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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 황금거위? 개살구? 한국 뮤지컬의 속살 03

‘도도한 공주님’은 과연 누구? 캐스팅부터 ‘앗! 뜨거워’

뮤지컬 ‘투란도’ 오디션 현장…30대 1 경쟁률, 터질 듯한 긴장 속 지원자 열창

  • 박혜림 기자 yiyi@donga.com

‘도도한 공주님’은 과연 누구? 캐스팅부터 ‘앗! 뜨거워’

‘도도한 공주님’은 과연 누구? 캐스팅부터 ‘앗! 뜨거워’

(오른쪽 사진) 오디션장 밖 복도. 지원자들의 얼굴엔 긴장한 기색이 역력하다.

“오디션은 일상이다.”

뮤지컬 배우들에게는 진리로 통하는 말이다. 뮤지컬 배역은 제작자가 처음부터 특정 배우를 염두에 두고 작품을 만들거나, 무대 경험이 많아 실력이 검증된 A급 배우를 주연으로 캐스팅하는 등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모두 오디션으로 결정한다. 사실 A급 배우도 대부분 오디션에 참여한다. 오디뮤지컬컴퍼니 신춘수 대표는 “뮤지컬 배우에게 오디션은 숙명”이라며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뮤지컬 오디션은 교사가 학생의 성적을 매기듯 지원자의 실력을 평가하는 작업이 아니다. 작품 속 배역에 가장 잘 어울리는 배우를 찾는 것이 오디션의 목적이다. 그래서 인기 연예인이나 유명 뮤지컬 배우도 오디션을 봐야 하는 일이 많다.”

실력+이미지+가능성 있는 배우 발굴

2월 21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서울시뮤지컬단 연습실을 찾았다. 이곳에서 뮤지컬 ‘투란도’의 공개 오디션이 열렸기 때문. 이번 공연은 서울시뮤지컬단 김효경 단장이 푸치니의 오페라 ‘투란도트’를 뮤지컬로 재창작한 작품. 이날 오디션에 응시한 지원자는 120여 명으로 경쟁률이 30대 1이 넘는다.



일반적으로 오디션 지원자 중에는 연극영화과나 무용과 전공자가 많다. 서울시뮤지컬단 홍보팀 박향미 씨는 “이번 오디션에는 유난히 성악과 출신 지원자가 많다”며 “이번 작품이 오페라를 바탕으로 한 오페라 뮤지컬이기 때문일 것”이라고 해석했다. 이날 오디션에서 심사위원들이 평가할 항목은 자유곡·지정곡 부르기와 연기 및 움직임 테스트. 지정곡은 ‘나를 인도하던 별’(남성 지원자)과 ‘그 누가 알까’(여성 지원자)로, ‘투란도’에서 쓰일 곡이다. 지정곡은 오디션 20여 일 전에 지원자들에게 알렸다. 이와 달리 연기 대본과 지정 움직임은 오디션 당일 공개했다.

‘도도한 공주님’은 과연 누구? 캐스팅부터 ‘앗! 뜨거워’

심사위원으로 자리한 가수 윤복희 씨(왼쪽에서 두 번째)와 서울시뮤지컬단 김효경 단장(오른쪽에서 두 번째) 등. 지원자를 바라보는 눈빛이 매섭다.

오디션장 밖 복도는 노랫소리, 수다 소리 등으로 시끌벅적했다. 지정곡 악보를 보며 중얼거리는 여성, 눈을 감고 입을 푸는 남성, 삼삼오오 모여 서로의 안부를 묻는 이들 등 다양한 지원자가 자리했다. 하지만 긴장한 표정만은 모두 비슷했다. 흥미로운 사실은 많은 지원자가 검은색 상·하의를 입었다는 점이다. 검은색은 연주복 색상으로 자주 쓰일 뿐 아니라 단정해 보여 오디션 지원자가 가장 선호한다고 한다. 한눈에도 공들인 티가 나는 화장과 머리 스타일을 한 지원자, 핑크색의 화려한 원피스를 입은 지원자, 청바지에 가죽 재킷을 입고 간편한 운동화를 신은 지원자도 눈에 띄었다.

홍금단(34) 씨는 ‘오페라의 유령’ ‘카르멘’ 등 여러 뮤지컬 무대에 서본 11년 차 베테랑 배우다. 그는 “이젠 오디션이 익숙할 법한데도 매번 떨린다”며 긴장감을 감추지 못했다. 2006년부터 뮤지컬 배우로 활동해온 박인배(29) 씨는 대학에서 연극을 전공했다. 박씨는 “다른 오디션장과 달리 성악과 출신이 많아 조금 부담스럽다”면서도 “성악 전공자보다 연기는 나을 것이다. 노래를 할 때도 노랫말에 감정을 실어 더 깊이 있게 표현할 수 있다. 꼭 불리하지만은 않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번 들어오세요.” 오디션 진행요원이 지원자의 지정번호를 호명하자 지원자가 오디션장에 들어섰다. 지원자의 맞은편에는 서울시뮤지컬단 단장이자 이번 작품의 연출을 맡은 김효경 단장을 비롯해 서울시오페라단 박세원 단장, 엄기영 음악감독, 가수 윤복희 씨 등 7명의 심사위원이 나란히 앉아 있었다. 이번 오디션의 가장 큰 취지는 참신하고 실력 있는 배우를 발굴하는 것. 그 때문일까. 심사위원들의 눈빛이 유독 날카로웠다.

한 여성 지원자가 오디션장 안으로 들어섰다. 이 지원자는 신영미(32) 씨로 “일본에서 뮤지컬 배우로 활동했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신씨가 자유곡과 지정곡을 부르고 나자 윤복희 씨가 “지정곡의 후렴구를 다시 불러달라”고 요청했다. 신씨가 후렴구를 부르기 시작하자 이번에는 김 단장이 “쭉쭉 가세요” “몸을 움직이지 말고 누에가 실을 뽑듯 다시 불러보세요. 투란도는 도도한 공주라는 걸 유념하고요” 하고 소리쳤다. 기자 옆에 앉은 한 진행요원은 “심사위원이 노래를 다시 시키거나 무언가를 더 지시하면 합격할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라고 귀띔했다.

한 남성 지원자가 코트 자락을 휘날리며 당당하게 들어와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의 넘버 ‘지금 이 순간’을 열창했다. 심사의원들의 표정이 만족스러운 듯했다. 하지만 지원자가 지정곡을 부르자 김 단장은 “연습이 부족한 것 같다”며 날카롭게 지적했다.

오디션장에 들어선 지원자 중에는 노래를 시작할 타이밍을 놓치거나, 노래 부르는 도중에 음 이탈을 한 이도 있었다. 아쉬움과 실망이 가득한 표정에 심사위원들도 안타까운지 “긴장하지 말고, 편안하고 여유 있게 하세요”라고 격려했다.

매 작품에 어울리는 지원자가 중요

‘도도한 공주님’은 과연 누구? 캐스팅부터 ‘앗! 뜨거워’

심사위원들은 “지원자의 수준이 높아졌다”고 입을 모았다.

이날 심사위원들은 “지원자들의 수준이 이전보다 훨씬 높아졌다”고 입을 모았다. 과거에는 자신감만 가지고 도전하는 지원자도 심심찮게 볼 수 있었지만, 이제는 노래, 춤, 연기 모두 일정 수준 이상의 실력을 갖춘 사람이 많다는 것. 지원자 수도 3~4년 전과 비교해 4배 이상 늘었다. 대극장에 올릴 뮤지컬은 지원자가 1000명을 훌쩍 넘는다.

그렇다면 심사위원들은 어떤 지원자에게 높은 점수를 줄까. 앞에서도 언급했듯 작품 속 배역과 잘 어울리는 이미지를 가진 지원자가 유리하다. ‘투란도’의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엄기영 음악감독은 “음색, 외모, 노래하는 스타일 등 전반적인 부분이 배역과 어울려야 한다”며 “다시 말해 오디션에서 탈락했다고 해서 합격자보다 실력이 떨어진다고 볼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투란도 역의 경우, 품위를 갖춘 공주이기 때문에 지원자의 외모도 무시할 수 없다.

지원자의 ‘성장 가능성’도 중요한 평가 요소다. 연출자가 작품에서 강조하려는 바를 가장 빠른 시간 안에 배우고 무대에서 표현할 수 있는 지원자가 합격할 확률이 높다. ‘투란도’는 오페라를 바탕으로 한 뮤지컬이기 때문에 일반 뮤지컬보다 노래의 난이도가 높은 편. 김 단장은 “이번 공연 곡의 전반적인 특징은 진성과 가성을 수시로 넘나든다는 점이다. 노랫말 역시 한 곡 안에 희로애락이 모두 담겨 있다”고 설명했다. 즉 음역대가 넓고, 진성과 성악 발성을 자연스럽게 구현할 수 있는 지원자가 유리하다.

엄 감독은 “노래 가사의 전달성”을 강조하며 이렇게 설명했다.

“단지 성악적인 기술로만 뮤지컬 노래를 부르려는 지원자가 있었는데,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오히려 말하듯이 가사를 정확히 전달하는 게 중요하다. 관객이 노래를 듣고 있으면 다음 가사가 무엇인지 궁금해야 한다. 노래를 자신의 이야기 들려주듯 부르는 지원자에게 좋은 점수를 줬다.”

‘투란도’ 오디션의 평가 항목 중에는 연기와 움직임이 포함됐지만 심사위원들은 대부분 지원자에게 이를 요구하지 않았다. 김 단장은 “심사 경험이 풍부한 심사위원들은 지원자의 걸음걸이, 몸가짐만 봐도 무용 수준을 짐작할 수 있다”고 말했다. 연기 역시 마찬가지. 뮤지컬 노래를 부르는 모습만 봐도 연기 수준을 평가할 수 있다는 설명.

오전 10시부터 시작된 오디션은 오후 7시20분이 훌쩍 넘어서야 끝났다. 오디션 현장을 참관한 기자 역시 지원자들의 뛰어난 실력에 여러 차례 감탄했다. 심사위원들은 하나같이 “오디션을 볼 때마다 실력이 뛰어난 지원자가 넘쳐나 고심한다”며 “실력을 충분히 갖췄다면 오디션 과정을 즐기라”고 조언했다.

“오디션은 적절한 배역을 찾는 과정이다. 적극적으로 임하되 좌절하지 말라.”

TV스타 뮤지컬 캐스팅은

입소문 마케팅엔 좋지만 연습 부족이 가장 큰 문제


‘도도한 공주님’은 과연 누구? 캐스팅부터 ‘앗! 뜨거워’

‘아이다’의 옥주현.

#1. “아이돌 출신이 어떻게 뮤지컬을 소화해?” 아이돌 그룹 ‘핑클’의 멤버였던 옥주현이 2005년 뮤지컬 ‘아이다’에 도전했을 때, 뮤지컬 관계자와 대중은 대부분 이같이 말했다. 하지만 옥주현은 모든 활동을 접은 뒤 연습에 전념했고 그해 한국 뮤지컬 대상에서 여우신인상을 받는 영광까지 안았다. 그 후에도 그는 꾸준히 ‘시카고’ ‘캣츠’ ‘몬테크리스토’ 등의 작품에 출연했고, 현재 국내 뮤지컬계를 대표하는 여배우 중 한 사람으로 성장했다.

#2. 현재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아이돌 그룹 멤버 A씨 역시 2009년 뮤지컬에 첫 도전장을 내밀었다. 평소 새침한 이미지와 잘 맞는 배역을 맡았지만, 평론가들의 반응은 냉혹했다. “A씨가 극과 어우러지지 못하고 겉돈다”는 혹평을 내린 것. 중견 탤런트 B씨도 마찬가지. 2008년 뮤지컬에 출연한 그는 무대에서 단순하고 작은 몸동작만 반복해 “TV 드라마 속과 무대 위의 연기는 엄연히 다르다”는 충고를 들어야 했다.

TV스타 마케팅은 약일까, 독일까? 2000년대 중반부터 뮤지컬에 도전하는 TV스타가 늘고 있다. 특히 최근 2~3년 새 아이돌 가수의 진출이 눈에 띄게 많아졌다. 동방신기의 유노윤호, JYJ의 시아준수, 소녀시대의 제시카, 빅뱅의 승리와 대성, 슈퍼주니어의 희철과 강인 등 웬만큼 인기 있는 아이돌은 모두 뮤지컬에 도전한다는 인상을 줄 정도.

뮤지컬 제작자에게 TV스타 마케팅은 매력적인 마케팅 기법 중 하나다. 큰 홍보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작품의 인지도를 높일 뿐 아니라, 뮤지컬 마니아 관객이 아닌 일반 관객도 공연장으로 끌어들일 수 있기 때문. 해외에서도 스타 마케팅은 빈번히 이루어진다. 인기 영화배우 안토니오 반데라스, 귀네스 팰트로나 인기 가수 마돈나가 뮤지컬에 출연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뮤지컬평론가 원종원 씨는 “뮤지컬은 장기 공연을 통해서 수익을 거두는 예술”이라며 “일반 대중도 극장을 찾아야 장기 공연이 가능한데, 대중은 유명한 스타가 나와야 공연을 찾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우리나라 뮤지컬 관객은 배우를 작품 선택의 중요한 요소로 여긴다. 원종원 씨는 “미국이나 영국의 뮤지컬 관객은 공연을 선택할 때 작품, 연출가, 안무가 등을 중요하게 보는 반면 우리나라 관객은 배우를 가장 우선시한다”고 분석했다. 그러다 보니 제작자들이 스타 캐스팅을 선호할 수밖에 없다는 것.

TV스타 마케팅의 문제는 스타들이 뮤지컬을 수많은 연예활동 중 하나로 여기는 데서 비롯된다. 다른 연예활동을 접지 않고 뮤지컬 연습을 하다 보니 충실히 준비하지 못한다는 것. 오디뮤지컬컴퍼니 신춘수 대표 역시 TV스타를 캐스팅했다 후회한 적이 있다. 신 대표는 “스타들이 실력이나 자질이 뮤지컬 배우보다 부족하다기보다, 연습할 시간이 부족해 최상의 모습을 무대에서 보여주지 못한다”고 평가했다.

한편 이들은 일반 뮤지컬 배우보다 많은 개런티를 받는다. 인기 스타의 경우 회당 1000만 원 이상의 출연료를, 지명도가 어느 정도 있는 스타는 회당 300만~500만 원을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앙상블로 무대에 서는 뮤지컬 배우는 회당 10만~20만 원을 받는다. 그러다 보니 뮤지컬 배우들이 TV스타에게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은 클 수밖에 없다. 뮤지컬 배우 이모 씨는 “개런티도 문제지만 TV스타의 스케줄에 맞춰 연습 시간을 짜느라 연습 일정이 자주 바뀌면 불쾌하기도 하다”고 털어놓았다.

뮤지컬 관계자들은 TV스타가 뮤지컬에 도전해 좋은 평가를 받으려면 “뮤지컬 무대를 결코 가볍게 보지 말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자칫 잘못하면 스타 본인에게는 물론 뮤지컬 전체 산업에도 독이 될 수 있기 때문. 뮤지컬 배우 류정한 씨는 “스타 때문에 뮤지컬을 보러 온 관객이 자칫 한국 뮤지컬의 수준을 낮게 볼 수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신 대표 역시 “스타가 뮤지컬 무대에서 좋은 연기를 선보이면, 그 파급력은 일반 뮤지컬 배우보다 훨씬 클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충분한 연습 없이는 어렵다”고 말했다.





주간동아 2011.03.07 777호 (p38~41)

박혜림 기자 yiy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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