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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상상하는 나라 이스라엘 뼛 속까지 벤치마킹해야죠

미국 벨연구소 윤종록 특임연구원 “창업국가 번역하며 특유의 ‘후츠파’ 정신 깨달아”

  • 김유림 기자 rim@donga.com

상상하는 나라 이스라엘 뼛 속까지 벤치마킹해야죠

상상하는 나라 이스라엘 뼛 속까지 벤치마킹해야죠
2월 23일 오후 서울 광화문 모든 대형서점을 돌아도 ‘그 책’ 한 권을 찾을 수 없었다. 알고 보니 그날 서울 광화문 올레스퀘어에서 열린 윤종록 미국 벨연구소 특임연구원의 강연에 참석하는 사람들이 시중에 나온 모든‘창업국가’(댄 세노르·사울 싱어 지음)를 싹쓸이했던 것. 강연을 놓친 300 여 명은 KT경제경영연구소 홈페이지(www.digieco.com)를 통해 그 강연을 ‘다시보기’ 했다. 그야말로 이스라엘, 그리고 창업국가 신드롬이다.

이스라엘 경제 성장의 비법을 담은 책 ‘창업국가’(댄 세노르·사울 싱어 지음)는 현재까지 16개 언어로 번역돼 100여 개국에서 출판했다. 특히 이스라엘과 ‘1948년 건국 동기’인 한국의 관심이 뜨겁다. 2010년 이명박 대통령은 추석 선물로 사회지도층 600여 명에게 이 책을 전했고 삼성, LG, 포스코, KT 등에서 ‘임직원 필독서’로 선정했다.

이스라엘 열풍을 몰고 온 책 ‘창업국가’를 번역한 윤종록 연구원이 2월, 3주간 한국을 방문했다. 윤 연구원은 “이스라엘은 ‘두뇌의 밭’에 ‘하이테크’를 경작하는 국가로, 세계에서 유일하게 한국이 벤치마크할 게 남은 나라”라고 단언했다.

겁없이 도전 아낌없이 지원 ‘창업 천국’

윤 연구원이 처음 이스라엘을 접한 것은 2005년 에후드 올메르트 당시 부총리가 한국을 방문했을 때다. 당시 KT성장산업 부사장이었던 윤 연구원은 KT를 방문한 올메르트 부총리와의 2분 남짓한 대화를 지금도 잊지 못한다.



“부총리의 명함에는 ‘경제, 산업정책, 노동, 과학기술 담당’이라고 쓰여 있었어요. 한 사람이 네 가지 분야를 담당할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이스라엘 경제의 95%는 두뇌에서 나오기 때문에 과학기술이 경제다’라고 답하더군요. 자원이 없는 나라는 근본적 사고가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죠.”

이듬해 올메르트 부총리의 초청으로 이스라엘을 방문한 윤 연구원은 ‘이스라엘 경제 발전의 근간은 부총리 산하의 OCS(Office of Chief Scientist)’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자연과학, 경제, 환경, 미래사회 분야 전문가 150여 명으로 이뤄진 OCS는 이스라엘의 모든 사회, 경제 문제를 의논하고 정책을 결정한다. 윤 연구원은 “OCS는 이스라엘의 과학과 경제를 이끌고, 마침내 나라를 이끄는 ‘이스라엘의 브레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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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서울에서 만난 올메르트 이스라엘 전 총리와 윤종록 연구원.

또한 윤 연구원을 사로잡은 것은 이스라엘인 특유의 성격이었다. 그는 “올메르트 부총리는 어떤 격식도 따지지 않고 질문했으며, 어떤 결정을 내리는 데 머뭇거림이 없었다”고 회상했다. 이는 이스라엘인 특유의 ‘후츠파(chutzpah)’ 정신이었다. 후츠파란 ‘주제넘은, 뻔뻔한, 철면피’부터 ‘놀라운 용기’까지 넓은 의미의 스펙트럼을 가진 단어다. 윤 연구원은 “직장뿐 아니라 군대에서도 상사의 직책이 아닌 이름을 부르는 이스라엘인은 ‘후츠파’ 정신대로 겁 없이 도전한다”고 평가했다.

윤 연구원은 지난해 9월 시몬 페레스 이스라엘 대통령에게서 편지 한 통을 받았다. “사람들은 상상보다 기억을 좋아합니다”라고 시작하는 편지는 “그 자체가 영원한 ‘start-up’인 이스라엘은 늘 위험을 감내하며 상상해왔고, 앞으로도 끊임없이 상상할 것”이란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페레스 대통령은 1948년부터 60여 년간 이스라엘 모든 장관직을 수행했으며 수상도 두 차례나 했다. 페레스 대통령에 대해 말하는 윤 연구원의 얼굴에는 존경의 빛이 가득했다.

“우리로 치면 이승만 대통령 시절부터 활동한 젊은 정치인이 60년 동안 어떤 구설도 없이 정치를 이끌어온 것이죠.‘88세의 젊은 대통령’ 페레스가 없었다면 지금의 이스라엘은 없었을지도 모르죠.”

없는 것 만들어내려는 노력 없이는 생존 어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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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3일 KT 올레 스퀘어에서 열린 윤 연구원의 강연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일자리 창출은 세계 지도자들의 최대 숙제다. 윤 연구원은 “산업사회에서는 1만 명이 1만의 가치를 창출해 균등하게 분배했다면, 지식정보 사회에서는 1만의 가치를 창출하는 데 단 10명만 참여한다”고 설명했다. 즉, 나머지 9990명은 성장과 분배에 참여할 기회가 없는 것. 윤 연구원은 “이스라엘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금은 없는’ 기업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고 그 결과 창업을 장려했다”고 말했다.

구글 최고경영자(CEO) 에릭 슈미트가 “창업자들에게 이스라엘은 미국 다음의 최고 나라”라고 했을 정도로 이스라엘은 창업 천국이다. 이스라엘 정부는 외국 및 다국적기업과 합작펀드를 만들어 창업을 아낌없이 지원한다. 윤 연구원은 “이스라엘에서 한 해 동안 창업하는 벤처 수는 유럽 전체 창업 벤처 수보다 많다”라고 덧붙였다.

대표적인 이스라엘 벤처회사로 ‘네타핌(Neta-Firm)’이 있다. 사막 중간에 자리한 이스라엘은 농업에 적합하지 않다. 하지만 ‘이스라엘 오렌지’는 못생겼지만 맛있기로 유명하다. 그 비결은? 네타핌은 오렌지 뿌리에 파이프를 연결해 과학적으로 최고의 당도를 낼 수 있는 최소의 물만 공급한다. 과학을 통해, 최소한의 자원으로 최대 효율을 내는 기술을 마련한 것.

“이스라엘에 적대적인 일부 아프리카 나라까지 이 기술을 사려고 이스라엘과 외교관계를 검토 중입니다. 이스라엘의 과학과 창업은 농업, 경제뿐 아니라 외교 문제까지 해결하죠.”

KT 부사장직에서 은퇴한 윤 연구원은 2009년 벨연구소로 자리를 옮겼다. 벨연구소는 세계적 통신장비 업체인 알카텔 루슨트의 연구·개발(R·D) 센터로,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를 13명이나 배출했다. 한때 ‘한국계 빌 게이츠’로 불렸던 재미 벤처기업가 김종훈 박사가 연구소 사장을 맡고 있다. 윤 연구원은 ‘주인을 보면 꼬리를 흔드는 자동차’ ‘소모 칼로리를 계산하고 잘못된 걸음걸이를 지적하는 운동화’ ‘음식 염도를 재는 숟가락’ 등의 예를 들며 “벨연구소는 하드웨어 안에 IT를 통해 ‘혼(魂)’을 불어넣는 일을 한다”고 설명했다.

“이제 IT는 별도 산업이 아니라 모든 산업의 ‘비타민’입니다. 없어도 죽지 않지만 있으면 삶이 풍부해지죠. 모든 산업은 IT를 통해‘혼’을 담고, ‘그 이상의 것’이 됩니다.”

윤 연구원은 현재 ‘창업국가’ 한국편을 준비 중이다. 한국은 1962년 1인당 국민소득이 78달러에 그쳐 아프리카 가나 수준이었지만, 50년 만에 2만 달러를 돌파했다.

“한국 경제는 21세기 이스라엘만큼이나 혁신적인 성장을 이뤘습니다. 우리나라의 비결이 다른 나라에 알려지면, 우리나라 경제도 개발도상국이 따라 배우는 하나의 ‘모델’이 될 수 있겠죠. 하지만 이스라엘의 ‘후츠파’처럼 한국인의 특성을 담은 한 단어를 찾아야 하는데 쉽지 않네요.‘미래를 위해 현재의 고통을 참아내는’ 한국인의 특성을 잘 담아낼 수 있는 단어로 뭐가 있을까요?”

윤 연구원은 올 하반기 이스라엘의 한 대학교에 초빙교수로 가, 더욱 면밀히 이스라엘을 보고 배울 예정이다. 그는 ‘KT 후배들과 모든 기업인에게 해주고픈 말을 한 문장으로 요약해달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없는 걸 창조하는 일은 쉽지 않죠. 하지만 미래에 살아남으려면 ‘없는 걸 만들어내기 위한 노력’의 비율을 점차 늘려야 합니다.”



주간동아 2011.03.07 777호 (p64~65)

김유림 기자 r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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