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01

2011.08.22

범현대가 5000억 원 통 큰 기부

양극화 해소 아산나눔재단 설립…한국의 ‘워런 버핏’ 새로운 이정표

  • 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

    입력2011-08-22 10: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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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범현대가 5000억 원 통 큰 기부

    8월 16일 아산나눔재단 설립 기자회견장에 범현대가 그룹 사장단이 대거 참석했다.

    미국 버크셔 해서웨이 워런 버핏 회장에겐 두 개의 별명이 있다. 대중에게 잘 알려진 대표적인 별명은 그의 통찰력 있는 투자실력을 빗댄 ‘투자의 귀재’다. 또 다른 하나는 바로 ‘존경받는 부자’다. 그는 2006년 게이츠재단에 버크셔 B주식 1000만 주 기부를 약속한 이후, 해마다 거액의 지분을 내놓는다. 지금도 빌 게이츠와 함께 전 세계 부자를 만나 기부를 권하는 등 기부문화 확산에 앞장서고 있다.

    정몽준 의원 2000억 원 사재 출연

    이런 버핏의 ‘통 큰 기부’는 한국 부자들에게 많은 점을 시사한다. 돈은 버는 것 못지않게 제대로 쓰는 것도 중요하다는 점을 버핏은 몸소 실천해 보인다. 그러나 한국에는 “졸부는 많은데 진정한 거부는 없다”는 얘기에 수긍하는 이가 많다. 돈 벌기에 급급하고, 그렇게 번 돈을 온갖 불법과 편법을 동원해 자식에게 물려주는 일이 한국 사회의 부자와 재벌의 자화상이었던 것이다.

    물론 한국 부자가 기부를 안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기부가 사재를 출연하기보다 회사 돈으로 생색내기에 그치는 수준이다. 이런 점에서 범(汎)현대가(家)가 사재를 모아 ‘아산나눔재단’을 설립한다는 얘기는 신선한 충격을 준다. 아산나눔재단 준비위원회(이하 재단준비위)는 8월 16일 아산(峨山) 정주영 회장의 10주기를 맞아 아산나눔재단을 설립한다고 발표했다.

    아산나눔재단의 설립 기금은 총 5000억 원. 현대중공업그룹을 비롯해 KCC, 현대해상화재보험, 현대백화점그룹, 현대산업개발, 현대종합금속 등 6개 사가 2760억 원을 출연했다. 주목할 것은 창업주 가족이 선뜻 거액의 사재를 내놓았다는 점이다. 한나라당 정몽준 의원이 2000억 원(현금 300억 원, 주식 1700억 원)을 출연했으며, 그 밖에 KCC 정상영 명예회장, 현대백화점그룹 정몽근 명예회장, 현대산업개발 정몽규 사장, 현대해상화재보험 정몽윤 회장, 현대종합금속 정몽석 회장, KCC 정몽진 회장, KCC 정몽익 사장, 현대백화점그룹 정지선 회장 등이 240억 원을 내놓았다.



    범현대가 5000억 원 통 큰 기부

    사재 2000억 원을 출연한 한나라당 정몽준 의원.

    재단의 설립 배경도 눈에 띈다. 상당수 대기업은 그룹의 비자금 수사 같은 불미스러운 일이 마무리된 뒤 여론 무마용으로 재단을 설립했다. 하지만 아산나눔재단은 창업자 유지를 계승하는 동시에 양극화 해소를 위한 나눔 복지 실현을 목표로 자발적으로 설립하는 것이다. 고(故) 정주영 회장의 개척 및 도전정신을 사회에 전파하려는 목적도 있다.

    재단준비위 관계자는 “고 정주영 회장은 복지라는 단어가 생소한 1977년부터 현대건설 보유 주식 50%를 출연해 아산사회복지재단을 설립했다”고 강조했다. 실제 아산사회복지재단은 소외 지역에 병원을 세우고, 어려운 학생에게 장학금을 주는 사회복지사업을 지원하면서 ‘함께 잘사는 공동체 구현’에 크게 이바지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현대가는 운영은 재단에 일임하고 일절 관연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아산나눔재단은 존경받는 사회 인사를 초빙해 ‘재단이사회’를 구성하고, 각 분야의 전문가로 꾸민 ‘자문위원회’와 경제 전문가들이 참여한 ‘기금관리위원회’를 통해 재단을 합리적이고 투명하게 운영할 계획이다.

    범현대가의 재단 설립에 대해 많은 사람이 “한국의 기부문화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며 높이 평가한다. 이를 계기로 ‘통 큰 기부’를 하는 한국의 ‘워런 버핏’이 다른 대기업에서도 나타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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