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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길의 놀라운 편집의 힘

나누고 분류해야 세상이 보인다

  • 김용길 동아일보 편집부 기자 harrison@donga.com

나누고 분류해야 세상이 보인다

귤 장수가 수레에 귤을 가득 쌓아놓고 판다. 절반은 크기에 상관없이 무더기로 쌓았고(사진 1번), 절반은 크기를 골라 균등한 크기의 귤만 줄을 맞춰 질서 있게 쌓았다(사진 2번). 지나가는 사람의 구매 욕구를 자극하는 귤은 어느 쪽일까. 손님은 귤 한 봉지를 살 때 대부분 균일하게 정렬한 귤을 가리키며 한 봉지 담아달라고 주문한다. 동일한 크기로 정렬하면 귤을 고르는 수고를 덜고 한눈에 귤 품질을 가늠할 수 있다. 또 장수와 손님 둘 다 한 봉지에 몇 개의 귤을 담는지 금방 알 수 있다. 장수가 귤을 선별하고 질서 있게 배열해야 상품력이 높아진다.

파프리카를 매대에 무작위로 쌓아놓았다(사진 3번). 크기, 색깔, 신선도를 따로 구분하지 않았다. 다른 쪽(사진 4번)은 균일한 크기와 같은 색깔의 파프리카를 두 개씩 포장한 데다 가격 정보를 포함한 상품 정보 태그까지 붙였다. 과일이나 채소에 사소한 부가 과정을 하나 덧붙이니 상품으로서 정교해진다. 바로 비즈니스의 출발점이다. 자연 상태에 분류, 배열, 포장, 정보 표시를 추가하니 훨씬 상품력이 높아진다.

편집의 첫걸음은 분류다. 분류란 계통을 파악해 종류를 나누고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것을 말한다. 편집은 발생한 상황을 파악해 원인과 결과를 따져보고 해결 방법을 취사선택한다. 상황을 편집하려면 계통을 따져봐야 한다. 동일 계열끼리 모으고 이질적이거나 우연적인 것은 따로 분리한다. 분류를 하면 목록을 만들 수 있다. 전체 수량은 몇 개인지, 몇 가지로 나눠야 하는지 알 수 있다. 즉 애매하거나 복잡한 것은 가닥 잡고, 유사한 것은 한데 모으는 분류 과정을 통해 편집력은 강화한다. 학문은 분류로 발원해 분류를 통해 진화한다. 인문과학, 자연과학, 사회과학, 응용과학으로 분화하면서 수많은 융합과 통섭을 반복한다.

분류를 잘하면 세 가지 점에서 좋다. 첫째, 분류는 복잡한 것을 단순화한다. 따라서 안과 밖, 사건과 상황, 내부 주체와 외부 환경을 재빨리 파악할 수 있다. 극단적 단순화의 오류만 피할 수 있다면 모든 이론은 단순화 과정에서 꽃을 피운다. 단순화 과정에서 법칙을 발견하고 인간의 지성은 정교해진다. 새 개념을 구상하는 것은 분류의 또 다른 명명이다.

둘째, 분류는 우선순위를 부여한다. 중요한 것과 덜 중요한 것, 당장 급한 것과 덜 급한 것, 핵심과 변방을 구분해준다. 그와 동시에 버려도 되는 것, 생략해도 되는 것, 덜어내도 되는 것을 구별해준다. 삶에서 모든 선택은 우선순위를 가리는 행위다.



셋째, ‘인생 100세대’라는 말이 나올 만큼 길어진 삶을 도전할 것과 집중할 것 위주로 재편성할 때 분류가 도움이 된다. 본인의 주체적 역량이 뛰어나다면 인생 이모작, 삼모작까지 가능하다. 50대까지 인생 일모작을 완료했다면 남은 삶을 재분류해 인생 이모작에 돌입하는 계획을 세워야 한다. 분류는 삶의 기회와 선택을 늘려준다. 실패했어도 다시 일어설 수 있게 해준다.

나누고 분류해야 세상이 보인다




주간동아 803호 (p116~116)

김용길 동아일보 편집부 기자 harris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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