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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밀주 위스키 한잔 하실래요?”

북미 소형 양조장 금주법 시대 위스키 잇따라 출시…버거와 치킨 빵에서도 ‘향수 마케팅’

  • 밴쿠버=황용복 통신원 facebok@hotmail.com

“밀주 위스키 한잔 하실래요?”

“밀주 위스키 한잔 하실래요?”
“밀주(密酒)시대 위스키 맛을 아십니까?”

최근 미국에는 20세기 초 ‘금주법(禁酒法·Prohibition)’ 시절에 몰래 팔았던 위스키 맛을 재현했다고 광고하는 소형 양조장이 잇따라 등장하고 있다. 8월 중순 오리건, 몬태나, 위스콘신에 이어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의 한 양조장에서 당시와 같은 밀조 위스키를 출시했다. ‘뒷골목 양조장(dark corner distillery)’이라 부르는 소형 양조장의 업주들은 “높은 도수와 함께 담백한 풍미가 일품이어서 정통 위스키와 전혀 다른 술맛을 즐길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위스키는 막걸리, 맥주를 만들 때처럼 보리나 호밀을 발효시켜 알코올 성분을 얻은 뒤 증류를 통해 도수를 높이고 나무통에서 숙성시켜 출하한다. 이에 비해 밀조 위스키는 구리로 만든 간이증류기로 값싼 옥수수에서 알코올을 내린 후 숙성 기간 없이 출하한다. 밀조 위스키는 주로 심야에 만들어 ‘달빛’이라는 뜻의 은어 ‘문샤인(moonshine)’이라고 불렀다. 품질은 당연히 조악했다. 정품 위스키는 알코올 농도가 40%가량에 황갈색이지만, 밀조 위스키는 부피를 줄이려 도수를 올렸기 때문에 알코올 농도가 50% 안팎에 달했다. 숙성 기간이 없다 보니 색깔은 무색.

스픽이지에서 마시던 문샤인

성인으로서 밀조 위스키를 마셨던 마지막 세대는 현재 100세 가까이 됐다. 그들 가운데 상당수가 ‘목소리 작게’라는 뜻의 은어 ‘스픽이지(speakeasy)’라고 부르던 불법 주점에서 홀짝홀짝 들이키던 문샤인을 추억한다. 그들은 끈적끈적한 재즈가 흐르던 술집에서 한잔의 문샤인을 통해 청춘의 고민과 불안을 달랬다. 당시 문샤인 악덕 제조업자들은 위스키 도수를 높이려고 메틸알코올을 섞었고, 그런 독한 문샤인을 마셔서 실명하거나 목숨을 잃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이런 위험에 아랑곳하지 않은 채 은밀히 스픽이지에 드나들었다.



미국 금주법의 뿌리는 19세기 유럽에서 벌어진 ‘절주(節酒)운동(temperance movement)’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유럽 각국은 산업혁명 이후 도시의 급격한 인구 증가에 따른 음주와 폭력 문제로 골머리를 앓았다. 알코올 중독자와 가정폭력이 급증하자 당시 유럽 교회는 ‘술 적게 마시기 캠페인’을 벌였다. 이것이 절주운동의 시작이다.

“밀주 위스키 한잔 하실래요?”

밀주시대는 영화 ‘대부’의 배경으로 등장했을 만큼 미국 역사상 관료 부패가 가장 심각했다.

20세기 초 미국 각 주도 다양한 형태로 술 제조와 판매를 규제하는 법을 만들었다. 1919년 마침내 미국 연방의회가 전국에 적용하는 강력한 금주법을 제정했다. 술 제조 및 판매, 음주 풍속에 관한 규정은 각 주가 정했기 때문에 연방의회는 금주법을 시행하기에 앞서 개헌까지 단행했다.

미국에서 금주법이 시행되면서 술의 상업적 생산과 유통은 물론, 수입 판매도 전면 금지됐다. 가정에서 소량의 과일주를 담그는 것은 허용했지만, 상업적 양조장과 증류 공장은 모두 문을 닫았다. 그러나 금주법은 처음부터 무리수였다. 지하에서 밀조 위스키가 대량으로 제조돼 유통 및 소비됐고, 캐나다에서 만든 위스키도 대거 밀수입됐다. 기존의 술집은 다방으로 이름을 바꾼 뒤 커피와 음료수를 판매한다고 눈가림한 채 밀주를 팔았다. 캐나다에서도 각 주에서 금주법을 시행했지만, 미국과 달리 수출용 및 의료용 술 제조는 허용해 양조업체들이 문을 닫진 않았다. 오늘날 캐나다 위스키의 양대 브랜드 가운데 하나로 ‘오비 씨그램’을 통해 한국에 진출한 시그램(Seagram) 역시 당시 금주법 시절 미국 수출로 엄청난 돈을 벌었다.

밀조 또는 밀수된 술의 유통채널을 장악한 알 카포네를 비롯한 갱단은 지하경제를 키우고 주무르며 세력을 키워나갔다. 갱단은 또한 총으로 어르고 돈으로 달래면서 밀주단속반, 경찰, 세관원을 무력화시켰다. 밀주시대는 영화 ‘대부’의 배경으로 등장했을 만큼 미국 역사상 관료 부패가 가장 심각했다.

금주법은 시행 13년 만에 전격 폐기됐다. 미국 경제가 대공황기에 접어들었고, 금주법이 순기능보다 역기능이 크며, 술 제조를 합법화해 일자리와 세수를 늘리는 것이 국가 이익에 도움이 된다는 논리가 힘을 얻었기 때문이다. 가톨릭도 금주법 폐기를 지지했다.

사실 금주법 제정 배경에는 미국 사회가 타락했다고 본 보수 지도층의 경계심이 자리했다. 그들은 젊은이가 ‘난잡한’ 재즈 음악에 열광하고, 여성은 ‘정숙함’을 모른다고 개탄하면서 그런 여성을 ‘펄럭거리는 여자’라는 뜻의 ‘플래퍼(flapper, 한국에서는 일본식 발음인 후라빠로 통용)’라고 불렀다. 한편으로 제1차 세계대전 기간 중 유럽에 퍼진 허무주의가 젊은 작가 헤밍웨이와 피츠제럴드 등을 통해 유입되고, 대도시로 몰려든 가난한 유럽 이민자 때문에 미국 가치관이 설 자리가 없어진다고 우려했다. 당시 미국 주류인 앵글로색슨교도들은 가톨릭을 믿던 아일랜드계 이민자와 유럽 출신들을 천민으로 여겼다.

인터넷에 떠도는 문샤인 제조법

“밀주 위스키 한잔 하실래요?”
요즘에는 문샤인 제조법을 인터넷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주로 젊은이들이 호기심으로 집 안에 간단한 장비를 갖추고 문샤인을 제조해 마신다. 문샤인이 정통 위스키보다 비싸지만 젊은이들은 몰래 만드는 재미와 취기가 빨리 오르는 매력에 빠져든다. 지금도 미국에선 각 가정에서 포도주 등 발효주를 소량으로 제조하는 것은 무방하지만, 증류주를 만드는 것은 불법이다.

금주법 시절 정부 눈을 피해 몰래 마셨던 문샤인의 부활은 아이러니인 동시에 향수를 자극한다. 한국 음식점이 극성스럽게 ‘할매’ ‘원조’ ‘재래’를 내세우는 이유도 향수 마케팅을 통해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의도다. ‘할매 산업’ 흐름은 북미지역도 예외가 아니어서 ‘할아버지 버거(Grandpa‘s Burger)’ ‘교회 마당 치킨(Churchyard Chicken)’ 같은 메뉴나 체인점이 곳곳에서 눈에 띈다.

버거와 치킨뿐 아니라, 19세기 캘리포니아 골드러시 도시에서 태어난 토스트용 ‘사워도우(sourdough)’ 빵도 비싸게 팔린다. 당시 골드러시 도시는 생필품이 귀했기 때문에 금 채굴꾼들은 이스트를 아끼려고 빵을 구울 때 반죽 일부를 남겼다가 이튿날 새 반죽에 이스트 대신 섞었다. 이렇게 만든 빵은 딱딱하면서 질기고 맛도 시큼해 ‘신 반죽’이라는 뜻의 사워도우라고 불렀다. 궁기가 만들어낸 이 빵이 한국의 꽁보리밥처럼 별미가 된 것도 옛 맛에 대한 북미인의 향수가 작용한 까닭이다.



주간동아 803호 (p102~104)

밴쿠버=황용복 통신원 facebok@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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