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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교익의 미식생활

고소하고 쫀득쫀득 내 어린 시절 어묵 돌리도

어묵의 배반

  • 황교익 blog.naver.com/foodi2

고소하고 쫀득쫀득 내 어린 시절 어묵 돌리도

고소하고 쫀득쫀득 내 어린 시절 어묵 돌리도

부산 자갈치시장의 즉석 어묵이다. 생선이며 기름이 옛날의 그것이 아니다.

필자는 마산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걸음마 배우고 나서부터(내 기억은 그렇다) 어머니가 시장에 가면 졸래졸래 따라다녔다. 어머니는 명절 전 대목장을 보실 때면 미아가 될 수 있다며 나를 떼어놓으려고 하셨지만 그때도 악착같이 따라붙었다. 시장에서 맛난 거 하나를 얻어먹기 위해서였는데, 그중 하나가 어묵이었다.

그 시절 마산 어시장 어묵 공장은 제조 과정이 그대로 노출되어 있었다. 맨바닥에 조기와 갈치 새끼 같은 잡어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그 옆에는 벨트를 돌리는 원동기가 있었고, 벨트는 돌로 된 절구인지 맷돌인지를 돌렸다. 인부들이 삽으로 생선을 집어넣으면 꾸물꾸물 생선살이 갈려서 나왔다. 생선을 씻은 것도 아니고 내장이나 머리를 뗀 것도 아니었다. 막 잡아 그물에서 떼어낸 싱싱한 생선 새끼들이 그 자리에서 갈렸다. 갈린 생선살을 삽으로 다시 치댔는데, 그때 어떤 첨가물이 들어갔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렇게 만들어진 생선살은 기름 솥 뒤로 운반됐고, 그곳에는 네모 틀에 생선살을 집어넣어 모양을 잡는 사람들이 서 있었다. 모양이 잡힌 생선살은 곧바로 기름 솥에 던져졌다. 힘없이 축축 처지는 생선살이 기름 안에서 차르르 소리를 내면서 익어 떠오르면 쫄깃한 어묵이 됐다.

어머니는 반찬으로 어묵을 사든 안 사든 내 손에 이걸 하나씩 들려주었다. 거무스레한 색깔에 식감은 거칠었다. 생선 내장까지 갈려 들어갔으니 색깔이 검은 것이고, 뼈와 머리까지 들어갔으니 뼈 조각이 씹혔던 것이다. 한입 베어 물면 고소한 기름 냄새가 입 안에 가득 찼다. 지금의 식물성 기름 냄새와는 확연히 다른 아주 짙은 고소함이었다.

부산의 한 어묵 공장을 취재할 일이 있었다. 내 추억 속에 있는 그 어묵 기름 냄새의 근원을 확인하고 싶었다. 마침 40여 년의 경력을 가진 어묵 제조 기술자를 만났다. 그는 그때의 기름은 생선 기름이라 말해주었다. 기름을 낼 수 있는 생선은 고등어, 멸치, 삼치, 전갱이 등인데 당시 남해에서 전갱이가 많이 잡혔으니 전갱이 기름이었을 확률이 높다고 했다. 그러니까 그때의 어묵은 싱싱한 생선살을 생선 기름으로 튀긴 것이었다. 어렸을 때 먹었던 그 어묵의 향과 맛은 오롯이 생선에서 유래했던 것이다.

요즘의 어묵 재료는 연육이라는 것을 쓴다. 연육은 생선살을 발라 으깨 가공한 것이다. 원양에서 잡은 생선을 배 또는 육지의 공장에서 연육으로 만들어 냉동 상태로 수입한다. 명태나 도미 같은 하얀 생선살을 주로 사용해 어묵 색깔이 하얗다. 여기에 찰기와 양을 더하기 위해 밀가루 등을 배합한다. 이 밀가루 등의 함량에 따라 어묵의 맛이 달라진다. 어묵을 끓였을 때 두세 배 부풀어 오르는 것은 밀가루가 많이 들어갔기 때문이다. 생선의 살은 그렇게 부풀어 오르지 않는다.



시중의 어묵은 두 종류다. 대형 공장에서 내는 어묵과 시장의 즉석 어묵. 이 둘의 원료 차이는 없다. 수입 냉동 연육을 쓰는 것도 같고 튀기는 기름도 비슷할 것이다. 밀가루 등의 배합 비율이 다를 수는 있다. 또 하나 다른 점은 대형 공장의 어묵은 포장해 냉장 유통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하면 생선살의 조직감이 떨어질 수도 있다.

요즘에도 시장에 가면 즉석 어묵 가게 앞에서 발길이 멈춘다. 어렸을 때 어묵 맛을 추억하고 싶은 것이다. 그 욕심에 으레 어묵 한 봉지를 사지만 집에 와서는 냉장고에 처박아두게 된다. 아무리 기준을 낮추어도 그 옛날 맛이 아니다. 근대화 이후 한국의 식품산업이 발달했다. 하지만 내 입맛을 기준으로 보자면 후퇴한 것이다.



주간동아 2011.04.04 781호 (p64~64)

황교익 blog.naver.com/foodi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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