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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북한 女子 김옥

난, 왕의 女子 김옥이다

김정일 러시아 방문 그림자 수행…권력 소용돌이 한복판서 시선 집중

  • 황일도 기자 shamora@donga.com

난, 왕의 女子 김옥이다

난, 왕의 女子 김옥이다
혹자는 “권력의 화신”이라고 말한다. 절대자의 머리맡에서 나라를 움직이는 황제의 후궁에 빗대기도 한다. 또 다른 사람은 “날로 강경해지는 군부에 맞서 천안함 격침을 반대한 평양 권부 유일의 온건파”라고도 말한다.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네 번째 부인으로 알려진 김옥(47) 국방위원회 과장. 5월 중국 순방에 이어 이번 북·러 정상회담에도 동행한 그의 대외활동을 두고 언론은 다양한 추측과 분석을 쏟아냈다.

1964년생으로 평양음악무용대를 졸업한 것으로 알려진 김옥은 왕재산경음악단에서 활동하다 김 위원장의 눈에 들어 1980년대 초반부터 서기실(비서실) 과장으로 근무하며 가까운 거리에서 그를 보좌해왔다. 수행비서 일에 간호사 업무까지 겸하다 아내가 된 셈. 일부 탈북 관료는 평양음약무용대가 아니라 ‘기쁨조 양성학교’로 알려진 금성고등중학교 출신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두세 번 들은 노래를 반주할 정도로 피아노 실력이 뛰어났다는 회고를 감안한다면 음악을 전공했음은 분명한 듯하다.

김 위원장을 수행하는 그의 모습을 처음으로 확인할 수 있는 자료는 1992년 평양에서 발간한 사진집 ‘우리의 지도자’에 실린 1988년 사진이다. 그의 아버지가 북한 비자금 관리의 핵심이라는 설이 있지만, 정보당국자들은 “사실이 아니라고 본다”며 고개를 가로젓는다. 정통한 배경 설명이 없다는 것은 오히려 평범한 집안 출신일 공산이 크다는 의미로 해석한다. 바닥에서 출발해 자기 힘만으로 퍼스트레이디 자리에 오른 가장 드라마틱한 사례라는 뜻이다.

최근 수년간 탈북한 관료들과 김 위원장의 요리사로 일한 일본인 후지모토 겐지 씨의 회고, 북한 권력 변화를 관찰해온 전문가와 전·현직 당국자의 설명을 기반으로, 그동안 평양에서 이어진 권력싸움을 김옥의 시각에서 팩션(faction) 형식으로 구성했다. 팩션이란 사실을 기반으로 하되 확인할 수 없는 부분은 개연성 높은 가상으로 다루는 기법을 말한다. 따라서 이 기사는 엄밀하게 말해 전통적 의미의 보도기사는 아니다. 등장인물과 그들 사이의 관계는 모두 사실과 정보에 근거했으며, 특히 해설 부분에서 제시한 자료와 분석은 모두 실제의 것이다. 하지만 시나리오 부분에서 이들 사이에 벌어진 사건과 대화는 가상이다.

난, 왕의 女子 김옥이다

1992년 평양에서 발간한 사진집 ‘우리의 지도자’에 실린 사진. 김옥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수행하는 듯한 모습으로 사진 오른쪽에 서 있다(위). 왼쪽 사진은 이를 확대한 것이다.

#1 “기억해둬, 너는 내가 아니라는 걸”



한순간이었다. 함성이 드넓은 김일성광장의 하늘을 찢을 듯 요동치는 데는 1초도 걸리지 않았다. 2만여 군인과 인민의 시선이 향하는 단 한 사람, 청년 김정은. 창건 65주년을 맞이한 인민군대를 향해 그가 손을 들어 거수경례를 붙이는 그 짧은 시간, 그녀는 자신이 인생의 한 고비를 넘어섰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동시에 그것은 공화국 역사의 새로운 페이지였다.

“많이 남진 않았어. 그렇지만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주석단 기둥 뒤에 몸을 감추고 정은의 무표정한 얼굴을 훔쳐보던 그녀의 머릿속에 왜 그 말이 스쳐 지나갔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2003년 어느 겨울, 위원장이 직접 봐야 할 비준 문건을 함께 추리던 고영희가 뜬금없이 던진 한마디. 병세가 완연해지던 고영희는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는 말로 그녀와 위원장의 관계를 넌지시 짚어 물었다. 하늘이 노래질 듯한 긴장, 그리고 침묵. 새삼 부인해봐야 아무 소용없다는 것을 두 사람 모두 알았다.

“나는 너에게 야심이 없다는 걸 안다. 나는 어차피 오래 못 갈 거라는 사실도 알고. 누군가 이 자리를 메워야 한다면 그건 너일 수밖에 없어. 그렇지만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야. 이제부터 모두가 널 지켜볼 게다. 뜻하지 않은 욕심이 네 머리 어느 구석에라도 자리 잡는 순간 모든 게 끝이야. 기억해둬, 너는 내가 아니라는 걸.”

쇠바늘처럼 무서운 말을 하는 동안, 고영희는 한 번도 그녀를 쳐다보지 않았다. 고개를 들지 못했지만 알 수 있었다. 지나온 10여년 세월, 위원장의 큰아들 정남을 내치고 자신의 아들을 공화국의 다음 지도자로 만들어내려고 사선(死線) 위를 걸어온 고영희의 말에는 천하만큼 무거운 회한이 담겨 있었다. 시간을 가득 메운 음모와 기만의 가면극을 남겨두고 떠나야 하는 이의 목소리였다.

문득 정신을 차린 그녀의 눈앞에서 얼굴 가득 20대의 젊음이 빛나는 정은이 인민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한 발짝 뒤로 물러선 위원장의 검버섯이 아침 햇살을 받아 유난히 그녀의 신경을 자극했다. 떠나간 사람의 아들, 그리고 이제 시작될 그의 시대. 그 순간 그녀는 다시 한 번 되뇌었다.

‘많이 남진 않았어. 그렇지만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김옥이 맡아온 기술서기라는 직책은 우리로 치면 하급기술직에 해당한다. 정책결정 등 핵심임무를 수행하는 자리는 아니라는 뜻이다. 김 위원장의 스케줄 관리나 건강 상태에 따른 업무량 조정, 지방 출장 일정 선별이 애초 주된 임무인 것으로 알려졌다. 해외 순방 시에는 현지 일정에서 그의 동선을 확인하고 곁에서 수행하는 일이 그녀가 맡은 임무다.

그러나 공식 설명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영역이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후지모토 씨가 2008년 12월 세종연구소 정성장 수석연구위원과의 인터뷰에서 전한 일화가 대표적이다. 만찬장이나 도박테이블에 앉을 때 보통 김 위원장의 왼편에 고영희가 앉고 그다음으로 김옥이 자리 잡곤 했지만, 고영희가 참석하지 못하면 김옥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는 것. 한마디로 “이미 그때부터 보통 비서가 아니었으며, 가족이나 다름없는 존재였다”는 설명이다.

고영희가 때론 김옥과 함께 팩스 수신 서류를 정리해 김 위원장에게 상신하곤 했다는 회고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고영희가 살아 있던 시절부터 김 위원장 보좌 임무를 나눠 맡았던 셈이다. 당 간부들이 김옥을 ‘옥이 동지’라고 불렀던 점도 마찬가지다. 북한에서 ‘동지’라는 말은 윗사람에게 쓰는 표현이며, 원래대로라면 ‘김옥 동지’로 불러야 옳다는 것. 공식 직급은 낮지만 어떻게든 존중해야 할 필요가 있는 독특한 위상을 감안해 고안해낸 고육지책이 ‘옥이 동지’인 셈이라고 정 위원은 분석했다.

이렇듯 묘한 관계에도 생전의 고영희와 김옥이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는 후지모토 씨의 평가는 ‘지켜야 할 선을 지킬 줄 아는’ 김옥의 성격을 방증한다. 그가 김 위원장과의 관계를 믿고 다른 생각을 품었다면 고영희가 그를 내버려뒀을 리 없는 까닭이다. 권력정치에 능했던 고영희의 성격과 능력을 감안할 때 조금이라도 의심스러운 대목이 있었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김 위원장의 곁을 떠나게 만들었으리라는 데 대부분의 당국자와 전문가가 동의했다.

최근 일각에서는 “김정은이 김옥의 아들일지도 모른다”는 주장을 제기하기도 했지만, 이 또한 앞서의 정황을 감안하면 개연성이 떨어진다. 만약 그랬다면 고영희의 눈에 정은은 자기 아들인 정철의 후계자 지위를 위협하는 가장 무서운 경쟁자였다. 그러나 실제로 정철과 정은은 모두 비슷한 시기 유럽에서 유학생활을 하는 등 적자(嫡子)로서의 성장 과정을 함께 거쳤고, 김정남이 사실상 해외 유배에 처해 권력에서 멀어짐으로써 ‘안전이 확보된 후에야’ 평양으로 돌아왔다. 생전의 고영희가 정철과 정은을 함께 보호했다는 사실만 봐도 두 사람이 모두 그녀의 아들임을 알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평가다.

#2 온 세상이 하얗게 변하는 순간

난, 왕의 女子 김옥이다

2010년 5월 중국 CCTV가 방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원자바오 총리의 회담 현장에 김옥으로 추정되는 여성(왼쪽)이 배석했다.

영원처럼 길게 느껴졌지만, 돌이켜보면 2년 남짓에 불과하다. 뒷목을 부여잡고 천천히 구겨지듯 쓰러지던 위원장의 얼굴. 세상을 온통 하얗게 만들었던 그 고통의 시간. 병상에 누운 그를 두고 이 나라에서 가장 뛰어나다는 의사들은 아무 일도 하지 못했다. 머나먼 유럽 땅에서 의사가 날아오고 수술을 진행하며 그가 깨어나기를 기다리는 동안, 그녀는 사회주의 조국의 인민으로선 해서는 안 될 숱한 기도를 되뇌었다.

“누가 온다 해도 내 허락 없이는 병상에 들이지 말게. 지금이 어떤 상황인지는 말하지 않아도 잘 알겠지? 불충한 무리가 무슨 짓을 저지를지 상상도 할 수 없어. 자네의 충성심만 믿겠네.”

착각일까. 충성을 말하는 김경희의 입술 위로 장성택의 차가운 눈빛이 겹쳐 보였다. 위원장이 잠든 사이, 두 사람은 공화국의 운명을 한 손에 쥐고 있었다. 그녀는 되묻고 싶었다. ‘김경희 동지가 이러시는 건 위원장에 대한 충성심 때문입니까, 아니면 세상을 갖고 싶어서입니까.’ 물론 입을 열어 그 어리석은 말을 꺼낼 수는 없었다. 지금 그들을 믿지 않으면 또 누구를 믿는단 말인가.

믿음. 그랬다. 위원장은 그녀를 믿었다. 때로는 눈이 되어, 때로는 손이 되어, 때로는 목소리가 되어 자신과 함께 할 것이라 믿었다. 회의석상에서 그녀의 생각을 묻는 위원장의 질문은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지 않느냐’는 물음의 다른 표현일 뿐이었다. 최소한 그녀는 그렇게 믿었다. 세상 모두가 그 사실을 알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이제 더는 예전의 그가 아니었다. 자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불안해하는 한 명의 늙은이일 뿐이었다.

침상에서 몸을 일으킨 그가 “정은을 후계자로 만들겠다”고 말하던 순간, 그녀는 그가 지독하게도 원망스러웠다. 왜 이 이야기를 나에게 하는가. 다른 누구도 아닌 내게 왜 가장 먼저 이 이야기를 하는가. 불어닥칠 피바람과 칼부림의 한판을 왜 가장 먼저 예감하게 만드는가. 그 뒤 2년의 시간 동안 모든 예감이 현실이 돼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그녀는 위원장을 원망했고, 공화국을 원망했으며, 자신의 운명을 원망했다.

이제 모든 것이 정리된 것일까. 해맑은 얼굴로 자신을 올려다보며 “옥이!”를 외치던 어린 정은의 눈동자를 되새기며 대견스러워만 하면 되는 것일까.

고영희와 김옥의 기묘한 공존관계는 2004년 8월 고영희가 병으로 사망함으로써 무너진다. 일부 전문가는 김 위원장과 김옥이 내연관계에 접어든 시기도 고영희가 사망한 이후였으리라고 본다. 분명한 것은 이후 김옥의 위상이 급속히 달라졌고, 평양의 권력핵심 인사들도 그를 새로운 차원에서 대접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남측 정보당국이 ‘옥이 동지’라는 여성의 존재를 주목한 것 역시 이 시기부터다.

김옥의 위상을 끌어올린 또 다른 계기는 2008년 8월 김 위원장의 뇌졸중 발작이다. 이후 병상에 누워 칩거하던 그를 간호하면서 사실상 ‘문고리 권력’을 잡았다는 평가가 쏟아져나오기 시작한 것. 이후 김 위원장이 보좌진에 대한 의존도를 높인 것 역시 이러한 분석에 힘을 실었다. 서기실의 발언권을 폭넓게 인정하던 김일성 주석과 달리 김 위원장은 정책결정 과정에서 자기 판단을 앞세우곤 했지만, 발병 이후에는 주변부의 영향력이 눈에 띄게 커졌다고 정보당국 관계자들은 전한다. 이들은 또한 최근 수년간 북한의 대남·대외 정책이 예측 불가능할 정도로 혼란스러운 이유 역시 그 와중에 벌어진 충성경쟁 탓이라고 설명한다.

특히 눈여겨봐야 할 대목은 김옥이 수행비서 구실을 넘어서는 모습을 몇 차례 보여준 바 있다는 점이다. 정보당국은 2000년 10월 조명록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이 특사 자격으로 미국을 방문했을 때 김옥이 김 위원장의 특명을 받아 국방위 과장 자격으로 동행했고, 2005년 7월 김 위원장이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을 만나는 자리에도 동석했다고 판단한다. 당시 참석했던 여인이 과연 김옥인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지만, 대외·대남 정책 업무에도 일정 부분 관여한 일이 있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쉽게 말해 ‘김 위원장이 가장 신뢰하는 사람’ 자격으로 그를 대신해 상황을 관찰한 뒤 ‘직보’하는 임무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에 근거해 김 위원장의 와병 이후 후계체제 구축 과정에서 김옥이 이른바 ‘문고리 권력’의 핵심으로 자리매김했다는 관측은 설득력이 약하다. 김 위원장의 누이인 김경희 당 경공업부장과 매제인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이 관리체제의 중심이었다는 게 정설인 까닭이다. 권력의지가 강하고 카리스마를 갖춘 이 부부가 병상의 김 위원장을 대신해 이 무렵의 북한을 책임졌던 셈이다. 뒤집어 말하자면 김옥이 여전히 김 위원장의 곁에 머문 것 또한 이들의 양해 혹은 합의에 따라 이뤄진 것이라고 보는 편이 더 설득력 있다. 고영희와 김옥 사이에 맺어졌던 ‘선 지키기’의 묵계가 이제는 이들 부부와의 그것으로 대체된 셈이다.

#3 이것이 만약 함정이라면

그녀의 손끝이 부들부들 떨렸다. 한참이나 뜸을 들인 이유가 무엇인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그렇듯 오랜만에 만나자고 할 때 이미 알아차렸어야 했다. 목 끝에 와 걸린 비수처럼 싸늘한 기운이 온몸으로 퍼져 나갔다. 이 얘기를 누가 들을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그게 지금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옛날 얘기나 하며 웃자고 불러대서는 감히 이런 소리를 해? 내가 고발이라도 해야 정신을 차리겠어?”

듣는 이가 누구든 진심을 의심할 수 없도록 온 힘을 다해 내뱉은 소리였다. 10대 어린 시절 음악단에서 함께 생활하다 39호실 젊은 간부의 눈에 들어 그의 여자가 된 옛 동료. 그 간부가 한때 해외에 머물던 정남과 소식을 주고받다 가혹한 ‘혁명화 교육’을 받았다는 사실은 알았지만, 여전히 그런 생각을 하리라는 상상은 미처 하지 못했다.

아니, 어쩌면 이 역시 함정은 아닐까. 퍼뜩 또 다른 생각이 스치고 지나간다. 그녀의 속내를 들여다보려고 정은의 측근 누군가가 만든 덫일지도 모르는 것이다.

“위원장이 죽고 나면 정은 동지의 사람들이 네 아들에게 무슨 짓을 하라고 부추길지 가늠할 수 있나. 아무리 네가 정은을 오래 돌봤대도, 정녕 온 마음으로 신뢰할 수 있나. 너와 네 아들의 안전을 보장해줄 수 있는 사람을 어떤 식으로든 도우면 그가 보답하지 않겠나.”

자리를 박차고 돌아온 그녀의 뇌리를 떠나지 않는 옛 친구의 말은, 요약하자면 그런 의미였다. 이제는 모든 것이 끝났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믿는 사람의 말이었다. 정은은 물론 위원장에게도, 공화국에도 불경이자 반역일 수밖에 없는 무서운 말이었다. 그녀의 머릿속으로 빠른 계산이 스쳐 지나갔다.

정말로 정은의 측근 누군가가 판 함정이라면, 지금 위험한 것은 바로 그녀다. 그렇다고 고발한다면, 그리고 함정이 아니라면, 우정을 믿었던 옛 친구는 죽음을 피할 수 없다.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식은땀이 곤죽처럼 머리칼을 타고 흘러내렸다.

‘권력핵심에 자리하지만 권력을 탐하지 않는 사람.’ 전문가들의 분석을 종합하면, 김옥의 모습은 휘몰아치는 소용돌이의 파편이 자신에게 튈 것을 두려워하는 인물에 가깝다. ‘새로운 권력핵심’ 혹은 ‘사실상의 퍼스트레이디’라는 내외신의 호들갑 섞인 보도에 상당수 당국자와 전문가가 동의하지 않는 이유다. 그러나 이러한 김옥과 권력의 관계를 송두리째 뒤바꿀 수 있는 변수가 남아 있다.

흥미로운 소문 가운데 하나는 그가 2009년 김 위원장과 정식으로 결혼했으며, 두 사람 사이에 일곱 살짜리 아들이 있다는 것이다. 올 2월 자유선진당 박선영 의원이 “중국 대북 정보 계통의 고위층 인사에게서 들었다”며 밝힌 이 같은 소식에 대해 정보당국 관계자들은 “확인된 바 없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이를 쉽게 무시할 수 없는 이유는 아들의 존재가 향후 김옥의 행보와 관련해 새로운 도화선 구실을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소문 속 아들의 어린 나이를 감안한다면 김정은 후계체제 구축에 당장 위협적인 존재가 될 가능성은 극히 적지만, 권력승계 과정이 장기화할 경우에는 이야기가 달라질 수 있다. 특히 그 과정에서 권력으로부터 배제된 ‘불만 세력’은 그를 활용해 세력 역전의 기회를 노리려 할 개연성이 충분하다. 그동안 북한의 권력승계에서 다른 형제를 사실상 유폐하는 일련의 패턴을 반복해온 것은 바로 이 점을 염려해서다.

‘곁가지 숙청’이라 부르는 이 같은 정리 작업의 칼날이 자신의 아들에게 향할 공산이 커지면 커질수록, 김옥 처지에서는 이를 가만히 두고 볼 수만은 없는 이유도 커지는 셈이다. 권력 향방에 대한 김옥의 선택 역시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거꾸로 현재의 후계체제를 유지하려는 세력은 그의 ‘변절’ 여부를 예의주시할 것이다. 2009년 초 국가안전보위부장에 임명된 것으로 알려진 김정은이 권력층 인사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해 위험요소를 차단하는 작업에 심혈을 기울인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 그동안 김옥이 유지해온 ‘아슬아슬한 거리 두기’를 내버려두지 않을 갈등의 파도가 하루가 다르게 날카로워지는 것이다.

#4 “이분이 곧 공화국이다, 이분이 곧 나다”

난, 왕의 女子 김옥이다

8월 21일 러시아 극동지역의 부레야 발전소를 찾아 방명록에 서명하는 김정일 국방 위원장 뒤에서 김옥이 서명을 돕고 있다.

가끔 현실의 자신이 믿기지 않을 때가 있다. 오늘이 그런 날이다. 아침부터 계속된 일정. 블라디보스토크 바닷가를 끼고 달리는 열차 차창 너머로 쪽빛 물결을 언뜻언뜻 엿보는 동안, 그녀는 몽롱한 듯 현실감각이 없었다. 바다를 처음 봤던 어린 시절의 나와 지금의 나는 과연 같은 나일까. 왠지 열차에서 내려 바닷물을 손으로 만지면 답할 수 있을 듯했다. 지금이 그 물음에 답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인 것만 같았다.

“가야 해. 임자가 자꾸 같이 다녀야 해. 그래야 나중에….”

떠나오기 전날 밤 “안 가면 안 되겠느냐”는 그녀의 물음에 답하다가, 위원장은 끝내 말을 아꼈다.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녀의 위상이 조금이라도 높아져야 언젠가 혹은 내일 당장이라도 자신이 죽어도 그녀가 살아남을 공산이 크다는 사실을. 권력의 비정함을 온몸으로 실천해온 위원장이 그걸 모를 리 없었다. 자신이 저질렀던 일을 아들이 하지 않길 기대하는 것은 어리석은 바람일 뿐이라는 점도 마찬가지였다.

발전소라고 했다. 그녀에겐 중요하지 않았다. 극동러시아 최대 규모라고 했다. 그녀에겐 중요하지 않았다. ‘부레야 자연을 정복한 로씨야 인민의 힘은 위대하다’, 위원장이 방명록에 써내려 갔다. 그녀에겐 중요하지 않았다. 그녀에게 중요한 건 서명을 위해 파란색 사인펜을 잡은 위원장의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는 사실뿐이었다. 아무도 눈치 챌 수 없는 찰나의 일이었지만, 옆자리에 선 그녀는 알 수 있었다. 오로지 그녀만 알 수 있었다. 그 순간 그녀의 얼굴이 흙빛으로 변했다.

‘이분이 곧 공화국이다. 이분이 곧 나다. 이분이 곧 내 아들이다.’ 송곳으로 허벅지를 내리찍는 심정으로 그녀는 다시 스스로를 다잡는다. 한가로운 감상에 빠져 허우적댈 때가 아니다. 이것은 삶과 죽음을 가르는 비정한 길목이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가 버틸 수 있도록 해야만 지금의 평화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바다에 대한 생각 따위는 그 후에 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과연 그럴 때가 올까.’ 문득 뒷목을 때리는 후끈한 열기. 한밤의 선잠을 깨우는 불길한 예감 한 자락처럼, 대륙의 여름바람이 묘하게 묵직했다.

이렇게 놓고 보면 김정은 권력승계가 안정적으로 진행되는 것이 김옥에게는 가장 이상적인 시나리오다. 이 과정을 거쳐 자신은 ‘아버지의 여인’으로서 안전과 위상을 존중받고, 아들이 있다면 그 또한 새 지도자의 동생으로서 충분한 배려와 축복을 받으면서 성장할 수 있다. 후계체제가 흔들리고 권력의 불안정이 커지면 그녀와 그의 아들을 주목하는 이들도 늘어날 테고, 그만큼 위험한 상황이 닥칠 수도 있다는 것을 뜻한다.

결국 키워드는 김 위원장의 수명이다. 그가 5년 이상 최소한의 건강을 지키며 권력을 유지한다면 후계체제도 탄탄한 기반을 갖출 것이라는 데 전문가 대부분은 동의한다. 김옥으로선 자신과 아들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모든 노력을 기울여 그의 건강을 챙길 수밖에 없는 셈이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김 위원장의 해외 순방에 동행하면서 주목받는 최근의 상황은 그녀에게 큰 부담일 수 있다. 가팔라지는 힘의 흐름에 휩쓸려 자신의 미래를 자기가 선택할 수 없는 형국. 젊은 시절 쇼팽을 연주했을 한때의 피아니스트는 이제 지구상에서 가장 첨예한 권력싸움의 정점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이어가는 중이다. 20대 무렵의 생기발랄한 얼굴과 달리 최근 사진 속에서는 전혀 표정을 찾을 수 없는 이유가 무엇인지 짐작할 수 있을 듯하다.



주간동아 802호 (p36~40)

황일도 기자 shamo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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