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덕통상 개성공장에서 여성 근로자가 K2 등산화를 만들고 있다.
“개성은 불황 무풍지대예요.”
이 대표가 웃는다. 그는 해군 중령으로 예편한 후 개성공단기업협회 사무국장으로 일하다 사업가로 옷을 갈아입었다. 북한에 맞서 바다를 지키던 군인이 북한을 상대로 돈 버는 기업가로 변신한 것.
4만6000명 넘는 근로자
“서울, 개성에 사무실이 있어요. 매주 이틀씩 개성에 갑니다. 남북관계가 좋아지면 북한에서 사업하려는 사람을 상대로 컨설팅도 할 겁니다. 젊은이에게 북한은 기회의 땅이 될 거예요.”
같은 날, 부산 강서구 송정동 녹산공단에 터 잡은 ㈜삼덕통상. 문창섭(61) 대표가 기지개를 켠다. 정오가 되려면 1시간 남짓 남았는데 벌써부터 몸이 파김치다.
“바이어와의 조찬으로 시작해 눈코 뜰 새 없이 바빴어요. 샘플 보내 달라, 일정 보내 달라 아침부터 정신없었습니다.”
기업 대표가 바쁘다는 건 공장이 잘 돈다는 뜻이다. ㈜삼덕통상은 개성공단에서 신발을 만든다. 개성 진출 기업 중 규모가 가장 크다. 이 업체가 고용한 북한 근로자만 2800명.
“개성공단이 불황 무풍지대인 까닭이 뭐냐고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습니다. 눈치 볼 곳이 많아서….”
개성공단은 남북관계 별천지다. 불황 무풍지대다. 냉랭한 남북관계에 아랑곳하지 않고 매출액, 생산액이 상승세다. 남북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폐쇄를 언급했는데도 근로자 수는 오히려 늘었다. 2009년 1월 4만 명에 못 미쳤으나 현재는 4만6000명이 넘는다.
문 대표는 개성공단이 남북 당국의 정치적 노리개가 돼서는 안 된다고 꼬집는다. 노동집약 산업을 운영하는 데 개성만 한 곳이 없으며, 남북 경협이 북한을 바꾸는 첩경이라고 믿는다.
㈜삼덕통상은 내로라하는 브랜드의 운동화를 주문자상표부착방식(OEM)으로 생산한다. ‘스타필드’라는 이름의 ‘삼덕통상 브랜드’ 운동화 수출량도 상당하다. 신발은 1980년대 부산을 먹여 살린 산업이다. 스타필드로 개성을 먹여 살리는 게 그의 꿈이다.
“한국에서 신발 부속을 만드는 회사가 4900곳입니다. 이들이 개성공단 덕분에 먹고살아요. 개성은 세계적 신발 단지로 성장할 조건을 두루 갖췄어요. 북측도 남측 도움을 받으면 베트남처럼 신발산업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부산이 그랬듯 개성도 신발로 먹고살 수 있어요.”
이명박 정부 출범 후 남북은 개성공단을 볼모 삼아 기세 싸움을 벌였다. 한국 정부가 개성공단과 관련해 회의적 시각을 내놓으면서 근로자 기숙사 건설을 중단했고, 북한 당국도 개성공단을 폐쇄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천안암 폭침과 연평도 포격을 거치면서도 개성공단이 잘나가는 까닭은 뭘까. 북한은 제조업 일자리가 턱없이 부족하다. 개성은 노동력 부족으로 한계에 부딪힌 한국 중소기업을 입맛 다시게 한다. 개성공단에서 옷을 만드는 L씨는 이렇게 말한다.
남과 북 쉽게 폐쇄 어려운 곳
“북한 근로자가 중국, 베트남 사람보다 솜씨가 좋아요. 20대 여성이 손재주가 뛰어난데, 우리 공장 근로자 대부분이 20대 여성이거든요. 20대 노동력을 한국에서 구한다? 어림없는 일이죠. 한국 정부나 북한 당국이 일방적으로 공단을 폐쇄할 수 없는 구조예요. 먹고사는 문제가 정치보다 힘이 셉니다.”
입주 기업이 북한에 내는 세금도 거의 없다. 북한 최고인민회의가 2003년 9월 ‘결정 1호’로 채택한 세금규정 29조는 이렇다.
“이윤이 나는 해부터 5년간 기업소득세를 면제한다. 그다음 3년간은 50%를 덜어준다.”
개성 진출 기업은 별도 법인 명의로 개성에서 공장을 운영한다. 한국 법인과 개성 법인이 서류상으로 거래해 개성 법인이 적자가 나게끔 회계를 관리한다. 값싼 노동력, 세제 혜택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셈이다.
북한 정권으로 흘러들어 김정일 집단의 체제 유지에 쓰이는 달러도 많지 않다. 1인당 평균임금 100달러(복지비 포함)에 4만6000명을 곱하면 북한으로 넘어가는 돈이 월 500만 달러가 되지 않는다. 또한 그중 상당 부분이 근로자에게 돌아간다. 중국이 나진·선봉, 황금평에 쏟아붓는 돈과 비교하면 새 발의 피다.
금강산 관광은 개성공단과 성격이 다르다. 북한에 ‘현금 원조’를 해주는 측면이 크다. 경제학 다수설은 독재국가에 대한 현금 원조 효용에 고개를 가로젓는다. 개발 지원과 달리 정치체제에 영향을 미치기 어렵고, 경제발전이나 제도 변화를 이끌기보다 엘리트 집단 지배력을 강화한다는 것. 사람이 굶는데도 체제 유지에만 혈안이 된 김정일 집단만 돕는 일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개성공단 근로자는 간식으로 받은 초코파이를 집으로 가져가 가족과 나눠 먹는다고 한다. 초코파이는 자본주의 맛이다.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 사건 때 북한 근로자는 일자리를 잃을까 봐 전전긍긍했다고 한다. 개성공단은 자본주의 맛을 퍼뜨리는 도구 구실을 한다.
북한 처지에서 개성공단이 문을 닫으면 근로자 4만6000만 명을 배치할 곳이 마땅치 않다. 북한은 개성공단을 문 닫을 생각이 없다. 북한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이종혁 부위원장은 최근 현대그룹에 보낸 메시지에서 이렇게 밝혔다.
“개성 공업지구는 북남 연계를 유지하는 유일한 고리다. 북과 남의 이익에 부합할 뿐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큰 관심사다. 우리는 개성 공업지구 활성화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북남관계가 악화했는데도 남측 기업이 요구하는 대로 인력을 보충해주고 있다. 개성 인구만으로는 인력을 보장하기 어렵다. 결국 다른 지역에서 노동자를 데려와야 해 기숙사 문제를 강조했던 것이다. 그런데 남측에서 기숙사 건설을 끌었다. 최근에 와서 변화가 있는 것 같다.”
개성공단은 남북관계 경색에도 풀가동하고 있다.
개성공단 입주 업체 오너들은 입조심을 한다. 개성공단을 풀가동하는 까닭이 뭐냐는 질문에 “이제야 그것을 알았느냐”면서 웃는다. 그러면서도 언론이 개성공단이 잘나간다는 사실을 보도하는 것을 꺼린다. 정부 눈치를 봐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개성공단 입주 기업이 예외 없이 잘나가는 것은 아니다. 개성공단기업협회 장상호 상무는 이렇게 말한다. 그는 통일부 관료 출신이다.
여전히 북한은 기회의 땅
㈜삼덕통상 문창섭 대표
지난해 5월부터 발효한 대북봉쇄정책(5·24조처)을 풀어야 한다는 주장이 보수진영에서도 힘을 얻는다.
개성공단에서 공장을 운영하는 K씨는 이명박 정부가 아마추어처럼 행동하면서 초코파이 혁명을 방해한다고 주장한다. 초코파이 혁명은 중동·북아프리카 국가의 재스민 혁명에 빗댄 것이다. K씨는 이렇게 말한다.
“돈은 힘이 셉니다. 자본주의는 철 지난 이념보다 강해요. 이명박 정부가 개성공단을 키웠으면 황해도, 평안도로 초코파이가 퍼져 나갔을 겁니다. 나는 뼛속까지 보수예요. 보수를 표방한 정부가 바보 같은 짓을 했어요.”
문 대표는 개성 진출 성공기를 쓰다가 접었다. 남북관계가 어긋난 탓이다.
“눈치 볼 곳이 많아 집필을 중단했어요. 시절이 좋을 때 다시 쓸 겁니다. 북한은 기회의 땅이에요.”
㈜개성 이 대표는 오늘도 초코파이를 싣고 개성으로 내달린다. 북한에서 초코파이가 매월 1억 개 넘게 팔리는 날이 올까. 그는 한국 젊은이가 북한에서 먹을거리를 찾아낼 그날을 기다린다. 조바심이 난다. 목이 빠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