리나라는 축인(丑寅) 간위방(間位方)으로 목(木)을 중심으로 국운이 이어집니다. 임진(壬辰)년에는 예로부터 우리나라에 큰물이 듭니다. 내년 큰물은 마른 갑목(甲木)이 흡수합니다. 을목(乙木)은 이미 물에 잠겨 있어 흡수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을목보다 갑목이 길한 해가 될 것입니다.”

    같은 목(木)이라 해도 갑목과 을목이 있을 수 있는데, 갑목은 십이지간 순서상 1번, 을목은 2번을 뜻한다. 이를 현재의 정치 상황에 맞춰 해석하면 갑목이 여당, 을목이 야당이 되는 셈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 디도스(DDoS·분산 서비스 거부) 공격 사건으로 한나라당이 궁지에 몰린 상황에도 ‘갑목이 길하다’는 백 회장의 해석이 이채로웠다. 백 회장은 “지금 국민 99%가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내년 대선에 유리할 것으로 보지만, 주역으로 보면 내년 우리나라 국운상 갑목이 길하다”고 덧붙였다.

    이에 반해 김정섭 청송철학원장은 “임진의 임(壬)은 대수(大水)를 뜻하고 진(辰)에는 수(水), 목(木), 화(火)가 담겨 있는데, 물속에서 불이 꺼진 형국이라 내년에는 서민이 돈이 없어 경제적으로 어려운 한 해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임진년은 물을 잡고 나면 태양을 품고 있는 사람이 나와 성공할 운세죠. 임진의 큰물을 끌어 쓰는 것은 목(木)입니다. 토(土)의 기운을 갖고 있는 박근혜 전 대표는 물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이고, 안철수 원장은 목(木)과 화(火)의 운명을 타고나 모든 이에게 인정받는 재상 사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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