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81

2011.04.04

“너, 사기범 맞지?” 영장주의 예외 남용

수갑 채워진 의대생

  • 최강욱 법무법인 청맥 변호사

    입력2011-04-04 10: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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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 사기범 맞지?” 영장주의 예외 남용

    ‘현행 범인 체포’ ’긴급 체포’는 영장주의에서 예외인 사항이며 일반인도 영장 없이 체포할 수 있지만, 수사 기관에 지체 없이 인도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지난해 말 신문에서 본 기사는 영장주의의 예외에 대해 여러 생각을 하게 했다. 서울의 한 의대생 A씨가 동네 편의점에서 갑자기 들이닥친 경찰들에게 수갑이 채워진 채 체포됐다가 결국 혐의가 없는 것으로 밝혀져 풀려났다는 내용. 사건은 지난해 12월 어느 날 A씨의 자취방 근처 편의점에서 벌어졌다. 갑자기 다가온 경찰 4명은 CCTV 사진 한 장을 A씨에게 불쑥 내밀면서 “너 맞지?”라고 다짜고짜 반말을 하더니 양쪽에서 팔짱을 끼고, 흉기를 찾는다며 몸수색을 했다. 그리고 A씨를 그의 자취방으로 데려갔다.

    황당해하면서 이유를 묻는 A씨에게 경찰은 “네가 더 잘 알지 않느냐”고 반말을 하면서 미란다 원칙(체포 이유, 변호사 선임권 등을 고지하는 것)을 고지했다. 이어 긴급 체포서를 20초 정도 보여주고 수갑을 채웠다. 곧바로 경찰은 증거를 찾기 위해 A씨의 책상과 서랍을 뒤졌고, 노트북 등을 압수했다. 알고 보니 당시 경찰은 인터넷 중고품 사기사건을 수사 중이었는데 A씨를 범인으로 단정했던 것. 결국 A씨는 17시간 동안이나 체포돼 사기범 취급을 받다 무고함이 밝혀져 풀려났고, 얼마 후 경찰에게 사과 한마디 받지 못한 채 노트북만 돌려받았다.

    A씨의 사례에서 법적으로 문제가 되는 부분은 경찰이 영장도 없이 일사천리로 강제 수사를 했다는 점이다. 수사 기관이 수사를 하는 방법에는 강제력이 동원되는 강제 수사와 대상자의 임의적 협조에 의한 임의 수사가 있다. 체포, 구속, 압수·수색 등의 강제 수사는 법관이 발부한 영장에 의해서만 가능한데, 이는 헌법 차원에서 보장되는 권리로 ‘영장주의 원칙’이라고 한다.

    그런데 영장 없이도 강제 수사가 가능한 경우가 있다. 구금과 관련해선 ‘현행 범인 체포’ ‘긴급 체포’가 영장주의의 예외다. 범행을 실행 중이거나 실행 직후 또는 현장에서 범인으로 확인돼 추적당하거나 범행에 사용한 흉기를 소지하고 있는 자를 현행 범인이라고 한다.

    현행 범인이 아니어도 3년 이상 징역에 해당하는 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의심받을 이유가 있는 자가 도피, 증거 인멸의 우려가 있을 경우에도 수사 기관이 영장 없이 긴급 체포할 수 있다. 그 대신 48시간 내에 정식 구속 영장을 청구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석방해야 한다. 압수·수색도 ‘체포 또는 구속 현장에서의 압수·수색’ ’범죄 장소에서의 압수·수색’ 등 사정상 영장을 발부받기가 곤란한 경우에만 가능하다.



    A씨가 당한 사례를 법률적으로 정리하면, A씨는 법정형 3년 이상의 징역형에 해당하는 사기 혐의 범인으로 의심받아 영장 없이 긴급 체포됐으며, 현장에서 영장 없이 자신의 몸과 자취방을 수색당한 것이다. 결국 A씨에게는 영장주의 예외 조항이 적용된 셈이다. 형식적으로 A씨 사례는 문제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A씨가 사기죄를 범한 것으로 ‘의심받을 상당한 이유가 있는 자였는가’라는 점과 ‘당시 영장 없이 체포할 긴급한 이유가 있었는가’라는 부분이 명쾌하지 않다.

    수사로 인해 A씨가 입은 피해를 구제받을 수 있는 방법으로는 형사보상청구와 국가배상청구가 있다. 수사에 불법은 없었으나 수사과정에서 구금됐던 자가 무혐의 결정 또는 무죄 판결을 받아 석방될 경우, 1일 5000원 이상의 보상을 받는 제도가 형사보상청구다. 국가배상청구는 수사기관의 고의, 과실에 의한 불법 행위가 개입된 경우 피해 배상을 받는 것이다. A씨의 경우 구금 기간이 채 1일이 되지 않아 형사보상청구는 의미가 없다. 그 대신 수사 기관이 A씨를 범인으로 의심하고 긴급 체포한 행위에 고의, 과실이 있었다는 점을 입증해 국가배상을 청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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