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77

2011.03.07

재일동포 용길이네 ‘희망 이야기’

연극 ‘야끼니꾸 드래곤’

  • 현수정 공연칼럼리스트 eliza@paran.com

    입력2011-03-07 13:2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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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일동포 용길이네 ‘희망 이야기’
    연극 ‘야끼니꾸 드래곤’은 예술의전당 개관 20주년과 일본 신국립극장 개관 10주년을 기념해 기획한 한일합작 공연으로 2008년 양국에서 정의신, 양정웅 공동 연출로 초연했다. 이 연극은 1960년대 말 간사이 지방 조선인 주거지역을 배경으로, 사회적 약자로서 궁핍한 삶을 이어가는 재일교포들의 모습을 그린다. 이번 공연은 재일교포 정의신이 연출과 극작을 맡았다.

    단일 세트인 무대는 ‘용길이네 곱창집’ 내부를 중심으로 디자인됐다. 쓰러져가는 집들이 한쪽 가장자리에 늘어서 있다. 극은 이 가족 구성원들의 개인적인 사건과 이들이 일본에서 겪는 사회적인 갈등에 초점을 맞춘다. 주목할 것은 표면적으로는 소소한 일상을 유머러스하게 조명하는 것 같지만, 그 속에 재일교포의 혼란스러운 정체성과 소외감, 우리나라의 현대사가 적절히 녹아들어 있다는 점이다.

    주인공 용길이는 굴곡진 현대사를 몸으로 겪은 인물. 제주도 출신인 그는 일제강점기 때 태평양전쟁에 징병돼 한쪽 팔이 잘렸고, 고향으로 향하던 중 배가 침몰해 전 재산을 잃었다. 그런 데다 제주 4·3사태로 고향마을조차 실종되는 아픔을 겪었고, 6·25전쟁 때는 아내와 사별했다. 이후 영순을 만나 자신의 두 딸인 시즈카와 리카, 영순의 딸인 미가, 그리고 영순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 도키오와 함께 일본의 국유지에서 곱창 장사를 하며 현재의 터전을 일구었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고, 네 명의 자식은 말도 많고 탈도 많다. 시즈카는 다리를 다쳐서 불구가 됐고, 리카는 남편 테츠오와 원만하지 못하다. 두 사람과 시즈카가 애매한 삼각관계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클럽에서 일하는 미가는 유부남과 연애하고, 애써 명문학교에 보내놓은 도키오는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며 언어장애를 겪는다.

    극은 리카의 결혼식으로 시작하며, 대체로 딸들의 애정사를 중심으로 통속적이고 희극적인 진행을 보이지만, 도키오의 예상치 못한 행동과 더불어 급전한다. 사건들을 과장되게 표현하지 않음에도, 앞서의 희극적인 리듬이 깨지면서 일어나는 충격이 상당하다. 도키오는 극중 인물과 소통하지 못하는 대신 관객에게 말을 걸며 화자 역할을 해왔기 때문에 그의 행동은 관객의 마음에 직접적으로 호소한다.



    주제를 드러내고 극을 결말로 이끄는 또 하나의 사건이 있으니, 바로 마을의 철거 명령이다. 이 작품의 구조와 내용은 지난해 한국에서도 선보인 적이 있는 연극 ‘지붕 위의 바이올린’을 연상케 하는데, 특히 후자에서 유대인들이 나치의 탄압을 피해 뿔뿔이 흩어진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반면 일본, 남한, 북한 중 선택을 강요당하는 점은 우리나라의 독특한 현대사와 해결되지 않은 숙제를 돌아보게 한다. 한편 현실의 장벽은 낮아질 줄 모르는데 벚꽃이 흩날리는 가운데 희망을 노래하는 인물들의 모습은 적잖은 페이소스를 느끼게 한다.

    이 작품은 무대에서 직접 곱창 굽는 냄새를 풍기기도 하고, 일본어와 한국어가 뒤섞인 상태로 공연을 하는 사실감 있는 연출을 보여준다. 2008년에 좋은 연기를 보여줬던 고수희, 김문식을 비롯한 원숙한 배우들의 연기를 기대할 만하다. 3월 9~20일까지, 예술의전당 토월극장, 02-580-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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