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88

2017.05.17

커버스토리

개봉박두, 광화문 대통령

소통 상징성+업무 효율성 두 토끼 잡는다

  • 구자홍 기자 jhkoo@donga.com

    입력2017-05-15 10: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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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준비를 마치는 대로 지금의 청와대에서 나와 광화문 대통령 시대를 열겠습니다. 참모들과 머리, 어깨를 맞대고 토론하겠습니다. 국민과 수시로 소통하는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5월 10일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광화문 대통령 시대의 개막을 강조했다. 광화문 대통령은 2012년 대선 때도 공약한 내용으로, 이번 대선에선 캠프에 광화문대통령공약기획위원회를 꾸려 세부 내용을 준비할 만큼 강한 추진 의욕을 보였다. 대통령경호실장에 주영훈 광화문대통령공약기획위원회 부위원장을 임명한 것도 광화문 대통령 시대와 맥락이 닿아 있다. 주 실장은 노무현 전 대통령 재임 때 경호실 안전본부장을 지낸 전문 경호관으로, ‘광화문 대통령’ 시대를 위한 새로운 경호체제를 만들 것으로 보인다.



    불통에서 소통으로

    문 대통령이 광화문 대통령에 공을 들이는 이유는 무엇보다 과거 대통령의 ‘불통’ 이미지를 불식하기 위해서다.

    “(광화문 대통령은) 단순히 대통령 집무실을 청와대에서 광화문 정부서울청사로 옮긴다는 의미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국민과 함께하는 민주주의 시대를 열겠다는 의지다. 퇴근길 남대문시장에서 국민과 소주 한잔하며 불통의 시대를 끝내겠다.”



    4월 24일 광화문대통령공약기획위원회를 발족하며 문 대통령이 직접 한 말이다. 참여정부에서 비서관을 지낸 L변호사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원인이 ‘불통’이었는데, 그 같은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광화문에 대통령 집무실을 두고 청와대 관저에서 매일 출퇴근하는 대통령의 모습을 국민이 볼 수 있다면 관저 근무 관행에 따른 불필요한 오해도 없앨 수 있다. 세월호 7시간을 둘러싸고 제기된 의혹도 대통령이 어디에서 무엇을 했는지 대통령비서실장조차 속 시원히 밝히지 못한 것이 한 원인이었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가 벌어진 것도 접근이 철저히 차단된 청와대의 지리적 특성이 한몫했다. 경호만 따돌리면 아무도 모르게 드나들 수 있다는 점에서다.

    광화문 대통령은 소통하는 대통령이 되겠다는 상징적 의미 외에도 업무를 효율적으로 처리하는 데 기여할 공산이 크다. 대통령 집무실과 비서실이 멀리 떨어진 청와대 구조는 수시로 대면보고를 하는 것이 수월치 않기 때문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서면보고서를 읽다 이해가 되지 않으면 보고서를 작성한 비서관에게 직접 전화를 걸곤 했다. 그런데 전화만으로 충분치 않은 경우가 있다. 그럴 때는 비서관이 자료를 싸들고 대통령 집무실로 대면보고를 하러 간다. 그런데 거리가 500m나 돼 걸어가면 10분 넘게 걸린다. 그래서 청와대 근무 공간을 재배치해야 한다는 얘기가 참여정부 때도 있었다.”

    L변호사가 들려준 참여정부 대통령비서실 근무 시절 회고다. 그는 “당시 행정수도 이전 문제가 워낙 큰 현안이었고, 청와대가 행정수도로 갈 수도 있어 지금처럼 대통령 집무실을 광화문으로 옮기는 방안이 구체적으로 논의되지는 않았다”고 덧붙였다.

    대통령과 참모진의 근무 공간이 멀어 가장 불편을 겪는 이는 대통령비서실장이다. 대통령비서실장은 대통령을 집무실에서 만나 주요 일정을 조율하고 현안을 점검하면서 대통령으로부터 지시를 받는다. 이어 비서동에서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며 지시사항을 전달하고 의견을 모은다. 현안이 많은 경우 비서실장은 집무실과 비서동을 하루에도 몇 번씩 오가야 한다.

    이명박 정부 때 청와대 선임행정관으로 근무한 한 인사는 “비서실장에게는 기사 딸린 승용차가 지급되기 때문에 대통령 집무실까지 걸어가거나 자전거를 타고 가서 보고해야 하는 비서관, 행정관보다 처지가 나은 편이다. 그래도 먼 거리를 오가는 번거로움을 피할 수 없어 그만큼 비효율적이었다”고 말했다.

    영국 총리의 경우 관저와 집무실이 런던 다우닝가 10번지에 같이 있다. 여기에 국무회의장이 있고 비서실장도 근무한다. 옆 건물인 11번지엔 재무장관 집무실과 관저, 9번지에는 집권당 원내대표 집무실이 있다. 미국도 백악관 웨스트윙에 대통령 집무실, 부통령실, 비서실장실, 국가안보보좌관실, 대변인실 등이 함께 모여 있다. 

    아직 집무실을 어디로 할지 정해지지 않았지만 광화문 대통령 시대가 열려 집무실과 비서동이 한곳에 모이면 구중궁궐 같은 청와대의 비효율은 크게 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한 의원은 “물리적으로는 상황이 좋아지겠지만 결국 대통령이 얼마나 소통 의지를 갖고 있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촛불 정신 계승 의미도

    더불어민주당(민주당) 인사들은 “광화문 대통령 시대는 광화문 촛불민심을 받든다는 뜻도 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광화문으로 출퇴근하면서 주권자의 뜻에 따라 국정을 운영하려고 노력하는 대통령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대한민국 주권자는 국민이며,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광장의 정신을 몸소 구현할 수 있다는 점에서다. 청와대 근무 경험이 있는 민주당 한 초선의원은 사견임을 전제로 이렇게 말했다.

    “지금까지는 국민이 대통령을 선출하면 그것으로 주권자로서 권리를 모두 행사한 것으로 착각하는 경향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지난해 광장에 모인 촛불은 주권자가 권한을 위임하기도 하지만, 위임한 권력을 회수할 수도 있음을 보여줬다. 그렇기에 광장 민주주의가 꽃피운 국민주권주의에 부합하는 길은 대통령이 통치자로 국민 위에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 속으로 들어가 함께 호흡하는 것이다. 그 상징적 조치가 청와대 경내에서 벗어나 국민이 지켜보는 곳에서 일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일 수 있다.”

    대통령 관저를 청와대에서 총리 공관으로 옮기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 이 경우 새 총리 공관을 세종시에 만들어 세종시가 사실상 행정수도 기능을 하게 하겠다는 공약을 이행하는 효과도 아우를 수 있다.

    문 대통령은 “청와대와 북악산은 국민에게 돌려드려 수도 서울을 상징하는 시민 휴식공간으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광화문대통령공약기획위원회와 함께 서울역사문화벨트조성공약기획위원회를 동시에 발족한 것도 그 때문이다. 청와대를 시민의 휴식공간으로 돌려주겠다는 문 대통령의 구상은 14년 전 노무현 전 대통령이 대통령 별장이던 청남대를 개방한 것을 떠올리게 한다.

    대통령 집무실을 광화문으로 옮기는 데 가장 큰 난점은 경호와 보안 문제다. 청와대는 북악산자락에 자리 잡아 경호와 보안에 탁월한 곳이다. 반면 광화문 집무실은 접근성은 좋지만 사방으로 노출돼 경호와 안전에 취약하다는 게 단점이다. 대통령경호실은 다양한 방법으로 경호 취약점을 해결할 실험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대통령 집무실이 이전할 유력 후보지로는 정부서울청사가 거론된다.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 황교안 국무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직을 수행하면서 청사 내 총리 집무실의 시설과 보안 문제를 꼼꼼히 점검했다는 점에서다. 그러나 참여정부 출신 인사들 사이에는 2002년 대선 직후 노무현 대통령 당선인이 사무실로 쓰고, 문재인 대통령이 당시 민정수석실로 사용한 외교부 청사가 더 적합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한 인사는 “대통령 집무실에는 수석비서관들과 수시로 회의할 수 있는 공간이 충분히 확보돼야 하는데, 동서로 좁고 남북으로 긴 정부서울청사는 공간 활용 측면에서 마땅치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광화문으로 집무실을 이전하는 일은 가을 전까지 마무리 지을 것으로 알려졌다. 또 청와대 지하벙커(위기관리상황실), 국빈 영접을 위한 영빈관, 헬기장 같은 시설은 계속 사용할 예정이다. 나머지 공간을 대통령 기념관이나 박물관으로 바꿔 시민에게 공개하는 방안을 구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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